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호 사람과 상황] “낮은 자세로, 더 가까이에서 보려 합니다”

 

 

   
▲ ⓒ복음과상황 정민호

‘미디어몽구’(본명 김정환)는 사회적 이슈 현장을 발로 뛰며 영상으로 기록하고 그 소식을 알리는 1인 미디어이다. 그의 영상과 채널을 본 사람들은 미디어몽구가 하나의 저널리즘 단체나 조직이 아닌 ‘개인’이라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2020년 3월 기준 구독자 23만 명, 동영상 859개, 누적 조회 수 1억 9천 뷰에 달하는 유튜브 채널이 그가 홀로 취재·촬영·편집·제작해온 기록이기 때문이다.

2005년 블로거로 활동을 시작한 미디어몽구는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건, 촛불집회, 대통령선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언론 파업, 용산참사, 사드 배치, 세월호 참사 현장 등 우리 사회의 굵직굵직한 이슈를 취재하며 하나의 독립된 ‘언론 매체’로 15년간 자리매김해 왔다. 그의 영상은 주로 기성 언론이 가닿을 수 없거나 다루지 않는 이야기를 담는다. 현장의 이면이나 이슈 당사자의 곁에 머물러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미디어몽구는 늘 사람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머물며 감동을 전해왔다. 최근엔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활동가였던 김복동 할머니의 곁을 7년간 지키며 촬영한 그의 기록물이 영화 <김복동>으로 제작되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유가족들과 관계를 이어가며 그들의 일상 소식을 전하곤 한다. 시시각각 이슈가 급변하고 여론을 혼탁하게 만드는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에, 미디어몽구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매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 현장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는 그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인터뷰는 복음과상황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우선, 저희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2005년, 휴대폰에 카메라 기능이 생겼을 때부터 ‘몽구’라는 필명으로 온라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정환이라고 합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결같은’ 마음이요?
네. 제 마음은 한결같아요. 몸이 안 따라줄 뿐이죠.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엔 우연히,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어요. 그땐 1인 미디어나 시사 블로거 등의 타이틀이 생소할 때였는데, 포털사이트 다음(daum) 측에서 블로그 뉴스라는 서비스를 처음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죠. 대학로 동네 소식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다음에서 제가 올린 게시물을 보고 본격적으로 블로거 활동을 하지 않겠냐고 제안해왔습니다. 그때는 제가 어떤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하게 일종의 활동비와 특종 상금을 노리고 일을 했어요. 매주 어딘가에 나가서 사진을 찍어 올리고, 활동비를 받으면 그 돈으로 다시 어딘가로 향하고 그런 식이었죠. 그러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현장에 갔는데 그곳에서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했고 미디어몽구의 방향성도 정해진 것 같아요.

   
▲ "시민들은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계속할 것을 요구했는데 공권력은 그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아댔죠. 수압이 너무 세서 맞은 사람들이 바로 쓰러지고, 날아가고 그랬어요. 그 모습이 제겐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TV를 보니까 그런 장면들이 뉴스에는 안 나오는 거예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그때부터 사회 이슈 쪽으로 영상을 만들기 시작한 거네요.
그렇죠. 당시에는 포털사이트 안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그 포털의 운영방침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고 제약을 많이 받았어요. 처음에는 사진 위주였는데, 다음에서 ‘우리들의 UCC 세상’이라는 모토로 동영상 콘텐츠를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에서 미니 캠코더를 제공해주면서 현장에 나가서 영상을 한번 찍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영상을 찍고 만들기 시작한 거죠.

그 뒤로도 미디어 환경에 따라 활동방식이 달라졌나요?
환경이 계속 달라지니까 그걸 따라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콘텐츠를 올리는 공간도 처음에는 포털사이트 안에 있다가, 아고라 게시판, 블로그를 거쳤고, 결국 2009년 유튜브로 자료를 모두 옮겼어요. 메일도 한메일을 쓰다가 지금은 구글 지메일을 쓰고 있고요. 포털사이트에 속해 있던 블로거가 독립 매체로 변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포털사이트가 제 기사를 노출하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제가 SNS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직접 소식을 알리고 있습니다. 굳이 차이를 따지자면 제 역할이 늘어난 거죠.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현장에서 기록의 중요성을 느끼셨다고 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촛불집회에 가면 사람들이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구호도 외치고 행진도 하잖아요. 처음으로 광화문에서 청와대로 행진한 적이 있어요. 그때 방어벽을 치고 있던 의경들, 경찰버스와 대치하게 되었죠. 시민들은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계속할 것을 요구했는데 공권력은 그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아댔죠. 수압이 너무 세서 맞은 사람들이 바로 쓰러지고, 날아가고 그랬어요. 그 모습이 제겐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TV를 보니까 그런 장면들이 뉴스에는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촬영했던 그 장면을 편집해서 인터넷에 올렸죠. 많은 분이 그 영상을 보고 반응을 했어요. 그때부터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 현장을 나라도 기록해서 알려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겼습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 현장을 취재하면서 개인적으로 지켜온 어떤 원칙 같은 게 있나요?
저는 취재 현장에 갈 때마다 한 시간 일찍 가서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킨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도 그 원칙을 지키고 있죠. 그리고 그 현장에서 한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끝날 때까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구석구석 다 찍어둡니다. 그렇게 하고 나야 집에 돌아가는데, 집에 가서는 관련 기사를 검색하죠. 그래서 현장에서 비중이 있었는데 보도되지 않은 내용이나 꼭 알려야 하는 내용이 있으면 그걸 중심으로 영상을 편집합니다. 최근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의 지역구 선거 유세 장면도 그런 식으로 다른 매체에 보도되지 않은 장면만 모아서 내보냈어요.

다른 매체에서 다 보도해버리면 영상을 못 올리는 경우도 생기겠는데요.
그런 경우는 별로 없어요. 영상을 올릴지 말지는 제 마음인데요. 제가 취재를 나갔다는 걸 구독자들이 알고 영상을 올려달라고 하시면 반드시 올리죠.

   
▲ 집회 현장에서 세월호 가족들의 모습을 촬영하는 미디어몽구 ⓒ복음과상황 정민호

취재 현장은 어떻게 결정하나요? 어떤 기준으로 움직이나요?
가고 싶은 곳, 궁금한 곳, 뭔가를 배우고 싶은 곳, 경험담을 담아두고 싶은 곳을 우선으로 하죠. 물론 일이 겹치거나 하면 못 가는 경우도 생기는데, 그럴 땐 과감하게 포기해요. 요즘은 육아 때문에 가고 싶은 곳을 못 가는 경우도 많아요.

채널 구독자들 중 미디어몽구를 후원하는 정기후원자들이 있는데요. 육아 등으로 활동이 뜸해지면 반응이 냉담해지거나 후원 규모가 달라지지는 않나요?
후원자들은 그냥 제 콘텐츠를 좋아하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라 그런지 활동이 줄었다고 해서 눈치를 주거나 그러진 않아요. 저도 후원하시는 분들의 시선이나 반응을 의식하지 않고요. 후원자들의 요구나 반응에 따라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오래 활동하지 못할 게 뻔하거든요. 그분들과 제가 같은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순 있어도, 그분들에 의해 제가 움직이고 활동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활동이 뜸하면 후원을 해지하고 빠져나가는 분들이 많아요. 그리고 열심히 활동하면 다시 후원을 시작하는 분들도 많아지고요. 그게 계속 반복되는데, 배고픈 생활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이런 일은 익숙해요.

미디어 활동이나 생계가 후원으로 지속 가능한가요?
혼자서 활동하기 때문에 문제는 없어요. 아니, 후원을 받지 않아도 지속할 수는 있죠. 차비만 있으면 갈 수 있는 게 현장이잖아요. 편집은 노트북만 있어도 되고요. 저는 사회 운동이나 갈등 현장을 주로 찾아가기 때문에 요즘 소식 전할 곳이 비교적 많지 않은데요. 최근엔 미디어몽구라는 이름으로 언론사 등록 절차를 마쳤어요. 이제 정식 언론사 자격으로 정부 부처나 국회도 출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홈페이지도 개편하고 장비도 바꿨고 여러 가지가 달라지고 있어요. 이번 총선을 기점으로 ‘미디어몽구 시즌2’를 시작하려고 조금씩 준비하고 있습니다.

   
▲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미디어몽구가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영상을 보는 사람과 팔로워가 많다 보니, 비난하는 반응도 있을 텐데요.
저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저에 대한 비난을 보면 가슴 아프고 응원을 보면 힘이 나고 충고가 있으면 새겨듣게 되고 그렇죠. 그런 걸 보면서 일희일비하려고 하진 않는데 제 영상을 관심 갖고 봐주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열성 구독자와 후원자도 많은 편인데, 비결이 있나요?
한결같은 모습으로 신뢰를 쌓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오랫동안 기자 신분이 아닌 상태로 활동했어요. 네티즌 중에는 제 게시물에 ‘물음표’를 달아주시는 분들이 꼭 있었어요. 대부분 ‘이 내용이 정말 사실이냐?’ ‘이 정보가 진짜 맞는 거냐?’ 하는 질문 말이에요. 그런 분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사진 한 장을 찍더라도 꼭 현장으로 달려가서 제 눈으로 봐야 했어요. 현장에서 제가 직접 보고 취재한 소식을 전하는 걸 반복하다 보니 그 결과로 신뢰가 쌓여 온 것 같아요.

15년이나 활동해오면서 ‘한결같음’을 유지하는 게 어렵진 않나요? 
생긴 모습이 바뀌었고 장비가 달라졌지 제 마음가짐이나 활동은 그대로예요. 제 영상을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담아내는 시선 그 자체는 동일하거든요. 영상을 보는 사람이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거죠. 영상기술이 화려해졌거나 그런 변화는 없어요. 저는 제 콘텐츠를 구독하시는 분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영상 테크닉보다는 늘 같은 마음을 지키는 걸 중시해왔습니다. 사람들이 제 영상을 통해 현장과 더 가까운 곳에 머물게 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지나 동료가 되길 바라죠.

15년 동안 해오신 원동력이 뭐예요?
그냥 제가 좋아하니까 하는 거죠. 특별한 원동력은 없어요. 저는 미디어몽구로 활동하면서 돈보다는 사람을 많이 얻었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의 응원과 질책이 가장 큰 원동력이죠.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 때, 어떤 분을 만났는데요. 2008년 촛불집회 때 제 영상을 많이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일상이 바빠서 저를 잠시 잊고 있었는데 다시 보게 됐다며 엄청 반가워 하셨어요. “몽구님, 아직도 이렇게 활동하고 계시냐”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15년 동안 늘 현장에 있었으니까요.

미디어몽구 채널을 처음 봤을 때 혼자 하신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규모를 키우거나 인원을 늘려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진 않으세요?
조직에 속해서 팀으로 활동도 해봤는데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더라고요. 기동성이 필요한 일이나 현장에서 발견한 뭔가를 캐치해서 보여주는 일은 혼자 하는 게 더 편하거든요. 제가 잘할 수 있는 방식을 고집하는 거죠. 한결같은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도 그래요. 사람이 많아지면 저는 오히려 나태해질 것 같아요.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을 시키지, 제가 직접 하겠어요? 아직은 그냥 지금처럼 계속 활동하고 싶어요.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영상 콘텐츠를 제작·유통하는 언론 매체들도 많이 있는데, 1인 미디어로서 긴장되지는 않나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요. 지금까지도 제가 스스로 ‘1인 미디어’나 ‘유튜버’라고 지칭한 적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불러주셔서 그런 줄 알았죠. 저는 그냥 혼자 현장을 찾아가서 기록하는 활동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미디어 환경이 변하고 적응하는 일은 신경 쓸 겨를도 없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도 감당하기 바쁘고,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하는 일도 벅차기 때문에 다른 건 잘 모르겠어요. 다른 매체들이 어떤 방식을 시도하고 있는지는 제겐 큰 의미가 없습니다.

   
▲ "저는 하나의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을 깊이 파고들어요. 객관성이 우위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현장을 알리는 게 우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사안을 지지하는지, 공감하는지 의견이 갈리는 건 어디나 늘 있는 일이잖아요." ⓒ복음과상황 정민호

사람들의 기대를 항상 만족시킬 순 없을 것 같아요. 정파성이나 정치적 관점과 관련해서는 특히 더 그럴 것 같은데, 어떠세요?
아무래도 혼자 활동하다 보니까 중립성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매체들과 역할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어떤 이슈의 쟁점을 전하기보다는 현장의 소식과 생생한 목소리를 대신 전해주기 위해 현장으로 가는 거죠. 여러 명으로 구성된 팀이라면 어떤 시위 현장에서 반대쪽 목소리도 균형 있게 보여줄 수 있겠지만, 저는 하나의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을 깊이 파고들어요. 객관성이 우위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현장을 알리는 게 우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사안을 지지하는지, 공감하는지 의견이 갈리는 건 어디나 늘 있는 일이잖아요.

앞으로도 계속 활동하실 계획이죠?
제가 다른 조직에 입사하거나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미디어몽구로 활동할 것 같아요. 저는 그동안 미디어몽구라는 이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항상 발로 뛰며 열심히 해왔는데, 아무런 후회가 없어요. 아마 앞으로도 마음이 바뀌거나 다른 일을 하진 않을 것 같아요. 
이런 일을 하시다 보면 아무래도 가족들과 소원해질 수밖에 없지 않나요?
맞아요. 그래서 제가 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이란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요. 제 가족들이나 가까운 사람에게는 잘 못하면서 밖에서만 열심히 한다는 말을 듣고 싶진 않거든요. 얼마 전에 딸이 태어났는데 육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뭘 하든지 솔선수범하려고 노력해요. 어디 가서 모금하는 소식을 알리더라도 제가 먼저 참여한 뒤에 하죠.

현장에서 취재하는 모습을 보면 취재원들과 늘 친밀해 보이시던데, 취재기자들이 모두 그렇진 않잖아요. 비결이 있나요?
현장에 가면 낮은 자세로, 가까이에서 보려고 합니다. 저는 어디든 처음 방문하는 현장에는 카메라를 들고 가지 않아요. 취재 현장엔 워낙 억울하고 슬픈 일을 겪으신 분들이 많이 있잖아요. 먼저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마음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화가 나고 경황이 없는 상황에 처한 분들에게 카메라부터 들이대면 반감이 생기거든요. 그런 걸 자주 봐왔기 때문에 저는 취재 장비 없이 그분들에게 다가가는 거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보십니다. 그때 비로소 미디어몽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드립니다. 그러면 대부분 왜 카메라가 없냐고 그러시죠. 물론 다음에 갈 땐 카메라를 들고 갑니다. 이런 식으로 서로 신뢰가 생기면 나중에 다른 언론에 말하지 않는 속내를 제게 말해주기도 하고요. 오랫동안 연을 맺기도 합니다.

당장의 취재 욕심을 내려놓아야 말씀하신 접근 방식이 가능할 것 같아요. 멀리 내다보는 자세가 필요하겠네요.
맞아요. 그리고 또 꾸준함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분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게 제 일이니까요. 그분들의 목소리가 이슈가 생길 때만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요? 언론들의 관심이 식더라도 저는 계속 그곳에 남아서 그분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역할을 하고 싶죠. 세월호 참사의 경우도 지금은 언론들이 관심을 두지 않잖아요. 지난 주에도 팽목항엘 다녀왔는데, 다른 언론이 이야기하지 않을 때 저라도 꾸준하게 관심을 갖고 싶어요.

세월호 참사 때 유가족들 가까이에서 소식을 전하셨는데, 어떠셨어요?
처음 팽목항에 내려갔을 땐 언론에 대한 유가족들의 불신이 상당했어요. 정부에서 발표하는 브리핑을 확인해보지도 않고 그대로 보도하고, 직접 바다에 나가서 살펴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걸 눈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이죠. 언론 매체가 촬영한다고 하면 거부하시고 기자증이나 카메라를 뺏어서 부수는 일도 있었어요. 그래서 기자들은 몰래 촬영하는 경우가 많았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작은 카메라를 들고 화장실이나 대합실에 숨어서 촬영하기도 했었죠. 그 과정에서 옆에 있던 어느 기자가 유가족들에게 걸린 거예요. 그분들이 뛰어 올라오셨고 거기서 촬영하는 사람들은 다 끌려가고 장비를 뺏기고 제지를 당했어요. 근데 유가족들이 저는 건드리지 않더라고요. 나중에 이유를 물어보니까 제가 외신 기자인 줄 알았대요. 그때는 제가 지금보다 훨씬 말랐었는데 그렇게 보였나 봐요. 그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런데 유가족 분들과 어떻게 가까워지신 건가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현장으로 달려갔어요. 꾸준히 현장 소식을 전하면서 가족 분들과 가까워지게 되었고요. 지금도 은화 엄마와 다윤 엄마는 우리 집에 놀러 오시고 저도 놀러 가는 사이로 지내요. 세월호 가족 분들이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어요. “우리 사회 언론의 모습은 인터뷰하고 돌아가는 뒷모습”이라고요. 한 번 왔다가 돌아가면 다시 안 온다는 의미예요. 저는 반대로 움직이려고 해요. 기성 언론들이 관심을 보일 때는 한발 물러나서 지켜보고, 그들이 떠나면 다시 그분들 곁으로 돌아가서 소식을 전하는 방식으로요.

   
▲ 목포신항에서 세월호 유족 허흥환 씨(허다윤 아버지)와 미디어몽구 ⓒ복음과상황 정민호

이제 6주기가 되어 가는데요. 곁에서 지켜본 유가족들의 모습은 어떤가요?
너무 안타깝죠. 그분들의 소망은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데, 가족들이 원하는 진상규명이나 문제 해결이 아직 되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 마음이 어떻겠어요. 그분들이 웃을 수 있는 소식이나 상황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잊혀갈 텐데 그런 상황을 보고 있으면 참 안타까워요. 아이들의 억울한 희생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길 바라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 같고, 단지 억울한 죽음으로 끝나진 않을까 해서 걱정되죠. 추모하고 기억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중요한 건 우리 사회의 문제와 시스템이 바뀌는 거잖아요.

현장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 아픈 사람들을 계속 만나다 보면 같이 힘든 기분이 들진 않나요?
그러진 않아요. 처음에는 제가 그분들의 아픈 마음을 위해주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제가 도움을 받을 때가 더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냥 즐겁게 웃으면서 지내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세월호 가족분들도 슬퍼하고 투쟁하는 모습이 많이 비치는데, 그분들은 슬퍼하다가도 저를 보면 막 웃고 그래요. 왠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좋은가 봐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딱히 정해둔 건 없어요. 다만 거리에 나와 계시는 모든 분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요.

평소 기독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저는 신앙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다만 교회를 좀 싫어하는 편이죠.(웃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 속으로 ‘나는 교회 안 다니고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거야’ 하는 생각이 들어요. 교회 다닌다고 해서 꼭 천국 가는 건 아니잖아요? 교회를 안 다닌다고 천국에 못 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예수님은 ‘낮아지고 낮은 곳을 봐야 한다’고 그랬다는데, 교회는 낮아지지 않고 하늘 높이 있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아닌가? (웃음) 

 

 진행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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