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년 수확했는데…”

[237호 4대강 기행] 낙동강 삼락지구 농민들을 만나다

2010-06-29     박현선

▲ 삼락 영농원 농민이 가꿔온 당근을 하나 뽑아 손에 들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발을 바라보고 있다.
부산시 사상구 삼락공원, 이곳에는 2005년 조성된 친환경 영농원이 있다. 주말 농장을 운영하는 분들까지 포함해 180명의 농민들이 당근․상추․양파 등을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는 곳이다. 공원으로 들어와 잔디밭, 야구장, 주차장을 한참 지나온 뒤에야 농경지를 볼 수 있었다. 비닐하우스를 개조해 만든 농막 안에는 농민들이 여덟 분 앉아 계셨다. 어렵사리 부산농민회 정성철 사무국장님께 연락이 닿았기에 만나 뵐 수 있는 분들이었다.

처음 들어 보는 조그만 기독교계 잡지사에서 나온 청년기자 한 명을 앉혀 두고 농민 할아버지와 농민 아저씨들은 듣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으셨다. 팔당 유기농 단지에도 다녀왔다고 하자 그 소식을 먼저 물어보셨다. 사전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지하수가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를 야산을 대체 부지로 조금 받게 된다는 이야기를 해 드렸더니 사기당한 거라고 혀를 차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담배를 꺼내며 화를 내는 분도 있었다. “그 땅에 농사를 짓든 안 짓든 나중 문제인데 다른 데는 대체 부지라도 줬다 아니가. 여기는 무작정 나가라는 거다.” 이분들의 말대로 이곳 삼락 농민들은 한 평의 대체 부지도 받지 못한 채, 보상금 12500원(1평당)을 받고 떠나야 할 신세가 됐다.

“국민을 죽여 놓고 국가 사업하는 데가 어디 있어요!”

▲ 4대강 사업으로 고통받는 농민 중에서도 우리가 제일 억울할 거라며 삼락 영농원 농민이 자신의 농막에서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보증금 그거 조금 나와도 내가 만져보지도 못하고 금융회사에서 가져갑니더. 지금 살고 있는 전세방도 빚쟁이들이 가만 놔 두겠십니꺼. 시장은 선거에서 떨어진들 10년 먹고 살 게 있겠지만 농사꾼들은 당장 다른 데서 나올 돈이 없습니다. 12500원씩 나온 거 뺏기고 나면 이주할 땅도 없는데. 어디 가라는 이야기입니까. 2002년에 나가라 할 때는 3만 원 하던 땅이 지금은 30만 원 한다 아닙니꺼.” 눈시울이 붉어지던 젊은 농사꾼 아저씨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꼭 사람들이 하나 둘 희생되면은, 그제서야 조그만 타협은 해 준다 이겁니다. 농민들은 좋다, 우리가 힘이 딸리니까, 불 한 번 놔버리고 말자. 이런 데도 많습니다. 분명히 농민들은 몇 명 희생될 겁니다. 동네도 못 지키고 자식들도 못 키우는 사람들 어디 가겠습니꺼.”

이 지역 농민들은 대부분 빚을 지고 있다. 이들은 이미 2005년 부산시의 낙동강 환경 조성사업을 위해 30년 가까이 가꾼 농지를 다 빼앗긴 채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경험이 있다. 원래 농사짓던 땅의 반 정도 되는 넓이의 대체 부지를 받아 개간하는 데만 3년 넘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이 들었다. 그런데 수확을 할 수 있는 땅이 된 지 1년 만에 4대강 사업 때문에 다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제일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는 투표하러 갔다가 재선에 도전한 현 부산시장 이름 밑에 “개새끼, 몸조심해라” 이렇게 써 놓고 왔다고 하셨다. 친필 서명도 하셨단다. 이 분이 표현하실 수 있는 최후의 위협 수단이었을 것이다. 내가 농막에 들어서자마자 사과 한쪽을 깎아 주시고 커피를 타 주신 아주머니는 내 손을 꼭 붙잡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평생 배운 거도 이거밖에 없다. 아가씨가 우리보다 낫다 아니가…. 우리는 어디를 가든 농사지을 각오는 돼 있고… 위에 계신 분들이 농민들 위해서 할 수 있도록 잘 한 번 해 주이소. 여기 살면서 내가 이래 눈물 나긴 처음이라….”

“대통령 말고는 책임질 사람이 없어요.”

삼락부락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할아버지는 ‘4대강 농민 중 가장 억울한 게 우리’라 하셨다. “처음에 우리가 농사짓고 있던 걸, 2002년에 낙동강 공원 조성 사업을 한다고 나가라 했어. 그 때 50%를 양보하고 2005년에 50%만 겨우 대체 부지로 받은 기라. 그거라도 다행이라 했는데 나중에 땅을 받아서 중장비로 엎어보니까 폐기물, 산업 찌꺼기가 다 뒤집혀 나오는 땅이라. 땅 개간하는 데만 3년 걸렸지. 겨우 작년부터 작물이 잘 돼요. 있는 돈 없는 돈 다 들이고 농협에서 빚지고, 손수 트랙터 끌며 다 일구고 했는데….”

2006년 4월 28일자 <국제신문>에는 “부산시, 폐자재 그냥 두고 농지 조성”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 바 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6000평 정도를 경작하던 김종석 씨는 보름동안 인부 6명을 고용해 폐자재를 골라내는 데만 인건비가 300만 원 들었다. 염분 제거도 낙동강 환경조성 사업단에서 해 주기로 되어 있었지만 결국은 농민들 스스로 다 해결해야 했다.

“그런 대체부지였어도 우리 세대까지는 농사 지어 먹을 수 있게 부산시하고 농민들하고 약속이 되어 있었어요. 약정서가 있어요. 그러니까 몇 년 동안 빚을 내서라도 개간을 했지. 그런데 이제 4대강은 정부 사업이라고 부산시랑 한 약속은 소용없다 합니더. 자기들은 공무원이라 정부를 막을 수 없다 합니더. 부산시도 그 때 370억 넘게 여기 써 놓고 어찌 이래 금방 엎을 수 있는지. 딱 1년 지어먹었는데 너무 억울해서….” 부산시는 농지를 상속할 수 없고 ‘당대까지만’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이 약정을 매우 철저하게 이행했다고 한다. 배우자가 살아 있더라도 등록한 농민이 사망하면 바로 줄을 치고 빼앗아갈 정도로.

▲ 한두 명이 희생되면 뭔가 대책을 세워주지 않겠냐고 담담히 말하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어 줄 이는 없을까.

‘제2의 용산 참사’가 일어나는 것이 두렵다

삼락둔치 농민을 포함해 하천부지를 경작하는 농민들은 대한민국 땅에서 몰리고 몰려 막다른 골목까지 왔다. 식량 자급도가 5%도 안 되는 이 나라에서 친환경으로 재배한 안전한 먹을거리를 도심에 공급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고사하고,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은 채 범법자로 몰렸다. 공익을 위한 국가사업이니 이전에 했던 약속은 잊어버리고 양보하라는 ‘명령’을 들은 지 오래다. 궁금한 게 생긴다. 양보는 더 많이 가지고 더 힘이 센 자가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농민들은 말한다. 정부가 “이거밖에 못 해드려서 미안합니다. 이 정도로 협상합시다”라는 이야기라도 해 주었으면 이렇게 서럽고 억울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평생 농사를 지어 온 180명의 삼락 영농원 농민들을 기만한 부산시가 감정평가도, 측량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처리한 1평당 12500원의 보상금의 천박함에 가슴이 저렸다. 농민들은 여기서 죽으나 나가서 죽으나 똑같으니 평생 살아 온 내 자리에서 죽겠다 담담히 말했다. 사업 집행이 시작되면 고스란히 갈 곳을 빼앗긴 채 울어야 할 이들의 곁을 지켜줄 친구들이 필요하다. 그 친구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간절함을 안고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글 사진 박현선 청년 기자 aaa913aaa@hanmail.com

▲ 6월 말에 공사를 시작하겠다는 공지 때문에 때 이른 수확이 시작됐다. 이것들만이라도 건져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