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호 제자도 ④]거침없는 순종

2009-05-25     황영익

제자도는 우리에게 즉각적이고 철저한 순종을 요구합니다. 제자도(Radical Discipleship)의 온전성은 그 순종의 온전함과 다르지 않습니다. 복음서는 즉각적인 따름,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가득합니다. 누가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부르실 때 먼저 부친의 장사를 지내게 해달라고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59절)와 스스로 주님을 따르겠다고 자청하고서는 먼저 가족과 작별인사를 나누게 해달라는 사람의 이야기(61절)가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저마다의 사연과 그 누가 봐도 정당해 보이는 이유를 말하며 잠시 후 혹은 며칠 후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한 말씀으로 그들에게 반응하시며 즉각적인 따름을 강조하셨습니다. 부친 장사는 인륜에 있어 가장 시급한 일이요 가족관계란 가장 기본적인 관계이므로 예수님의 반응은 가혹하고 무자비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또 예수님을 찾아온 한 부자 청년 역시 즉각적으로 순종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종교적 도덕적 철저성이 그를 제자로 만들지 못하였습니다.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막 10:21)는 주님의 부름에 주저하며 슬픈 표정을 하고 자신의 길로 돌아간 것입니다. 나의 길을 버리지 못하면 주님의 길에 합류할 수 없습니다. 나의 인생 각본과 시간표를 그대로 움켜쥔 채 제자의 길을 온전히 걸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부르시고 제자는 그 부름에 응답합니다. 그분은 부르시고 우리는 따를 뿐입니다.

투신으로 부르심
 
몇 년 전 필리핀 오지에 의료봉사활동을 갔다가 함께 합류하여 봉사하시던 한 의사 선생님을 통하여 아주 뜻 깊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에 쓰나미 해일이 일어났을 때 인도네시아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한 선배 의사가 병원을 개업했는데 애절하게 말하기를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모든 것을 멈추고 이곳으로 당장 건너오라’고 하였답니다. 도움의 SOS입니다. 마음의 이끌림은 있었지만 병원의 근무일정이 짜여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주저하다가 결국 가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 선배 의사가 해일이 덮친 바닷가에 가보니까 사람들은 누워서 죽어가고 있는데 먹을 물도 없고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답니다. 병원도 무너지고 의사고 간호사고 다 죽어버려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볼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바닷물이 덮쳐 마실 물도 없는 상황이었고 사람들은 탈수증세를 보이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선배 의사는 혼자서 신음하는 환자들을 일주일 동안 밤낮 진료하는데, 가지고 간 링거 3000병을 꽂아주며 진료하고 나서는 자기가 곧 쓰러졌다고 합니다. 곧 국제 의료진이 들어왔는데 그 때 자기가 링거 꽂아준 사람들은 대부분 살았다고 합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3000명을 살렸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선배는 후유증으로 몸이 안 좋아져서 한국에 들어와 오랫동안 몸 관리를 하여야 했고 이 때문에 그 동안 벌어둔 돈도 많이 날렸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그 의사 선생님은 자신이 그 때 왜 인도네시아에 즉각적으로 건너가지 못하였는지 아쉽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선배가 부럽고 그에게 부끄럽기도 하다는 의미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찡했습니다. 제가 그 선배 의사의 얼굴은 모르지만 그 분은 하나님께서 이 땅으로 보내신 삶의 목적을 충분히 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사셨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사실 분이라고 믿어집니다. 상황이 요구해서 단지 그런 섬김을 한 것이라고 이해하기에는 그의 섬김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들을 통한 부르심 앞에서

우리가 그 분처럼 그렇게 특별한 재해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살릴 현장에 있을 가능성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생활 가운데 언제나 주님의 부르심을 경험합니다. 우리의 내면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상황을 통하여 인도하시고, 우리의 선한 양심을 충동하시어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이들이 고백하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으로 보내신 목적과 계획이 있습니다. 그 어떠한 신분과 직업, 기술과 가능성을 가졌는가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고귀한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그 선배 의사는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소명에 성실하게 반응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쓰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의사가 아닐 수도 있고 특수한 전문직 종사자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때가 있습니다. 오늘 어느 순간에 우리는 소자 하나에게 생수 한 그릇을 주는 섬김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타이밍인 것입니다. 밝은 인사와 대화로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빛을 비출 수도 있고, 한 마디 격려와 칭찬의 말로 주님의 혀가 될 수 있으며, 구제로 주님의 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제자도로 부름을 받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삶 자체를 그리스도에게로 헌신하고 그분이 살아가신 ‘타자를 위한 삶’으로 전환을 요구받습니다. 이를 회심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일상의 삶 속에서 순종의 부름을 받습니다. 우리의 일상과 노동과 만남의 모든 영역에서 크고 작은 부름에 결단하도록 요구받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부르심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순종하여야 합니다. 지금 그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지금 그분께 순종해야 합니다. 투신이 없는 제자는 자칭 제자, 거짓 제자에 다름 아닙니다. 작은 순종이 큰 헌신을 만들 것이고, 작은 결단이 큰 투신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본회퍼는 그의 책 <나를 따르라>에서 거침없는 투신과 조건 없는 따름을 다음과 같이 역설합니다. “예수의 계명을 무조건 좇는 자, 예수의 멍에를 불평 없이 지는 자는 져야 할 짐을 가볍게 지고 피로를 모르고 옳은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오히려 그의 멍에의 부드러움에서 얻는다.”

황영익 님은 서울남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으며, 성서한국과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을 섬기고 있다.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다.


황영익 (서울남교회 목사, 본지 이사) inyouwith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