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호 청년 - 나름] 필리핀으로의 짧은 필드 트립 이야기
나름 글로벌 프로젝트 <필리핀> 편
나름의 웹진을 즐겨보고 있던 어느 날 “우리 아시아에서 놀아 볼까?” 라는 상큼 발랄한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나름에서 뭐 하는 거지?’ 라며 기웃거려보니 역사와 빈곤 문제를 통해 아시아를 품고, 역사 NGO세계대회에서 자원봉사를 한다고 했다. 역사공부를 하다가 어려워서 그만둔 적이 있을 정도로 역사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빈곤과 관련된 책을 읽은 뒤라 글로벌 프로젝트에 끌리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나름에서 글로벌 프로젝트를 준비한 지은 언니로부터 함께해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고나서는 참여하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강의하는 첫 날에 한백교회로 발걸음을 향했다.
나름과의 첫 만남, 아직도 한백교회에 들어선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이름표에 강사건 준비한 사람들이건 일반 참여자이건 모두 이름 세 자만 적혀 있었고,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핸드메이드 강의였다. 약 한 달 동안 한경균 선교사님은 아시아의 빈곤 문제와 교회의 역할에 대해, 이철용 목사님은 빈곤과 CAMP사역에 대해, 그리고 양미강 목사님은 동아시아 역사 갈등의 현안과 과제에 대해 강의해주셨고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워크숍도 했다.
빈곤과 역사에 대해 배웠으니 “직접 필리핀에 가보자” 는 제안에 처음에는 과연 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어느 순간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나름 즐거운 밤’을 열어 책을 기증받아 되팔고 후원할 물품마저도 사람들로부터 후원을 받아서 후한 선물과 응원금을 얻었다. 그렇게 필리핀 필드 트립을 준비했다.
6월 18일 CAMP의 이철용 목사님과 햇반 경미 언니, 함께라면 임지은 언니와 함께 필리핀으로 떠났다. 도착하니 늦은 밤이었고 현지 CAMP사역을 맡으신 김동환 선교사님과 함께 바로 숙소로 이동했다. 19일에는 어린이집 사역 후에 CAMP사무실이 있는 바세코 세계선교공동체(WMCP) Feeding center로 향했다. 부모님들이 밥을 챙겨주지 않아서 한 끼 식사를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와서 기다리는 아이들, 먹고 난 후에 자신이 먹은 것은 물론이고 센터의 책걸상까지 스스로 정리하는 아이들, 동생과 함께 와서 동생을 챙기는 작은아이를 보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센터에서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봉사를 한 후에 CAMP사무실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WMCP사역자들과 이야기를 했다. 위험하고 가난한 지역에 와서 헌신적인 삶을 사는 그들의 모습은 감격스러웠고 많은 도전과 용기를 받았다. 식사를 한 뒤 잠시 숙소에서 쉬다 입국하는 팀을 맞이하기 위해 공항으로 나갔다. 지현 언니와 김지은 언니가 하루 뒤에 합류해서 신난 우리는 필리핀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20일에는 마닐라 빈민지역 Tondo에 속하는 나보따스 강가에 갔다. ZOTO(Zone One of Tondo Organization Tondo 빈곤NGO단체)사무실에도 들러 현지 스태프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 방문지는 ‘스모키 마운틴’이라는 쓰레기 매립지였다.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동네를 돌아본 뒤 교회 부지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울타리를 옮기는 일을 했다. 동네 아이들이 이방인인 우리를 보러 몰려와서 함께 쓰레기를 치워주고 놀기도 했다.
쓰레기를 치우고 다음날 일정을 위해 까삐떼(CAVITE)지역으로 이동했다. 늦은 식사 후 모여서 필리핀에서 느낀 것들에 대해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김지은 언니가 가난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그들을 보며 더러운 물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연꽃 같다는 이야기를 해서 인상적이었다. 21일에는 UTS(Union Theological Seminary) 안에 있는 교회에서 함께 예배했다. 준비하는 분들이 미얀마 분들이었고 미얀마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셨다. 한국보다 이주사회가 더 빨리 정착되어 있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오후에는 현지 교회 청년들, 목사님들과 워크숍을 했다. 필리핀의 빈곤 문제에 대해 우리가 현지에서 본 것들에 갇혀 생각하기 쉬웠을 텐데, 목사님으로부터 빈곤 문제에 얽힌 솔직한 이야기를 들음으로 시각을 좀 더 넓힐 수 있었다. 워크숍 후 함께 저녁식사를 한 뒤에 필리핀에서의 중요한 일정을 마쳤다.
필리핀에서의 짧은 여행은 참 많은 것들을 남겨주었다. 아시아에서 놀아보자는 권유에 선뜻 응한 것이 복이자 화가 되어 어느새 빈곤 문제까지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강의를 듣는 아카데미 일정에 이어 즐거운 밤 그리고 만남과 배움의 여행이었던 필리핀 필드 트립 까지 2009년 상반기가 어느새 나름의 글로벌 프로젝트로 꽉 차 버렸다. 역사 NGO세계대회에서 ‘아리(동아시아 지역 문제 해결, 아시아 지역 시민 단체 교육, 훈련 등의 활동을 하는 동아시아 지역 구상의 씽크네트 조직)’와 공동주최로 시나리오 워크숍도 함께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부터인가 또 한 명의 나름이가 되었다. 요즘은 필리핀 민도로 지역 원주민과 전라남도가 맺은 토지임대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약 필리핀에 가서 가난한 친구들을 만나고 오지 않았더라면, 왜 가난한 사람들이 생겨나며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궁금함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해외 토지수탈문제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글 사진 이지혜 jihyeda@gmail.com 19살 때 가졌던 꿈을 사는 청년. 오지랖이 우주만하고 꿈꾸는 것들이 그저 꿈에 머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작은 실천들을 찾아가는 중. 대학생이지만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장 부끄럽게 여기며 공부는 밖에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