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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공동체가 되어가는 길
[351호 내 인생의 한 구절]
[351호] 2020년 01월 21일 (화) 15:56:20 이요섭 goscon@goscon.co.kr

 

‘못해 신앙’을 관통한 말씀의 빛
모태 신앙으로 태어났습니다. ‘못해 신앙’ 말입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주일에 교회를 빠져본 적이 없습니다. 대학 시절 밤새 술을 퍼마셔도 주일 아침 11시엔 예배당에 앉아 있었습니다. 열일곱 사춘기로부터 스물여섯 회심의 때까지 영혼의 밤은 깊었습니다. 해맑은 어린 시절 순진하게 주일학교 모범생으로 지낼 때가 차라리 아름다웠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을 앞둔 가을, 인격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저 멀리 하늘에서나 나를 보고 계시는 그분이 작고 작은 나의 세계로 성큼 성큼 들어오셨습니다. 압도적으로요.

무엇이든 한번 시작하면 (공부 빼고) 끝장을 보는 기질이라 다음날부터 새벽기도회부터 수요예배, 금요철야 등등 예배라는 예배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기왕 믿을 바엔 말씀을 제대로 읽고 신앙생활을 하자 싶어 성경 일독을 목표로 부단히 읽고 또 읽었습니다. 마침 교회가 예배처소를 새로 건축하여 이사를 하는데, 대학 졸업반이면서 건축헌금을 거금 50만 원이나 작정하고 학원강사 알바비를 고스란히 바칠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주말엔 교회 지하실 바닥 청소를 하며 몸으로도 교회 건축에 헌신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본 교회 형들 중에 ‘요섭이가 회개하고 새 삶을 사는 것을 보니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게 분명하다’고 고백하며 신앙생활을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건축헌금을 하기 위해 학원강사로 일하는 한편,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소외받는 아이들과 나누고 싶어서 보육원을 방문하여 국어 과외가 필요한 아이들과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수업이 대개 아이들과의 수다로 끝나곤 했지만요.

계속해서 성경을 읽어나가다 보니 단기간에 야고보서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때가 열심당원으로서 열정이 바닥날 즈음이었는데 “여러분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약 1:4, 이하 새번역)라는 구절을 읽고는 게을러지는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고 구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마치 바람에 빌려서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1:6)라는 구절을 연이어 읽으며 두 마음을 품은 것을 회개하고 또 회개하며 새벽마다 부르짖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청년의 열정으로 참 뜨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나오는 한 구절.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1:27) 

이 말씀에 붙잡혀서 성경 읽기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새벽에 눈을 떠도 이 말씀이 눈앞에 펼쳐지고, 밤에 자려고 눈을 감아도 펼쳐졌습니다. 회심 후 1년 넘게 모든 공예배에 빠지지 않고 성경을 읽으며 신학서적을 탐독하던 날들이었습니다. 제임스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등 꼬리를 물고 생겨나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의 말씀 한 구절에 이르러 지난 1년간 애쓴 신앙생활이 결국 절름발이 교회생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기 위해 교회생활만을 열심히 해왔던 것입니다. 말씀의 빛이 내 영혼을 관통했습니다.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이 구절에 붙들렸고, 넘어졌습니다. 

보육원으로 들어가다
마침 다니던 교회 건너편에 보육원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중학교 2학년 때 교회 선생님이셨던 원장님께서 아이들과 함께 살고 계셨습니다. 선생님을 찾아뵙고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리니 중2 남학생 3명과 함께 지낼 기회를 주셨습니다. 스물여섯 살이던 해의 12월부터 스물여덟 살에 결혼하기 전까지 아이들과 함께 보육원에서 봉사자로 한 방에서 생활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나만 알고 지냈던 이기적인 삶에 대한 반성이었습니다. 이 시기 동안 원장 선생님 곁에서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 내가 속한 공동체, 더사랑교회에 이런 청년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교회생활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고, 종교생활을 성실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문득 4년 전에 쓴 일기를 꺼내어 봅니다.
 

헷갈린다

처음 신대원에 입학할 때는 내 신학을 점검해 보겠다며 결심을 했다. 지금은 신학이 뭔지 내 신학이나 있는지 헷갈린다.

요즘 목사님들이 교회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말씀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교회라는 것인지 
자기 왕국을 위해 교회를 지키겠다는 것인지 헷갈린다.
자기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 교회에 머물면서 비판하는 것이 정말 그 교회를 사랑해서인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복음에 대한 간절함 때문인지 이도 저도 아니고 담임 목사와 그 교인들이 싫어서 비판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나는 오늘도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그저 사니까 살아지는 것인지 헷갈린다

 

이런 헷갈림 속에서 신대원을 졸업하고 열다섯 살때부터 마흔까지 25년을 다닌 모교회를 떠나 처음으로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통합 교단 교회였습니다. 사역자가 되어 교회를 섬기면 더 본질적으로, 말씀대로, 신학으로 교회 현장을 누비며 사역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역했던 교육전도사는 1년 6개월로 막을 내렸습니다. 내가 아니어도 기성 교회에 맞는 사역자들이 많이 있으니 굳이 거기 있을 필요를 못 느꼈습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광대가 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나의 고민, 나의 사랑
필립 얀시의 책 제목처럼 교회는 나의 고민, 나의 사랑입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교회의 희망을 찾아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이번엔 공동체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동네에 선교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며 생활 공동체로 사는 분들이었는데, 주일마다 오가는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2년 넘게 공동체를 배우며 함께 사역했습니다. 한국교회의 타락이 공동체성 상실에서 온 것으로 보아, 공동체성의 회복 위에 교회를 세우는 데 희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선교 공동체에서 1년을 보내고 2년째부터는 생활 공동체로 함께 살고자 했으나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사를 왔습니다.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장동리 443번지. 짧은 2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새로운 삶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앞서 얘기한 보육원은 그 뒤로도 오가며 자주 들렀는데, 한번은 원장님이 3-4세 영아부 아이들을 교회에 보내고 싶은데 마땅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보모 선생님 3명이 23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매주 교회를 오가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었지요. 이 아이들이 예배자로 잘 커야 하는데 갈 수 있는 교회도 마땅치 않고 오라는 교회도 없다면서 무척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명색이 부름 받아 나선 사역자로서 예배가 없는 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일이 최우선순위 아니겠는지요! “선생님, 이번 주일부터 제가 와서 함께 예배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일 오후 3시 성애원 강당에서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2016년 7월의 마지막 주일, 더사랑교회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매주 주일 오후 3시, 우리 부부는 보육원 강당에서 23명의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중순, 공동체 목사님으로부터 새해에는 개척해서 나가는 게 좋겠다는 권면을 받았습니다.

2017년 1월 1일 11시. 더사랑교회가 천막에서 첫 예배를 드리며 개척되었습니다.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장동리 443번지 마당에 나그네를 대접하기 위해 쳐놓은 글램핑 텐트가 교회로 거듭나는 순간이었습니다. 

   
▲ 2017년 1월 1일, 더사랑교회가 개척되다. (사진: 이요섭 제공)

첫 예배를 드린 다음날 월요일, 옆집 할머니께서 찾아와 일요일 아침부터 왜 그리 시끄럽게 하냐며 타박하셨습니다. 다음 주일, 최대한 찬송도 살살 부르고 설교도 작은 목소리로 전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또 찾아와서 구박을 하셨습니다. ‘아이고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절로 탄원이 나왔습니다. 교회 개척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난 지 3년이 지난 지금, 옆집 할머니께선 교회와 목사의 팬이 되셨습니다. 지인들께도 ‘우리 목사님’이라고 소개를 하십니다. 오늘 아침에도 출근하는데 마침 시내 나가신다고 하셔서 약속 장소까지 태워다 드렸습니다. 

나그네, 아이들, 한 부모 가정이 함께하는 공동체
신명기 16장 11절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그 곳에서, 당신들과 당신들의 아들과 딸과 … 성 안에 같이 사는 레위 사람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까지도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 말씀에서 나그네와 아이들과 한 부모 가정이 모두 함께 하나님 앞에서 즐겁게 예배하는 공동체를 보게 됩니다. 공동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공동체를 무너뜨리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공동체를 세운다고 했습니다. 사람 사랑을 통해 하나님 사랑을 삶으로 구현하는 지속가능한 해석 공동체를 세워갑니다. 공동체적 삶을 통해 해석된 말씀이 적용되어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갑니다.
2020년 첫 주일, 지난 2016년 7월에 함께 예배드린 아이들이 자라서 8살이 되었습니다. 이 아이들과 함께 다시 ‘다음세대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더사랑교회의 교육 부서가 아닌 다음세대의, 다음세대에 의한, 다음세대를 위한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 2020년 1월 5일, 다음세대교회가 개척되다. 

다음세대교회는 더사랑교회가 지난 여름 시작한 ‘진짜 공부방’ 사역이 펼쳐지는 곳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진짜 공부방’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교육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고자 2019년 9월에 설립되었습니다. 공부방이 있는 사방 십리 안에 공부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라며 시작되었지요. 

   
▲ '진짜 공부방'에서 공부 중인 아이들과 교사들.

더사랑교회, 다음세대교회, 진짜 공부방. 이 모든 여정은 야고보서의 말씀이 이끌어 왔고, 앞으로도 이끌어 갈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요섭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공동체 교회를 꿈꾸며 사는 행복한 시골 동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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