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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추구 언론 vs. 대결 조장 언론
[351호 미디어 솎아보기]
[351호] 2020년 01월 21일 (화) 15:53:47 김성원 goscon@goscon.co.kr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에 제안했던 ‘새로운 협상법 제시 시한’인 2019년 연말이 지났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결로 치닫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귀결된다. 북한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제 한반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 질문을 ‘누가 변해야 하는가?’의 관점으로 보고자 한다. 몇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 평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세먼지만큼이나 자주, 그리고 진하게 한반도 상공에 드리우곤 하던 ‘전운’(戰雲)은 사라진 게 아니라 잠복해 있는 상태다. 평화는 그냥 오지 않는다. 70년간 이어져 온 분단체제는 남북 모두에 단단히 똬리를 틀었다. 두터운 분단 기득권층도 형성됐다. 평화는 이 분단체제에 균열을 내는 데서 시작한다.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지난 연말 북한은 보기 드물게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나흘에 걸쳐 열었다. 거기서 미국과의 협상과 대결 국면을 맞이하는 입장, 향후 취해야 할 정책 노선을 정리했다. 전원회의가 김정은의 신년사를 갈음한 것이다. 제5차 전원회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맞선 정면돌파 그리고 총체적인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핵무기를 포기하고 경제개방으로 나아갈 것 같았던 북한이 또다시 문을 꼭꼭 걸어 잠그는 모양새다.

김정은·트럼프·문재인, 누가 변해야 하나
국내 언론들은 어떻게 봤을까. 먼저, 〈한겨레〉는 1월 2일 자 사설에서 “김 위원장 보고에서 남북 관계에 관한 언급이 빠진 점이 눈에 띈다”면서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손 놓고 있을 때는 아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전향적 행동을 설득하고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려는 노력을 더욱 경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신문은 어떻게든 11월 대선까지 북한이 지금처럼 도발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해주길 바라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서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북핵 문제를 ‘적당히 좋은 말’로 언제까지나 그럭저럭 끌고 갈 수 없다는 걸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한다. 한국 정부가 제안한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을 미국이 지지함으로써 대북 제재를 우회하는 등의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트럼프 행정부는 내놓아야 한다.”

〈경향신문〉도 1월 3일 자 사설에서 올해 한반도 정세의 격랑이 불가피하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강경 대북정책 카드를 다시 꺼내지 않도록 올봄 한미연합훈련을 조정하는 등 어떻게든 한반도 긴장을 낮추는 데 주력하라는 것이다. 〈한국일보〉도 문재인 정부의 태도 변화, 즉 촉진자로서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신문은 2일 자 사설에서 “북미 관계가 순탄하지 않을수록 문재인 정부의 중재자 역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북한의 냉랭한 태도가 아쉽긴 하지만 개의치 말고 한반도 평화를 촉진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역사적 책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국민일보〉는 1월 2일 자 “김정은, 평화의 경로 이탈하지 말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북한은 다시 미국과 협상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연말 제5차 전원회의 내용을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장에서 이탈한 것이라 해석하고 북한의 태도 변화를 요구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비핵화 쇼 韓·美 모두 접어야”라는 제목의 1월 2일 자 사설에서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풀면 비핵화를 할 수 있다는 김정은의 약속은 기만으로 확인됐다는 점이다. 지난 2년여의 ‘평화쇼’는 한낱 신기루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북미 협상에서 보여준 것은 ‘신기루’ ‘쇼’에 불과했고, 이제야 본색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 사설은 어느 한 쪽의 태도 변화보다는 북한을 비판하면서 북한의 ‘평화쇼’에 놀아난 문재인·트럼프를 동시 비판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같은 날 〈중앙일보〉는 “북한이 도발하지 않도록 억지하면서 비핵화로 유도하는 급선무의 과제”를 우리 정부의 역할로 꼽았다. 이 사설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한미 연합방위태세 등 철저한 위기관리 태세와 북한 비핵화 유도에 모든 전략·전술적 역량을 동원해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정리하면 이렇다. 문재인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언론은 한겨레, 경향, 한국, 중앙(물론 중앙은 한미 방위태세, 위기관리 등 안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이고, 트럼프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언론은 한겨레, 북한이 변해야 한다는 언론은 조선, 국민 등이다.

문재인 정부의 태도 변화, 그리고 조선·중앙
문재인 정부가 먼저 태도 변화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1월 7일 청와대에서 발표한 신년사에서 “거듭 만나고 끊임없이 대화할 용의가 있다”며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했다. 김 위원장의 답방도 언급했다. 
이에 대해 〈경향〉은 8일 자 사설에서 “북한은 문 대통령의 달라진 대북 태도를 주목하기 바란다. 북한도 지난해 북·미 대화를 앞세워 남북관계를 소홀히 여긴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겨레〉도 8일 자 ‘박병수 논설위원 칼럼’에서 미국-이란 갈등으로 미국의 여론이 중동 문제에 시선을 뺏기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남북관계 개선을 외면하고 있는 김 위원장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칼럼은 “애초 2년 전 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끌어낸 것도 남북대화였다. 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거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라며 문 대통령의 신년사 제안을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국〉의 8일 자 사설 역시 북한의 변화를 언급했다. 신문은 “전원회의 결정서에서는 남북 문제를 언급도 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한반도 평화는 고사하고 ‘국가 경제의 발전동력 회복’을 위해서라도 남측과 협력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북한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북한의 태도 변화를 견인할 남측의 실제적인 행동도 주문하고 있다.

〈국민〉은 문 대통령의 신년사를 통한 대북 제안에 북한이 당장은 아니지만 적절한 시점에 반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북·미 협상은 실패했지만 문 대통령이 남북 협력을 유인책으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다시 끌어들인다면 미국도 반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앞서 언급한 언론은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북한과의 정상회담과 대화를 언급한 것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북한의 변화와 화답을 촉구한 것이다.

반면 〈조선〉의 8일 자 사설은 문 대통령의 신년사를 총선용 ‘김정은 쇼’라며 평가절하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의 북미 대화 및 남북협력 증진의 필요성 언급에 대해 “남북 관계를 미·북 핵 협상 진전에 연계해 왔던 기존 방침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며 “미국이 이미 반대 뜻을 분명히 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도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행보를 미국의 입장에 반하는, 그러니까 ‘반미’의 시각으로 본 것이다.

〈중앙〉은 8일 자 김병연 서울대 교수의 ‘중앙시평’에서 대북 제재를 통한 북한 비핵화를 유일한 해결책으로 꼽았다. “(북한의) 새로운 길이 성공하는 유일한 경우는 한국과 국제사회가 이 교란 작전에 현혹될 때다. 이에 속아 제재를 통한 비핵화 노력을 포기할 경우다. … 정부는 평화경제라는 말의 성찬만 벌여선 안 된다. 오히려 지금은 한·미 조율을 통한 북한 비핵화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두 신문은 모두 문재인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말고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 이를 통해 북한을 더욱 압박해서 결국 무릎 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은 선전선동 아닌 시시비비에 집중해야
북미회담이 상당 기간 교착상태가 예상되는 이 시점에서 한반도 평화의 관건인 ‘북한 비핵화’(남북·북미 합의 내용은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다)는 어떻게 달성될 수 있는가? 〈조선〉 〈중앙〉의 주장대로라면 우리 정부와 미국이 할 일은 없다.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중국과 러시아에 기대거나 아니면 핵무기 고도화로 미국과 끝장 대결을 펼치는 것. 전자는 남북교류나 통일을 요원하게 만들고, 후자는 또다시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전운을 몰고 오는 일이다.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는 둘 다 찬성하기 힘들다.

반면, 북한도 미국도 남한도 조금씩 양보한다면, 즉 태도 변화를 열어둔다면 협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국이 북한을 향해 주장하는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이 미국을 향해 요구하는 ‘체제보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 등을 트럼프 행정부가 지지함으로써 대북 제재 우회로를 확보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한 작은 신뢰가 쌓일 때 더 큰 신뢰, 그러니까 궁극적인 ‘비핵화’ 문제도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있다.

언론의 역할은 시시비비를 가려 세상에 정의를 펴는 일이다. 켜켜이 쌓인 사실과 주장 속에서 진실을 드러내 세상을 밝히는 일이다. 한반도와 같은 분단과 대결 체제에서는 이해와 화해, 공존과 평화를 도모하는 데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은 선전선동의 도구일 뿐이다.

언젠가 몇몇 기자들과 대화 중에 누군가 이런 얘기를 했다. “한국교회가 이 모양인 것은 교계 언론 때문이다”라고. 교계 언론이 수십 개 있지만 제 역할을 못해서 지금 같은 한국교회를 만들었다는 얘기였다. 그 말에 따르자면,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다 되도록 아직까지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불안 속에 한반도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현실은 언론 때문이다. 언론이 화해와 일치(통일)보다는 분단과 대결을 부추겨왔기 때문이라고.

시시비비, 정의, 진실, 화해와 공존 그리고 평화 같은 언론의 본령은 기독교의 복음과도 맥이 닿는다. 어쩌면 묵은 분단과 대결이 우리를 옥죄고 있는 이 땅 한반도가 이러한 복음의 내용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땅’일 수 있다. 복음을 비복음과 확연히 구분해야 하듯 이 땅에 진실과 화해,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는 언론(기사)과 그렇지 않은 언론(기사)을 확연히 구분해내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김성원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뉴미디어학(석사)을 공부했다. CCC 간사, 〈국민일보〉 기자,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상임이사로 일했다. 지금은 평화통일연대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유코리아뉴스〉 편집장을 맡고 있다. 통일은 장밋빛 환상이 아닌 분단의 아픔과 죄악을 회개하고 고치는 데서부터, 나 자신과 일상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 믿고 있다.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를 썼고, 《독일 통일, 자유와 화합의 기적》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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