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최종편집 : 2019.6.15 토 11:14
기사검색
   
> 뉴스 > 커버스토리
       
난민이자 여성으로서 표현의 자유가 필요합니다
[커버스토리 알리야] 한국을 찾아온 난민 여성 이야기 2
[343호] 2019년 05월 27일 (월) 16:12:51 알리야 goscon@goscon.co.kr
   
▲ 알리야가 그린 그림. 모로코의 마을 축제 풍경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 이야기는 모로코에서 시작되지요.

모로코에서 여자로, 베르베르(Berber) 부족 출신으로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베르베르 부족은 1957년 모로코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모로코 정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했고, 결국 1973년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혁명이 발발하게 된 것은 주로 경제적 박탈로 인한 것이었고, 모로코 정부가 베르베르의 문제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것 역시 원인이었지요. 베르베르 족은 모로코에서 주로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교육을 잘 받지 못 하며, 미디어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짧았던 평화의 시절, 계속되는 폭력과 위협
저는 살면서 몇 번의 큰 사건들을 겪으면서 정서적으로 상처를 입었습니다. 매우 어렸을 때 예술을 배웠는데, 종이와 크레용과 색색의 볼펜과 물감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면서 기쁨을 누렸습니다. 불행히도 그런 평화와 기쁨의 시절은 길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어린 저를 결혼시키려 했고, 이를 피할 수 있는 길은 도무지 없었으니까요. 부모님은 어린 제가 기혼자로 새로운 삶을 살게 하려고 출생신고 날짜까지 조작했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하게 되고, 살면서 아들 하나와 딸 둘을 얻었습니다. 저와 아이들에게 잘하던 남편은 제가 베르베르 부족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저와 아이들의 삶을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무탈하게 지나가기를 바라던 2015년의 어느 날, 남편이 저에게 와서 자신이 정부 권력과 끈이 닿았다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제가 여자인데다가 베르베르 족 출신이기 때문에 제 인생을 파괴하겠다고 위협했고, 저는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그날 이후로 무서운 사건들이 연이어 들이닥쳤습니다. 외출을 할 때마다 몇 번이나 차가 달려들었고, 모르는 사람들이 칼을 들고 따라와서 ‘남편이 저와 아이들을 죽이라고 보냈다’고 말했죠.

“너는 아무 권리도 없는 베르베르 족”
막내 아이가 네다섯 살 정도였을 때, 저는 남편에게 심하게 얻어맞아서 왼쪽 귀가 손상됐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을 겪고 있지요. 저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상처를 입었고, 결국 남편을 고소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 모로코 사법체계에서는, 긴급 상황이나 결혼과 이혼 사건에 관해서는 어떤 보고나 등록 없이 직접 판사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판사는 제 부상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상황을 이해하고 동정했어요. 그날은 속이 너무 상하고 감정이 복받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기 때문에, 판사는 다음날 다시 오라고 했지요.

하지만 다음날 다시 찾아갔을 때, 그 판사는 완전히 돌변해 있었습니다. 당장 자기 사무실을 나가라고 하면서 그러지 않으면 감옥에 처넣겠다고 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하던 판사의 목소리와 무례한 태도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판사가 저한테 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지 알자 마음이 더 힘들었습니다. “너는 아무 권리도 없는 불쌍한 베르베르 족일 뿐”이라고 말했거든요. 

그는 제게 남편을 만나서 이야기했다고 말했고, 저는 언제나처럼 남편에게 복종해야 했습니다. 차별을 당연하게 말하는 판사의 뻔뻔하고 사악한 모습이 너무 무섭고 슬펐습니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남편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예술에서 얻은 위로, ‘안전’에 대한 갈망
남편에게 버림받은 후, 저는 어릴 때 열정을 품었던 예술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느끼는 심정, 누구에게도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모든 문제와 감정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제 과거와 현재 삶에서의 감정들, 제 상황과 일상의 사건들을 계속해서 표현했지요.

그러던 와중에 몇몇 추상화 전시에 참가했습니다. 남편과 분리되어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런 이벤트에 참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요. 언제나 쫓겨 살았고, 저와 아이들의 삶은 언제나 두려움에 쌓여 있었으니까요. 엄마로서 아이들을 보호해야 했고, 모든 전시회에 누군가를 대신해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동료 예술가들은 그 결정을 찬성했고, 어떤 전시에도 오지 않는 게 좋겠다고 권했습니다. 모든 전시 포스터마다 제 사진을 찾아 지우는 남자들을 봤다고도 했습니다. 남편의 무리는 그런 식으로 저를 제거해버리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어요.

결국 이런 여러 사건들 때문에 저는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피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 위협과 공포 때문에 저는 조국에서 피해자로 살았고, 안전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난민 여성의 삶의 분투에서 얻는 영감
삶을 살아가는 것, 특히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난민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몹시 힘듭니다. 다행히도 에코팜므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주위에 친절한 사람들이 생기는 일은 저를 전보다 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저는 자주 불안, 걱정, 슬픔, 행복과 같은 제 감정들을 그립니다. 그런 감정들을 표현하는 여성이라는 프로필을 사용하는 걸 좋아해요. 여성도 난민만큼이나 취약하고, 그 두 가지 위치에서는 인생에서 거의 같은 어려움들을 마주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인생의 문제들을 상상력으로 그릴 수 있는 추상화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난민으로서 사는 것이 그림 작업에 영향을 주냐고 묻곤 하는데요. 물론입니다. 저는 난민으로서, 난민들의 삶의 투쟁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그리고 여성으로서 삶의 분투와 일상에서 겪는 다른 감정들을 그리는 감각이 뛰어나고요.

스케치를 하거나 칠을 할 때면 제 감정과 말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면서 완전한 자유를 누립니다. 보통 살면서 마주한 어려움과 장애물들을 그림에 담아요. 저는 항상 제 감정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걸 표현하는 것도 어려운데다가, 타인에게 이해시킨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지요. 결국 이런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희망으로 가득한 색감으로 붓질을 하기로 했습니다. 타인에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어떤 색깔들을 사용하는 것은, 말로 하지 않아도 읽힙니다. 

저는 그림을 통해 여성의 실제 모습과, 특히 난민 여성이 삶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거나 지금 겪고 있는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습니다. 말과, 그림, 시, 혹은 일상의 활동과 관련된 다른 어떤 종류의 예술을 통해서든지 여성은 모든 사회 각 분야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합니다.

여성은 그 사회의 척추입니다. 미래 세대를 돌보고 교육합니다. 여성이 없이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난민 배경을 가진 예술가로서 여성은 다른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가능한 많은 방식으로 표현할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알리야
모로코 출신 예술가. 에코팜므에서 프리랜서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관련기사
· 다양성과 통합이 미래를 위한 기초입니다· 한국의 법제도는 난민에게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 난민·이주의 시대, 함께 만들어가는 ‘샬롬’· 세계 난민 현상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인터뷰] “분별없는 환대의 폭력성을 돌아봐야 할 때”
알리야의 다른기사 보기  
ⓒ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복음과상황 기사제보 광고문의 제휴안내 오시는길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03785) 서울 서대문고 신촌로 3길 15 산성빌딩 104호 | 전화 : 02-744-3010 | 팩스 : 02-744-3013
발행인 : 김병년 | 이사장 : 황병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병년
Copyright 2008 복음과상황.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con@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