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꽃밭을 위한 금강 살리기 사업?

[238호 청년당]금강이 흐르는 공주, 무주, 금산, 영동을 다녀와서

2010-07-23     박현선

▲ 금강선원 앞은 시민들이 금강을 지키겠다는 염원을 담아 걸어 놓은 현수막 리본으로 가득하다. 왜 이 간절한 목소리는 정부에만 들리지만 않는 걸까. ⓒ복음과상황 박현선

충남 공주 공산성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금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영은사. 남한강을 지키기 위해 신륵사에 만든 여강선원에 이어, 이 곳 영은사에 금강선원이 만들어졌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며 소신공양을 한 문수 스님의 분향소도 그곳에 있다. 영은사에 도착하니 스님 두 분이 그 곳을 지키고 있었다. 앞마당에는 충남 참여연대 이상선 대표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릴레이 금식을 하며 묵묵히 책을 읽고 있었다.

끝까지 싸워야지, 잘못된 거라면

▲ 4대강 사업에 반대하기 위해 단식을 하고 있는 충남 참여연대 이상선 대표. ⓒ복음과상황 박현선
이상선 대표 옆에 털썩 앉아 대뜸 넋두리를 했다. 강을 걸으면 걸을수록 힘만 빠진다고. 도무지 이 사업 막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고. 그는 차분히 대답했다. “절망과 무력감으로 싸우지 않아요. 희망으로 하는 겁니다. 저는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거의 다 그렇게 되고 있다고 봐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어딘가에 방법은 있지 않겠냐 말한 사람들은 간혹 있었지만 이렇게 확신에 차서 이제 거의 다 막았다고 말하다니. 저렇게 포클레인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권력의 독선에 맞서 여러 번 싸워 이긴 경험이 있는 이가 그리 대답하니 정말 그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버렸다.

정말 여기서 멈출 가능성도 있는 건 아닐까 설레는 마음으로 서성거리다 혜우 스님께 물었다. 사람들이 이제 많이 찾지도 않는 것 같은데 이걸 언제까지 하실 거냐고. 그는 말했다. “끝까지 해야지. 잘못된 거니까….” 그리고는 인디언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인디언들은 배가 고플 때면, 사냥감 중 가장 늙고 뒤쳐진 것을 필요한 만큼만 잡아 사이좋게 나눠 먹는단다. 자연을 향한 약간의 고맙고 미안한 마음과 함께. 하지만 우리는 재미를 위해, 창고에 쌓아두기 위해 사냥을 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제껏 내가 목격했던 파헤쳐진 강줄기와 습지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삭막해진 세상 탓에 우리마저 생태적 감수성을 잃어 버려 자연을 어머니로 여기는 것은 어렵다고 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자연을 강간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지 않은가. 오탁방지막이 힘없게 떠 있는 금강 하류를 내려다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를 위한 잔디 고수부지인가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동해 찜질방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버스를 타고 충남 금산으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 금강 유역 환경 지킴이로 4년 넘게 활동해 온 최병조 씨를 만났다. 최 씨는 마침 오늘 수생 식물․동물․하천공학 전문가들과 함께 4대강 사업을 하기로 예정된 금강 상류의 습지들을 둘러보기로 한 날이라 했다. 직접 금강을 보고 글을 쓰고 싶다며 매달리는 나에게도 동행을 허락해 주었다. 피곤할 새도 없이 8시간 넘도록 금강을 따라 달리는 하루가 시작됐다.

우리는 가장 먼저 무주군으로 이동해 부남면 대유리에 도착했다. 용담댐 하류 지역에 있는 습지를 찾았다. 댐으로 인해 관광객이 줄었다는 피해의식이 있는 주민들이 이번 사업에 반대를 하고 있긴 하지만 곧 제방을 만들고 습지를 포클레인으로 모두 밀어버린 뒤, 잔디가 있는 고수부지를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이 습지 유역에는 종대 백로, 왜가리, 꾀꼬리, 뱁새 등이 서식하고 있다. 최병조 씨는 이곳에서 살쾡이를 보기도 했고, 수달의 배설물도 발견한 적이 있다고 했다. 대동아 전쟁 시절에 이미 수달이 멸종한 일본에서는 우리에게 수달 50마리를 요청한 적이 있을 정도로 생존해 있는 희귀 생물종들은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습지를 없애면 우리에게 머물러 있던 자원들도 한꺼번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금강에 천연기념물이 머물 수 있는 놀라운 서식지 대신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잔디 고수부지가 왜 생겨야 할까. 이 아름다운 계곡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러 오기에 수백억을 들여야 할까. 그저 의아하기만 했다.

▲ 금산 천내습지의 전경. 200여 종 넘는 수생식물과 천연기념물이 살고 있는 곳이지만 사업 계획에 따르면 습지를 완전히 갈아엎고 18여개 종을 심는 조경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복음과상황 박현선

누구를 위한 꽃밭인가

이어 금산에 있는 상수원 보호구역 내 천내 습지를 찾았다. 이곳은 200여 종 가까운 수생 식물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4대강 사업 계획서에 따르면 이곳도 싹 밀어버리고 18종의 꽃과 수생식물을 구획을 나누어 심는단다. 그 중 10여 종은 이미 습지에 서식하고 있는데 말이다. 충남대에서 산림생태학을 전공한 김현숙 박사는 “얼핏 보면 예쁜 꽃밭을 만드는 그럴 듯한 계획처럼 보이지만, 물이 범람할 때마다 억새들이 물가로 밀려 올라가면서 물속에 심는 식물인 창포나 붓꽃을 덮어버릴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다. 2~3년 만에 이곳은 지금의 모습처럼 돌아갈 것이 뻔하다. 몇 백억을 예산으로 잡아놨으면 장기적이고 효율적인 사업을 해야지, 왜 이런 사업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조경에 문외한인 나조차 상수원 보호구역인 천내 습지에 오는 사람들에게 왜 2년 내 사라질 꽃밭이 필요한 것인지 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 조경 시범사업을 해 본 금산 제원면 대산리의 하천습지. 비가 한 번 오고 나니 갈아엎기 전 살고 있던 달뿌리풀이 새로 심은 부처꽃을 뒤엎었다. ⓒ복음과상황 박현선

나는 어느새 서울에 있고, 습지에 있을 때 들려오던 산새 소리와 이름 모를 나무와 풀이 한 데 어우러진 풍경을 그리워하고 있다. 아름다운 금강 상류의 하천 습지에 엄청난 예산을 잡아 놓고 조용히 조경 사업을 하고 있는 정부와 시행업자에 말하고 싶다. 그렇게 돈을 쓰고 싶으면 너희끼리만 주고받으라고. 대신 습지는 제발 내버려 두라고. 100여 종이 넘는 다양한 생물종을 보유한 하천 습지를 모두 갈아엎고 몇 종류의 식물을 골라 심겠다는 정부가 속도를 더 내려 안달하고 있는 2010년은 마침 ‘생물 다양성의 해’다. 함께했던 대전대 토목공학과 허재영 교수는 “하천공학을 전공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 전 판정승이 난 사항이다. 정부가 시대를 거스르고 있는 상황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일은 사람들의 탐욕이 사라져 하루 빨리 우리의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라 했다. 그런 날이 언제 올까 한숨을 쉬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절망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희망으로 싸우는 것이기에. 영산강으로 향할 채비를 해야겠다.


글 사진 박현선 청년 기자 aaa913aa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