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호 청년-기독청년아카데미] 공동체지도력훈련원

공동체 목회와 학습으로 다양한 소공동체 지도력 세우다

2009-03-26     김준열

남들은 경력 세우려고 눈코 뜰 새 없이 뭔가를 경험하고 있을 때, 공동체지도력훈련(공지훈)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다. 성적이나 자격증과는 상관이 없다. 기존 사회 체제에는 유익한 요소가 없다. 새로운 삶을 촉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뿐! 공지훈에 접속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은사와 소명을 찾고 싶은 바람도 있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사역 현장에서 ‘상호 목회하는 관계’를 구현하는 지도력를 훈련하고 싶은 이유도 있다. 공부 내용을 보고 우리시대 역사·사상·문명의 흐름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하나님나라를 구체화하는 대안적 생활양식을 어떻게 창출할 건지 고민하며 찾아오는 이도 있다. 공지훈을 구성하는 주체들도 각양각색이다. 학벌·나이·성·전공과 무관하다. 오로지 자신의 신체를 바꾸며 우상을 분별하여 하나님나라의 몸된 공동체를 세우려는 열정만 있으면 무사 입학이다. 공지훈이라는 매트릭스에 접속하는 순간, 오래된 미래가 성큼 도래할지도 모른다.

공지훈 생활: 밥 먹고 말씀 묵상하고 세미나하고 엠티하기

정규 강좌는 8주간 강의를 들으면 된다. 익명으로 있어도 티 나지 않는다. 공지훈은 48주를 만나야 한다. 얼굴을 피할 길이 없다. 공지훈은 유목적으로 생성하는 공간이다. 일상은 떨어져 있지만 공지훈 과제에 집중해야 약속과 의무를 지킬 수 있다. 참여하는 구성원 모두 같은 말씀을 묵상한다.(현재 ‘요한복음’을 묵상하고 있다.) 각자 은사와 소명에 비추어 말씀을 묵상하니 다양한 의미와 방향을 끄집어낼 수 있다. 이를 게시판에 올린다. 공지훈 오프라인 모임에서는 자발적으로 말씀 묵상을 나눈다. 다음은 밥상공동체로 이어진다. 각자가 도시락을 준비한다. 시간이 지나면 밥상도 달라진다. 인스턴트 식품에서 직접 요리한 것으로 바꾸는 사람이 출현한다. 배운 것이 밥상 즉 신체 변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밥상은 성찬을 일상화하는 것이다. 나눔과 공유, 증여의 가치를 밥상으로 구현한다. 주제 세미나로 이어진다. <통전적 선교>(르네 빠딜라), <신학의 역사>(알래스터 맥그라스), <철학과 굴뚝 청소부>(이진경), <사건의 철학>(이정우), <현대신학의 패러다임>(도르트 죌레), <신도의 공동생활>(본회퍼) 등을 함께 읽고 나눈다. 자기를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배움 앞에 기존 체제(굳은 사고든 습속이든)를 부정할 줄 아는 용기와 그 과정을 견디는 인내와 지성을 닦는 노력은 새로운 삶-운동을 재구성하는 요소다. 중간에 돌아온 길을 정리하고 다짐을 갱신하는 ‘공동체 영성수련의 밤’을 두세 차례 보낸다.

이렇게 한다고 일 년 만에 사람이 바뀔까. 바뀐다. 공동체적으로 바뀐다. 매번 말씀 묵상과 세미나에서 나오는 이야기 강도가 세다. 누구 말마따나 “허위를 들쑤신다.” 머리가, 관념이 바뀐다기보다 먼저 신체가 바뀐다. 매주 말씀 묵상 올리기(글쓰기), 발제하기, 도시락 싸기, 말씀 묵상 나누기 등등. 자발적으로 몸을 메지 않으면 도중에 낙오한다. 함께 공부하는 지체가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어떤 고민과 과제가 있는지 눈여겨보는 것도 훈련의 하나다. 신체가 바뀌니 관계가 바뀌고, 관계가 바뀌니 관점이 바뀐다. 시나브로 묵상글이나 생활나눔 글에도 변화가 생긴다. 이제 예전 기질을 지닌 주체가 아니다. 굳은 감각으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낄 수 있다. 세심한 감각이 깨어난다. 참된 만남이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책임 있는 관계를 맺는 바탕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말씀’(로고스)이 ‘육신’(사르크스)이 되는 성육신한 사랑을 곰비임비 경험한다.

공동체·지도력 용어에 관한 작은 오해

‘공동체지도력훈련원’이라고 하면 ‘수도원’ 혹은 군 입대하는 ‘훈련원’을 연상하기 쉽다. ‘공동체’와 ‘지도력’이란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공동체를 억압 내지는 구속으로, 지도력을 권력으로 대치하여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동체 지도력’이란 시대 우상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은사대로 역할을 분담하고 생성하는 관계 깊은 삶을 창출해가는 능력이기도 하다. 자신보다 더 큰 집합적 신체를 이루는 특이한 경험이다. 서로가 만든 약속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책임 있는 관계를 맺는 기준이 된다. 그 안에서 구성원들은 상호주체성을 경험한다. 공동체 지도력은 미세한 가치들을 존중하는 것으로,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현재 공지훈을 수료한 사람은 1기 23명, 2기 22명이다. 3기 27명이 공부하고 있다. 학연, 지연, 가족만이 생존의 사슬이 되는 문명을 살고 있다. 삶의 가치로 만나는 관계가 바로 하나님나라일 테지만 체념하기가 쉽다. 왠지 어려울 것 같으니까. 공지훈은 이런 문턱을 넘어 새로운 삶의 배치를 가능하게 하는 기초공동체를 생성하는 데 도움을 주려 한다. 1기 중에는 공부한 바대로 교회로 들어가 간사로 활동하며 준거공동체를 만들고자 한 이, 청년 교육에 부름받아 나선 이, 신학생·목회자 운동에 투신한 이, 기독청년아카데미 자율모임 중 ‘꿈꾸는일터’에 참여하는 이 등이 있다. 2기는 교회를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꿈꾸는 교회를 생성하려는 한 부부가 있으며, 의기투합해 공정무역회사인 ‘얼굴있는거래’를 만든 거침없는 세 명의 청년이 있다. 대안적인 의료를 꿈꾸는 한의사 두 명이 공부하는 모임을 결성했고 그 중 한명은 상계동에서 의료생협을 하고 있다.

기초공동체 생성과 연대를 통한 하나님나라운동

3기는 과정 중에 있으니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 봤다. 이름하여 ‘공지훈 작은 대담’. 3월 9일, 혜화동의 아지트 같은 카페에 모였다. ‘작은 대담’이지만 3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전문을 실을 수 없어 핵심만 싣는다.

진행-김준열(활동가/공지훈 1기),
패널-고영준(청소년 교육자/공지훈 2기), 김지명(SFC 간사/공지훈 3기), 김지은(출판인/공지훈 3기)

어떻게 공동체지도력훈련원(이하 공지훈)을 알게 되었나. 신청 동기나 계기는?

지명: 공지훈에서 공부한 직장 동료에게 공지훈이 어떤 곳인지 들었다. 2006년도에 경희대에서 공동체를 모색했다. 그러나 와해되었다. 2007년 사역과 경희대 NGO 대학원을 다니면서 피폐해진 상황이기도 했다. 공동체로 사는 것은 명확한 지향이었다. 다음 기수에라도 공지훈을 하려고 했다.

지은: 거품 때문이다. 나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한다. 나는 텍스트(책)로 사람을 만난다. 지적 허영심이 컸다. 살과 살이 부딪히면서 사건을 경험하고 관계 맺고 싶었다. 그럼에도 첫 번째 동기는 순종이다. 나는 하나님 없이 세속 생활에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공지훈 지체들은 어려도 신앙 안에서 시행착오를 겪은 점이 달랐다. 그들을 신앙 스승이라 부른다. 하나님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는 곳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공부 과정… 어떤 배움 혹은 깨달음이 있는지

영준: 신학의 역사, 한국근현대사, 한국 교회의 역사, 철학(사건의 철학) 등을 읽었다. 영적인 것들에만 국한되어 있다가 다른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성서를 같이 읽으면서 관계 맺는 방식이 달라지고 깊어지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을 깊게 살피지 못했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에게 어떤 고민과 과제가 있는지 관심이 없었다. 책임 있게 관계 맺는 길을 배우는 과정이다.

지은: 나는 원래 관계 중심적인 사람이다. 공지훈에서 공부하면서 회복하는 지점이 있다. 공지훈을 함께 가르치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 형식은 같았으나 내용은 달랐다. 근본 바탕에 차이가 있다. 무대 밖에서 무대 위로 올라왔다고 해야 할까. 체질 개선이 필요했다. 때 낀 부분이 있었다. 대안적인 삶을 추구했지만 중심 없이 이분법적(옳고 그름)으로 사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안을 추구하는 사람들, 자기 의로도 살 수 있지 않나. 나에게는 그 중심이 ‘하나님’이었다. 나는 약하고 죄성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수렴되었다. 공지훈은 내 의(내 때)를 깎는 과정이다.

공부는 재밌다. 그런데 예전하고 책 읽을 때가 다르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은 대게 삶이 건강하지 않다. 나는 건강한 삶을 살고 싶었다. 예전에 철학사를 개념 중심으로 읽었다. 공지훈하면서 그들 고민이 내 고민이 되더라. 다른 느낌이다. 질문은 여전하고 답을 찾아가고 있다. 철학이든 역사든 가깝게 느껴졌다. 내(존재)가 서양철학의 잔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공지훈 첫날, 일반적인 세속 체계와 다른 말씀이었다. 나는 형식과 내용이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지훈은 달랐다. 사람들을 구조적으로, 도식적으로 보고 있었다. 내 사고 체계가 깨지는 ‘좋은 불편함’이었다. 역사도 마찬가지였다. 흐름과 맥락을 보았지, 사람의 질곡은 들여다보지 못했다.

대안을 만드는 사람들을 눈여겨보고 살펴봤지만 그것은 나만의 유익이었을 수 있다. 개인적·개체적인 유익이었던 셈. 과정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기존 습속을 직면해야 하는 불편한 과정이다.

지명: 살다보니 ‘공동체’밖에 대안이 없었다. 막연한 생각이 지배했다. 40대에 가서나 공동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동체를 모색하고 논의했던 지난 2~3년보다 공지훈을 하는 6개월이 공동체를 구체화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자극을 주었다. 실상 나는 오랫동안 공동체에 대해 얄팍한 고민만 해왔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누구와 공동체로 살 것이냐가 핵심이었는데, 나부터 가르친 대로 살아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아마 공지훈을 듣지 않았다면 결혼을 들먹거리며 공동체를 미뤘을 게다.(웃음)

지은: 공지훈은 매시간 허위를 들쑤신다.

지명: 공지훈에서 ‘상호 목회’, ‘상호 침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나는 이런 용어를 몰랐을 때 나는 ‘간섭’이라고 불렀다. 대학에서 만나는 제자들에게 간섭해야 관계 맺고 말씀대로 살도록 가르칠 수 있으니까. 정작 가르치는 것과 실제 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몸으로 잘 느끼지 못했다. 문제 제기를 공유하는 수위, 공동체로 함께하는 수위가 달라졌다. 대학 안에서 공동체를 생성할 것이냐, 이미 내가 지향하는 가치대로 살고 있는 공동체로 갈 것이냐는 갈림길에 있었다. 이런 고민을 하지만 실제는 아니었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초점이었다. 인간적인 미련, 정 때문이었다. 공동체, 하나님나라운동, 비전에 맞춰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결단을 늦출 수 없었다.

지은: 공지훈에는 사람을 진중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있다. 다른 사람에 간섭할 때, 세상 속에서는 뒷담화로 드러나지만 공지훈은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거룩한 건 우리가 아니라는 것, 거룩한 분은 성령님이라는 것, 함께 하기 때문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개인이 온갖 은사를 갖출 필요가 없다. (공지훈) 아이들에게 어떤 달란트가 있는지 보인다. 약점도 보인다. 약점은 문제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장점을 극대화하지 않고 약점을 채우려고 한다. 하지만 공지훈에는 당장 삶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있다.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경험한다. 달란트를 온전히 누리는 것, 온전히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진다.

내가 더 드러날 필요가 없다. 내 자리를 잘 지키면 된다. 자기 호흡으로 살아가면 된다. 공지훈을 하면서 배운 바대로 살려는 사람들과 ‘가공동체’를 하고 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모임이다. 아이들이 살아온 경험이 다양해서인지 다른 지점을 보게 하는 눈, 힘이 있다.

공지훈을 하면서 생활 습관이 꺾인 사건이 있다 

영준: 잘(?) 늦었다. 시간을 빡빡하게 계획해서 살았다. 늦으면 오만가지 변명을 생각했다.  공동체의 기운을 전체적으로 떨어뜨렸다. 삶을 정리하지 않은 채, 지적인 것들을 추구했다. 삶을 단순하게 만들고 정리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요즘 글쓰기 소모임을 조직했다. 나를 빼고 모두 늦더라.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본다.(웃음)

지은: 첫 날, 사건이 있었다. 늘 사건 속에 있다. 불편함? 끝까지 불편할 것 같다. 처음에는 허위 때문에 불편했다. 공지훈 덩어리 자체가 사건이다. 졸업식이나 엠티를 가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줬다. 늘 공허한 지점이 있었지만 혼자서 잘 놀며 살았다. 그래서 온전한 줄 알았다. 민들레(출판사)는 대안적인 삶을 살지만 그 안에는 그리스도인이 없다. 모두 어린이 같은 어른들이라 친해질 수 있었다. 편안한 관계로 지냈다. 그래도 침범해서는 안 되는 거리를 두었다. 몸을 온전히 내맡겨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매 순간 발가벗겨지는 것 같다. 이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자기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좋은 불편함’이다. 대안의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이 중심이어야 한다. ‘공동체’, ‘지도력’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있었다. 공동체하면 자유의 대척점처럼 보이고, 지도력하면 권력이 떠올랐다. 김상봉 선생님(전남대 철학과)이 사용하는 ‘서로주체성’을 알게 되면서 거부감을 내려놓았다. (서로주체성이란 참된 만남 속에서 생성하는 주체성을 뜻한다-역주)

공지훈 마지막 과정은 ‘기초공동체 생성과 연대를 통한 하나님나라운동’이다. 하나님나라 도상에서 바라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있다면.

지명: 새로운 공동체를 만나고 새로운 공동체(경희대 SFC)를 생성하는 과제가 있다. 소중히 정성껏 걸어가고 싶다. 한편으로 원하는 대로 살아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은 공지훈 기간이 힘들 것 같다. 왜냐, 삶과 함께 갈 거니까. 즐거운 투정이다.

영준: 20대 청년기를 분별력 없는 무모한 열정으로 살았다. 공지훈에서 배운 바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지론적 입장과 학벌에 욕망이 있었다. 공동체 생활과 공지훈을 겪으면서 정리했다.(웃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청소년교육운동을 기획하고 있다. 대안교육 진영은 한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도시에서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지역 아이들을 잘 만나려고 ‘주말학교’를 기획했다. 마을에 사는 이모·삼촌으로 청소년들과 관계 맺는 꿈을 꾼다.

지은: 공지훈을 하면서 생성한 가공동체에서 말씀을 잘 나누고 있다. ‘가공동체’는 태명이다. 공지훈 사람들을 밥 먹자고 집으로 초대했다. 누군가 공동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우발적이었다. 가공동체의 '가'는 거짓 ‘가’다. 그러나 ‘거짓’보다는 ‘아직’이라는 의미다. ‘가’를 시작으로 ‘나’, ‘다’, ‘라’공동체가 생성될 거라는 얘기가 나온다.(웃음) 형성 과정에 있는 공동체다. 같은 선에 서서 함께 꿈을 꾸는 공동체다. 바란다. 남은 6개월 동안 거품을 뺄 수 있기를!

다음과 같은 목적을 두고 공지훈을 개설했다. 1. 졸업을 앞둔 기독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되 혼자가 아닌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공동체적으로 진출하도록 돕는다. 2. 하나님나라운동은 구체적인 생활양식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하나님나라 가치를 사회생활 현장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생활·사역 공동체 창출 운동을 돕는다. 3. 선교단체 간사나 청년 지도력들의 공동체 사역을 지원한다.

김준열·생명평화연대 활동가 / 공지훈1기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