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호 커버스토리]

 

지난달, 출근하는 길에 마을버스에서 교회 후배를 우연히 만났다. 반년 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후배와 함께 앉아 근황을 나누었다. 내릴 때가 되자, 나는 속에 있던 질문을 하나 꺼냈다. “요새는 교회 좀 나가니?” 후배가 말했다. “오빠, 저 교회 안 나가잖아요. 그때처럼 지금도 안 나가요.” 

후배는 20대 후반부터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소외감이 들었다고 했다. 후배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자격증 시험에 도전했는데, 결과가 매년 좋지 않았다. 친구들은 저마다 유학과 취업, 결혼 등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데, 자기는 남보다 뒤처진다고 생각한 것 같다. 처음에는 장년 예배만 참석하더니 나중에는 발길을 아예 끊었다. 

이러한 사정을 나는 4년 전에 처음 알게 됐다. 우리 교회 청년부는 여러 ‘마을’로 구성돼 있었는데, 후배는 내가 마을장으로 있을 때 소속 리더였다. 군대를 핑계로 교회를 떠났다가 수년 만에 돌아온 나는 함께 섬긴 리더들을 만나고 깜짝 놀랐다. 후배를 포함한 대다수가 교회에 나오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또 다른 후배의 사연은 이렇다. 그는 청년부에서 2년간 임원을 연임할 정도로 헌신도가 높았다. 임원 활동 중 갑자기 강원도에 있는 도시로 전근하게 됐다. 청년부는 후배를 놓아주지 않았다. 담당 교역자도 사정을 감안하겠다고 말했지만 일은 전처럼 똑같이 시켰다. 성실한 친구였다. 주말마다 서울과 숙소를 오가며 죽을 만큼 힘들어하면서도 주어진 사역은 충실히 해냈다. 그리고 연말에 교회를 떠났다. 

후배들이 교회를 나간 이유는 이외에도 다양했다. 해외에서 일하다가 돌아와서 적응하지 못하거나, 일이 너무 바빠 조금씩 공동체와 멀어진 경우 등 천차만별이었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힘든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교회를 떠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배들은 교회에서 이런 고민을 풀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처음에 사소해 보였던 고민과 상처들도 나중에 점점 병이 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후배들은 교회를 떠났지만, 완전히 ‘교회’를 떠난 상태는 아니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은 그대로였다. 뜨겁게 신앙했던 이전을 그리워하며 갈등하고 있었다. 이들은 안전한 공동체를 원했다. 우리는 우리끼리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매주 목요일 저녁 교회 근처 카페에서 모이기 시작했다.

이젠 보편 현상이 된 탈교회
교회를 떠났지만 자신을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나안 성도’라고 부른다. 몇 년 전부터 불리기 시작한 이 단어는 이제 보편 용어로 자리 잡아 사람들은 지금을 ‘탈교회 시대’라고까지 말한다. 교계 매체의 기자로서 이슈 현장을 취재하면서, 후배들처럼 여러 사정으로 기성 교회를 떠난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싶다.

경기도 남부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 대형 교회에는 20~30대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가나안 성도’ 모임이 있다. 매주 일요일 오후에 모인다. 예배에 나오지 않지만 공동체가 필요한 친구들을 위해, 교회 선후배들이 모임을 만들었다. 몇몇은 본 예배를 마치고 참석하지만, 예배 대신 나오는 이도 있다. 

이들이 모인 지 올해 3년째다. 처음엔 단순히 ‘잃은 양’을 돌보기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교회 불만이나 아쉬움, 기성 교회의 한계 등을 토로하고, 교회의 본질과 하나님 나라, 공동체 가치 등을 논하는 진지한 모임으로 발전했다. 몇몇은 결혼하고 출산해 어린아이들도 동반하니, 얼핏 보면 일반 교회 같다. 

모임을 주도한 청년을 얼마 전에 만났다. 그는 기성 교회가 지닌 보수성, 수직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 등을 지적했다. “담임목사가 진보적인 성향과 열린 사고를 갖고 있어도 꽉 막힌 장로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한계가 있다” “교회가 대형화하면 사람 대신 조직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소외되는 사람들이 발생하는 것 같다” “그런 교회에서 목사나 장로들에게 어떤 변화를 기대하기가 참 어렵다”는 등의 말을 들었다.

교회를 비판하는 것보다 교회를 세우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건 이들도 잘 안다. 청년은 3년 동안 가나안 성도 모임을 인도하면서 이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더군다나 매주 오전 예배를 마치고 오후에 모임까지 참석하고 나면 심신이 완전히 방전됐다. 자신들을 하나의 독립 교회로 정의해야 하는지, 단순 친교 모임으로 봐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이제는 교회를 떠나 새 공동체를 세울지, 아니면 흩어져서 다시 교회로 돌아갈지 고민하고 있다고 청년은 말했다. 

   
 

이러한 가나안 성도들을 위해 만들어진 교회도 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직업·소명 상담을 하는 신동열 목사는 2016년 6월 ‘질문하는교회’를 개척했다. 그는 개척 당시 페이스북에 이러한 글을 올렸다. “교회를 개척합니다. 질문 있는 사람 오세요.” 

질문하는교회는 설교가 짧다. 대신 대화 시간은 길다. 토론을 위해서다.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하나요?” “목사님들은 왜 권위적인가요?” “기독교인들은 왜 말과 행동이 다르나요?” 청년들은 예배가 끝나면 거칠고 투박한, 누구보다 진솔한 질문을 쏟아낸다. 신 목사는 평소 청년들이 교회에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공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들에게 마음껏 질문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금도 매주 10명 남짓한 청년들이 질문거리를 한가득 안고 질문하는교회를 찾는다. 

질문하는교회는 가나안 성도들이 잠시 머무는 임시 처소와 같다. 신동열 목사는 청년들이 이곳에 정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스스로 어느 정도 답을 찾으면 다음 단계를 밟으라고 권한다. 몇몇 친구들은 교회로 돌아가지만, 교회를 영영 떠나는 이도 있다. 

‘함께심는교회’(박종현 목사)는 가나안 성도들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나는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IVP)를 읽으면서, 함께심는교회 예배 모습이 마치 초대교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로마 군인 푸블리우스를 만찬에 초대해, 식사 후 이어진 짧은 예배와 대화 시간을 통해 기독교를 소개한다. 함께심는교회도 비슷하다. 이 교회는 점심 식사가 시그니처다. 충분한 식사 후에 찬양과 간단한 설교(10분!), 그리고 대화가 이어진다.

밥상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기성 교회에 실망하고 등진 사람, 어딘가에 소속되기 싫은 이들이 밥상에 앉는다. 그런 그들에게 함께심는교회는 등록이나 출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박종현 목사는 누구든지 편하게 교회에 와서 몸과 마음의 양식을 채우고 돌아가면 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서로 자유롭게 교제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격려와 회복을 얻는다고 한다. 

가나안 성도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가나안 성도 현상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21세기교회연구소)는 2017년 6월 한국교회탐구센터가 주최한 ‘평신도의 소명 의식 조사 결과’에서 가나안 성도가 2012년 조사보다 5% 늘었다고 발표했다. 한국교회탐구센터가 당시 기독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19.2%가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기독교인 10명 중 2명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현실이다.

가나안 성도 현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이들이 등을 돌린 대상이 기독교가 아니라 교회라는 사실이다. 수십 년 신앙생활하고 교회에 헌신적이었던 이들이 가나안 성도가 된다(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21세기교회연구소, 한국교회탐구센터 2018년 설문 자료). 앞서 소개한 사례에서처럼 시험에 들거나 문제가 있어서 떠난 게 아니다. 예수가 강조했던 공동체, 오늘날 교회 모습 사이에서 발견한 괴리와 모순이 견디기 힘들어서다. 

하나님을 더 잘 믿기 위해 그리고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오랫동안 신앙을 함께 나눈 동료와 공동체를 떠나는 건 슬픈 일이다. 한국교회가 그렇게 자랑하는 지난 100여 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우리는 도대체 어떤 교회를 만들어 온 걸까.

교회를 떠난 후배들, 아직 남아 있는 나   
이제 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4년 전 야심 차게 후배들과 시작한 모임은 유의미한 시도였다. 우리들은 스스로를 교회 부적응자로 여겼다. 대부분 30대 초반이었다. 진로·결혼 등을 고민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지 한창 고민거리가 많았을 때였다. 교회에서는 나와 무관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봉사, 헌신, 거룩을 강조하는 추상적인 메시지는 공허하게 들렸다. 예배에 잘 안 나가게 되면서 하나님과도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모임에서는 기독교 서적을 함께 읽고 느낀 점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한 주간 어떻게 지냈는지, 기도 제목이 무엇인지 등을 이야기했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형태지만, 나를 포함해 후배들이 느낀 만족도는 작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곳이 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 교회 담장 바깥이었지만 삶과 신앙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패배감이 가득했던 마음이 점점 회복되었다. 우리는 낙오자가 아니었다.

모임은 1년 후 해산했다. 몇몇은 결혼하고, 누구는 해외로 가게 돼 정기 모임이 어려워졌다. 나를 포함한 일부는 교회로 돌아갔고, 마을버스에서 만난 후배처럼 계속 안 나가는 친구도 있다. 우리는 1년에 한두 번씩 만나 근황을 나누며 그때를 추억한다. 지금 모습과 상관없이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후배들과 추진했던 모임은 내가 교회에 계속 출석하는 동기가 됐다. 비록 몇몇 친구는 지금이 더 좋다며 가나안 성도가 됐지만, 나는 교회 안에 있는 다른 후배들과도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졌다. 내가 알게 된 교회 밖 신앙을 소개하며 이들이 혹시나 갖고 있을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어머니를 비롯한 여성 교인들의 모습이다. 비록 보수적인 신앙에 감수성이 조금 부족해 보이고, 가끔 가짜 뉴스에 경도돼 이상한 말을 퍼뜨리기도 하지만(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이 선교사를 추방해서 발생했다는 둥), 성경에서 배운 사랑과 헌신을 몸으로 실천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교회의 존재 의미를 생각했다. 

그럼에도 내가 교회를 떠나지 않는 이유
그들은 혼자 사는 외로움, 남편이나 자식에게 얻은 상처와 울분을 사랑방과 기도 모임에서 나누며 서로 치유했다. 형편이 어려울 때 돈을 융통해 주고, 음식이나 옷가지, 생필품을 나누기도 했다. 사랑방에서는 출신·배경·재산·학벌 등으로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지만 불우한 개인사를 겪으며 정신병을 갖게 된 분, 전날 밤 동네 친구들과 1인당 소주 2병씩 깠다고 태연스럽게 말씀하는 여성 교인도 사랑방에서는 환대를 누릴 수 있었다. 

사랑은 지역 사회에도 흘러갔다. 우리 교회가 있는 지역은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유명해진 포방터 시장 부근이다. 백종원이 첫 방송에서 말했던 것처럼 얼핏 보면 시골 같은 곳이다. 북한산 자락부터 평지까지 낡은 주택과 빌라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난한 동네다. 주방에서 봉사하던 교인들은 자발적으로 사비를 들여 음식을 넉넉하게 만든 뒤, 혼자 사는 노인과 어려운 가정에 반찬을 나눠줬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교회 인근에 한부모 가정이 모여 있는 애란원을 방문해 말없이 음식을 만들고 집안일을 돕고 오기도 했다.

나는 어머니를 포함해 여성들이 노년에 교회에서 맺은 인연을 바탕으로 깊은 우정과 교제를 나누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고 행복했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주변에 퍼뜨리는 모습이 바로 예수가 우리들에게 원하던 게 아니었을까.

물론 교회에서 즐거운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존경하던 장로님이 퀴어 축제 시즌에 혐오와 차별이 가득한 내용으로 대표 기도를 하거나 고등부 부장 선생님이 ‘동성애’와 ‘진화론’이 다음 세대를 위협하고 있다고 강변할 때, 몇 번이나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여성에게 목사 안수도 허락하지 않는 낡은 교리가 진리인 양 떠들어 대는 교단 실정을 보면, 언젠가 교회를 떠나거나 쫓겨나는 일이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혹시 나중에 탈교회하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애써 교회에 남아 보려고 한다. 마침 오늘(2월 9일) 영아부 예배 본문이 요한복음 13장 34-35절이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내용이다. 나는 후배들이 교회 밖에서 나눈 교제, 여성 교인들이 보여 준 모습에서 예수가 가르치려 했던 사랑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사랑은 편협하지 않고 조건이 없다. 이 사랑이 혐오와 차별의 벽을 넘어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까지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 종이 지면에는 지난호 커버스토리 기사의 마지막 문단(마지막으로 ~ 다 거짓이다)이 포함되는 편집상의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온라인 기사는 이를 바로 잡아 게재합니다. 

박요셉
기독교 매체 〈뉴스앤조이〉 직원. 보수적인 교회에서 나고 자란 서리집사다. 신학적 배경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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