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을 위한 준비

[246호 메시아 예수의 복음 26] 마가복음 14장 1~42절

2011-03-27     신현우

마가복음 14:1~42은 예수께서 수난당하시기 전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다. 예수께서는 고난을 당할 준비를 하시며, 기름 부음을 받으시고 유월절 만찬을 나누시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하신다. 이러한 예수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제자들 중에 한 사람인 유다는 예수를 배반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넘겨주기로 한다. 또한 제자들은 결국 예수를 버리고 떠나게 되리라 예언된다. 이러한 대조를 염두에 두고 보면 본문의 구조를 다음처럼 분석할 수 있다.

 A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B 기름 부음을 받으시는 예수
 A' 예수를 배반하는 유다
 B' 유월절 만찬을 나누시는 예수
 A'' 예수를 버릴 제자들
 B''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는 예수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1~2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체포하여 죽이고자 한다. 그들의 의도는 이미 12:12에 암시되어 있다. 그들이 예수를 죽이고자 한 이유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고 부르며 성전과 대제사장들을 비판하였기 때문일 것이다(11:17). 또한 서기관들의 신학과 행위를 비판하셨기 때문일 것이다(12:35~40). 그들은 반성하고 회개하는 편을 선택하지 않고 비판을 가한 예수를 죽이는 쪽을 선택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얼마나 악한지 잘 보여 준다. 그들은 잘못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잘못을 시인하지 않으며,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을 죽일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곧 시작될 유월절, 무교절 명절은 피해서 예수를 죽이려고 한다(2절). 이 명절에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많이 모여 있으므로 민란이 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2절). 그들은 예수를 죽이는 일이 과연 정당한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이 고려한 것은 민란의 가능성이었다. 그들은 많은 사람이 예수를 따르고 있기에 예수를 체포하면 민란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에게는 사람들이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부작용 없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들에게는 오직 정치적인 고려가 있을 뿐이었다.
 
최고 종교 지도자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지적에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를 죽이고자 했듯이,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도 이렇게 될 수 있다. 바른 지적을 받아들이고 겸허하게 반성하기보다 자기들의 권력에 심취하여 스스로 무오하다고 믿으며 정당화하기 쉽다. 나아가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적의를 품고 공격하기 쉽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렇게 되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지 않으면 예수를 죽인 세력처럼 되어 오히려 예수를 바르게 따르는 자들을 박해하기 때문이다.
 
기름 부음을 받으시는 예수 (3~9절)

한 여인이 예수께 향유를 부었다. ‘나드’는 인도로부터 수입하는 값비싼 향유로 이 여인이 부은 향유는 300일치 임금에 해당했다(5절). 이 여인은 이렇게 비싼 향유를 왜 예수께 부었을까? 예수께서는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한 행위라고 해석하신다(8절). 또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인이 향유를 부은 일이 전해질 것이라고 한다(9절).

이 여인이 향유를 부은 일이 왜 복음과 관계될까? 복음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막 1:14~15).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왔는가? 메시아 예수를 통하여 왔다. 그래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는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선포한다. 구원자라는 의미로 사용된 ‘메시아’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는 “기름 부음 받은 자”란 뜻이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께서 누구에게 기름 부음을 받았는지 궁금히 여길 것이므로 향유를 예수께 부은 여인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전해질 수밖에 없다.

예수는 여인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다. 대제사장이나 선지자가 아닌 이름 없는 한 여인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다. 예수께서 여인에게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해서 메시아로서 그 권위가 손상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름 없는 한 여인에게는 메시아에게 기름을 부었다는 영광이 주어진다. 예수를 통해 온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름 없는 자들이 귀하게 여김을 받는다. 당시에 인권을 누리지 못하던 여인들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메시아에게 기름 붓는 역할을 하는 귀한 존재가 된다. 한 이름 없는 여인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 우리가 믿는 메시아는 그런 메시아시다. 그 메시아는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오시고 우리의 고통을 담당하시며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분이다.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메시아시다.

예수를 배반하는 유다 (10~11절)

한 이름 없는 여인이 예수께 기름을 부어 메시아이심을 고백하고 선포한 한 후에,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유다는 예수를 배반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넘기기로 하고 돈을 받는다(10~11절). 이름 없는 한 여인이 돈을 포기하며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일을 할 때, 예수의 제자로 택함 받은 한 남자는 돈을 받고 예수를 배신하는 일을 한다.
 
이러한 대조를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예수를 가까이 따르며 많은 가르침을 받은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것처럼 교회의 지도자들도 예수를 배신할 수 있다. 이름 없는 성도들이 정성과 헌금을 드리며 예수를 바르게 믿고 전하는 역할을 할 때, 이름난 교계 인사들은 예수를 배반하고 돈을 챙긴다. 목사나 장로, 신학자라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교계에서 이름난 유명한 목사가 되었다고 안심해서도 안 된다. 돈을 받고 예수를 팔아넘기는 가룟 유다의 운명을 당하지 않도록 늘 근신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오늘날에도 예수께 인정받는 사람들은 이름 없이 예수께 헌신하는 자들이다. 그들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들이며 예수께 참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이다.

유월절 만찬을 나누시는 예수 (12~26절)

예수께서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시며 다락방을 구하시는 과정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위해 나귀를 준비하신 과정과 유사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예수의 예언이 성취되는데 이것은 예수를 통해 진행되는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임을 암시한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만찬을 가족과 함께 나누는데,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나누셨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의 가족에 해당함을 암시한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이가 곧 예수의 가족이다. 따라서 교회는 예수의 가족이다.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 자신을 배신할 것을 예언하신다(18절). 예수와 함께 유월절 식사를 나누는 예수의 새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예수를 배반한다. 이처럼 교회 속에 예수를 배반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예수께서는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고 하신다(18절). ‘나와 함께 먹는 자’는 시편 41:9을 연상하게 하며 가까운 사람을 가리킨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시 41:9).

예수와 가까운 사람도 예수를 배신한다. 그러므로 예수께 가까이 다가갔다고 자랑하거나 안심해서는 안 된다. 목사 중에서 예수를 배신하는 자가 나오고, 유명한 교계 지도자들 중에 예수를 파는 자가 나온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예수를 욕되게 한다. 예수를 배신하는 자들은 예수 가까이 있는 교인 중에서 나온다. 우리는 교인이 되어 교회에 출석하거나 활동하며 봉사하는 일로 자랑을 삼을 수 없다. 예수를 바르게 따르지 않으면 아무리 예수께 가까이 다가가더라도 예수를 배신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설명해 주신다(24절). ‘피를 흘리다’라는 표현은 죽음을 의미한다. 이는 폭력을 당해 죽는 것을 가리킨다(창세기 4:10~11; 9:6; 신명기 19:10; 왕하 21:16; 시편 106:38; 예레미야 7:6; 마태 23:35). 예수께서는 잔인한 죽음을 당하신다. 그러한 죽음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선 “많은 사람을 위”해서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는 이사야 53:12(70인역)을 배경으로 하며, 예수의 죽음에 대속적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사 53:12).

예수의 죽음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여 대신 당하는 죽음이다. 그들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대속의 제물로 죽는 죽음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죄 사함을 받고 회복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또한 언약을 위한 죽음이다(24절). ‘언약의 피’는 출애굽기 24:8, 예레미야 31:31~34; 스가랴 9:11(70인역)을 상기시킨다. 특히 예레미야 31:31~34은 이스라엘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게 될 것을 예언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과 맺는 새 언약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하여 새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기 위한 죽음이다. 본래 언약은 짐승의 피를 통해서 체결되었으나(출애굽기 24:8), 새 언약은 메시아의 피를 통해 체결되었다. 그 만큼 새 언약은 더 크고 위대한 언약이다. 이 새 언약에 이방인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음은 이방인이 새 출애굽에 참여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마가복음 전체 내용을 고려할 때 분명하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시면서 하나님 나라가 언제 시작되는지를 알려 주신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5절).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포도주를 가리키는 셈어적 표현이다. ‘새 것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까이논’(kaino,n)은 형용사의 목적격 형태로서 부사적 기능을 하여 “새로” “다시”라는 뜻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 후에 다시 포도주를 마실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언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지 알려 주신다.
 
예수께서 언제 다시 포도주를 마시는가?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포도주를 거부하신다(15:23).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는 포도주를 드신다(15:36).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실 때 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는데(1:14~15), 이 선포대로 하나님 나라는 곧 임하였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약속을 성취하는 사건이었다.
 
예수를 버릴 제자들 (27~31절)

예수께서는 가룟 유다만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자신을 버리게 될 것임을 예언하신다(27절). 이 예언은 곧 성취된다(14:50). 베드로는 자신이 예외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29절).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그날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자신을 세 번 부인하게 될 것을 예언한다(30절).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닭이 두 번 울었다. 한 번은 자정을 알리기 위해 강제로 울렸고, 한 번은 새벽에 자연스레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새벽이 되기 전에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될 터였다. 실제로 베드로는 이 예언대로 예수를 부인하였다(14:66~72).
 
예수께서는 당시 최고 종교 지도자들에게 정죄받는 고통뿐 아니라, 한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다른 모든 제자에게 버림받는 고통을 당하셔야 했다. 십자가 고난은 이러한 고통의 절정에서 나무에 달려 죽음으로써 신명기 21:23에 의하여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여겨지는 고난이었다. 예수께서 가셔야 했던 길은 이토록 비참하고 외로운 고난의 길이었다.
 
그러나 이후에 부활이 있음을 예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다(28절). 예수께서는 다시 살아나신 후에 갈릴리로 제자들보다 먼저 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8절). 이 말씀대로 예수께서는 다시 살아나셔서 갈릴리로 가신다(16:7). 제자들은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지만 부활하신 예수를 갈릴리에서 뵙게 될 것이다(16:7).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는 예수 (32~42절)

예수께서는 고난을 앞두고 심히 힘들어 하신다(34절). 그리하여 이 고통을 피하기를 원하신다(36절). 예수께서는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36절). 이 기도는 예수께서 원하시는 일은 고난을 피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그 고난을 당하는 것임을 전제한다. 이처럼 예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분열되는 것은 예수께서 인성을 입고 계셨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육체를 입으시고 인간이 겪는 고통을 고스란히 당하셨다. 그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까지 그대로 가지셨으나 마침내 하나님께 순종하셨다. 우리 주님은 인간의 연약한 마음과 고통을 모르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참으로 사람이셨다. 우리가 그분을 참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때에도 우리는 그분이 참으로 사람이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신다(36절). 예수의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지만, 이러한 예정을 바꾸는 일을 하나님이 하실 수 있음이 기도에 암시되어 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예정을 바꾸는 일까지 포함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 속에 갇히시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이를 전제하고 기도하신다. 솔직하게 당신이 원하는 바를 아뢰신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신다. 우리도 이처럼 우리가 원하는 바를 솔직하게 아뢰는 기도를 올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바를 아뢰는 솔직함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순종으로 구성된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을 때라야 우리 기도는 우리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본받는 것임을 잊지 말자.

<성경 공부를 위한 토론 문제>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1~2절)

1. (관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어떤 일을 하고자 했나요? (1절)

2. (해석) 그들은 왜 그렇게 하고자 했을까요? (마가 11:17; 12:35~40 참조)

3. (적용) 우리의 잘못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름 부음을 받으시는 예수 (3~9절)

4. (관찰) 한 여인이 와서 예수께 어떻게 했나요? (3절)

5. (관찰) 사람들은 이 여인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했나요? (4~5절)

6. (해석) 이 여인은 값비싼 향유(300 데나리온 = 300일치 임금에 해당)를 예수님의 머리에 왜 부었을까요? (8~9절 참조)

7. (해석) 예수께서는 왜 선지자나 제사장이 아닌 이름 없는 한 여인에게 메시아로서 기름 부음을 받았을까요?

8. (적용) 이름 없는 한 여인에게 기름 붓는 특권을 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어떤 소망을 품을 수 있나요?

예수를 배반하는 유다 (10~11절)

9. (관찰) 가룟 유다는 어떤 일을 했나요? (10~11절)

10. (해석) 가룟 유다는 왜 그렇게 했을까요?

11. (적용)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는 일을 한 것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경고를 받게 되나요?

유월절 만찬을 나누시는 예수 (12~26절)

12. (관찰) 예수께서는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어떤 예언을 하셨나요? (18절)

13. (해석) ‘나와 함께 먹는 자’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나요? (시편 41:9 참조)

14. (적용) 예수와 가까운 사람이 예수님을 배반한 일을 보면 오늘날 예수님을 배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 중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나요?

15. (관찰)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해 주셨나요? (24절)

16. (해석) ‘많은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당하는 것은 어떤 죽음을 가리키나요? (이사야 53:12 참조)

17. (적용) 예수님의 죽음은 나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18. (해석) ‘언약의 피’란 무엇을 위한 피인가요? (예레미야 31:31~34)

19. (적용)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언약을 맺기 위한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되었나요?

20. (관찰) 예수께서는 언제 다시(‘새것으로’ = ‘까이논’ = 다시) 포도주(= 포도나무에서 난 것)를 마시게 된다고 하셨나요? (25절)

21. (관찰) 예수께서는 언제 다시 포도주를 드셨나요? (15:23, 36)

22. (해석)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는 언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나요?

예수를 버릴 제자들 (27~31절)

23. (관찰)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어떤 행동을 하리라고 예언하셨나요? (27절)

24. (해석) 제자들이 그렇게 한 후 대제사장들에게 정죄되고 외롭게 십자가형을 당한 예수님의 심경은 어떠했을까요?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는 예수 (32~42절)

25. (관찰) 고난을 앞두고 예수께서는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되었나요?

26. (관찰)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어떻게 기도하셨나요? (36절)

27. (해석) 예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28. (해석)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29. (해석) 하나님의 전능성은 자신의 계획(예정)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나요? (36절)

30. (적용) 예수님의 기도를 볼 때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함을 배울 수 있나요?

신현우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shin@wg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