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재임용, 학생들이 찝찝한 이유

[235호 청년당 선생님 어디 계십니까]

2010-04-28     박현선

“저는 3년간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고, 연구했고, 사업도 유치했습니다. 학교에 기여한 바를 말하자면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비정년교원(비정규직교수)이라는 신분의 딱지를 이용해서 재임용심사도 안 해주고 결국은 저를 퇴출시켰습니다. 지금 저의 심정을 솔직히 말하자면 학생들 앞에 다시 강의를 하고 싶을 뿐이고, 거짓말하는 인사행정과 싸우고 싶습니다. 제가 그동안 당했던 인사행정이란 것은 거대한 거짓말의 체계입니다.”

2008년 6월 16일,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성형 교수(당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했던 말이다. 그는 학교로부터 “3년 넘게 근무한 계약직 교수는 재임용 신청이 안 된다”고 일방적으로 통지받았다. 교육부 공문에는 “비정규직 교원도 재임용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권리가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재임용 신청을 할 수 없다는 학교 공지에 따라 ‘신규 임용’에 지원했으나 떨어졌다. 이유는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내지 않아 글로벌 스탠다드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이화여대 학생은 인터넷을 통해 이 교수의 복직 운동에 나섰고 동료 교수들도 ‘이성형 교수 복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2009년 3월에는 부산 장신대 배현주 교수가 논문을 중복 게재해 연구비를 부당하게 받았다는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에게 ‘윤리성 부재’의 낙인을 찍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배 교수가 중복 게재를 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학생들도 학교측 결정에 반발했고, 기도회로 이어졌다. 동료 교수들도 배 교수를 지원하고 나섰다. 후에 재임용 심사 과정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배 교수는 복지되지만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 해 8월에는 진중권 교수가 7년 동안 강의해 온 중앙대에서 재임용에 탈락했다. 이유는 ‘겸임 교수’인 진 교수가 현재 겸하고 있는 직업이 없다는 것이었다.

교수 재임용 논란은 1990년대에도 있었다. 1998년, 서울대 디자인 학부 김민수 교수가 재임용 탈락의 이유가 객관적이지 않다고 제기한 소송은 6년 만에 승소했고 1995년 성균관대 김명호 수학과 교수도 재임용에 탈락해서 아직까지 소송 중이다. 교수 재임용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 마다, 비정규직 교원의 ‘재임용 과정’, 찝찝한 구석이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첫째, 탈락 사유를 납득하기 어려워 찝찝하다. 이성형 교수의 경우,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내지 않아 글로벌 스탠다드에 미치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는 매년 평균 세 편의 논문을 쓰고, 번역서도 냈다. 중남미 전문가로서 영어, 스페인어로 강의도 했고, 이화여대 조교들과 함께 BK 21 사업도 유치했다. 그런가 하면, 배현주 교수는 재임용 통과 기준 최저점수인 250점보다 훨씬 높은 476점을 평가점수로 받은 상태였다.

둘째, 학생들이 교원 재임용에 전혀 개입할 수 없음이 찝찝하다. 이성형 교수는 6학기 동안 학과 강의 평가에서 1위를 했다. 그럼에도 이 교수가 재임용에 탈락한 것은 학생의 강의 만족도가 임용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학생은 돈을 내는 청중, 대학 브랜드를 소비하는 소비자로 인식하는 대학은 더 이상 학문 기관이 아니다. 기업이다.

셋째, 비정규직 교원의 위태로운 지위로 학문과 사상을 통제하는 것 같아 찝찝하다. 견고하게 권력을 잡은 학파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선생, 틀에 박힌 가치관과 문화에 질문을 던지는 선생, 결국 할 말을 하다가 쫓겨나는 선생을 보고 자란 학생들은 어떤 고민을 하게 될까. 사상의 시장에서 선택의 자유를 빼앗긴 채, 주입식 교육을 받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학생들로 일류대학을 만드는 대학 능력을 나는 구경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학교 안에서 정치권력의 힘을 보는 것이야말로 매우 찝찝하다. 교수들의 쓴 소리와 질문을, 힘으로 막고 밥줄마저 끊고서 학생들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주문하는 것은 억지다. 어쩌면 대학은 한 번도 학생들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한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브랜드가 찍힌 품질 좋은 나사를 만드는 것이 학교의 목표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 우리의 선생님을 빼앗긴 대학 현장에서 스승을 찾아 헤매는 학생들의 인생이 너무 서글플 뿐이다.

박현선 청년기자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졸업 aaa913aa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