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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들어요”
[342호 다르거나 혹은 같거나] 발달장애인 청년 이예진 이야기
[342호] 2019년 04월 29일 (월) 14:25:46 김영준 goscon@goscon.co.kr

#01
예진 씨는 동화 《강아지 똥》을 좋아한다. 예진 씨는 프린터가 내뱉는 종이를 한 장 한 장 포개기를 좋아한다. 예진 씨는 축구를 좋아한다. 예진 씨는 줌바 댄스를 좋아한다. 경험하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 책을 읽을 때는 도서관이 좋고, 프린터 소리 나는 사무실이 좋고, 공을 찰 때는 운동장이 좋고, 춤출 때는 무대가 좋다. 거기에 누군가 있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공간이면, 어디든 좋은 곳이다. 예진 씨는 어쩌면 모든 것을 좋아한다. 모든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김 목사가 충분히 해석하지 못하는 성경 구절이 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모든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과 함께하는 모든 것을 좋아하는 예진 씨는 어쩌면 모든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모든 사람에게 있을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 유튜브를 들으며 기타연주하는 예진 씨 (사진: 김영준 제공)

#02
모든 사람을 좋아하는 예진 씨는 발달장애인 자조모임도 좋아한다. 자조모임에 함께하는 조력자들을 좋아한다. 자조모임에 함께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을 좋아한다. 모든 사람이 좋고 모든 것이 좋았지만, 자조모임에서 다음에 가는 여행은 가까운 곳이면 좋겠다. 작년 여름에 다녀왔던 제주도는 너무 멀었다. “가까운 아프리카나 홍콩”에 가고 싶다.

신분증과 탑승권을 들고, 검색대를 지날 때 제복 입은 공항 직원들이 무서웠겠다. 게다가 검색대 앞에 가방을 놓아야 한다는데,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벨트 위에 놓인 바구니에 가방을 놓으면 가방 담긴 바구니가 깜깜한 기계 속으로 사라져버리는데, 도대체 왜 가방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방이 사라져버린 검색대 너머에는 사람들을 날카롭게 응시하는 공항 직원들이 서 있었고, 넓적하고 새까만 주걱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가방을 사라지게 하는 모종의 범죄 행위에 연루되어 있을 것이다. 게다가 공항 직원들은 몸까지 뒤지고 있지 않은가. 제주 가는 길에 예진 씨는 어쩌면 처음,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제주도를 가는 첫 관문에서 예진 씨는 가방을 앙가슴에 품은 채, 복숭아뼈까지 콘크리트 늪에 빠져버린 듯 꼼짝하지 못했다.

조력자가 찬찬한 소리로 괜찮다고 안심시켜 주었고, 공항 직원들은 얼어버린 예진 씨를 채근하지 않고 기다렸다. 아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 서 있는 곳으로 한 걸음씩 갈 수 있었고, 가방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옆에는 아는 사람이었고, 앞에는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발달장애인 예진 씨에겐 옆에 아는 사람과 앞에 기다리는 사람이 필요하다.

가까스로 검색대도 지나고 탑승에 성공했는데, 제주 가는 길엔 여러 난관이 남아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예진 씨 눈동자까지 굳어버렸다. 갑작스러운 기압 변화 때문에 오는 멍멍함 때문에 긴장이 너무 커서 예진 씨는 옆에 앉은 조력자의 손을 꼬옥 잡았다. 예진 씨의 긴장하는 손을 느낀 조력자가 다른 손으로 예진 씨의 손등도 덮어주었다. 잡아주고 덮어주는 손이 있으면 하늘도 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가파른 길도 가게 된다.

제주도 가는 길엔 발목까지 빠지는 콘크리트 늪이 있었고, 기압의 변화 때문에 귓구멍뿐만 아니라 눈동자도 멍멍했었다. 제주도는 참 멀지 않았는가. 다음엔 너무 먼 제주도 말고, “가까운 아프리카나 홍콩”에 가면 좋겠다. 제주도에도 다녀왔는데, 아프리카나 홍콩은 뭐, 가깝지 않겠는가. 검색대와 공항 직원을 다시 지나가야겠지만, 옆에 아는 사람이 있고 앞에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고, 또 손잡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뭐 갈만한 길이다.

#03
예진 씨 염색체는 마흔일곱 개다. ‘다운증후군’이라는 병명으로 예진 씨를 부르기도 하는데, 예진 씨는 다운증후군이 아니다. 예진 씨를 병의 이름인 다운증후군이라 불러선 안 된다. 병명이 예진 씨의 이름이 아니란 말이다. 아침마다 배앓이 하는 김 목사를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다운증후군은 예진 씨 몸을 이해하기 위한 의학 용어일 뿐, 병원에서 붙인 병명이 예진 씨의 이름은 아니다. 염색체가 마흔일곱 개인 예진 씨의 이름은 다운증후군이 아니라 ‘이예진’이다. 그래서일까. 염색체 한 가닥을 덜 갖고 있는 비장애인들에게 관심을 나눠주고, 염색체 한 가닥을 더 갖고 있어 당당하게 관심을 받는다. 모든 이에게 관심을 받아야 하고, 모든 이에게 관심을 주어야 한다. 염색체가 하나 더 넉넉한 예진 씨는 모든 공간에서 모든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넉넉한 에너지가 있다. 사실, 무얼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예진 씨를 보고 있고,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예진 씨는 다 좋아한다. ‘강아지 똥’을 좋아하고, 프린터를 좋아하고, 축구를 좋아하고, 줌바 댄스를 좋아하는 예진 씨는,

음악도 좋아한다. 교회 오빠가 피아노와 드럼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피아노와 드럼을 배운 이후, 예진 씨는 유튜브 영상을 켜놓고 반주를 하기도 한다. 영상을 켜고 한 시간씩 드럼을 치기도 하고, 기타도 치고, 피아노도 친다. 유튜브 속 연주와 노래를 따라 한다기보다, 예진 씨의 반주와 노래가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셈이다. 가상 망원경으로 블랙홀을 관찰할 수 있는 세상 아닌가. 스마트폰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고수들과 함께 예진 씨는 음악을 한다. 코요테의 〈불꽃〉, 오렌지캬라멜의 〈마법소녀〉, 방탄소년단의 〈아이돌〉을 연주하고 노래한다. 주법도 코드도 예진 씨가 정한다. 예진 씨만의 코드와 주법을 따라 코요테, 오렌지캬라멜, 방탄소년단이 공연한다. 중간에 공연을 끊으면 곤란하다. 이제 그만 조용히 하라거나, 집에 가야 한다거나, 밥을 먹으라는 둥 중간에 끼어드는 건 공연장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이미선 조력자와 함께 (사진: 이미선 제공)

#04
“선천성 심질환 중 우심실과 좌심실 사이에 있는 벽, 즉 ‘심실중격’이라 부르는 곳에 결손(구멍)이 있는 경우를 심실중격 결손”이라 한다. 예진 씨도 태어났을 때부터 심실중격에 500원 동전만 한 구멍(결손)이 있었다. 다섯 살 때, 심실 사이 결손을 메우는 수술을 했다. 21번 염색체가 하나 더 있는 장애인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질환이라고 한다. 외과 수술을 할 수 없던 시절엔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는 장애인들은 스무 살 이상을 살기가 어려웠었다. 다섯 살에 받았던 심실중격 결손 수술은 잘 됐고,
1996년생 예진 씨는 이제 스물넷 청년이다.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을 하면서부터 거울을 보게 되었고, 요새 거울을 볼 때면 심장이 뛴다. 액세서리에 관심이 생겨 목걸이를 한다. 새 옷과 운동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다양한 색깔의 추리닝을 사고 싶다. 연두색 상의와 빨간색 바지, 파란색 운동화를 사고 싶다. 엄마는 신호등 같겠다고 핀잔주었지만, 예진 씨는 엄마한테 똑같은 표정으로 되갚는다. 거울을 보며 예진 씨는 뛰는 심장으로 예쁜 옷과 액세서리를 욕망하고 있다. 운동해서 살도 빼고 싶다. 살이 빠지면 손가락도 가늘어질 테고, 손가락에 맞춤한 반지를 낄 수 있을 거다. 반지를 받아도 되고.

#05
예진 씨는 보호작업장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볼펜을 조립하고 조립한 볼펜을 포장하는 일을 하면서, 한 달에 25만 원을 받는다. 쉬는 시간이 싫다. 볼펜심에 스프링을 끼우고, ‘꼬다리’를 연결하고, 나무망치로 살살 쳐서 마무리하는 일을 멈춰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일을 멈추는 게 싫은데,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이 있어서 짜증 난다. 쉬지 않고 일하려는 예진 씨를 사람들이 지켜보고 쉬라고 권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쉬어주고 밥도 먹어준다. 일도 해야 하고, 쉬는 시간엔 쉬어줘야 하고, 점심시간엔 밥도 먹어줘야 해서 힘들다. 또, 일할 때마다 손을 다친다고 했다. 보호작업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어느 것 하나 녹록한 게 없어 힘들다. 그래도 자조모임에 와서 작업장에서 힘들었던 일을 하소연할 수 있어 다행이다. 매주 월요일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들과 자조모임을 하는데, 하루는 너무 힘들어 “깊은 한숨을 쉬며 먹고살기 힘들다”고 했다. 자조모임에 함께하는 특수교사인 조력자가 예진 씨의 한숨 섞인 말을 받아 “저도 하루 종일 학교에서 수업하려면, 교실과 교실 사이 이동하고 체육 시간엔 운동장을 수도 없이 오가네요. 하루 3만 보를 걷기도 해요. 저도 먹고살기 힘들어요”라고 푸념하면서 서로 위로해준다. 먹고살기 힘든 또 다른 사람에게 예진 씨는 위로자가 된다. “괜찮을 거예요” 하면서 조력자의 손을 잡아주었다. 하루 3만 보를 걸으며 일하는 조력자의 손을 잡아주는 예진 씨의 손은 아기처럼 작고 동그랗고 도톰하다. 날마다 손을 다친다는 예진 씨 손바닥과 손등에 눈에 띄는 흉터는 없다. 스물네 살 청년의 도톰하고 고운 손이다. 그러면 어떤가. 먹고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19년 차 특수교사의 한숨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06 
카페 ‘민들레와 달팽이’에선 일주일에 두 번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을 갖는다. 민들레교회도 ‘민들레와 달팽이’에서 예배드린다. 주중엔 전도사가 바리스타를 하고, 주일엔 바리스타가 전도사를 한다. 전도사 바리스타가 몸살 나서 골골거리기에, 김 목사는 바리스타 전도사에게 하루 쉴 것을 명했다. 전도사 바리스타는 카페를 쉴 수 없다고 기어이 출근을 강행하겠단다. 옆에서 대화를 듣던 예진 씨가 바리스타 전도사에게 한마디 한다. “말 좀 들어요.”

보호작업장에서 쉬는 시간에도 일을 멈추지 않고 스프링을 끼우고, 점심시간에도 ‘꼬다리’ 연결을 쉬지 않는 예진 씨가 할 말은 아니지 않느냐고, 김 목사가 따졌더니 “이거하고 그거하고는 다르지 않냐”는 눈빛으로 빤히 쳐다본다. 예진 씨의 권유를 무시하고 바리스타 전도사는 기어이 다음 날 출근을 강행했다.

말 참 안 듣는다. 아픈 몸을 쉬지 않고, 출근을 강행하는 게 하나님의 뜻은 아닐 터다. 하나님께서 예진 씨를 통해 안식에 관하여 말씀하셨다고 믿는다. 아파도 출근하는 전도사에게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52시간 이상 일할 수 있도록 ‘선택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꾀하는 사람들에게, 노동 시간 단축 요구를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투정이라 단죄하는 세력들에게,

안식이 창조의 완성이었다,고 하나님이 예진 씨를 통해 말씀하신다.

“말 좀 들어요.”


김영준
소설을 좋아하고, 그림을 찾아본다. 《그림 속 성경이야기》라는 책을 썼고, ‘문학 속 성경이야기’라는 모임을 진행한다. 발달장애인 지원을 위한 사회적협동조합 ‘파파스윌’에서 조합원이다. 이주민들과 함께 검정고시를 준비한 인연으로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 공부하는 교육협동조합을 준비 중이다. IVF 사회부 간사이고, 민들레교회 목사다. 김포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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