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의 자립을 위해 탄생한 <The Big Issue>의 무한도전
[240호 권두 대담] 심샛별 <빅이슈코리아> 문화사업국장
노숙인들이 잡지를 판매해서 자활할 수 있도록 돕는 <빅이슈>의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어떻게 <빅이슈>와 만나셨나요?
제가 남아공에 갔을 때였습니다. 먼저 이민 오신 분들이 그러시더라고요. 사람들을 조심하라고요. 특히 현지인들은 다 조심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차 문은 꼭 잠그고 다니고, 함부로 사람들을 만나지 말라고 주의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접할 수 있는 현지 흑인은 거의 파출부, 청소부, 정원사, 주유원 아니면 구걸하는 사람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제한된 접촉만 하게 된다는 것이, 남아공까지 와서 남아공 사람들과 뭔가 불완전한 관계밖에 맺을 수가 없다는 게 뭐랄까 참 배고프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자연스럽게 매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 교차로마다 서서 <빅이슈>라는 걸 파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책을 사건 사지 않건 간에 매일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가까이에 있을 때는 손만 흔들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짧은 대화도 나누는 거예요. 서로 인간관계를 쌓는 거죠. 사실 우리나라에도 관계에 낯선 사람들, 배고픈 사람들이 무척 많잖아요. <빅이슈>가 서로 관계를 맺을 기회가 적은 사람들이 소통하고 친밀해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싶더군요. 서로 다른 무리에 속해 살던 많은 사람이 단순히 <빅이슈>를 사고판다는 이유로, 또 같은 것을 지지하고 호응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고 하니, 어쩐지 멋지다 싶은 것 있죠?
사실 남아공에 가기 전에는 저도 구걸하거나 기부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있었어요. 요즘도 사실 나눔이라는 말로 포장되는 많은 일에 냉정한 편이에요. 하지만, <빅이슈>같은 방식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해외에서 <빅이슈>를 접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빅이슈>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한 번쯤 생각한 사람들이 꽤 있었나 봐요. 2008년 10월 <빅이슈 한국판 창간 준비 모임>이라는 다음 카페(cafe.daum.net/2bi)가 만들어지고 카페 회원들이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길거리 잡지의 예를 연구하고, 번역을 한다든가, 모임을 진행한다든가 해서 나름대로 각자 자기 역할을 했어요. 주축이 된 사람들은 들고나고 했지만, 카페를 중심으로 <빅이슈코리아>는 차근차근 준비되었습니다.
또 <빅이슈코리아>를 창간할 수 있었던 데는 노숙인들을 위해 활동해 온 ‘거리의 천사들’(www.st1004.net)과 서울시의 지원이 컸습니다. 거리의 천사들에서 마련해 준 종잣돈 오천만 원으로 창간 준비호를 비롯해 영국 <빅이슈>와의 양해각서 체결, INSP(International Network Street Paper) 총회 참석은 물론 창간호를 내기 까지 중요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고, 서울시로부터 ‘서울형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어요. 그래서 서울시로부터 직원 급여의 일부를 지원받으며, 지하철 공사 등의 협조에도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남아공에 가족들을 남겨두고 한국에 들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큰 결행을 하신 셈인데요, <빅이슈코리아>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습니까
작년에 한국에 왔을 때 다음 카페모임에 나가서 ‘나와 나의 빅이슈’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만난 카페 회원들이 아주 좋았어요. 무언가를 위해 인생을 불태우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도 이렇게 많이 있구나 하는 기분이랄까요. 노숙자에겐 집이 없지만, 이 사람들 자체가 누군가에게 온기 있는 집이 되어 주겠구나! 그런 기대감이 생겼죠. 이 사람들이 진심으로 믿고 뭔가를 하는 거라면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간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남아공에 있는 집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올 수가 없었어요. 자연히 제가 얼마나 진심이냐를 더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을 그곳에 남겨 두고서라도 와야 할 일이냐고 누구나 물어볼 것이기 때문에 제가 먼저 더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한 결심이기 때문에 현재 <빅이슈>에 와서 날마다 겪는 크고 작은 일들에도 별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노숙인 문제는 흔히 열악한 사회안전망을 개선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식인데 <빅이슈>는 노숙인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합니다
노숙인이나 빈곤의 문제라고 하면 전문가들이 국가의 책임을 묻거나, 제도의 변화를 통해 해결하자고 주장하는 경우를 흔히 떠올리게 되는데요. <빅이슈>는 비전문가인 보통 사람이 노숙인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며 같이 사는 길을 보여 줘요. 사람들이 <빅이슈>에 열광하는 건, 도무지 답이 없어 보이는 문제에 대해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돈으로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어서 라고들 하세요.
실제로 1991년 영국에서 <빅이슈>를 시작한 존 버드 씨는 노숙 경험이 있는 분이에요. 지난 7월 한국 빅이슈 창립 기념행사 때 방한하셔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는데, 노숙인들이 실제로 어떻게 느끼는지,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를 잘 아실뿐만 아니라, 그 연세에도 20대 같은 열정을 유지하고 계시더라고요.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철학이 19년 동안 영국 빅이슈를 꾸준히 팔리게 하는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미가 있어서 팔릴 수 있는 잡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부터 노숙인 자활의 방식에 이르기까지 말이에요. <빅이슈>는 노숙인이 왜 생기는지, 개개인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존 버드 씨 혼자의 힘이었다면 <빅이슈>를 시작할 수 없었을 겁니다. 버드 씨가 거리에서 생활하실 때 히피 생활을 하며 친하게 지냈던 고든 로딕(화장품 가게 ‘바디샵’ 창립자)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죠.
팔리는 잡지에 대해 조금 더 말씀드리자면, <빅이슈>는 재미있으면서 사회적인 의미가 있는 가치를 담으려고 해요. 예를 들면 가방을 소개해도, 에코 백이라고 해서 장바구니 대신 들고 다니는 친환경적 가방을 만드는 일을 소개하지요. 가방에 대해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거죠. 저희가 노숙인을 위한 잡지라고는 해도 노숙인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아요. 우리 사회에 노숙인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사람들이 몰라서 돕지 않는 게 아니잖아요. 저희 <빅이슈> 판매원의 개인적으로 친밀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노숙인에 대해 더 가까이 느끼시기를 원해요. 최재천 교수님이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하셨는데, 일반 사람들이 노숙인이나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알게 되면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노숙인들이 스스로를 노숙자로 커밍아웃하고 빅판이 되고 자활의 길을 시작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듯싶습니다. 빅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We are working, not begging.” 우리는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빅판들의 슬로건이에요. <빅이슈>가 시작된 지 19년 정도 된 영국에서는 돈을 주고 책은 안 줘도 된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남아공도 가끔 그런 분들이 계세요. 이런 경우는 사실 구걸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 판매원들은 그렇게 정당한 노동이 아닌 일로 들어오는 공돈은 정중하게 사양하고, 잔돈도 꼭 챙겨 드리도록 하고 있어요. 돈을 많이 벌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도 남들과 동등한 한 사람이라는 존재감을 갖는 것 역시 중요한 것입니다.
저희 <빅이슈> 직원들도 종종 판매원들을 도와 거리에 나서기도 하는데요. 한 두어 시간만 서 있으면 느껴져요. 사람들이 웃지 않고 그냥 지나갈 때, 없는 척 무시하고 지나갈 때 느껴지는 좌절감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 걸 극복하고 나면 정말 빅판(빅이슈 판매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오히려 지나가는 분들이 이 분들 덕분에 기쁨을 느끼고 의지가 되었다고 하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문자나 홈페이지로 그 사실을 알려 주시기도 하고요.
처음에 노숙인들이 판매원이 되려고 오시면 상담을 해서 팔려는 의지가 있는가 확인해요. 거리에서 팔려면 자신이 노숙인이라고 커밍아웃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자신을 인정할 준비가 되셨는지 확인을 하고, 무료로 10권을 드리면 권당 3000원에 팔아요. 10권을 다 팔면 30000원이 생기는데 그걸로 권당 1400원씩 주고 스무 권을 더 삽니다. 그런 식으로 판매하는 책을 늘려가는 거죠. 그리고 보름간 꾸준히 팔면 <빅이슈>에서 고시원을 구해드려요. 고시원에 살면서 꾸준히 판매를 하면 다음 달 부터는 스스로 고시원비를 낼 수 있는 비용을 마련할 수 있게 되지요. 하루 여덟 시간씩 일주일에 5일 이상 열심히 일하면 평균 80만 원 정도 벌 수 있는데요. 그렇게 6개월을 지내면 주거 복지 관련 단체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월세 집을 구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정도가 되면 고정적인 수입도 생기고, 집을 유지할 수도 있으며, 길에서 만난 단골들과 교류도 하고, 때론 떨어져 지내던 가족과도 합칠 수 있으니까 더 이상은 노숙인이 아닌 거죠. 영국에서는 <빅이슈>를 통해 5500명이 자립했다고 합니다.
금융 위기 때 노숙인이 된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 중에는 영업 능력을 갖춘 분들도 있어요. 워낙 열심이어서 주말에도 일하고 싶어 하시고,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광고지도 만들어서 책마다 끼워 넣는 분도 계시죠. 열심히 일해서 저축도 하시고요. 하지만 그보다 더 저를 감동하게 하는 건 서울대 입구역 3번 출구에서 판매하시는 강희석 씨 같은 경우인데요. 이 분은 새로 판매원이 되겠다는 사람이 오면 자기 일은 뒤로 미루시고, 새로 오신 분들의 판매를 나서서 도와주세요. 최고 판매 기록자여서가 아니라, 남을 챙기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어떤 판매원 한 분은 길에서 책을 판매하시다가 낯선 사람들에게 <빅이슈>를 비롯해 가진 것을 다 뺏겼던 적이 있어요. 몸이 약간 불편하셔서 그런지 종종 그런 일을 당한다고 해요. 그런데 다른 판매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저희 직원들이 알기도 전에 그분께 책을 나눠 주셨기 때문에 그분이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나중에 들었습니다. 그런 걸 보면서 저희가 오히려 용기를 얻어요. 중요한 것은 사람마다 다른 조건, 생활을 떠나 함께 사는 즐거움을 나누는 정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8월 말까지 <빅이슈> 2호가 9천여 부 판매되고 2개월여 활동한 판매원의 평균 수입이 80만 원이라는 수치도 놀라운 것이지만, <빅이슈>를 통해서 노숙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변화되고 잡지를 만드는 사람과 판매하는 노숙인과 구매하는 독자가 서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 더 놀라운 성취라고 생각해요.
<빅이슈>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나눔과 기부하는 문화를 널리 확산시키는 전도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직원들과 재능 기부자들은 어떤 식으로 참여하고 있습니까
20여 명의 청년 직원들, 각 분야의 전문가, 그리고 수많은 재능과 시간을 기부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편집국에서는 잡지를 만들고, 영업국에서는 판매를 관리하며 빅판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문화사업국에서는 <빅이슈>가 사회와 만날 수 있도록 접점 역할을 하고 있어요. 사실 다른 직장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분들도 많은데, <빅이슈>가 좋아서 모인 거죠.
<빅이슈>는 생활문화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카프리오같은 세계적인 배우가 표지에 나오고, 광고 전문가 이제석 씨가 표지를 디자인하며, <시사인> 고재열 기자나, 방송인 김미화 씨 같이 특출한 재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만 <빅이슈>에 기여하는 게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이 블로그에 글 한 줄 올리고, 포털 사이트에 댓글 하나 달아 주고, 친구와 직장 동료들과 <빅이슈>에 관해 수다를 나누는 것 또한 큰 기여죠.
우선 홈리스월드컵이 있습니다. 올해가 8회째인데요. 브라질에서 9월 19일부터 26일까지 여드레 동안 열리고 약 64개국에서 참가합니다. 축구가 아닌 4인제 풋살로 전후반 7분씩 14분 동안 진행됩니다. 알코올 중독자, 길거리 잡지 판매원, 난민, 혹은 자연재해 때문에 공동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분들이 참여해요. 즐기면서 참여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이벤트로 빈곤과 노숙 문제를 이야기하게 되는 거죠. 출전 선수들에게 삶의 동기도 심어 주고, 자활 의지를 키워서 생활을 개선하는 효과도 이미 입증했고요. 올해는 우리도 첫 출전합니다. 매주 만나는 <빅이슈> 수다회 ‘일단 만나요’도 있어요. 매주 <빅이슈> 재능 기부하시는 분이나 열독자, 혹은 <빅이슈>에 관심이 있다고 하시는 분들이 만나요. 서로 간에 간격을 줄여가는 거죠. <빅이슈코리아>를 향한 뜨거운 반응을 보면서 그동안 우리 안에 잠재된 수요가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껴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꼭 희생을 담보로 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것을 즐기고,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즐거워서 일한다면 같이 하자고 권하기도 쉽고, 또 같이 하면 더 쉽잖아요.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요
<빅이슈> 자체가 화제가 되고 기사화되고 있는데요. <빅이슈>가 뉴스가 되지 않고 생활이 되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어요. 또 <빅이슈>를 통해서 사람들이 즐거워졌으면 해요. 바라는 것은 구체적이어야 이루어지기 쉬우니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지금도 많은 사람이 즐겁게 일하고 있긴 하지만, 판매원 옆에 서서 사회와 판매원 사이의 징검다리가 되어 줄 빅판 도우미도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빅판 도우미는 가족이나 교회 소모임, 학교나 직장 동호회 단위로 한다면 더 즐겁죠. <빅이슈>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분이 우리 <빅이슈>와 함께 재미난 일 많이 경험하시기 바라요.
자이니치 재일 조선인 양석일 작가는 “환한 빛 속에 있는 사람은 어둠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보려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존재감이 사라진 채 엄혹한 상황에 방치됩니다”라고 말했다. 예수님도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말씀을 ‘가난한 자들과 함께 그들의 문제와 고통을 볼 수 있는 자리에 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데 동의한다. 우리는 노숙인이나 어둠에 있는 사람들을 피하고 벽을 세워 보이지 않게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지난 5월 공무원들이 청와대에 모여서 G20 정상회의 기간 중 노숙인들을 보이지 않게 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교회의 문턱도 높기는 매한가지다. 과연, <빅이슈>의 외침이 진동하는 곳마다 가난한 자와 부자 사이의 두려움의 벽이 허물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인터뷰어 이광하 편집장 33terry@goscon.co.kr
사진 김은석 기자 warmer@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