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호 드라마비평]우리 + 그들이 사는 세상

2009-01-21     복음과상황

2,30대 도시 남녀를 둘러싼 일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사진제공 YEG)
얼마 전 끝난 <그들이 사는 세상>(이하 그사세)이란 드라마가 있다. 2,30대 도시 남녀를 둘러싼 일과 사랑 얘기다. 한마디로 요즘 애들 얘긴데, 인물간의 구도는 대략 이렇다. 지기 싫어하고, 고집 세고, 욕심 많은 방송국 드라마 감독 준영―송혜교―이 있고, 그의 선배 드라마 감독 지오―현빈―가 있다. 방송국 선후배사이인 둘은 여느 드라마에서처럼 어찌 어찌 하다 보니 사귀고,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서로의 상황에 얽힌다.
 
사실 30대초의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 매일 벌어지는 이슈들을 챙겨 담아 하루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말하고 싶다. 이런 현상은 크리스천, 非(비)크리스천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도시인으로,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구조 자체가 그렇다는 뜻이다. 지금 주변을 둘러보자. 누구 하나 안 바쁜 사람이 없다(백수도 다 나름대로 분주하다!). 그러다 보니 가만히 앉아 TV를 챙겨볼 만한 여유는 없는 편이다(사실 마음의 여유가 없다). 결국 스치듯 얼핏 보게 되는 게 전부인데, 한 순간 쾌감을 안겨주며 휘발되는 예능프로그램들은 그렇다 해도 매회 스토리가 이어지는 드라마에 이르면 어지간해선 연속되는 충성심을 보이기는 어렵다.

상처와 결여의 가정이 낳은 준영과 지오
 
‘그사세’도 그런 띄엄띄엄 관람 드라마 대상 중 하나다. 그런데 그 띄엄띄엄 속에서 훑어 지나가는 드라마 속 저들이 사는 삶이 제법 무겁게 다가온다. 그들은 사랑 받기 원하고, 친밀함을 원한다. 또 이해받기 원하고 인정받기 원한다. 성공에 대한 욕망 뒤에는 인정받고 싶은 깊은 욕구가 숨어 있고, 사랑과 연애의 그림자엔 친밀함에 대한, 이해와 용납 받기 원함에 대한 갈증이 있다. 그런데 드라마 속 캐릭터들에겐 지금 우리 사회가 ‘정상적’이라 제시하고 인정하는 관계의 유형―결혼과 부부, 가정과 부모 자녀―이 잘 안 보인다. 도리어 ‘상식적’인 관계가 상처와 결여의 근원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여주인공 준영은 ‘당연하게도’ 이혼 가정의 자녀이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어릴 때부터 대놓고 맞바람을 피워댄다. 중학생 시절 준영은 대낮에 자기 집에서 같은 반 친구 아버지가 걸어 나오는 장면을 목격한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샤워를 끝낸 모습으로 차를 마시고 있고…. 어린 준영은 저런 엄마랑 살고 있는 아빠가 불쌍하다 생각했단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는 더 어리고 예쁜 여자랑 살림을 차리겠다고 집을 나갔다. (사실 이쯤 되면 잘잘못을 따지는 게 별 의미가 없어진다. 빨리 헤어져서 각자 갈 길을 가 주시는 게 서로를 위해 좋다.) 그 과정에서 어린 준영은 일찌감치 부모 인생과 자신의 인생은 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일까, 도무지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고집불통이다. 그 부모는 그렇게 헤어진 뒤로 여전히 그렇게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다. 미우나 고우나 여전히 딸이고 엄마고 아빠다. 하지만 준영은 그들에게 아무런 위로도 기대하지 않는다. 도리어 엄마는 지 아비랑 똑같은 년이라며 딸에게 내뱉는 독한 말들로 자기연민을 삼지만.

차라리 저 부부와 아이에게 결혼과 가정이라는 제도가 없었다면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 드라마 속 캐릭터들에겐 지금 우리 사회가‘정상적’이라 제시하고 인정하는 관계의 유형—결혼과 부부, 가정과 부모 자녀—이 잘 안 보인다. 도리어‘상식적’인 관계가 상처와 결여의 근원으로 그려지고 있다. (KBS 홈페이지 갈무리)
외롭고 피곤한, 인정하기 싫은 현실의 캐릭터들

남자주인공 지오네 집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시골 출신 지오네 집은 완고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고 무능한 아버지와 ‘당연히’ 그를 사랑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 고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어머니가 있다. 똑똑한 지오는 그 징글징글한 집구석을 도망칠 궁리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소원을 이뤄 원하는 방송국에 취직하여 서울생활 중이다. 하지만, 지오만이 집안에서 제대로 된 직장 갖고 돈 버는 유일한 캐릭터이기에 병든 어머니와 무능한 아버지를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있다. 미우나 고우나 아빠고 엄마인 셈이다. 철없는 지오네 아버지는 늘 사고뭉치다. 이래저래 피곤하고 어디 한군데서라도 위로 받고 싶은 남자가 바로 지오다.

이 남자가 결혼과 가정이라는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이루면 행복해지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그들을 둘러싼 주변인들의 관계도 피곤하긴 매한가지다. 방송국 드라마 국장 민철과 중견 여배우 윤영은 오랫동안 서로에 대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드러내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서로를 보듬기 시작했다(물론 그들도 부부는 아니다). 저들은 사실 15년 전 드라마 PD와 여배우로 만나 뜨겁게 사랑했지만 여자의 배신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사이. 성공에 집착하는 이기적인 젊은 PD 손규호에겐 당연히 친구가 없다. 그 역시 외롭다. 극중의 모든 인물이 다 피곤하고 다 힘들고 다 위로 받고 싶어한다. 우리사회가 정상적이라 믿고 있는 관계들은 저들에게 아무런 위로를 주지 못한다. ‘불륜’이란 단어가 그 정당성을 잃어버리는 순간들이다. 이 스토리가 과연 정상적인 것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에 앞서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사실 그대로를 너무나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음을 아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 크리스천에게도 같은 질문이 다가온다. 과연 우리사회가 옳다 인정하는 관계 형태가 가장 옳고, 가장 적절한 것일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진정 행복하게 하는 장치와 구조들일까? 혈연을 중심으로 하여, 일부일처제의 결혼만을 인정하는 현재의 제도들은 혹시 여전히 농경 사회적이며 지나치게 사회 편의적인 관습은 아닐까? 우리는 이미 전세계로 범위가 확장된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따라서 혈연을 통한 농업 생산력의 확보가 불필요하고, 경제 사정으로 일 년에 단 몇 차례 밖에는 만나지 못하는 ‘가족’도 아주 흔하다. 평균수명은 연장되고 경제활동에서 남녀의 역할과 기회는 경계와 구분이 모호해져만 간다. 삶을 위한 ‘필요’에 의해 지금과 같은 결혼과 가정이라는 관계가 유지될 이유는 이전 사회에 비해 매우 낮아지고 있는 셈이다. 서로를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결혼하지 않고, ‘굳이’ 가정이란 형태를 빌리지 않더라도 가능한 것 아닐까?(사랑하니깐 결혼하는 것이지, 결혼했으니 사랑하는 건 아니니까.) 과연 성경과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현대사회적인 새로운 관계의 모델은 모색되기 어려운 것일까?

전통적 관계에 딴지 거는 넓고 깊은 숨은 생각
 
예술은 언제나 당대의 불안과 충족되지 않은 욕망을 한발 먼저 대변해 왔다. 최근 1~2년 새 가장 주목 받았고, 많은 창작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이라는 영화가 있다. 메가 히트한 소설에 이어 영화로 제작된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발칙한 작품도 있다.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을 주장하진 않지만 전통적인 가족 간의 역할과 관계에 대해 꼬집어내며 크게 히트한 <엄마가 뿔났다>라는 드라마도 있다. 이들은 결국 우리사회의 수면위로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욕망들 속에 분명히 결혼과 가족으로 대변되는 전통적 관계의 형태에 대한 불만족이 일반의 생각보다 매우 깊고 넓게 숨어 있음을 읽어내야 하는 증거일 것이다.
 
이제 크리스천으로서 매우 신중하게 고민할 것이 있다. 결혼과 가족으로 대표되는 관계의 형태만을 옳다 말하고, 깨어진 관계에 방황하는 이들을 불쌍하게만 바라보기에는 문제가 결코 간단치 않다. 존경하는 담임목사님의 갑작스런 이혼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한국교회가 내놓을 답안은 아직 너무나도 빈약하다.
 
결국 ‘그들이 사는 세상’은 지금 ‘우리도’ 살고 있는 세상이니까.

김현중 (씨너스 사업전략기획자) jkworks@gmail.com

필자소개 대중문화 현상과 콘텐츠 속에 숨어있는 동시대인의 삶과 욕망에 언제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크리스천 1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