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라이트의 《혁명이 시작된 날》(비아토르, 2019)

   
 


1. 저자의 관심: 성경에는 다 계획이 있다!
온라인 서점 검색창에 ‘톰 라이트’를 치니, 대략 70여 권이 나온다. 톰 라이트가 이렇게 많은 책을 썼다는 것도 놀랍지만, 국내에 그의 책이 이렇게 많이 소개됐다는 것은 더 놀랍다. 이제 톰 라이트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유명한 기독교 작가가 되었고, 그의 책이라면 ‘믿고’ 사는 독자들도 많다. 신약성서와 초기 기독교 기원에 대한 학술서적부터 대중적인 서적까지 그가 다루는 분야와 범위도 깊고 넓다. 이제는 너무 큰 산이 되어 그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할 수 있다. 아니 전문적인 학자라 할지라도 그의 신학 전체를 따라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의 책이 번역되는 속도가 독서의 속도를 앞지르기 때문이다. 급기야 얼마 전에는 IVP에서 톰 라이트를 처음 접하는 독자를 위한 책까지 나왔다(마를린 바틀링, 《톰 라이트는 처음입니다만》). 

최근에 출간된 《혁명이 시작된 날》의 제목은 ‘이제는 그가 사회과학을 소재로도 책을 쓰기 시작했구나’ 싶어 흥미로웠다. 그동안 신약성서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의 책을 썼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실망스럽게도 십자가의 신학적 의미를 다룬 아주 진지한 신학책이었다. 읽어나가면서 다시 반전, 처음 가졌던 예상이 아주 잘못은 아니었다.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오해했던 십자가의 의미를 철저하게 뿌리부터 교정한다. 완벽하게 새로운 차원의 십자가, 그 십자가는 실로 혁명이었다. 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인 신앙 차원에서도.

톰 라이트가 쓴 대다수 책에는 하나의 해석학적 전제가 깔려 있다. 성경은 하나의 큰 이야기라는 것.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전제일 수 있지만, 그는 성경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속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촘촘히 짜여 있다고 강조한다. 그 이야기의 배경은 하나님 나라,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설명하면서도 구약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책의 3분의 1 정도가 구약 성경에 대한 해석으로 채워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십자가를 ‘성경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세 가지 사실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돌아오실 때 왕으로 오신다고 선언했다.” 둘째, “최후의 구속이 단순히 그 백성을 위한 극심한 고난이라는 맥락에서가 아니라, 그 고난이라는 수단으로 성취되리라는 믿음이다.” 셋째, “죄 사함과 포로기의 종말과 이 둘과 연관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의 극적 표현”이다(158쪽). 이것이 바로 기독교 이전 유대인들이 가진 소망이었는데, 톰 라이트는 이 세 가지 요소를 신약의 십자가와 탁월하게 연결한다. 성경에는 십자가에 대한 계획이 다 들어 있다. “만물 곧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메시아 안에서 통일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213쪽) 마치 이단들의 성경 해석(?)처럼 그의 설명을 따라가면 성경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로 절묘하게 연결된다. 그러나 톰은 이단이 아니다. 믿고 따라가도 된다.

2. 편집자의 선택: 소장하고 싶은 책 만들기
책 사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책을 두기에 비좁은 집도 한몫한다. 그럼에도 책을 꼭 사야만 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좋아하는 작가라서? 절실하게 알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 SNS 친구들이 추천을 자주 해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책의 디자인 때문에 책장에 꽂아두고 싶어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제는 책을 고를 때, 책의 크기, 색감, 질감도 중요한 기준이다. 북 마케터들은 요즘 독자들이 책의 내용보다 책 자체의 물성에 관심을 두고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지하철에서 꺼내 읽고 싶은 책, 책장에 꽂았을 때 보기 좋은 책, 세련된 이미지는 기본이고 표지의 볼록한 촉감이나 까끌까끌한 내지의 질감까지 매력적인 책,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책, 오늘날 독자들이 책을 사는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런 감각적인 디자인은 가벼운 수필이나 현대 소설에나 적용되었지만, 이제는 기독교 서적도 상당히 세련된 디자인으로 독자를 유혹한다. 그중 ‘비아토르’는 주목할 만한 출판사다. 비아토르에서 나온 책들은 모두 제각각 개성이 있다. 책의 모양도, 디자인도, 크기도, 주제도, 모두 다르다. 어느 것 하나 비슷하거나 겹치지 않는다. 어쩜 이리도 다양한 스타일로 책을 만드는지 신기할 정도다. 책의 만듦새를 보면 오랜 시간 출판을 해온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비아토르는 빠른 기간에 독자들에게 자신의 색깔과 입지를 확실하게 각인한 감각적인 출판사다.
국내에 소개된 수많은 톰 라이트 책 중에서도 이 책은 비교적 최근에 쓴 책으로, 그동안 그가 여러 차례 이야기했던 내용을 요약해 담고 있다. 그의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이미 여러 권 읽은 독자에게도 아주 좋은 책이라는 의미다. 출판사에서 책을 잘 골라 출판했다. 독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책 뒷부분에 실린 ‘찾아보기’라든가 ‘부록-스터디 가이드’도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다. 역시 깔끔하고 꼼꼼하게 만들었다. 

3. 비평가의 시선: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톰 라이트의 책을 읽으면 묘한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그는 교회 생활을 오래 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던 기본 교리를 여지없이 흔들어 놓고선,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성경 해석이 누군가에게는 혼란스러운 충격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분 좋은 충격이다. 타성에 젖을 대로 젖어 이제는 빛이 바랜 개념들, 예를 들면, ‘복음’ ‘하나님 나라’ ‘죄사함’ ‘용서’ ‘속죄’ 등의 용어를 우리가 얼마나 오해하며 살았는지 낱낱이 드러낸다.

우리는 흔히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라든가 “예수님을 믿어 죄에서 해방되어 천국에 간다”라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런데 톰 라이트는 이런 신학적 명제들이 성경적 사유와 전혀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근대 서구에 만들어진 구원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57쪽). 이런 소망은 마치 하나님께서 이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성경의 비전은 오히려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가 십자가에서 달렸다고 말한다.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비전이 가시화되고, 전적으로 새로운 현실,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힌 사건이었다. 사도행전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 나가서 하나님 나라와 예수의 주권을 선언”하면서 살아가야 한다(217쪽). 십자가는 개인의 구원과 영성을 위한 소재가 아니라 정의와 평화의 새 시대를 선포하는 공적 증언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십자가 사건의 의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악의 세력을 이기고(275쪽),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새로운 창조 세계를 위해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307쪽).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 새로운 출애굽, 새로운 창조 사역이 십자가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톰 라이트가 십자가의 승리를 보여주기 위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본문은 로마서 3:21-26이다. 사실 그는 이미 여러 책에서 로마서의 중요성을 여러 번 언급했고, 로마서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톰 라이트는 그동안 기독교 역사에서 로마서가 지나치게 교리적으로 해석되거나 특정 개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전체 그림을 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그동안 교회에서는 로마서 1-4장을 해석할 때, 인간의 죄로 인해 화가 난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희생 제물로 삼으셨고, 예수가 우리 대신 죽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전통적인 칭의론은 이런 해석에 근거하고 있다. 이 해석의 밑바탕에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 바울 신학의 핵심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톰 라이트는 정교한 본문 주해와 논증을 통해, 하나님의 의는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스스로 신실하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정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라고 말한다. 톰 라이트는 잘못된 교리와 그에 따른 고정관념을 성경이라는 망치로 산산조각 낸다. 그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종종 부끄러워지고, 때론 짜릿하다. 그리고 그처럼 말하고 싶어진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4. 독자의 취향: 열심히 따라 하고 좇아가기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톰 라이트는 “십자가의 승리는 십자가라는 수단을 통해 실행될 것이다”라고 말한다(485쪽).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다름 아닌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다(487쪽). 어린양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권력과 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무력한 순종과 희생 그리고 대리적 섬김을 통해 세상을 전복한다. 오늘날 교회에서 주의 만찬을 실행하는 것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면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502쪽).

하나의 개념을 바꾸기 위해서는 세계관 전체를 바꿔야 한다는 말이 있다. 톰 라이트의 성경 해석이 딱 그렇다. 흔하디 흔한 ‘하나님 나라 복음’이라는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전체를 보는 관점과 신학을 새롭게 세팅해야 한다. 그동안 성경을 잘못 읽고, 복음을 잘못 전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십자가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았는데도 여전히 변화가 두려워 고치지 못하는 태도가 잘못인 것이다. 톰 라이트는 부드럽고 정교하게 기존의 생각과 고정관념을 깨뜨려주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조율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멘토다. 예수의 십자가가 왜 그렇게 중요한 사건이었고, 어떻게 혁명을 가져왔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라. 그때나 지금이나 십자가는 혁명이다. 열심히 그의 논리를 따라가고 글의 전개 방식을 배우라. 나아가 그의 유머까지 체화시킨다면, 당신도 누군가의 훌륭한 멘토가 될 수 있다.



최경환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남아공 프리토리아 대학교에서 공공신학을 연구했다. 현재는 과신대(과학과 신학의 대화) 기획실장으로 일하면서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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