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호 특집 아파트의 영을 대적하라] 희년의 주택법과 만민의 주거권
첫째, ‘성 안의 도시 주택법’이다(레25:29~30). 사고판 지 1년 안에 판 자가 무르지(되사지) 않으면, 산 자의 영원한 소유로 확정된다. 이 규정에 대한 해석 중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나그네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의 정착을 장려하고 그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나그네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토지를 사더라도 도래하는 다음 희년까지만 한시적으로 살 수 있었고, 또 희년 전에 언제든지 판 자의 가까운 친족이나 판 자 자신이 토지 무르기 계약을 요구하면 반드시 토지를 물러야 했기 때문에, 성 밖의 넓은 토지가 필요한 농경과 목축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상업과 수공업 등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한 주택은 상업과 수공업에 대한 수요가 큰, 성 안의 도시 주택이었을 것이다. 이 경우 그들의 도시 주택은 주거 공간이면서 동시에 상업과 수공업을 할 수 있는 노동의 공간, 곧 일터가 된다. 그런데 만약 이 도시 주택마저도 토지법의 규정과 마찬가지로 무르기법과 희년의 회복법이 적용되어, 도래하는 다음 희년까지만 주택을 살 수 있고, 또 희년 전에 언제든지 무르기 계약을 요구받을 때 물러 주어야 한다면, 그들의 정착과 주거는 크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그네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의 정착을 장려하고 그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성 안의 도시 주택은 무를 수 있는 유효기간을 오직 1년으로 제한하고, 1년 안에 무르지 못하면 희년이 오더라도 판 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영원히 산 자의 소유로 확정한 것이다.
둘째, ‘성 밖의 농촌 주택법’과 ‘레위인 주택법’이다(레25:31~33). 토지법과 똑같은데, 주택을 도래하는 다음 희년까지만 한시적으로 사고 팔 수 있고, 희년이 오기 전에 언제든지 무르기가 가능하다. 이것은 성 밖의 농촌 토지를 평균 분배받은 이스라엘 12지파와 이 토지 평균 분배에서 제외된 레위 지파, 합하면 모든 지파, 곧 모든 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이다.
셋째, ‘극빈층 주거보장법’이다(레25:35).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극빈층을 홈리스 상태에 내버려 두지 말고 맞아들여 임대주택을 제공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
요컨대 희년의 주택법은 나그네들과 이방인 개종자, 이스라엘 12지파와 레위 지파, 극빈층 등 한마디로 만민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희년의 주택법이 보장하는 주거권은 세계적인 주요 인권 선언들이 보장하는 인권이자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기도 하다. 곧 주거권은 ‘세계 인권 선언’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ICESCR)’, 그리고 ‘세계 주거 회의’(HABITAT)에서 채택된 ‘벤쿠버 선언’과 ‘하비타트 의제’ 등을 통해 이미 기본적 인권으로 선언된 바 있다. 특히 ‘유엔 사회권 규약 위원회’는 ‘일반 논평 4’의 제목을 바로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로 달았으며, 1995년, 한국 정부가 제출한 1차 보고서에 대해 “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주거권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다”고 하면서, “주거 대책 없는 퇴거를 중단할 것을 권고한다”는 최종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2001년, 한국 정부가 제출한 2차 보고서에 대해서도, “위원회는 민간 개발 사업에 의한 강제퇴거의 피해자들에게도 보상과 임시 주거 시설 등의 보호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권고한다”는 최종견해를 밝혔다. 또한 우리 헌법도 주거권을 지지하고 있다. 헌법 제35조 제3항에 의하면,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모든 국민의 쾌적한 주거생활권이 바로 주거권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주거권이 기본적 인권이라는 세계적인 주요 선언들을 받아들여, 유엔의 권고를 실행하고 헌법을 준수하여, 모든 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주거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개발 지역 주민(철거민)을 위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첫째, 개발악법인 택지개발촉진법을 폐지해야 한다. 부한 자를 더 부하게 하고 가난한 자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이런 악법은 당장 폐기해야 한다. 21세기는 개발이 아니라 주거권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법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아무리 행정대집행과 명도소송에 의한 ‘합법적’ 강제 철거라 하더라도,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강제 철거를 위한 사전 조치를 반드시 법에 명시하여 제한해야 한다. 사람이 살고 있는 생가에 대한 강제 철거 행위는 금지해야 하고, 강제 철거 과정에서 철거 용역반에 의한 폭력행위를 엄단해야 한다.
셋째, 모든 개발 사업에 의해 퇴거를 당하는 모든 세대에 대한 적절한 주거대책을 법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현재 도시 환경 정비 사업 지구와 민간 개발 사업 지구의 세입자와 미등재 무허가 주택 가옥주에 대해서는 주거대책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공공 개발 사업뿐만 아니라 민간 개발 사업에서도, 개발이익의 일정 비율을 환수하여 공공임대주택과 가이주단지 등을 건립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일본은 ‘도시 재생 주택 정비 사업’을 통해 공공 개발 사업뿐만 아니라 민간 개발 사업에서도 저소득 주민들에게 공공 임대 주택과 같은 도시 재생 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넷째, 거주민에 대한 임시 주거 대책 제공을 법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이주단지의 조성, 순환 정비 방식의 활성화, 공사 기간 동안 인근 임대주택 입주 세대에 대한 정기 저리 보증금 융자 등이 시행되어야 한다.
다섯째, 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를 서민 주거 복지 차원에서 인하해야 하며, 보증금에 대해 장기 저리 융자를 해야 하고, 상대적으로 부담이 큰 보증부 월세보다는 전세 방식으로 최대한 전환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 입주권을 보장받은 세입자가 이를 포기하고 대신 주거 이전비를 받아 떠나는 경우가 많은 중요한 이유가 바로 공공임대주택의 보증금과 월세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점을 정부와 국회는 직시해야 한다.
여섯째, 주민의 단순한 주거문제 해결을 넘어서 저소득층 주민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력 향상 등을 위한 종합적인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영국의 ‘도시재생사업’(Urban Regeneration)이 좋은 예이다. 우리도 이런 선진적인 종합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주거권은 인권이다. 또한 주거권은 우리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이다. 국가는 모든 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정부와 국회는 모든 국민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개혁 입법과 조치들을 즉시 실행해야 한다. 만민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희년의 주택법의 원칙이 성령 하나님을 좇아 행하려는 기독인과 교회의 순종과 기도를 통하여 우리 사회에 구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창수 (전국철거민협의회 정책위원, 한미FTA기독교공동대책위원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