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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이주의 시대, 함께 만들어가는 ‘샬롬’
[343호 커버스토리]
[343호] 2019년 05월 27일 (월) 16:32:17 김종대 goscon@goscon.co.kr

잊고 살아온 나/우리의 정체성, 난민

나는 난민 2세이다. 군사정권 아래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던 나의 할아버지는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상황이었으며, 아버지 또한 남산 안기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후 국제적인 압박 때문에 사형 집행을 할 수 없던 신군부에 의해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보내졌고, 이로 인해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잊고 있었다. 아니, 내가 난민 2세라는 사실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내가 나의 정체성을 깨달은 계기는, ‘미국에 사는 한인 디아스포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미국에 재정착하게 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세계 난민 디아스포라를 섬기는 일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난민’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특정한 이미지, 특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거나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나 또한 그랬다. 난민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게 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할아버지가 정치적 난민이었고 나 또한 난민의 스토리가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휴전 상태의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일상적으로 인지하며 살아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내가 난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게다가 한국은 현재 난민이 주로 발생하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역과는 물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기에 사람들이 직접 난민들과 접촉하며 난민 문제를 깊게 고민할 기회조차 갖기 쉽지 않다.

이처럼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철저히 타자화되어 있던 ‘난민’은, 작년 이맘때 제주도를 통해 입국한 500여 명의 예멘인들을 마주하는 경험을 통해 우리 삶으로 가깝게 다가왔다. 한꺼번에 제주도로 입국한 예멘인들을 향해 어떤 이들은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연민보다는 두려움의 감정에 휩싸였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집회가 여러 번 열렸고 이들을 수용하지 말자는 국민 청원에 동참한 인원이 무려 7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과연 난민은 우리와 전혀 무관하고 두려움과 혐오의 감정만 불러일으키는 대상일까?

사실, ‘난민’만큼 한국 사회와 밀접한 단어는 없다. 대한민국은 국가의 출발 자체가 ‘난민 정부’에 정통성을 두고 있다. 헌법 전문은 첫 문장부터, 일제 치하 독립운동가들이 해외로 망명해 세운 난민 정부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만주, 상하이, 연해주 등으로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박해를 피해 나라를 떠나 있을 수밖에 없었던 ‘난민’이었고, 대한민국은 이런 난민들이 세운 임시정부를 계승한 ‘난민의 나라’인 것이다. 아울러 지난 100년의 역사만 돌이켜보더라도, 강제 이주, 제주 4.3사건, 한국전쟁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주의 시대’를 역행하는 현실
전쟁 등으로 인해 현재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약 6,85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국경을 넘은, 즉 자기 나라를 떠난 이들의 수가 2,540만 명이다. 난민 수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이제 지구상에 사는 사람의 7명 중 1명이 이주자라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이주의 시대’라고도 불리고 있다. 국가 간 경계는 갈수록 흐려지고, 이동은 잦아지며, 더욱 다원화·다양화되어 간다.

이런 큰 변화의 흐름 안에서 대한민국의 상황 또한 변하고 있다. 2000-2008년까지 국내 거주 외국인 수의 연평균 증가율은 19.9%였는데 이는 OECD 가입국의 평균인 5.9%보다 세 배 높은 수치다. 또한 한국교육개발원과 교육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2-2016년 사이 전체 초중고생 수는 12.5%가 감소한 반면 같은 시기 다문화 초중고생 수는 무려 두 배가 넘게 증가했다. 나아가 현재 대한민국 내 탈북민의 수는 3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며 대한민국에서 집계된 난민 신청자 수는 1994년부터 현재까지 5만 1,000명 정도로 알려졌다. 

이런 시대적 맥락 속에서 대한민국 사회는 ‘나와 다른 생각과 모습으로 사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 여성가족부가 2015년 실시한 ‘국민 다문화 수용성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나면 경제적 기여보다 손실이 크다는 문항에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은 전체의 33.1%나 되었고, 외국인 근로자가 많아지면 범죄율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6.7%였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의 경우를 보더라도, 남한 국민과 비교했을 때 이들의 자살률이 3배, 범죄 피해율이 5배가 더 높다고 조사되었다. 이들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총 47시간으로 남한 국민보다 약 3시간 정도 더 일하지만, 주당 평균 소득은 남한 국민의 66%로, 76만 원 정도를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 리제너레이션무브먼트의 '글로벌 리더십 캠프' 참가자 학생들과 선생님들. (사진: 김종대 제공)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현실
그렇다면 이민자의 나라로 불리던 미국은 어떠할까? 우선 미국에는 재정착 난민제도가 있다. 이 제도를 통해 난민은 미국으로 정착하기 전의 모든 난민 심사 절차를 해외에서 밟게 되며, 난민 인정을 받은 후에 미국으로 도착하게 된다. 난민 인정까지의 절차는 미국 정부의 몫이지만, 이후에는 재정착 지원 단체가 난민의 사회 정착을 돕는다. 미국에는 9개의 재정착 지원 단체가 존재하며, 이 중 5개 단체가 기독교 기반 단체다. 이 단체들은 난민이 미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공항에 나가 맞이하고, 이들이 거주할 아파트와 기본적인 가구들을 찾아준다. 난민들은 이후 약 3개월간 케이스 매니저의 도움을 받으며 영어 교육, 직무 교육 및 의료 지원을 받는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조지아 주에 도착한 재정착 난민의 86%가 도착한 지 180일 만에 자립하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미국 또한 ‘이민자의 나라’라는 정체성이 위기를 겪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반(反)이민적인 정책의 일환으로, 작년 한때는 국경을 넘어온 부모와 아이들을 무관용적으로 갈라놓기도 했다.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을 수용하는 범위도 줄어, 오바마 행정부 당시 11만 명이었던 난민 쿼터를 현재 3만 명으로 대폭 축소하였다.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 등으로 사회 양분화 또한 심해지는 추세다.

갈라진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미국 또한 다시 한 번 사회적 통합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인데, 이 고민에 대한 통찰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환대의 공동체 ‘클락스턴’ 이야기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 인근에는 규모는 작지만 “미국 내에서 인종적, 문화적으로 가장 다채로운 동네”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클락스턴 시가 있다. 스스로를 ‘작은 마을, 큰 마음’(Small town, big heart)이라 부르는 클락스턴에는 실로 다양성의 평화로운 공존에 대한 많은 혜안이 담겨 있다.

이곳은 지난 25년간 전 세계로부터 발생한 약 4만 명의 난민에게 새로운 삶의 관문이자 보금자리가 되어 왔다.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으로 미국으로 오게 되는 난민의 수는 전체적으로 줄어들었지만, 클락스턴에는 매해 평균 1,500여 명의 난민이 새롭게 정착해 왔다. 여의도 크기만한 면적의 도시 안에서 40여 개국 출신의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60여 개의 언어로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다.

보통 난민의 유입을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위험’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린다. 제주도로 왔던 예멘인들에 관한 각종 유언비어가 돌았던 이유 중 하나도, 이들이 위험할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기인했다.

하지만 난민은 클락스턴에 위협이 아닌 축복이 된 존재다. 일례로 이곳의 망해가던 큰 식료품 가게는, 도시에 온 베트남 난민들이 낯선 땅에서 멀리까지 힘겹게 장을 보러 다니는 것을 발견하고, 이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가게에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클락스턴과 그 주변에 사는 많은 베트남 및 동남아시아 출신 고객들이 이 식료품 가게를 이용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가게는 다시 활력을 찾게 되었다. 난민들을 통해 어려웠던 지역 경제가 활성화된 것이다. 성도 수가 점점 줄어가던 교회도 새롭고 다채로운 교인들을 맞이하면서 부흥을 경험했다. 게다가 많은 이들의 선입견과는 달리, 난민이 이 지역의 대다수 주민이 되면서 클락스턴의 실제 범죄율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난민으로 어렵게 인정받아 낯선 외국에 처음 도착한 이방인은 모든 면에서 조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영주권 및 시민권을 취득할 때에 범죄 기록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이들은 더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다.

클락스턴은 이렇게 ‘다름’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이런 환경이 조성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가 있었다. 난민 출신 주민 유입에 거부감을 갖는 기존 주민의 두려움에 맞서야 했고, 다양한 문화 간 충돌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중요한 점은, 이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클락스턴 특유의 ‘공동체성’으로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자유와 평등의 이념 위에 세워졌던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시민단체들과, ‘이방인을 환대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해 나가는 기독교 단체 등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이들은 서로 끊임없이 연대하면서 공동체의 화합을 위해 헌신했으며, 결과적으로 클락스턴 공동체에는 환영과 환대의 문화가 자리 잡았다.

환대를 만들어가는 ‘피스메이커’들
클락스턴의 몇 가지 사례를 좀더 소개하고 싶다. 
클락스턴 시의 중심에는 ‘피난처’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카페 ‘레퓨지 커피’(Refuge Coffee)가 있다. 창업자 키티 머레이(Kitti Murray)는 미국인 목회자의 아내다. 이분은 클락스턴에 살면서 미국에 처음 도착하는 난민들에게 어떻게 풍성한 환대를 베풀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커피숍만큼 미국적이며 편안한 안식을 제공해주는 곳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클락스턴 주민들 내부에 지역 주민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갈망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레퓨지 커피를 시작했고, 이 커피숍은 난민들에게 바리스타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뿐 아니라, 영어 교육, 직업 교육, 멘토링을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 되었다. 나아가 카페 공간은 클락스턴의 만남의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매년 이슬람교의 금식 기간인 라마단에는 기독교인들을 비롯한 많은 주민이 이곳에서 이슬람 이웃을 위해 정성스럽게 ‘이프타 저녁식사’(해가 진 후 먹는 음식)를 준비하고 대접하며 함께 마음을 나눈다. 레퓨지 커피는 이렇듯 종교를 뛰어넘는 식탁 교제와 환대가 이루어지는, 클락스턴 커뮤니티의 샬롬의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또한 클락스턴은 열방의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곳이다 보니, 다양한 종파의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함께 활발한 선교 사역을 한다. 그중에 프로스쿠네오(Proskuneo, 경배·예배하다)라는 단체가 있다. 다민족 예배공동체의 비전을 가지고 사역을 펼치는 단체로 구성원부터가 다양성 그 자체이다. 도미니카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미국인 목사, 청소년기에 미국에 정착해서 자라온 한국인 선교사, 남수단 출신 목사, 시리아 출신 프로그램 디렉터, 미얀마 출신 청년, 오랜 클락스턴 주민까지. 이처럼 프로스쿠네오는 인종과 성별과 나이를 초월하여 다채로운 이들이 함께 ‘하나 된 다양성’(diversity in unity)이라는 주제로 예배 사역과 예술 사역 등을 펼쳐 나간다. 여기서 함께 부르는 찬양들은, 그래서 다양한 언어가 하나의 노래가 되어 불린다.

클락스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작년 조지아 주지사 선거운동의 열기가 달아올랐을 때 일어났던 일이다. 조지아 주의 공화당 경선 후보들은 저마다 누가 더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들고 나오느냐로 경쟁하는 중이었다. 그중 한 후보는 아예 죄수 운송 버스를 모방하여 만든 ‘추방 버스’(Deportation Bus)를 타고 다니며 불법 이민자를 다 싣고 쫓아버리겠다는 자극적인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말로는 ‘불법’ 이민자 추방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난민과 이민자들을 적으로 돌리며 인종주의를 자극하려는 노이즈 캠페인 전략이었다. 

이 버스가 대표적인 이민자와 이주민 도시인 클락스턴 시 한복판에 정차하게 되자 긴장감이 맴돌았다.

하지만 클락스턴 주민들은 미리 만들어놓은 환영 플래카드를 준비하고 진심으로 주지사 후보를 환영해주었다. 그중 시리아의 쿠르드 난민 출신으로 9.11 사태 직후 클락스턴에 정착하여 지금은 심장전문의가 된 한 주민은 시리아 디저트인 바클라바를 그 후보에게 따뜻하게 건네면서 “우리는 당신을 적대시하지 않습니다. 우리 도시에 오시면 언제든 환영합니다”라고 말했다. 강한 반발을 예상하고 내심 화젯거리를 기대했던 주지사 후보는 멋쩍어서 돌아갔다. “당신이 누구든, 무엇을 믿든 간에 당신을 위한 식탁의 자리는 항상 마련되어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앞세워 활동해온 이곳의 한 비영리 기독교 단체는, 주지사 후보를 환영하며 실로 이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의 실천을 생생하게 경험한 일이었다.

   
▲ 캘빈칼리지에서 열린 워십 심포지움을 이끄는 프로스쿠네오.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 남수단, 시리아, 미얀마, 미국, 한국이라는 다양성이 한데 모여 있다. (사진: 김종대 제공)

화합이 실현된 상태, 평화
클락스턴은 ‘다름’이 함께 협주해내는 풍성한 화음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마치 음악에서 서로 다른 음들이 협력할수록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듯이, 다양한 구성원이 존재하는 커뮤니티는 서로 다르면 다를수록 함께 누릴 수 있는 요소 또한 풍성해진다. 물론 다름이 한 곳에 공존한다는 것은, 그만큼 갈등의 요소 또한 내재함을 의미한다. 이처럼 다원화된 사회는 양날의 검과 같다. 그렇기에 피스메이커(peacemaker)의 역할이 중요하다. 

평화는 갈등이 부재한 상태가 아니라 화합이 실현되고 존재하는 상태라는 말이 있다. 갈등의 요소가 팽배한 곳에서, 평화는 수동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함께 땀을 흘려 일구는 것이 평화라는 산물이며, 그때 비로소 화합이라는 열매가 맺힌다.

레퓨지 커피의 창업자도, 프로스쿠네오 공동체도, 시리아 출신 의사도 모두 피스메이커이며, 능동적으로 커뮤니티의 평화를 일구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환대를 통해 평화가 클락스턴 커뮤니티 가운데 넘치며 이들의 환대가 또 다른 환대를 낳는다. 이곳에 처음에 난민 신분으로 온 이들은 더 이상 도움이 필요한 객체가 아니라 커뮤니티의 주체로서 새로 들어오는 난민들을 환영한다. 이들은 모두 피스메이커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디아스포라, 경계를 허무는 이들
나와 아내는 이곳의 난민을 포함한 이민자 및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젊은 세대가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정체성과 피스메이커로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게 돕고, 이들을 통해 다양성이 존중받는 화합의 커뮤니티를 만들어가기 원한다. 더 나아가 미국과 대한민국 사회의 샬롬에 기여하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기를 꿈꾼다. 이 비전으로 비영리 단체인 ‘리제너레이션무브먼트’(Re’Generation Movement)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단체를 통해 첫째로는 청소년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프로그램과 글로벌 시민 리더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둘째로는 사회 통합과 통일 관련 주제의 강연회, 스터디 그룹과 같은 토론의 장을 만들어가는 일을 한다.

우리는 미국에서 한인 디아스포라로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가 만나는 난민 출신 학생들 또한 모두 디아스포라이다. 이 학생들은 이주 과정을 통해 문화적 유연성을 자연스럽게 습득하며 다양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아이들이다. 이들은 우리 부부와 마찬가지로 고국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본국에 선교사로 돌아가는 꿈을 가진 학생도 있고, 자신을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적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학생도 있다.

그렇기에 이 학생들은 다양한 문화를 오가며 다양한 집단과 소통하며 피스메이커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한 다음 세대이다. 여러 가지 의미의 경계를 뛰어넘으며,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아이들이다. 이들이 현재 속한 미국 사회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고향에서, 나아가 세계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며, 각자 속한 곳에 축복이 되는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것이 ‘리제너레이션 무브먼트’의 역할이다.

하나님 나라의 문화, ‘환대’
평화로 번역되는 ‘샬롬’은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이다. 팀 켈러는 이를 ‘총체적인 번영, 온전함, 기쁨’으로 표현한다. 샬롬에는 여러 모습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환대를 통해 이루어지는 다양성의 조화로운 공존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사야 11장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는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의 논리가 설 자리가 없는 곳이다. 이리와 어린 양, 송아지와 혈기왕성한 사자가 함께 있으면서도 먹고 먹히는 일이 없으며, 어린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어도 아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다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함께 먹고 누우며 장난치는 곳이다.

사실은 하나님 자체가 다양성의 공존인 ‘삼위일체’로 존재하신다. 이 다양성을 더욱 풍성히 누리기 위해 세상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사랑의 본질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때도, 아직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를 죽임을 통해 그 사랑을 확증하셨다(롬 5:8). 사랑의 본질은 다름을 끌어안는 것이고, 결국 원수까지 끌어안는 것이다.

환대를 통해 나와 다른 이들을 끌어안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문화이며 이 땅 가운데에 샬롬과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환대의 공동체인 미국 클락스턴에서 작게나마 이를 경험했다.

1년 전에 예멘인들이 제주도로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이 일은 비록 한국 사회가 난민을 받아들일 준비가 얼마나 부족한지 드러나는 계기였지만, 이후 난민 이슈가 사회와 교회 안에서 공론화되면서 더 많은 논의가 이뤄지는 분위기 또한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한국은 내가 살아가는 미국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이다. 난민 인정률이 3%가 안 된다. 하지만 국가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냐와는 상관없이, 교회가 이방인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나라의 문화인 환대를 이 땅에 정착시켜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무릇 그리스도인이라면 애초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난민 아담’에서 시작해 마지막 아담인 ‘난민 예수’로 끝나는 ‘난민의 역사’인 성경에 신앙의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은가. 성경에는 나그네, 이방인, 거류민으로 번역될 수 있는 ‘게르’라는 단어가 구약에서만 92번 나오는데, ‘나그네’들을 탄압하지 말고(출 22:21), 동등하게 대우하며(민 15:15), 사랑하라는(레 19:34; 신 10:19) 명령들로 가득하다.

본국의 전쟁으로 인해 낯선 한국 땅에 표착한 예멘인도, 한국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도 모두 나그네이다. 그리스도인은 나그네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나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며(빌 3:20), 이 땅에 있는 동안 이곳의 샬롬을 구하는 이들이다(예 29:7).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다시 오기까지 우리 모두가 디아스포라이며, 또한 피스메이커이다. 난민 논란이 시작되고 1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나는 한국 사회와 특히 한국교회가, 난민을 품고 환대함을 통해서 다채로움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고 누리는 풍성한 곳이 되기를 소망한다. 

 

김종대
미국 애틀랜타에 거주한다. 아내와 함께 비영리 단체 리제너레이션 무브먼트(Re’Generation Movement)를 운영하며 미국의 난민, 이민자 출신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나아가 한인 디아스포라와 함께 화합과 평화에 관련된 대화의 장을 마련하여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작은 씨앗들을 심고 있다. 최근 《교회, 난민을 품다》라는 책을 번역하여 한국에 소개했다. 미국 에모리대학교에서 사회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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