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요즘 ‘핫’한 책들 중에 《여자들의 섹스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성교육 전문가이자 섹슈얼리티·젠더 연구자인 한채윤 씨가 썼습니다. 책을 펴낸 당시엔 서점에서 안 팔았고 그나마도 절판되었는데, 19년 만에 제대로 출간됐답니다. 그동안 말해지지 않았던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성적 지향의 구분 없이 매우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이 책을 둘러싼 여러 말과 글을 접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몸의 말들, 특별히 그 판에서 소외되거나 억압되어 왔던 몸들의 말이 복상을 통해서도 활발하게 유통되고 소통될 수 있을까?’

곱씹어 생각해보니 걸리는 요소가 많습니다. 여성이, 섹스를, 그것도 성소수자(레즈비언)의 섹스를 포함하여 ‘적극적인 섹스’를 말한다면? 커버스토리 기획이 될 리는 만무하고, 외부에서 들어온 원고라도 그대로 나가긴 어렵겠다 싶었습니다. 이 주제가 사회적 상황과 개인의 일상에서 실질적으로 얼마나 크고 다양한 영향을 주고 있든지 간에 말이지요. 당장 지난 호로 연재를 마친 ‘믿는 페미들의 직설’을 두고서도, 온라인상에서 여성 혐오를 넘나드는 노이즈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만큼 지지받기도 했고요. 7월호 커버스토리 주제는 ‘메노나이트 평화신학’인데, 이 ‘중요한’ 주제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무슨 상관인가 싶은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캐나다 출신의 메노나이트 평화교육가 권세리 씨는 이번 인터뷰에서 서로 다른 다양한 입장을 귀 기울여 듣는 과정 자체가 ‘피스빌딩’(peace building)이었다며, 자신의 경험을 말합니다. 메노나이트 교회 안에서 동성애 이슈를 놓고 성소수자를 포함한 ‘경청 위원회’가 열렸는데, 서로 다른 다양한 관점과 경험을 나누고 듣는 과정에서 모두 친밀해지는 ‘기적’을 경험했다고 밝히면서요. 어쩌면 ‘여성, 레즈비언, 섹스’를 말하고 논하는 일 자체가 사회적 ‘피스빌딩’의 한 사례는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특별히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로서는 익숙지 않은 ‘여성의 말하기’가 다양한 갈래로 퍼져 나가는 중에도 ‘버닝썬’과 ‘장자연 사건’의 실체 규명과 해결은 여전히 요원한 상황에서, 그리고 여성 혐오가 가장 강력하고 공식적으로 작동하는 교회의 상황에서 말이지요.

이밖에도 여타 모순적 상황들이 겹겹이 놓인 오늘 한국 사회에서, 복음과상황이 이름에 걸맞은 모습으로 가고 있는지 계속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길 독자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지난 7년간 일한 복상을 떠나며, 제 서투름을 지켜보고 견뎌주신 모든 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처음 맞는 백수의 시간을 잘 보내고, 길 위에서 다시 뵙길 기대하겠습니다.

     
 

오지은 기자 ohjieun317@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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