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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정치학자의 이슈 읽기〕 군사주권 확립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모험
[346호 세상 읽기] 일본의 경제 도발과 동북아 신냉전
[346호] 2019년 08월 23일 (금) 14:01:56 박문규 goscon@goscon.co.kr
   
▲ 아베 총리가 감행한 일본의 경제 도발에 항의하여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사진: JTBC 뉴스룸 화면 갈무리)


동북아 신냉전 구도와 한반도
1990년대 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되면서 2차 대전 이후 세계를 지배했던 냉전체제는 와해되는 듯했다. 그러나 미국은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을 미래의 적으로 간주하여 동북아뿐 아니라 태평양 일대의 국가들을 묶어 대(對)중국 견제세력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동북아에서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허락하여 중국 견제의 견인차로 삼고, 한국을 그 전초 기지로 삼겠다는 그림을 오래 전부터 그려왔다. 다시 말해 미국, 일본, 대한민국을 동맹군으로 하여 동북아에서 새로운 냉전체제를 수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2차 대전 직후 형성된 제1차 냉전의 출발 지점이 되어 한국전쟁이란 동족상쟁의 비극까지 겪었던 한반도가 이제 새롭게 시작되는 ‘미·중 신냉전’의 전초기지가 된다는 것은 한민족의 운명이기에는 너무도 억울한 일이다.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면 상당한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결단코 피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새로운 냉전 구도 속에서 일본은 미국의 패권 아래서, 자국에 비해 아직 국력이 약한 대한민국을 종속시키고자 하는 야망을 갖게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과 지정학적으로 인접하여 국토 문제를 포함한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엄청나게 많이 얽혀 있다. 특히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가 남아 있어 감정적인 앙금도 쉽게 없어지기 힘든 상태다. 그래서 일본이 한국을 단순히 국력만으로 종속시키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에 한국의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들의 배상권을 인정한 판결에 일본이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한 것은, 일본이 한국보다 우위에 있는 나라임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경제력 시위를 한 것임이 명백하다. 이어 전개되는 사건들은 한일 관계의 복잡성을 보여주고 있다.

1965년 체제와 한일 갈등
1965년 대한민국의 박정희 정부와 일본의 사토 에이사구(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으로 당시 총리) 정부 사이에 맺은 ‘한일기본조약’은 4개의 부속 협정이 딸려 있다. 부속 협정이란 청구권, 재일동포 법적지위, 문화재, 어업에 관한 협정으로, 이번에 일본이 문제 삼은 것은 청구권 협정이다. 이 조약은 1910년 8월 22일 및 그 전에 일본과 대한제국 사이에 맺은 모든 조약과 협정은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 지배가 당시엔 합법이었지만 지금은 무효라고 해석하는 반면, 대한민국은 그것이 원래부터 불법이기 때문에 원천적 무효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청구권 문제는 이 조약으로 다 해결되었다는 조항이 있는데, 일본은 이 조항이 위안부와 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나 기업이 한국인 피해자 개인에게 보상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대한민국 대법원은 피해자들이 강제 노역을 시킨 민간 기업에 개인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한일 간 최대 이슈 중 하나인 독도 문제는 1965년 조약에서 제외함으로써 훗날의 논란거리로 남았다. 그렇기에 한일기본조약은 과거 역사를 해석하는 문제, 청구권 자금의 성격 문제 그리고 독도 등 영토 문제까지 미결로 남겨둔 불안정한 조약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경제개발을 위한 뭉칫돈이 필요했던 박정희 정권은 서두를 수밖에 없었고, 냉전체제 속에서 일본과 한국을 하나의 지역 공동체 안으로 흡수시키려는 미국의 압력 또한 적지 않아서 서로 해석이 다른 회색 지대를 남겨놓은 채 조약이 맺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인권 운동가들이 위안부 문제를 국제 인권 문제로 부각시켰고 일본도 이로 인해 세계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자 어떻게 해서라도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자 했다. 그에 따라 박근혜 정부 시절 위안부 문제 합의를 양국 국회의 비준도 받지 않고 심지어 피해 여성들의 동의도 없이 공표해 버렸으며 다시는 문제 삼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발표해 버렸다.

   
 

 강제 징용 피해자 문제는 일제 강점기에 징용당해 미쯔비시 전기 등 일본 기업들에서 강제 노동을 했던 근로자들이 그 회사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표면화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박근혜 정부 시절 일본 회사들과 그 변호사들이 한국 정부를 향해 끈질긴 로비를 해왔고, 한국 정부는 청와대 비서실장·정무수석·외교부 장관 등이 대법원의 수뇌를 불러 재판을 일본 측에 유리하게 유도하고 한일관계가 나빠지지 않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위안부 관련 협정은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파기되었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도 문재인 대통령이 이 임명한 새 대법원장의 리더십 아래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이 나왔다. 그 결과 아베 총리는 수출 규제라는 경제적 카드로 한국에 불이익을 주고 일본에 불리한 한국 대법원의 결정을 번복할 것을 요구하고 나온 것이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경제적 의존
한국의 경제 개발은 상당 부분 일본 경제에 대한 의존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노동집약적 경공업에 치중하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는 기술 중심의 중화학공업 위주로 전환하면서 한국 경제는 기술력에서 우위를 점한 일본에 상당히 의존해온 게 사실이다. 특히 한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의 소재 부품은 일본에 많이 의존해 왔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한국 산업구조의 취약점을 잘 파악하고 도발을 감행한 것이다.

일본의 경제산업성은 지난 7월 초 반도체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에칭가스,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 절차를 강화했고, 8월 2일에는 수출심사우대국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이어서 추가 규제 품목을 크게 확대할 것이란 일각의 예상도 있었지만 기존의 반도체 소재 3종을 제외한 나머지 전략물자 854개를 수출하는 일본 기업에는 3년짜리 ‘특별일반포괄허가’를 신청할 수 있게 여지를 열어놨다. 그리고 8월 7일에는 앞의 세 품목 중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 허가를 내주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언제든 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상태이며, 수출 규제 품목들이 한국 기업에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한국 산업의 중요 부분은 생산라인의 감축까지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

반도체 소재 부품 국산화는 오래전부터 언급되어 왔던 문제이다. 반도체 국산화율은 2017년 기준 소재 부품은 50.3%, 장비는 18.2%에 그친다. 이는 부품의 상당 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해야 하는 현실을 위험으로 여기기보다는 국제 분업 형태로 단기적인 비용 절감으로만 이해했던 기업과 정부의 안목과 준비의 한계였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반도체 산업뿐 아니라 모든 제조업 분야에서 정부 및 기업이 원천기술 확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장기적이고 선구적인 계획을 서둘러 세워야 한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목적
아베 정부가 경제 도발을 해오자 문재인 정부는 일본이 비경제적 문제에 대한 보복으로 경제적 위해를 가한다면 대한민국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연장에 대해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 경로로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이 협정이 연장되기를 바라고 있고 미국 역시 절실히 원하고 있음을 알기에, 우선 일본에 으름장을 놓고 다음에 미국을 향해 뒷짐만 지고 있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 협정은 2012년 이명박 정부가 밀실에서 추진하다 반대 여론에 부딪혀 무산된 후 2016년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이 알려져 정국이 혼란스럽던 시기에 졸속으로 체결된 일본과의 최초 군사협정이다. 이 협정은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약정’(2014) 및 주한 미군의 사드 배치와 함께 미일 MD(미사일 방어체계) 편입의 핵심 요소이기에 당시 시민사회와 야당은 협정 체결에 강하게 반대한 바 있다.

이 협정은 일본 자위대를 군사 협력 파트너로 전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한 한미일 삼각협력은 일본의 재무장과 군사대국화를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역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야말로 한일 군사 협력의 시작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협정이 한미일 3국의 군사동맹을 위한 기초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이유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새롭게 형성되는 동북아 냉전 구도에 우리가 끼어들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특히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우기는 일본과는 어떠한 군사조약도 맺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예상한 대로 한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폐기 가능성을 내비치자 미국은 즉시 공개적으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결국 한국과 일본이 외교적 타협점을 찾지 못해 문재인 정부는 8월 22일 한일 군사 정보보호협정의 파기를 선언하였다. 한일, 한미 관계를 생각할 때 문재인 정부는 큰 모험을 한 셈인데 대한민국의 군사주권 확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일보 전진한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한일 갈등 상황에서 미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한국 정부는 한일 군사협정의 폐기 가능성을 언급하는 용기를 보였는데, 이는 결국 한국과 일본의 문제는 미국과의 관계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북아 신냉전과 한국이 나아갈 길
미국은 세계 제패의 새로운 도전자로 등장하는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경제적으로는 관세 전쟁, 환율 전쟁 등을 통해서 견제하려 하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한국에 사드를 배치한 데 이어 아시아의 한 곳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려 한다. 그뿐 아니라 일본을 재무장시키고 호주, 뉴질랜드, 인도, 미얀마까지 동원하여 대중국 포위작전을 벌인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의 교역량이 한미나 한일 간의 교역량을 넘어서고 있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대북한 정책에 중국의 협력이 결정적으로 필요하기에,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을 일방적으로 돕기는 힘든 처지에 놓여 있다. 이미 한국은 사드 배치 당시 중국으로부터 많은 불이익을 당했다. 그런데 이제 중국은 한국이 미군의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경우 대북한 문제에서 한국을 도울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지난 6월 김정은-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 이후 미국과 어떻게 해서라도 관계를 개선하여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나아가 국교를 수립하여 미국의 대북한 군사 위협을 없애려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 한국이 한반도에서 연합 훈련을 통해 유사시 북한을 침공할 수 있는 군사훈련을 오랫동안 일관성 있게 반대해 왔다. 그리하여 북한은 지난 8월에 재개된 한미연합훈련을 북미정상회담 합의사항 위반으로 이해하고 초강경 대응 전략을 펴왔다. 즉, 미국 본토에는 도달하지 않지만 남한을 초토화하기에는 충분한 방사포를 여러 차례 발사한 것이다. 이는 한국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킨 채 군사적으로 위협하되 미국과의 대화는 계속하겠다는 고도의 전략인 것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은 일차적으로는 북한을 긴장 완화의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을 세우고, 더불어 미국에도 그 방향으로 나아가자고 설득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이번 한일 갈등을 계기로 일본과의 군사협정에서 벗어나야 하며, 미국이 형성하려는 대중국 냉전 구도에서 자유로워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모든 일이 지금으로서는 만만치 않겠지만, 꾸준히 미국과 북한을 설득해나가면서 군사적·외교적·경제적 주권과 자주성을 확보하는 교과서적인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동북아 정세가 새로운 구도로 바뀌어가는 작금의 시기는, 일시적인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고 자주적인 주권 국가의 확립이라는 푯대를 향해 전 국민이 전진할 때이다.


 

박문규
서울대학교를 거쳐 미국 시카고대학, 아이다호주립대학에서 공부한 정치학자다. 오랫동안 캘리포니아인터내셔날대학(California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가르쳐 왔고 지금은 학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남한의 현대 정치를 논한 《뜻으로 본 한국정치》가 있으며, 최근엔 북한의 정치경제적 변화에 관심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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