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다독이는 반짝반짝 빛나는 희망

[270호 편들고 싶은 사람] 성폭력 피해 생존자 은수연 씨

2013-04-18     김진형

▲ ⓒ김진형
엄밀히 말해, 그녀의 편을 들고자 만났으나, 그녀가 우리의 편을 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녀는 숱한 고통에 상처 입은 사람들을 보듬는다. 그녀를 보고 가슴속 깊은 상처를 꺼내 놓는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신음을 토한다. 지독한 슬픔, 혹은 두려움과 마주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마침내 용기를 내어 길을 걷는다. 그녀는 앞서 걷는 희망의 존재인 셈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친족 성폭력 생존자 수기를 쓴 그녀를 희망의 지표로 삼는 사람들은 비단 성폭력 피해자들만이 아니다. 나도 그랬으니까.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던 유쾌한 인터뷰였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은 종종 울어야 했다. 그녀가 즐겨보던 드라마 <야왕> 마지막회가 하던 지난 4월 2일 홍대 앞 어느 카페에서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저자 은수연(가명) 씨를 만났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대화로 비록 “야왕”은 못봤지만, 유쾌한 희망이 반짝반짝 빛나던 시간이었다.
 
-자신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서울의 많고 많은 빈곤한 비혼 여성이에요. 카페 가서 혼자 놀기 좋아하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유인으로 살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클래식만 나오는 라디오 듣는 것도 좋아해요. 영화나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해요. 앗, 오늘 “야왕” 마지막회 하는 날인데, 그 전에 인터뷰가 끝날까요?(웃음) “야왕”의 여주인공이 성폭력 피해 여성으로 나오는데 그 끝이 어떨지 궁금해요. 아참, 드라마나 영화는 왜 성폭력당한 여주인공을 이상하게만 그리는지 속상해요. 그리고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 작가를 꿈꾸죠. 평소 좀더 아끼고 가난하게 살면서, 그렇게 모은 돈으로 여행하기를 좋아해요. 여행은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최대의 자유죠. 여행지에서 맞는 아침을 사랑해요. 여행을 가기 어려우면, 피정의 집 같은 곳에 들어가서 쉬다 오기도 해요.
 
-지난 3월 7일 전국의 판사들과 대화했다고 들었어요. 

성범죄 전담 재판부 판사 120여 분이 모였는데, 성폭력 생존자의 이야기를 듣는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해요. 짤막한 발제를 하고 토론회에 참여했어요. 씩씩하게 하고 싶은 얘기를 다했어요. 그리고 생존자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말하기보단, 판사들의 고충을 먼저 이해해 드리고 싶었어요. 참과 거짓의 경계에서 판결을 내려야 하는 그들의 심적 고뇌를 위로해 드렸죠. 2010년 대구의 한 부장판사가 자살했거든요. 그분이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그런 글을 남겼다고 해요. “판사는 만능이 아니다. 재판에 있어서 진실을 아는 사람은 판사가 아니라 당사자 본인들이다.” 판사들도 인간적으로 고되고, 힘든 상황에 있는 분들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어요.
 
-오히려 판사들이 위로받는 자리였군요.(웃음)

토론회의 좌장을 맡았던 판사님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가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 보호 우수 사례로 ‘디딤돌상’을 드린 분이었어요. 그분은 한 재판에서 피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유무죄를 떠나 성관계가 있었다고 해서 인간이 존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본인 자신을 파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픔을 잘 이겨 내길 바란다” 라고요. 그런 마음을 가진 판사들의 진심을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었어요. 그 자리에서 한 판사님이 “피해자를 만날 때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느냐” 하는 질문을 하셨는데, 뭐라고 답해야 할지 하나님께 마음으로 기도한 뒤 이렇게 답했죠.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 달라고요. 물론, 그건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요. 그러나 직접 말하지는 못해도 그런 마음으로 피해자를 대할 때, 피해자들의 수치심을 덜어주고 마음을 열게 해 줄 거라고 했어요.  
 
-성폭력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대처 방식을 어떻게 보세요.

대부분 가해자 중심으로 집중하는 것 같아요. 사건이 발생하면 형량을 높이거나 화학적·물리적 거세 등 처벌 수위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는 게 그 증거죠.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범죄율은 줄지 않아요. 이를 두고 어느 검사님이 “그것은 마치 괴물을 잡기 위해 이 사회 전체가 괴물이 되는 것과 같다”고 하셨는데, 그 말에 동감해요. 괴물을 잡기 위해 모두가 괴물이 되는 거죠. 사회가 온통 가해자에게 집중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방치되는 셈인데, 이건 아니죠. 무엇보다 피해자의 인권과 삶을 돌보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가가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하니까 시민단체들이 나서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참 많아요. 사실 우리나라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시작한 것은 시민단체였죠.
 
▲ ⓒ김진형

-왜 그런 방식으로 대처하는 걸까요?

가해자에게 집중하는 것이 돈은 적게 들면서도 티는 확실하게 나거든요. 뭔가 하고 있는 것 같잖아요.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많은 비용과 수고가 들지만, 금세 눈에 띄는 성과가 안 나오거든요.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에요. 어떤 전문가들은 피해자 대부분이 정신 질환을 겪기 때문에 격리 수용하고 약물 등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하더군요.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안전한 일상의 회복이죠. 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했는데, 가해자는 여전히 집을 차지하는 반면 딸은 도망쳐야 해요. 그게 우리 현실이거든요. 저도 집에서 탈출한 이후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고, 삶의 공간도 일정치 않아 기숙사, 반지하방 생활 등 고생을 많이 했어요. 학비도 제때 낸 적이 한 번도 없고요. 생존자로서 안전한 일상생활을 회복해 갈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 주면 좋겠어요. 의식주를 비롯해서 자립을 위해서 공부를 하거나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죠.
 
-언론을 비롯해서,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우리 사회 전반의 사고방식에도 문제가 많은 것 같은데요.

제목에 빨간 딱지를 붙여서 한 번이라도 더 클릭하게 하려는 언론을 보면 화가 나요. 기사의 목적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성폭력 사건을 자세히 묘사해서 다루기도 하죠. 제 책이나 인터뷰를 다루는 기사들도 그런 경우가 있어요. 저는 끔찍한 사건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살아 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거거든요. 얼마 전 한 매체가 짧게 전화 인터뷰를 한 후 “저는 아빠의 노리개가 아니에요”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더군요. 내용과도 상관없는 제목 때문에 기자에게 항의했어요.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직은 ‘폭력’보다는 ‘성’에 꽂혀 있죠. 피해자에 대한 감수성이 없는 것 같아요. 타인의 고통에 대한 민감함이 곧 인권 감수성이라고 생각해요. ‘나라면’ 그리고 ‘너라면’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사건들을 바라보고 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사진 제공: 한국성폭력상담소

-책을 보면, 9년간 아버지의 폭력을 견뎌야 했던 잔혹한 세월을 보내고 나서 “아, 나는 자유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라고 쓰셨는데요. 

맞아요! 하지만 저는 가난하기 때문에, 무한정 그것을 누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제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해요. 예를 들면, 제가 반신욕 하는 것을 좋아해서 얼마 전 제 욕실 크기에 딱 맞는 빨간 대야를 샀어요. 좋은 욕실을 갖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지만, 빨간 대야에 ‘청주 반신욕’을 즐기는 건 저의 자유지요.(웃음)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총장이 되었던 루스 시먼스 브라운대학교 총장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나는 불가능한 것과 어려운 것을 구분한다. 불가능한 것은 포기하지만, 어려운 것은 최선의 노력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저도 그래요. 할 수 없는 건 미련 없이 신속하게 포기하지만,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자유를 찾아 노력하는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거죠.
 
-대단히 현실적인 자유인이시군요.

지옥에서 탈출한 다음, ‘내가 이렇게 자유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어요. 감춘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다 풀어헤쳐 내놓는다고 보잘것없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말하고 싶은 만큼 말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은 분명하게 표현하며 살고 싶어요. 제가 자기 표현을 잘하는 편이에요. 일터에서도 윗사람들에게도 주눅 들지 않고 얘기해요. 그러면 그분들이 그러세요. “너는 고생 안 하고 자란 티가 너무 난다”고요.(웃음) 생각해 보면, 아빠에게 당하던 그때도 제게 주어진 시간과 환경을 소중히 지키고 누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은,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저만의 공간이잖아요. 전교 부회장 선거에도 출마하고, 이런저런 경시대회에도 나가 보고, 짝사랑, 첫사랑도 다 해 봤어요. 그리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집에서 예습과 복습은 전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수업 중에 한 번도 졸지 않았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survivor)’라고 부르더군요. “좌절과 희망을 반복하면서도 누구보다 질긴 생명력과 존엄성을 지닌” 생존자로서 치유와 회복의 길을 가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요.

피해자의 안전한 일상이 회복될 때, 비로소 그들은 생존자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치유 프로그램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갖는 일이에요. 피해 아이들을 데리고 캠프를 간 적이 있어요. 아무 프로그램도 준비하지 않고 밤낮 없이 신나게 놀고, 밤새 수다도 떨었어요. 가족끼리 여행 가는데 프로그램 같은 건 짜지 않잖아요. 근데 그 캠프를 다녀온 직후, 어떤 상담에서도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던 한 아이가 자기의 상처를 꺼내 놓기 시작했어요. 일상이 회복되면 숨어 있던 상처는 건강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 같아요.

피해자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제가 그들의 엄마로 평생 같이 살 수는 없는 걸요. 학원에도 다니고 친구도 사귀면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죠. 의존적인 존재에서 언젠가는 벗어나야 하니까. 가해자에 대한 원망에서 자유로워져야 해요. 그런 원망으로 자기 삶을 포기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해요. 언제까지나 그걸 핑계 대며 살 수는 없잖아요. 이렇게 말하면 그 아이들이 싫어할 수 있지만 어떡해요. 이게 현실인 걸요.
 
-수연 씨도 그런 힘겨운 시간을 지나오신 거죠.

지금도 가끔 마음이 무너지는 날이 있어요. 혼자 울어야 할 때도 있죠. 너무 외롭고, 어떤 때는 죽음이 가장 편할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그것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죠. 무엇보다 자신한테 속으면 안돼요. ‘난 이제 됐어’라며 강한 척하는 것은 실상 강한 것이 아닐 때가 많아요. 밖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내면이 중요한 거죠. 단단한 내면을 가꾸는 것이 중요해요. 스스로를 많이 위로하고 사랑하는 것이 중요해요. 자신을 위해 많이 울어 주는 것, 많이 기도해 주는 것, 자신에게 시간을 많이 허락하는 것이 필요하죠.   
 
-아버지가 목사였습니다. 저라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들이 보이는 두 가지 반응이 있어요. 하나는 ‘거봐, 목사가 또 저런 짓을 저질렀어!’ ‘역시 개독교는 안 돼!’라며 비난하는 거죠. 다른 하나는, ‘목사’를 엿먹이고 더 나아가 기독교를 공격하려고 책을 썼다는 기독교인들의 반응이에요. 둘 다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거죠. 문제의 본질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비난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제가 당한 폭력을 낱낱이 드러낸 것뿐이에요. 그렇다고 아빠의 직업을 속일 수는 없잖아요. 저는 그 사람과는 다른 하나님을 믿었어요. 그 사람의 하나님은 밥벌이를 위한 대안이었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이에요. 저는 계속 ‘이 악한 사람에게서 구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어요. 끔찍한 세월이었지만, 그때 하나님과 가장 친밀했어요. 하나님과, 그때의 우정으로 지금껏 살고 있어요. 
 
▲ ⓒ김진형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없이 우리 교회 정문 앞 지붕 위에 달아놓은 나무 십자가가 땅으로 고꾸라졌다. 거꾸로 처박힌 십자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예수님을 진짜로 믿기 시작한 건.”

하나님이 교회 십자가를 쓰러뜨려 저를 구원하신 거죠. 엄마는 “그 사람이 천국 가면 나는 가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정말 그 사람은 ‘순수 악’ 같아요. 나중에 하나님 나라에 갔을 때, 하나님께 물어보려고 종이 한 장에 빼곡히 적어 놓은 질문들이 있었어요. 왜 이런 개떡 같은 아빠를 주셨나 같은 뭐 그런 질문들요. 천국에 이 종이 어떻게 들고 가지 고민했었죠.(웃음) 그런데 어느 날, 나중에 그분을 뵐 때 묻지 않아도 “아하” 하면서 다 이해되면 좋겠다 했어요. 그런 곳이 천국이 아닐까 싶었어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다 이해되는, 모든 인생의 질문들이 다 해소되는 그런 곳이 천국 아닐까 생각해요.

교회는 마치 탯줄 같은 존재였어요. 방황하면서도 결국 돌아갈 곳이었죠. 내가 하나님의 손을 놓아도, 그분이 나를 잡고 계시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하나님 앞에서 뻗대고 싶은 만큼 뻗댔거든요. 따지기도 하고, 교회를 끊기도 했죠. 그래도 하나님은 저를 놓지 않으셨어요. 제가 좀더 빠르게 치유되고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꺾일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북콘서트 때 “내게는 인복(人福)이 있는 것 같다”는 얘길 자주 하셨는데요.

내 곁을 지켜 준 교회 친구들, 신부님들, 수녀님들, 성폭력상담소 친구들, 김두식 교수님, 조국 교수님, 이금희 아나운서 등 모두 ‘탯줄’ 같은 사람들이죠.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하나님은 그런 분들을 저에게 선물로 주셨어요. 음, 중요한 건, 귀찮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 말이 슬프다는 분도 있었지만 그건 진실이에요. 나의 슬픔에 매몰되어 다른 사람들을 끊임없이 찾아가고 의지하고, 또 찾아가서도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그 사람들을 곁에 둘 수 없어요. 제 글쓰기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수연이는 글쓰기 하는 동안은 일주일에 한 번씩 보더니, 글쓰기 끝나니까 연락 딱 끊고 지내다, 출판되고 나서 나에게 연락을 하더라. 사람에게 기대지 않는 것 같고, 뭐가 중요한지 아는 사람 같다. 또 수연이는 글쓰기를 배우면서 아무리 쓴 소리를 해도 상처받지 않더라. 그게 은수연 곁에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인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너무 치대지 않고 혼자 놀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사람을 둘 수 있는 것 같아요.
 
-수연 씨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였나요.

10년도 더 전에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최영애 선생님이 툭 던지는 말로, 책을 써 보면 어떻겠느냐고 하셨어요. 그땐, ‘이딴 얘기를 무슨 책으로 쓰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안네의 일기》 무삭제판을 읽으며 글쓰기의 힘을 보았어요. 안네는 정말 쓰잘머리 없어 보이는 것들까지 세세하게 기록했어요. 나치 시대에 숨어 산 사람들의 삶을, 이 일기가 없었다면 아무도 알 수 없잖아요. 아빠라는 사람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은 그와 나 밖에 모르는데, 그 일들을 비밀로 남겨 두고 싶지 않았어요. 사진 찍듯이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싶었어요. 과장하지도 감추고 싶지도 않았어요.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들을 고스란히 기록하는 과정이 힘들지 않으셨나요?

왜 안 그랬겠어요. 수능 전날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면서는 정말 힘들었어요. 그 글을 쓸 땐 폭행의 현장이었던 모텔 앞까지 갔었어요. 몸으로 확인하는 거죠. 나는 이제 그 현장에 있지 않다는 것을. 저한테 글쓰기는 박스에다 저의 과거를 정리하는 거였어요. 캐비닛에 무언가를 정리하는 느낌, 이제는 저도 그것을 꺼내서 봐야 ‘아, 그때 그랬었지’라고 확인할 수 있는 거죠.
 
-어떤 책을 읽으셨고, 특히 도움이 되었던 책들이 궁금합니다.

제가 성경처럼 사랑하는 책이 있어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죠. 빅터는 수용소에서 겪은 끔찍한 일상을 무심한 듯한 태도로 낱낱이 기록하고 있어요. 이런 대목이 있어요. “감정, 그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한 거죠. 이 말은 정말 진리예요. 고통의 순간이었지만, 고통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나면 그게 내 속에서 분리되고, 정리되는 느낌이죠. 그렇게 기록해서 볼 때 고통의 의미를 제대로 발견할 수 있어요. 그리고 박완서 선생님의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읽고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하나님과 대결했던 시간을 기록한 묵상집이에요. 작가는 하나님께 가장 솔직한 언어로 자신에게 주어진 비극을 토로하고 원망하죠. 요즘은 고전이나 소설을 읽으려 해요. 인간의 욕구, 사랑 등을 보여 주는 게 재미있어서요.
 
-‘힐링’이 대세라고들 하는 이즈음, 이에 대해 너무 쉽게 접근하는 책들도 있는 것 같거든요. 

맞아요! 자기는 그런 고통을 겪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그저 예쁜 말로 다독이는 책이 있어요. 저는 책을 읽을 때, 책과 싸우듯이 읽거든요. 어떤 때는 저자를 찾아가기도 했어요. 신부님이셨는데, 찾아가서 따졌죠. “신부님은 상처를 받아 보기는 하셨나요? 어떻게 그렇게 쉽게 상처에 관해 이야기하고 용서를 말할 수 있는 거죠?” 결국 그 신부님은 저에게 “솔직히 별로 상처받은 적이 없었다. 용서하는 게 좋으니까 그렇게 쓴 거다.”라고 말씀하셨어요.(웃음)
 
-책을 읽으며, 아버지를 용서하는 대목에서 마음이 걸리더군요. 어떻게 그런 사람을 용서할 수 있죠?

제 책에 나오는 치유의 과정은 은수연의 것이지 일반화하면 안 될 것 같아요. 피해 사례별, 사람별로 다르게 접근해야 해요. 피해자가 자기의 길을 찾도록 북돋아 주는 것이 상담가의 역할이죠. 각 사람 안에 자신만의 치유의 힘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용서의 문제도 단계가 있고 사람마다 달라요. 열심히 미워할 때 치유가 빠른 사람이 있고, 용서를 하고 다 떨쳐 내야 치유가 되는 사람이 있어요. 다만 열심히 미워하고 분노한 후에 모든 것을 놓고 싶을 때가 있어요. 분노가 그 역할을 다하면 떠나보내야 해요. 분노를 계속 움켜쥐고 있으면, 그 분노가 저를 죽여요. 아빠를 향했던 분노가 다른 사람에게, 세상을 향해 표출돼요. 극심한 분노와 증오가 나를 끌고 가는 거죠. 저도 그랬어요. 예전 남자친구가 저에게 ‘분노는 나의 힘’을 보여 주는 삶을 사는 것 같다고 했거든요.(웃음) 그걸 놓아야 제가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용서하기로 했죠.
 
책에 보면, 아버지에게 쓴 편지가 나옵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쓰고 책임을 묻되, 용서한다고 썼지요.
추상적으로 용서하기 싫었어요. 장면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그 현장으로 돌아가서 계속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진짜 용서할 수 있어? 다시 화 안 낼 수 있어? 물론 지금도 울고, 분노해요. 하지만 저는 날마다 용서하기를 선택해요. 용서한다고, 그 고통이 저를 놓아 주지 않아요. 그 기억은 늘 집요하게 찾아오지만, 그때마다 그에 맞서 용서하기를 결단해요.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에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하셨는데, 예상을 깨고 직접 상을 받으셨지요. 그때 모두가 굉장한 감동을 받았는데요.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나요?

당연히 대리 수상을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그날 아침까지 수상 소감을 써서 보내지 못했어요. 그래서 아침에 결심했죠. 나부터 용기를 내자, 다른 생존자들보고 용기를 내라고 하기 전에 나부터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런 결단을 할 때 하나님을 믿어요. 제가 나설 때, 그분이 저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시는 것을요. 앞으로도 제가 드러나는 시기와 방식에 대해서, 하나님이 책임지실 수 있을 때 그렇게 하실 것 같아요. 물론 공적인 자리에 나설 때, 나름의 안전장치를 충분히 주문해요. 사진은 절대 찍지 않도록 요청하고 동영상이나 녹음 등도 안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죠. 책을 낼 때도, 필명으로 할지를 고민한 것이 아니라 실명으로 할지를 고민했어요. 이미경 선생님의 권유도 있었지만, 주변 지인들까지 노출되는 문제에 대해선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아직은 ‘은수연’으로 지내지만 우리 사회가 제가 드러나도 안전하다는 게 확실해지면 굳이 필명을 쓰지 않아도 되겠죠.
 
-성폭력 피해자들이 철저히 숨어 살아야 하는 우리 사회 현실에서, ‘은수연’이라는 이름이 어떤 희망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말하기’의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숨어 산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고백하는 것을 보며, 저도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지난주에 있었던 북콘서트 때도 그랬거든요. 참가자들 가운데 성폭력 피해를 당한 이들이 자기 경험을 털어놓는 거죠. 책을 출간할 때, 남동생이 이렇게 말했어요. “누나, 이왕 쓸 거면 잘 써. 남자들이 많이 읽을 수 있게.” 우리 올케들도 책을 읽었는데, 제게 울면서 말했어요. “언니, 나 이제 언니 존경할 거예요. 전에는 내 딸들이 그런 일 당하지 않기만을 바랐는데, 이제는 그런 사고를 당하더라도 언니처럼 용기 있고 당당하고 맞서는 아이가 되기를 바랄 거예요”라고. 그때 정말 기뻤죠.
 
-마지막으로 <복음과상황>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자신이 속한 교회가 이런 속 깊은 상처를 나누고,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인지 한번 살펴봤으면 해요. 이 질문에 “예!” 라고 답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우리가 되면 좋겠어요. 참, 기도 부탁 하나 해도 되나요? 주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고 싶은데 제 진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고맙겠어요.

진행 정리_김진형 편집위원 soli02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