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호 사람과 상황] 개척 목회 4년차·8년차를 맞고 있는 박광리·오준규 목사

   
▲ 성남에 우리는교회를 개척한 지 4년차를 맞고 있는 박광리 목사(좌)와 구리에 낮은마음교회를 개척한 지 8년차를 맞고 있는 오준규 목사(우). ⓒ복음과상황 정민호

‘이제 세계는 코로나 이전(BC, Before Corona)과 이후(AC, 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나라 안팎에서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으며, 통계청이 밝힌 올해 3월 우리나라 20대 취업자 수는 작년 3월에 견주어 17만6천 명이 감소했고 같은 기간 20대의 대출 연체액과 대출액 증가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급증했다. 국책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경제 전문가 5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코로나 이후 경제 회복 기간을 최소 1년에서 최대 2년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코로나가 경제 위기만 불러온 건 아니다. 한 공간에 함께 모여 얼굴을 마주하며 예배하던 날이 아득해져가는 만큼, 거실에 앉아 모니터를 향해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일은 어느새 익숙한 주일 풍경이 되어간다. 이 과정에서 교회와 신앙, 예배에 대한 고민과 도전이 찾아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매주일 성도들을 만나고, 그들을 바라보며 설교하고, 교육하고 상담하던 목회자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코로나 이후 교회와 목회에 대해 그들은 어떤 고민, 도전에 맞닥뜨리고 있을까.

교회 개척 4년차와 8년차를 맞은 두 젊은 목회자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낮은마음교회 오준규 목사와 우리는교회 박광리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초대형 교회에서 오랫동안 부교역자로 일하다 개척한 지 그리 오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변화된 시대 속에서 교회와 목회, 신앙에 대해 끊임없이 궁구하면서 먼저 ‘한 사람의 성도’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고자 씨름한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인터뷰는 5월 6일, 나들목네트워크 서로교회 대표목사실에서 있었다.

 

오늘(5월 6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방역 대책이 조정되었는데, 다가오는 주일 예배에 변화가 있는지요?
오준규(이하 ‘오’) : 지금까지는 온라인 예배를 드렸는데, 이번 주(5월 10일)부터 부분적으로 대면 예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한번에 전면적으로 열지는 않고,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아서 제한된 인원으로 현장 예배를 시작하는 거죠. 어린이 예배는 아직 대면 예배로 전환하지 않기로 했고요. 교회 운영위원들과 함께 논의하여, 정부의 생활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예배드리는 쪽으로 결정했습니다.
박광리(이하 ‘박’) : 저희는 5월 셋째 주일부터 대면 예배로 전환할 계획입니다. 을지대학교 공간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는데, 학교의 대면 강의가 아직 시작 전이라서 교회가 먼저 예배를 드렸다가 문제가 생기면 학교 수업에도 문제가 될 수 있어서요. 5월 11일부터 학교 기숙사도 다시 열고 수업도 재개될 예정이라, 저희는 5월 17일부터 대면 예배를 시작하기로 한 거죠. 아무래도 학교 내 공간을 빌려서 예배드리는 교회들은 예배 전환이 학교측 결정에 달려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 일반 건물을 임대하여 예배드리는 교회도 사정이 비슷할 것 같아요. 자기 건물을 가진 교회들이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지만, (건물을 빌려 쓰는) 대다수 교회는 쉽지 않을 거라고 봐요.

   
▲ "교회마다 고민일 텐데, 무엇보다 세대 간 갈등이 더 커지지 않을까 해요. 그동안은 주로 이념에 따라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갈등이 있어왔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노년 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어르신들은 교회를 오고 싶어하고 현장 예배를 중시하며 헌금봉투에 정성스럽게 담아 헌금하는 분들이 많은 반면, 젊은 세대들은 온라인 예배와 온라인 헌금이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편이잖아요. 그러니 대면 예배가 재개되더라도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모들은 아직 조심스러울 것이고, 그와 달리 노년 세대는 그들보다 일찍 교회로 나오실 거라고 봐요." (박광리 목사) ⓒ복음과상황 정민호

코로나 이후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면서 개인적으로 어떤 일상의 변화가 있었나요?
: 무엇보다 가족들과 교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저희 아이들은 지금 사춘기를 지나는 고1, 중2 딸인데, 두 딸과 아내, 그리고 저 이렇게 딱 넷이서 교회를 시작한 지 이제 8년이 되었거든요. 기본적으로야 늘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지만, 코로나 사태로 학교를 안 가는 아이들과 밥을 자주 같이 먹게 되니까 훨씬 더 많이 대화하게 된 거죠. 특히 뉴스에 자주 보도되는 교회 모습을 보면서, 사회 속에서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지, 낮은마음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지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생각을 나누더라고요. 그 시간을 통해 저는 교회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아이들로서는 TV 뉴스에서 현장 예배를 강행하는 교회나 사회로부터 욕을 먹는 교회 모습을 보기도 하고, 또 아빠가 성도들에게 계속 메시지를 보내고 반찬 준비해서 전달하러 다니고 온라인 예배 준비하느라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도 가까이서 보게 되었죠. 학교를 다닐 때는 보지 못하던 목사 아빠의 일상도 지켜보고, 교회나 아빠의 목회 고민에 대해서도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의외의 시간들이었던 거죠. 대놓고 물어보진 않았지만,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아이들이 만족해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목사로서 아빠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보고 또 온라인 예배를 통해 들은 아빠 설교가 어땠는지 이야기해주는데, 그 전에는 제 설교에 대한 피드백이 없었거든요. 평소 아이들이 아빠를 목회자로서 어떻게 바라보는지,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늘 궁금했는데 그걸 확인하게 된 거죠. 생각보다 아이들이 교회에 대한 애정도 있고, 우리 교회가 세상 속에서 상식과 정도를 지향하려 애쓰고 몸부림친다는 걸 알고 있어서 자부심이 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두 번 다시 가질 수 없는 의미 있는 시간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저희 아이들은 초등 6학년, 2학년 아들인데, 아무래도 함께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또 하나 굉장히 좋았던 게 아이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영적인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특히 둘째는 영적인 관심이 많은데, 저와 오랜 시간 그런 얘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방목하는 유형인데, 저희 성도들은 싫어하는 부분이에요.(웃음) 유튜브 시청이나 인터넷 게임을 자유롭게 하게 해주거든요. 이번 어린이날 선물도 게임할 수 있는 컴퓨터를 사줬어요. 최대한 울타리는 넓혀주고 극단으로 가지 않는 선에서 통제하는데, 물론 아이들에게는 책임을 함께 가르쳐서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게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게임하며 놀다가 이야기도 나누고 하니까, 아이들과 집에서 함께 있는 시간이 전혀 힘들지 않았죠. 반면에 아이들을 통제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쓴 부모님들은 그만큼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는 부모들의 통제가 오히려 아이들의 욕망을 키운다고 생각해요. 1시간 책 읽고 나서 15분 유튜브 보라고 하는데, 왜 책은 1시간 읽게 하면서 유튜브는 15분만 보게 하느냐는 거죠. 지금 우리나라 학생들이 모두 컴퓨터로 유튜브 영상 보면서 수업 듣고 과제도 하고 있잖아요. 우리 아이들의 미래 먹거리는 스마트폰 아니면 컴퓨터, 유튜브 같은 게 될 텐데, 그걸 통제하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이들과 자유롭게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함께 보면서 시간 보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앞으로는 신앙적 기준이 달라져야 할 거라고 생각해요. 전통적으로는 얼만큼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고 교회봉사나 헌금을 열심히, 많이 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었는데, 그 결과 성도들의 신앙 수준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직분을 부여하는 식으로 작동해왔잖아요. 앞으로는 교회 바깥에서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끼쳤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거죠. 단적인 예지만, 저희 교회의 경우 임직을 할 때 교회 내 봉사나 섬김도 보지만 지역사회에서 이웃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를 보거든요. 학부모회에서 섬겼거나 통반장으로 일했는지, 자신이 속한 지역을 위해 어떤 봉사를 했는지를 보는 거죠." (오준규 목사) ⓒ복음과상황 정민호

교우들은 어떻게 지내는 것 같던가요? 
: 성도들보다 목회자들이 훨씬 더 당황하지 않았을까 해요. 목회자들은 성도들 없이 예배드리는 게 초유의 사태였지만, 사실 성도들은 이전에도 온라인으로 영상 예배를 드린 경험들이 있잖아요. 저희 교회만 해도 유학생들이나 해외로 나가신 분들은 현지에서 주일 예배를 함께 드리기 원했기 때문에 이미 예배를 중계해 왔거든요. 게다가 일상의 삶을 더 많이 강조하고 주일 성수를 크게 강조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몸이 아프거나 먼 곳으로 출타한 경우, 그밖에 다른 사정으로 참석이 어려운 경우 온라인 예배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그리고 이번에 온라인 헌금 계좌를 처음 열었는데, 평상시보다 헌금이 훨씬 많이 들어온 거예요. 온라인 헌금을 하기 어려운 분들이 있어 인원은 조금 줄었지만 금액이 늘었더라고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교인들이 교회에 대한 애정이 있었던 거예요. 부활절 헌금도 더 많이 들어온 덕에, 우리도 작은 교회지만 더 어려운 교회에 월세를 지원할 수 있었죠. 반찬을 전달하면서 전교인을 잠깐잠깐 심방했는데 잘 적응하면서 굉장히 잘 지내고 있었어요.  
: 헌금이 늘었다는 건, 상대적으로 젊은 성도들이 많은 교회여서 가능한 얘기일 거예요. 아무래도 전통적이고 성도 연령대가 높은 교회일수록 헌금이 줄었을 거고요. 
: 맞습니다. 저희 교회가 30, 40대 젊은 교인들이 많거든요. 아이들도 그만큼 많고요. 
: 저희 교회도 낮은마음교회와 교인 연령대가 비슷할 거예요. 코로나 사태에 가장 당황한 건 목회자일 거라는 오 목사님 얘기에 공감합니다. 목회자 또한 한 사람의 성도로서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하는 그 시간이 불안하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교회를 개척하면서 저는 성도들에게 세상 속에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이며 지금은 흩어지는 교회가 훨씬 더 중요해진 시대라고 강조했는데요. 애초에 모이는 교회를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코로나가 와도 타격이 훨씬 적었던 것 같아요. 근데 아무래도 전통적으로 모이기를 강조하는 교회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모이지 못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았을 거라고 봐요. 심한 경우, 죄책감이 들 수도 있겠고요. 그래서 저희 교회 60대 이상의 성도님들에게는 좀 죄송스러운 게, 그분들 기준에서는 신앙생활 잘하는 성도가 될 기회를 잘 주지 않는 교회인 거예요. 종교와 복음을 명확히 구분하면서, 한국교회에서 강조하는 일반적인 종교 행위, 즉 십일조, 주초(酒草) 금지, 교회봉사 같은 것은 강조하지 않는 거죠. 대신 자꾸 복음에 집중하라고 강조하니까 종교적인 단계나 활동 면에서는 성취감이 없는 거예요. 어르신들 처지에서는 재미가 없죠. 힘들기만 하고. 

이제 세계는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과 이후(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팬데믹은 가공할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한국교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교회마다 고민일 텐데, 무엇보다 세대 간 갈등이 더 커지지 않을까 해요. 그동안은 주로 이념에 따라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갈등이 있어왔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노년 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어르신들은 교회를 오고 싶어하고 현장 예배를 중시하며 헌금봉투에 정성스럽게 담아 헌금하는 분들이 많은 반면, 젊은 세대들은 온라인 예배와 온라인 헌금이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편이잖아요. 그러니 대면 예배가 재개되더라도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모들은 아직 조심스러울 것이고, 그와 달리 노년 세대는 그들보다 일찍 교회로 나오실 거라고 봐요. 
: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게 이제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잖아요. 이럴 때 기성 세대들로서는 거리두기가 풀렸는데 왜 젊은 세대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고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냐며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정죄할 수도 있거든요. 젊은 세대들은 아이들이 조금만 컨디션이 안 좋거나 해도 쉽게 온라인 예배로 드릴 수 있는 거고요. 양측의 관점과 견해가 첨예하게 부딪칠 수도 있는데, 이걸 목회자가 어떻게 중재하느냐가 중요한 일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이번 기회에 목회자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자리를 피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서 자리를 비켜주지 않으면 목회자가 ‘하나님’이 되기 때문이죠. 성도들이 양이라면, 목회자는 양치기 개처럼 잘 쓰임 받으면 되는 거죠. 선한 목자는 예수님이지 목회자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오늘날 목회자 자리가 하나님을 가릴 정도로까지 커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담임목사의 자리와 역할이 커질수록 교회의 주인이 목회자가 되고, 그 결과 성도들에게서 하나님을 가려버리는 거죠." (박광리 목사) ⓒ복음과상황 정민호

: 성도마다 개별 상황에 맞춰 이야기해야 하는데, 저마다 자기가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면 감당할 수가 없을 거예요. 코로나 이후 ‘복음’을 강조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고 봐요. 개인의 필요가 아니라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유일하고 공통된 대안이 복음이 아닐까 싶은데, 교회가 얼마나 복음을 치열하게 가르치느냐가 중요할 거라고 봐요.
: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교회가 이벤트 중심, 예배당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교회가 본질, 즉 복음을 제대로 증거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존립 자체도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존립은 곧 목회자의 존재 의미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그런 준비를 정말 잘 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해요. 
: 코로나는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 혼자 자신의 신앙을 책임지는 상황을 만들었잖아요. 목회자에게도 마찬가지 상황이 주어졌다고 생각해요. 목회자는 성도들이 있어야 존재감이 생기는 건데, 성도들이 가까이에 없고 물리적으로도 만날 수 없는 지금 이 상황이 목회자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포스트 코로나를 생각할 때 목회자들이 사고를 전환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저부터가 교육 대상이자 목회 대상인 성도들이 없으니까 혼자서 뭘 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목사 노릇’을 안 하기 힘든 거죠. 그런데 코로나 사태는 목회자로 하여금 성도들과 대면하고 가르치는 상황을 내려놓고 오히려 하나님과 대면하라고 하는 것 같아요. 성경을 볼 때도 ‘설교할 때 이 구절을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이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성찰하도록 요구하고 있고요. 이 시기가 지나면 또 바쁘게, 껍데기가 움직이듯 목회해야 할 텐데, 그때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성찰할 시간이 없어지겠죠. 또한 성도들에게도 내 신앙이 어떠한지, 내 위치가 어디인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 아닌가 싶어요. 또한, 이번 기회에 목회자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자리를 피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서 자리를 비켜주지 않으면 목회자가 ‘하나님’이 되기 때문이죠. 성도들이 양이라면, 목회자는 양치기 개처럼 잘 쓰임 받으면 되는 거죠. 선한 목자는 예수님이지 목회자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오늘날 목회자 자리가 하나님을 가릴 정도로까지 커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담임목사의 자리와 역할이 커질수록 교회의 주인이 목회자가 되고, 그 결과 성도들에게서 하나님을 가려버리는 거죠.
: 위기의 시간이 지나가면 기회의 시간도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한국교회나 목회자들이 이 위기의 시간을 선용하지 못하면 기회도 그냥 놓쳐버리고 말 거라고 봅니다. 
: 저희 교회에서는 교역자 회의를 할 때마다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는 사역에 대해 논의하고 준비하는 시간들을 가졌는데요. 유튜브 영상 만들기나 편집,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강좌나 교육 등에 대한 준비 같은 거죠. 그리고 어르신들이나 환우들을 비롯해서 전화 심방을 많이 했어요. 저는 사순절이 겹쳐서 40일 동안 영상 새벽기도로 성도들 만나고, 온라인 교육용 영상을 만드는 시간들을 보냈어요. 앞으로는 목회에서도 이런 상황을 이른 바 ‘뉴 노멀’(새로운 기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옛날이 좋았어’ 하면서 전보다 더 대면 예배와 현장 모임을 강조하는 쪽과, 코로나 이후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고 이런 흐름에 맞춰서 복음을 전하려는 쪽으로 나뉘지 않을까 해요. 저는 평소처럼 주일 설교 잘 준비하면서 예배 영상도 그냥 단순하게 웹캠(컴퓨터 화상대화용 카메라) 사용하고 너무 잘 만들려고 하지 않았어요. 지나치게 잘 만들어서 예배 대체용이 되게 할 생각은 없었거든요. 이번의 코로나 사태가 신학적 설명이 필요한 사건은 맞는 것 같아요. 과거 분당우리교회 주일 예배 때, 본당에는 1천 명 들어가고, 나머지 3천 명은 몇 군데로 나뉘어 화상으로 예배드렸는데요. 그래서 본당 못 들어간 성도들 중에 온라인 예배 열어달라면서 집에서 예배드리면 되지 않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었거든요. 이게 성도 입장에서는 나름 합리적인 면이 있는데, 그럴 때 목회자로서는 그래도 공동체가 중요하고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 게 중요하다고 대답하거든요. 그게 맞다면 코로나19 사태가 아니라 더한 상황이었어도 교회로 모였어야죠. 그런데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게 했잖아요. 이제 같은 질문, 요청을 받으면 어떤 대답을 할 거냐는 거예요. 독감에 걸렸다거나 몸이 안 좋거나 하면 쉽게 온라인 예배를 떠올릴 텐데, 이제 그 답을 고민하고 찾아야 하는 거죠.

앞서 ‘복음’과 ‘종교’를 구분지어 얘기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주신다면요.  
: 히포의 어거스틴이 본질에는 일치로, 비본질에는 관용으로, 모든 일에는 사랑으로 하라고 했잖아요. 주일은 안식이면서 부활과 연결되어 있기에 본질이라고 봐요. 주일이니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건 맞는 거죠. 반면에 예배 형식은 비본질이기 때문에, 현장 예배든 온라인 예배든 저는 둘 다 열려 있어요. 그런데 지금 같은 팬데믹 시기에는 모이지 않는 게 사랑인 거죠. 다른 사람에게, 이웃에게 감염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현장에 모여서 예배드리지 않는 건 사랑의 실천인 거예요. 복음과 종교를 얘기하자면, 출발점이 다르다고 봐요. 종교는 나로부터 출발해서 하나님께 도달하려는 모든 과정과 노력을 말합니다. 내가 잘 하면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실 거라는 보상을 기대하는 측면이 강하게 있어요. 복음은 (물론 성경 전체가 복음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나는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이 친히 나를 택하시고 찾아오시고 구원하시고 자녀 삼아주셨다는 거죠. 그래서 감격과 감사, 은혜가 동력이 되는 거예요. 종교는 내가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종교화되면 상벌의 개념이 반드시 들어가게 됩니다. 제자훈련 받고 열심히 순장으로 섬기고 성경통독을 잘 하고 예배 출석 잘 하면 스스로 괜찮은 신자라고 여기지만, 중요한 건 왜 하는지 그 동기와 중심을 잘 성찰해야 하는 거죠. 신앙을 갖게 된 초기에는 은혜와 감사, 감격으로 봉사하고 헌금하고 예배에 열심을 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헌금하고 봉사하는 게 더 많은 자기 소유(돈)와 시간을 얻기 위해, 보상을 바라고 하는 종교행위가 되어버리는데, 이게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아서 끝없는 (악)순환이 되는 거예요. 중심과 동기를 성찰하기 힘들고 잘 안 보이니까 자꾸 목회자에게 답을 알려달라고, 가이드를 해달라고 합니다. 그게 없으면 모호하거든요. 그 가이드를 명확하게 하는 순간 곧바로 종교화로 가는데,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은혜로 시작하지만 결국 종교로 빠지게 되죠. 종교성의 기준에서는 교회 나오지 않고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젊은 사람들을 나무라고 탓하는 건 옳은 일이 되죠. 교회가 40일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면서 못 나오거나 자주 빠지는 성도들을 보고 왜 안 오느냐고 판단하고 정죄하기 시작하면 이게 바로 종교성의 폐해인 거죠. 
: 앞으로는 신앙적 기준이 달라져야 할 거라고 생각해요. 전통적으로는 얼만큼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고 교회봉사나 헌금을 열심히, 많이 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었는데, 그 결과 성도들의 신앙 수준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직분을 부여하는 식으로 작동해왔잖아요. 앞으로는 교회 바깥에서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끼쳤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거죠. 단적인 예지만, 저희 교회의 경우 임직을 할 때 교회 내 봉사나 섬김도 보지만 지역사회에서 이웃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를 보거든요. 학부모회에서 섬겼거나 통반장으로 일했는지, 자신이 속한 지역을 위해 어떤 봉사를 했는지를 보는 거죠. 
: 굉장히 파격적이네요.(웃음)
: 지금까지는 한국교회가 교회 내부의 힘을 결속하고 모으는 데만 집중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폐해가 불가피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는 기준 자체가 좀 바뀌어서 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성도들은 어떤 일로 기여할 수 있는지 고민하여 실천할 때 교회는 그 일들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봐요. 교회 재정도 마찬가지죠. 한 NGO에서 저희 교회에 강의하러 왔을 때, 성도들에게 ‘이번 주는 헌금을 덜하더라도 이 단체에 후원을 많이 해달라’고 얘기했어요. 지금까지는 교회에 헌금하여 교회가 외부로 흘려보내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교인들이 알아서 후원하고 도울 수 있도록 교회가 격려할 필요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언젠가 우리 교인들이 교회 바깥의 단체들에 후원하는 내역을 본 적이 있는데, 한 분은 정말 여러 곳을 후원하고 계시더라고요. 이제는 이런 교인들을 교회가 격려해야 한다는 거예요. 

   
▲ "성도들에게 ‘이번 주는 헌금을 덜하더라도 이 단체에 후원을 많이 해달라’고 얘기했어요. 지금까지는 교회에 헌금하여 교회가 외부로 흘려보내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교인들이 알아서 후원하고 도울 수 있도록 교회가 격려할 필요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언젠가 우리 교인들이 교회 바깥의 단체들에 후원하는 내역을 본 적이 있는데, 한 분은 정말 여러 곳을 후원하고 계시더라고요. 이제는 이런 교인들을 교회가 격려해야 한다는 거예요." (오준규 목사) ⓒ복음과상황 정민호

: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은혜를 받았으니까 헌신 봉사로 갚아야 한다’고 가르쳐왔잖아요. 최근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최종원 교수님 설교 <마리아가 돌아왔다>를 인상 깊게 들었는데요. 예수님이 오셨을 때 음식 준비하는 마르다와 곁에서 귀 기울이는 마리아 둘다 있어야 하는데, 한국교회에는 마르다가 너무 많다는 얘기였습니다. 코로나 이후 교회는 성도들이 정말 주일을 안식하며 보내는지 살펴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코로나 때문에 식당 봉사, 성가대, 주차 봉사 모든 게 멈췄는데 다시 돌아가서 주일마다 봉사할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얘기하는 성도들이 주변에 있다는 거죠. 코로나 터졌을 때 아마 많은 교회 봉사자들이 몇 년 만에 온 가족이 같이 예배하고 식사했을 거예요. 매주 아빠는 주차 봉사, 엄마는 식당 봉사, 아이들은 주일학교 마치고 혼자 게임하면서 보내는 게 기존 주일 풍경이잖아요. 그게 정말 주님이 바라시는 건가 싶어요. 지금까지 흩어지는 교회에 대해서 말은 많은데 정작 벤치마킹할 모델이 없어요. 기존에 성도들은 교회에서는 열심히 교회를 세우고 직장 가서는 또 열심히 회사를 세워야 하는 이중 부담이 있잖아요. 안타깝게도 지금까지는 성도들을 교회 안으로만 묶어둔 결과, 교회가 자아성취, 자아실현의 장이 되어버렸어요. 이제는 그들의 삶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을 줄여주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거죠. 

종교성을 강조한 결과 오히려 성도들을 교회 안에 갇히게 만들었다는 건 슬픈 아이러니입니다. 이를 깨뜨리고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 이번 코로나 사태 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지역 모임인 ‘구리등대’에서 연락이 왔어요. 대구를 위해 모금을 하면 좋겠는데 이 일을 목사님이 좀 주도해달라, 기부도 목사님이 아는 곳으로 해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구리등대 회원들은 비그리스도인들인데, 저희 교회와 지역사회를 위한 프로그램을 함께하고 있어서 연락을 해온 거예요. 일정 금액을 모아서 대구 지역의 보건소나 의료진을 돕기로 했는데, 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교회답다’와 ‘교회스럽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했어요. 코로나 상황에서 터진 신천지 문제는 ‘교회가 신천지와 뭐가 다르냐’는 질문을 한국교회에 던졌잖아요. 정말 속상하지만, 마치 신천지 집단처럼 반사회적이고 상식적이지 않으며 공공성, 공적 가치를 무시하는 이기적고 편협한 모습의 교회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말이 ‘교회스럽다’가 아닌가 해요. 백종원 씨가 나오는 TV프로그램을 우연히 봤는데, 그분이 어느 식당에 가서는 “이 동네는 정말 좋겠다. 이렇게 훌륭한 맛집이 있어서 이 동네 사람들은 행복하겠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 장면을 보면서, 교회가 이런 얘길 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간절해지더라고요. 현실은 동네 사람들이 교회가 없어지기를 바라죠. 제가 개척하기 전에 부교역자로 있었던 대형 교회만 해도, 지역 주민들이 저 교회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서슴없이 하셨거든요. 주일마다 주차 전쟁을 겪고, 차를 빼달라고 해도 빼지도 않는 등 교회와 교인들이 이기적으로 보였던 거죠. 그런 점에서 이번 코로나 사태는 한국교회가 얼마나 지역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는지, 이타적이고 공익을 생각하는 공동체로서 ‘교회답다’는 인정을 받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사랑하기 위해 교회 안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면, 앞서 박 목사님 얘기하신 대로, 사랑의 범위를 사회로 확장하여 더 널리 사랑하기 위해 흩어져서 예배를 드린다는 시각이 한국교회에 필요하다고 봐요. 사회가 교회의 존재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고 행복해해야 하잖아요. 교회가 교회다움을 회복할 때 이런 일이 가능하리라 보는데, ‘교회스럽다’는 말이 ‘교회답다’로 바뀌기까지는 교회가 지역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고 이 일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도권의 한 지역 교회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 그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목회가 더 이상 어려울 정도로 초토화되었거든요. 이게 결코 금세 회복되지 않을 텐데, 어떤 좋은 일을 하더라도 교회의 진의를 믿지 않게 된 거니까요. 

   
▲ "교회에서 거룩하게 행동하고 친절한 사람이 사회 생활에서는 사람을 막 대하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건 현대판 고르반이에요. 교회 안에서 잘 하니까 세상에서는 그럴 필요 없다는 식이죠. 어떤 분들은 세상과는 아예 담을 쌓은 채 교회에만 집중하는 지독한 율법주의자가 되기도 해요. 목회자들은 학생들이 어떻게 사는지, 자영업자가, 요식업 종사가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변호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잘 몰라요. 목회자가 일일이 모든 성도들의 삶을 가이드해줄 수 없기 때문에 복음을 제대로 가르치고 복음의 정신에 따라 살도록 격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박광리 목사) ⓒ복음과상황 정민호

: ‘교회스럽다’는 비아냥을 ‘교회답다’는 우호적인 말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제도 교회를 해체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맥락에서 저는 교회 개척하는 과정에서 복음을 재정의하는 작업을 우선적으로 시작했는데요. 기존에는 복음을 개인 영혼 구원, 나와 가족이 구원받고 잘 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저는 ‘복음은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으로 재정의한 거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자신이 인정받고 왕좌에 앉으려 하신 게 아니라 철저하게 온 인류를 잘 되게 하려고 오셔서 죽기까지 하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복음을 실천적 구호로 바꾸면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이고, 여기서 ‘남’은 이웃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마리아인이든 이방인이든 어떤 구분도 없이 모든 인간이 되는 것이죠. 그러고 나서 교회에서 40-50분 거리에 있는 수원시에 플랫폼 센터를 만들기로 한 거예요. 건물주이신 장로님이 저렴하게 내놓으신 건물을 임대해서 카페, 재소자 자녀들의 거처, 교회 공간 등으로 쓰기 위해 돈을 투자했어요. 그 일이 저희 교회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저는 좋았어요. 저희 교회나 성도들에게는 아무 혜택이 없고, 거리 때문에 쉽게 가볼 수도 없었지만, 복음은 우리와 무관한 이들도 잘 되게 하는 거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거든요. 어떤 성도님이 ‘왜 교회가 수익 사업을 하냐’고 하셔서 저는 수익 사업이 아니라 또 다른 교회를 세우는 일이라고, 건물에 십자가를 달면 교회고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라는 기존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 변화를 일으킬 수 없지 않겠냐고 말씀드렸죠. 그 플랫폼 센터 옆에 약국이 있는데, 공적 마스크를 구입하려는 분들이 카페 출입구를 막으면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릴 때 카페 전도사님이 접이식 의자를 깔아드렸어요. ‘카페 출입구 막지 말아주세요’ 한 게 아니라, 오히려 다리 아픈 어르신들이 편하게 앉으실 수 있게 말이죠. 그 일 있고 나서 카페 매출이 늘어난 모양이에요. 동네에 좋은 소문이 났던 거죠. 효율성을 추구하는 교회는 시간에 급급해서 쫓기게 되어 있어요. 강요하거나 무례한 기독교가 되지 않으려면, 시간을 들여서 기다리고 배려할 필요가 있는 거죠. 교회에서 거룩하게 행동하고 친절한 사람이 사회 생활에서는 사람을 막 대하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건 현대판 고르반이에요. 교회 안에서 잘 하니까 세상에서는 그럴 필요 없다는 식이죠. 어떤 분들은 세상과는 아예 담을 쌓은 채 교회에만 집중하는 지독한 율법주의자가 되기도 해요. 목회자들은 학생들이 어떻게 사는지, 자영업자가, 요식업 종사가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변호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잘 몰라요. 목회자가 일일이 모든 성도들의 삶을 가이드해줄 수 없기 때문에 복음을 제대로 가르치고 복음의 정신에 따라 살도록 격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교회 예배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현장 예배 시에는 방역 수칙을 준수해달라고 정부가 권고한 일을 두고 종교 탄압이라고 얘기하는 목회자들이 있었는데요.
: 세상 한복판에 있는 교회가 세상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종교 탄압이라고 하는 말 자체가 정치적인 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달리 생각해보면, 교회가 먼저 나서서 정부 권고 이전에 개별 교단 차원에서 선제적 대응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불교와 가톨릭은 빠르게 먼저 나서서 법회와 미사를 자체적으로 중단했잖아요. 그 때문인지 두 종교는 최근 선호도 조사도 높게 나왔더라고요. 그동안 개신교는 좁고 편협한 시각, 우리 위주의 우월한 의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대응해오지 않았나, 그런 게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발현되고 드러난 것 아닌지 안타까워요. 
: 종교 탄압했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죠. 제가 사는 지역에서도 목회자 모임이 있었는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교회 목사님이 같은 맥락의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이 얘기 들으면서 예전에 국회의원 특권 얘기가 생각나더라고요.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자고 하니까, 우리가 무슨 특권이 있냐고 반문한 의원이 있었잖아요. 특권을 특권으로 여기지 못하는 것 자체가 이미 기득권이라는 의미인데, 교회가 오래 전부터 그렇게 되어버린 게 아닌지 씁쓸해요. 
: 오히려 종교 탄압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말을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게 편향된 관점은 다른 목회자들이나 교인들 생각과는 거리가 먼, 극소수 목회자의 생각일 뿐이라고 봐요. 

코로나 이후 목회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지, 방향 전환에 대한 고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코로나 이후’와 관련하여 한 달 전쯤 들은 옥성득 교수님 강의 내용이 인상적이었어요. 교회, 예배, 구원, 영성 4가지로 풀어주셨는데, 먼저 교회는 장소 중심에서 시간 중심으로 옮겨갈 거라는 거예요. 예전에는 장소에 나와야 헌신된 사람으로 평가받았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 열심히 나오는 거 자체를 헌신된 신앙으로 봤고, “교회에서 장로 되는 거 쉬워. 예배 때마다 맨 앞자리 앉고, 모든 훈련에 안 빠지면 돼” 같은 비아냥대는 말도 나온 거고요. 세상에서는 어떻게 사는지 증명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장소가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는데, 시간 공유를 통해 어떻게 성도들을 양육할지가 중요해졌다는 거죠. 다음으로, 예배는 많이 모이게 하는 ‘집회와 흥행’ 중심에서 내면의 영성으로 평가가 달라져야 한다고 얘기해요. 안식하고 있는지, 부활의 능력을 누리는지에 집중하여, 프로그램보다는 성도들 각자가 정말 주일을 제대로 누리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거죠. 셋째로 구원과 관련해서는, 개인 구원을 넘어 사회적 구원으로 가야 한다는 거예요. 공적 가치에 관심을 가지고 이웃의 개념을 넓혀야 한다는 거죠. 다시 말해 ‘좋은 성도는 반드시 좋은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예요. 마지막으로 영성 측면에서는 행동주의를 죽여야 하는데, 이건 자기성취보다는 자기부인에 집중하라는 거죠. 이런 점들이 코로나 이후 우리가 집중할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 코로나 사태를 통해 제대로 성찰하지 않으면 교회가 섬처럼 고립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요. 이 거대한 재난은 힘없는 자들을 더 힘없게 만들고, 아픈 자들을 더 아프게 하고, 소외된 자들을 더 소외시킬 가능성을 크게 높였잖아요. 세상의 탄식이 늘어날수록 교회의 존재 이유는 더 커진다고 생각하는데,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교회가 현장 예배를 중단하고 온라인 예배로 전환한 그 정신,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오히려 교회로 더 열심히 모이고 더 똘똘 뭉치는 내부 결속 강화는 최악의 상황 아닌가 싶어요. 오히려 교회가 사회와 이웃의 고통을 책임지는 역할을 더 키우고 더 매진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해외 언론들이 한국의 코로나 방역을 높게 평가하면서 투명, 소통, 협력 이 세 가지를 꼽았는데, 저는 이게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에 던지는 중요한 세 가지 방향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회가 재정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얼마나 투명한지, 투명하지 않으면 소통할 수 없고, 소통이 활발히 이뤄져야 자발적인 협력이 일어나잖아요. 코로나 이후 교회마다 교인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정부가 투명성을 바탕으로 소통함으로써 국민의 자발적 협력을 얻어낸 과정을 교회가 배우고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장소 중심에서 시간 중심으로 교회의 패러다임이 바뀐다고 할 때, 계속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신앙생활할 수 있지 않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 그 점에서는 신학적 안전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흩어지는 교회를 말한다고 해서 교회를 없애거나 부정하는 게 아니듯이, 시간 중심으로 간다고 해서 교회 기능이나 공간의 의미가 상실되지는 않는다고 보거든요. 중요한 건 모이든 흩어지든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동시에, 복음의 정신에 입각해서 해야 한다는 것이죠. 예수님도 헤롯 성전을 무너뜨리고 참된 성전을 지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성전의 유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동기, 마음으로 성전을 짓느냐, 찾느냐의 문제라고 봐요. 이른바 가나안 성도들은 이미 온라인 예배를 드려왔잖아요. 유튜브를 통해 설교를 듣고 혼자 예배드리는 방식으로요. 그들을 두고 가짜 교인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 다만, 가나안 성도에게 신학적으로 결여된 점이 있다면 ‘공동체’ 아닌가 해요. 사랑은 혼자 할 수 없고, 삼위일체적 영성도 공동체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혼자 하나님과 관계가 좋다고 해서 신앙생활이 완성될 수는 없는 거죠. 
: 제가 볼 때 한국교회는 예배의 이웃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앞서 박 목사님 얘기대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예배 형식은 본질이 아닌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우리가 주일에 드리는 예배 안에 이웃이 있느냐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교회의 예배는 이미 오래 전부터 혐오 모임이 되어버렸어요. 예배를 드리면 드릴수록 이슬람, 동성애, 사회 빈곤층에 대해서 혐오가 강화되고, 그렇게 수없이 드려온 예배를 통해 이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거든요.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절대명령을 우리의 예배를 통해 구현한 적이 있는가, 이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자기 의와 혐오를 키우는 예배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거예요. 이제는 한국교회가 온라인 예배도 충분히 대안이 되는데 굳이 예배당 가서 예배드려야 하는 이유에 응답해야 하고, 온라인 예배에서 누릴 수 없는 것을 교회가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죠. 단지 함께 모여서 밥 먹고 우리끼리 교제하고 좋은 시간 보내는 것으로는 이제 충분치 않다는 거예요.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예배 안에 이웃이 빠져 있고 ‘우리(교회)’만 들어 있으니까 지역 감염이나 집단 감염에 대한 사회적인 우려를 무시하고 현장 예배를 강행하고 밀어붙이는 거잖아요. 교회 안에, 예배 안에 이웃의 자리가 있었다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앞으로는 예배 안에 어떻게 이웃이 자리 잡게 할지, 온라인 예배가 줄 수 없는 것을 교회가 줄 수 있을지가 과제가 아닌가 합니다. 

   
▲ "중요한 건 우리가 주일에 드리는 예배 안에 이웃이 있느냐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교회의 예배는 이미 오래 전부터 혐오 모임이 되어버렸어요. 예배를 드리면 드릴수록 이슬람, 동성애, 사회 빈곤층에 대해서 혐오가 강화되고, 그렇게 수없이 드려온 예배를 통해 이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거든요.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절대명령을 우리의 예배를 통해 구현한 적이 있는가, 이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자기 의와 혐오를 키우는 예배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거예요. 이제는 한국교회가 온라인 예배도 충분히 대안이 되는데 굳이 예배당 가서 예배드려야 하는 이유에 응답해야 하고, 온라인 예배에서 누릴 수 없는 것을 교회가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죠. 단지 함께 모여서 밥 먹고 우리끼리 교제하고 좋은 시간 보내는 것으로는 이제 충분치 않다는 거예요." (오준규 목사) ⓒ복음과상황 정민호

: 복음의 메시지가 이웃을 잘되게 하라는 것인데, 예배 안에 이웃이 없다는 건 결국 혼자 은혜 먹기만 좋아하고 나누지 않아서 모두 영적 비만이 된 게 아닌가 싶어요. 그건 복음적 예배라고 할 수 없죠.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이웃을 향한 섬김이 결국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봐요. 
: 초대교회 식탁의 자리는 누구든 올 수 있었잖아요.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고요. 오늘날 예배의 자리, 교회 식탁의 자리에는 누구든지 올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가 예배의 자리, 식탁의 자리에 잃어버린 이웃을 회복하는 일이 교회다움을 회복하는 일이고 복음대로 살아가는 교회 본질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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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옥명호 편집장 lewisist@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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