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호 우종학 교수의 과신문답]

 

시대의 상식·우주관을 반영
흔히 사람들은 창세기를 세계가 창조된 과정을 알려주는 텍스트로 오해합니다. 이름도 한글로는 ‘창세기’이고 영어로는 ‘Genesis’이니, 이 기록이 우주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기원을 알려주고자 1, 2장을 쓴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닙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 비그리스도인들도 창세기를 우주와 지구, 생명의 기원을 다루는 텍스트로 오해합니다. 이 세상이 어떤 방법과 과정을 통해 어떤 순서로, 그리고 얼마나 긴 기간 동안 만들어졌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자연사의 연대기나 우주의 형성 과정, 혹은 지구의 나이나 생명체들의 창조 과정을 설명하는 과학책이 아닙니다. 자연사에 관한 과학적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습니다. 창세기는 모세의 지도력 아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도대체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를 출애굽시킨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주어진 책입니다.(‘우리를 인도한 신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가 이스라엘 백성이 유대 땅으로 되돌아온 제2성전기에도 동일하게 던져집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는 ‘창조물’에 관한 책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주’에 관한 책이라는 얘기입니다.

창세기 1장은 해와 달과 별들이 궁창 안에 있었고 그 위에는 물층이 있었으며 빛을 내지도 않는 달을 광명체로 기술하고, 태양이 넷째 날에 창조되기 전에 이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면서 3일의 시간이 흘렀다고 표현합니다. 이런 내용은 현대과학과는 모순되는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이는 창세기가 현대인에게 주어진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우리를 위한’(for us) 책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not to us) 책이 아니라는 점은 성경을 바르게 읽는 첫 번째 중요한 기준입니다.

창세기 1, 2장은 고대 히브리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려주는 책이며 그가 모든 것을 만든 창조주임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그 시대의 상식과 우주관을 반영하여 창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장 칼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창세기는 이 텍스트가 기록된 당대의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accommodate)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문자화한 기록
창세기 1, 2장이 세계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설명이 아님을 배우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1, 2장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 답은 바로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를 이해하게 되면서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깨닫습니다.

긴 세월 동안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를 비롯한 고대근동의 신화들에 익숙했습니다. 그 신화들에 따르면 태양과 달을 비롯한 자연은 신적 존재들입니다. 태양신이나 바다의 신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그 신들이 노예로 부리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창조 서사시인 에누마 엘리쉬(Enûma Eliš)를 보면 신들의 세계에서 반란을 일으킨 마르두크(Marduk)가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신들을 부역에서 해방하고 자유와 안식을 보장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왕 파라오는 신 중 하나로 간주되었으며, 인간 위에 군림해서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그의 권력은 고대 신화들에 의해 정당화되고 강화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집트 제국에서 노예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 내린 ‘10가지 재앙’을 통해 놀라운 기적들을 경험하고, 모세에게 주어진 능력에 의해 당대에 신적 존재로 여겨지던 자연이 장난감처럼 이용되는 것을 목격합니다. 자연을 통제하는 모세, 그를 지도자로 보낸 여호와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 질문은 포로시대 이후에도 계속되며, 오늘날 우리가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파라오의 장자, 즉 신의 맏아들이 죽임당한 날 이집트를 탈출합니다. 도대체 우리를 인도하는 신은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품은 채 말이지요. 모세를 통해, 아마도 당시에는 구전으로 전해진 창세기 1, 2장은 고대근동 신화들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내용을 들려줍니다. 같은 질문이 포로시대 이후에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던져집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누구이고 하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 앞에 모세의 전승이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문자 기록이 탄생합니다.

그 기록은 신이라 여겼던 태양, 달, 바다와 모든 자연은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선언합니다. 창세기 1장은 심지어 태양과 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으며 그 대신 ‘두 개의 광명체’라고 표현합니다. 게다가 태양과 달이 별 중요하지 않은 창조물인 양 넷째 날이나 되어서야 창조된 것으로 묘사됩니다. 신으로 여겼던 모든 자연(물)은 피조물의 지위로 격하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 놀라운 메시지
더 놀라운 점은 인간을 마치 하나님인 양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했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표현은 생물학적 의미를 담은 말도 아니고, 기적적으로 창조했다는 식으로 창조의 방법을 가리키는 말도 아닙니다. 이는 인간을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존재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언약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격적 존재로, 즉 하나님과 비슷한 존재로 창조했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주신 계명이 바로 뒤 28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을 대신 혹은 대리해서 창조세계를 보존하고 다스리라는 임무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른 바 ‘문화명령’입니다. 고대근동에서 신적 존재로 여겼던 자연, 즉 태양과 달, 바다와 그 모든 대상이 사실은 신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통치 아래 놓여 있으며, 인간의 도움을 통해 보존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를 포함한 고대근동 신화들은 ‘자연(물)이 곧 신들이고 인간은 그 신들의 노예’라고 기술하는 반면, 창세기는 그와 대조적으로 자연은 피조물에 불과하고 인간은 신적 존재로 창조되었기에 자연은 오히려 인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의 관계, 혹은 그 위상을 알려주는 것이 창세기 1, 2장의 목적입니다. 거기에는 이집트나 바빌로니아의 세계관, 즉 자연이 신이고 인간은 노예라는 지배적인 사고 아래 착취당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 놀라운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신과 같은 존재이며 오히려 자연을 다스리고 보존해야 한다는 놀라운 선언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인도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한 창조주임을 배우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 1, 2장의 목적입니다.

창세기가 쓰인 일차적 목적
창세기는 어떤 과정이나 순서, 인과관계를 거쳐 우주가 창조되었다고 설명해주는 책이 아닙니다. 우주나 생명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아니며, 당연히 과학적 질문을 다루지도 않습니다. 창세기 저자는 그런 내용에 거의 무관심합니다. 우리가 그런 설명을 간절히 원할지는 모르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이 창세기를 통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포로시대 이후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내용이 아닙니다.

어떤 책을 읽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글로 기록된 모든 문서는 어떤 목적으로 쓰였는지, 본문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주목해야 합니다. 창세기도 그렇습니다. 창세기가 우리에게 주어진(to us) 책이라는 오해를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주어진(for us) 것은 분명하지만 일차적으로 출애굽을 거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들에게 창세기가 계시되었을 때 과연 어떤 목적으로 쓰였는지, 그 본문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주목해서 읽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어떤 창조주인지를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 더 보기 & 읽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제3강. 창조기사를 어떻게 읽을까?

   
 

‘과신대’(과학과 신학의 대화)에서 제공하는 기초과정 세 번째 강의 영상으로, 우종학 교수가 창세기 해석에 관해 다룬다. 성경 읽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고대근동의 케케묵은 상식이 진리라고 오해하기 쉽다. ‘창세기 1장에 공룡은 왜 안 나오는가?’ ‘창세기 1장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궁금하다면, 이 동영상 강의를 추천한다. 

창조 기사 논쟁

   

《창조기사 논쟁》
빅터 P. 해밀턴 외 지음 / 최정호 옮김
새물결플러스 펴냄

창세기 1-2장 해석은 현대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에게도 까다로운 문제다. 5명의 구약학자들이 창조에 관한 성경의 기록을 저마다 다르게 해석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진리로 믿지만 본문의 구체적 내용을 어떻게 이해할지는 전문가인 구약학자들 사이에도 일치되지 않는 견해들이 있다. 창세기와 현대과학을 어떻게 함께 이해해야 할지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이며 거대 블랙홀과 은하 진화를 연구하는 천문학자. 예일 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캘리포니아 대학교와 UCLA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미 항공우주국(NASA) 허블 펠로십(Hubble Fellowship), 한국천문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천체물리학 저널> 등 국제학술지에 100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으며, 대중을 위한 과학 강연과 저술에도 적극적이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새롭게 연구하고 교육하는 단체인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으며, 블로그 ‘별아저씨의 집’을 운영 중이다. 《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강의》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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