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호 부전자전 고전] 마르틴 루터의 〈노예 의지에 관하여〉 읽기

   
▲ 《루터와 에라스무스: 자유의지와 구원》
루터·에라스무스 지음 / 이성덕·김주한 옮김
두란노아카데미 펴냄

1.
아들아, 코로나19 사태로 온 세상이 마치 가라앉는 듯, 사라지는 듯한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구나. 이 와중에 너는 전보다 더 독일어와 철학 공부에 매진하는 것 같더라. 외부 세계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너의 글은 회를 거듭할 때마다 발전하는, 그야말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는 것 같다. 퍼트남의 《이성, 진리, 역사》를 지금 네 나이 즈음에 읽다가 관두었는데, 그때 네 글을 먼저 읽었다면 훨씬 수월했겠다 싶더구나.

무엇보다 ‘합리적 수용 가능성’이 함축하는 모순, 즉 수용되지 않은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너의 탁월한 주장에 십분 동의한다. 권력과 폭력, 재력에 의한 위계질서를 상정하지 않는 진리 이해는 현실 체제를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하고 말아. 합리적으로 각각의 의견이 고루 반영된 결정이라 하더라도, 이미 그 이면에 강자, 시쳇말로 말빨 좋은 자들의 입, 주먹깨나 쓰는 자들의 힘, 가진 사람들의 돈의 위력이 위세를 떨쳤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거든.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가 그런 사람이었다. 마르틴 루터와의 자유의지 논쟁에서 그가 신학의 정치성이랄까 사회적 맥락을 도외시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번에 내가 얘기하려는 자유의 문제도 관계라는 조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치 사회적 환경을 제외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이지. 설사 그것이 순수 철학이고 인문학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야. 일체의 관념은 물적 토대와의 상호 작용 속에서 존재한다고 생각해. 그럼 그 이야기를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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