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는 무기 없는 세상”

[271호 편들고 싶은 사람] 무기제로 코디네이터 박승호 씨

2013-05-21     이범진

▲ 사진: 무기제로 제공
“내가 글을 쓰는 동안 고도로 문명화된 인간들이 머리 위로 비행을 하면서 나를 죽이려 했다. 그들은 내게 어떠한 적의도 느끼지 않고 있으며, 나 또한 그들에게 적의를 느끼지 않고 있다. … 그들 가운데 하나가 폭탄을 정확히 투하해 나를 산산조각 내는 데 성공한다 해도, 그로 인해 그들이 더 나쁜 꿈을 꾸게 되지 않을 것이다.”

조지 오웰이 《사자와 유니콘》 서두에 쓴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런던은 밤이 되면 독일 전투기의 폭격을 받았다. 죽고 죽이는 관계이지만 적의를 느끼지 않는 상태. 이를 두고, 평화주의 시민단체인 ‘무기제로’ 박승호 코디네이터(31)는 “첨단 무기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모호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자기 월급에서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국민연금이 민간인 피해 98퍼센트를 자랑하는 대량 살상무기 생산에 사용되어도, 우리는 전혀 ‘나쁜 꿈’을 꾸지 않는다. 

지난 4월 30일 서울 동교동 어느 카페에서 대량 살상무기를 주제로 시작된 인터뷰는 자연스레 신앙 이야기로 이어졌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평범하게 교회를 다니던 청년이 어떤 계기로 평화활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무기?군사?전쟁 문제와 기독교 신앙의 격렬한 부딪힘을 경험한 그에게서, 어색해진 ‘기독교’와 ‘평화’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은 헛되지 않았다.
 
‘평화활동가’는 개신교인들에게는 다소 거부감이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현실입니다. 군비 감축, 전쟁 반대, 병역 거부 등을 주장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잖아요. 그래서인지 평화활동가들 사이에서 ‘개신교인 박승호’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인상을 받았어요. 반대로 교회에서는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고요.

사실은 교회를 바꾸게 된 계기가 그거였어요. 물론 그때는 평화활동가로 일하기 전이었지만 이라크 파병을 지지하는 큰 교회에 다녔거든요. 너무 불편했어요. 예배 중에 파병을 반대하는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을 “종북” “좌빨”이라고 부르더군요. 그게 교회를 옮기게 된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였죠. 이후 교회를 옮기고 나서는 외롭다는 느낌을 딱히 가져본 적이 없어요. 지금 다니는 교회는 병역 거부를 하는 이들도 이해하려는 분위기거든요. 오히려 집에 가면 좀 외롭죠. 제가 주장하거나 추진하는 일들이 항상 소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이다 보니 아무래도 부모님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할 때가 많아요.

▲ ⓒ복음과상황 오지은
‘무기제로’라는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어떤 단체인가요?

무기제로는 평화활동가들이 모인 네트워크 단체예요. 평화주의?반군사주의자들의 네트워크 단체인 ‘전쟁없는세상’에서 전쟁수혜자(War profiteer)의 무기거래를 감시하고 무기와 관련된 문제를 널리 알리려는 목적으로 시작했어요. 2007년부터 시작해서 무기 생산과 수출 문제를 모니터링하고 세미나도 이어오고 있어요. 저는 무기제로 회원들과 함께 스터디를 하다가 2010년부터 활동가로 합류해서, 작년부터 무기제로의 코디네이터를 맡게 되었고요. 요즘은 ‘확산탄’ 금지운동에 초점을 맞춰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확산탄 금지운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무기제로가 어떤 단체인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확산탄(Cluster Bomb)은 커다란 폭탄 안에 수십, 수백 개의 작은 폭탄을 넣은 무기예요. 축구장 네다섯 개를 초토화할 수 있는 위력을 가졌어요. ‘죽음의 비’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심각한 점은 확산탄의 피해자 중 98퍼센트가 민간인이라는 거죠. 그들 중 3분의 1이 어린이들이고요. 무시할 수 없는 게 불발탄 사고이기도 해요. 현재 라오스에는 불발탄 피해자가 5만 명이 넘어요. 매년 300명 이상이 불발탄 폭발 사고를 당하는데, 약 40년 전 미국이 뿌린 2억 6천만 개의 작은 폭탄 중 아직 터지지 않은 것들이죠. 국제사회도 확산탄이 대표적 비인도주의 무기라는 데 주목하고 있어요. 2008년부터 이미 확산탄의 사용, 생산, 비축 등을 전면 금지하는 확산탄금지협약이 체결되어, 현재까지 112개 국가가 서명했어요. 국제사회에서 불법화된 무기의 확산을 막고자 이를 한국에 알리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무기 중에서도 ‘비인도 무기’가 있군요. 무기라면 다 비인도적인 것 같은데…. 

전쟁법에 따르면 무차별 공격이나 민간인의 고의적 공격은 금지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확산탄은 광범위한 지역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사실상 민간인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죠. 1965년부터 지금까지 확산탄으로 인한 피해자가 10만 명입니다. 당연히 민간인들만요. 

사실 10만 명이라는 통계 수치 안에서 10만 명의 고통은 감춰지는 것 같아요.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을 10만 번 공감하고 슬퍼해야 하는데, 숫자로 추상화된 정보를 얻고 끝나는 느낌이랄까요? 

맞아요.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전쟁의 풍경이 담긴 사진을 바라볼 때 연민을 느끼는 것 자체가 위선일 수 있다고 말했어요. 상대화, 객체화된 전쟁의 폐해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접하면서 ‘나는 가해자와 무관하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죠. 연민을 느낌으로써 자기는 이 전쟁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자기에게 스스로 ‘무죄 선고’를 내리는 거죠. 그런데 수전은 그들의 고통이 나와 관계있다는 점부터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지요.

그래서인지 국민연금이 확산탄 생산에 투자되고 있다는 소식은 개인적으로 충격이었지만 한편으론 반갑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전쟁무기 문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겠구나 싶었거든요. 국민연금과 확산탄의 관계, 좀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한국은 확산탄 생산과 수출 2위 국가입니다. 조사 결과 확산탄 생산 최대 기업 10개 중 두 개가 한국에 있었어요. 한화와 풍산이죠. 그리고 이들 회사의 최대 투자 단체가 바로 국민연금이고요. 국민연금이 한화 주식의 7.34퍼센트(2011.12), 풍산 주식의 9.26퍼센트(2012.9)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죠. 사회안전망을 위해서 조성된 국민연금이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는 무기를 만드는 곳에 투자되고 있다는 점은 정말 충격적이죠.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은 공적기금이 비인도 무기 생산 기업에 투자되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을 마련했는데, 정작 우리는 이에 대한 아무런 윤리 원칙도 없는 형편이죠. 결과적으로 우리가 국민연금으로 내는 돈이 ‘죽음의 비’를 뿌리는 데 사용되고 있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운동을 진행하나요?

확산탄 투자 철회 캠페인을 벌이고 있어요. 일단 사람들이 잘 모르던 사실이니까 대중적으로 알리는 차원에서요. 물론 중요한 것은 국민연금이 투자를 철회하도록 하는 거죠. 그러려면 국민연금이 비인도 무기를 생산하는 기업에 투자되는 것을 막기 위한 기금운용지침이 마련되게 해야 하죠. 그래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탄원서를 작성해서 보내고 있는데, 현재로선 더 많은 국민들이 참여해줘야 효과가 있을 것 같네요. 길거리에서 서명도 받고, 자료집도 만들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 쉽게 뛰어들 수 있는 분야가 아니잖아요. 

2004년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선교한국 기도합주회에서 평화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조직위원장이었던 김병년 목사님이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이라크 전쟁의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 하자고 했죠. 그때부터 이라크 전쟁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왜 수많은 선교단체가 있는데 그 어느 곳도 전쟁을 부추기는 요소들을 없애려 하지 않을까? 분쟁과 갈등으로 인한 전쟁을 없애는 것이 진정 복음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평화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동시에 시선의 전환이 왔어요. 이라크 전쟁 영상을 보는데 폭격기에서 폭탄을 뿌리는 장면에서 갑자기 앵글이 바뀌었죠. 제 머릿속에서요. 예전 같았으면 저의 앵글은 카메라의 시선과 같았겠죠. 그런데 이제는 쏟아져 내리는 폭탄을 땅에서 바라보는 앵글로 바뀐 거죠.

▲ ⓒ복음과상황 오지은
신앙적인 계기가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거네요. 피부로 느끼고 계시겠지만 불행하게도 기독교와 평화운동 사이에는 간극이 있잖아요. 그 사이에서 누구보다도 많이 고민했을 것 같네요. 기독교인 중에는 평화운동이 너무 급진적이라며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개인적 고민의 결과, 그리스도인이라면 전쟁만큼은 급진적인 반대를 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군대에서 정신교육을 하잖아요. 교육을 하는 의도는 분명해요. 북한 군인을 만났을 때 ‘적’(敵)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교육이에요. ‘사람’으로 보지 말라는 거죠. 그런데 이런 교육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봐야죠. 총을 겨눠야 하는 사람도 하나님 안에서 모두 형제라는 점을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기독교인들은 저보고 너무 감상적이고 이상적이래요. 저도 부정하지 않아요. 하나님 나라도 ‘이상’(理想)이잖아요. 이상에 맞추어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게 그리스도인이고요.

군대 이야기가 나와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어요. 평화활동가들과 기독교를 멀어지게 했던 이슈 중 하나가 양심적 병역거부잖아요.   

2007년에 노무현 정부가 유엔과 국가인권위의 권고안을 받아들여 대체복무를 도입할 계획이었잖아요. 물론 MB 정부 들어서 전면 백지화되었지만요. 이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의 개입이 있었어요. 대체복무제 시행이 여호와의증인에 대한 특혜라는 논리였죠.

혹시 병역거부를 하셨나요?

잠깐 고민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어요. 아쉽죠. 그러나 군대에서의 경험이 반면교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요. 처음으로 살인충동을 느꼈던 것도 군대였고, 폭력적 시스템의 일원이 된 경험도 군복무가 유일해요. 계급이 낮을 때는 괴롭힘을 당하고, 계급이 높아지면 괴롭히죠. 그 시스템의 일원이었다는 것이 아직도 부끄럽네요.

평화 감수성이 높은 사람의 군대 생활은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몸은 시스템을 따랐을지 몰라도 신앙과 대치되니까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저의 고민은 군종제도의 모순과 닿아있는지도 몰라요. 군대에 있는 교회에서 나눠 주는 전단지를 보면 “장병 여러분들이 전선에서 용맹하게 싸울 수 있도록 신앙심을 고취하고”라는 문장이 있어요. 앞뒤가 안 맞아요. 신앙심이 고취되면 어떻게 서로 죽이고 싸울 수 있겠어요. 그런데 군대 입장에서는 교회가 정신적으로 전투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 거죠. 실제로도 그럴 수 있고요. 하지만 제 상식에선 납득할 수 없었죠. 아무리 적군이라도 하나님 안에서 형제인데,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까요?

결국 군대와 신앙은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건가요?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보면 확실해요. 그때의 그리스도인들은 170년까지 군대에 복무했다는 기록이 없어요. 오히려 병역을 거부해서 죽음을 당한 기록이 있지요. 그리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신앙과 군대가 결코 융합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군대를 떠났어요. 이렇게 순수했던 교회가 국교가 되면서부터 타락했잖아요. 제도화된 교회가 되면서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고 힘으로 복음을 전하죠. 반(反)복음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구약성서를 예로 들면서 전쟁을 정당화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한 마디로 힘을 구축해서 평화를 지킨다는 논리인데요. 그리스도인의 접근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쟁의 근거로 구약성서를 자주 들이대는데 자세히 성경을 들여다보면 이스라엘은 한 번도 군사력으로 승리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승리하게 이끄신 것이죠. 그리스도인이 강력한 힘을 욕망한다는 것은 그의 믿음이 하나님께 근거하지 않았다는 증거 아닐까요?

현실적으로 군사 위협이 존재하기 때문에 방어적 측면에서라도 군대는 유지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군대의 전면적 폐지를 주장하진 않아요. 물론 궁극적으로 그런 세상이 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요. 무기 제로(Ø)를 지향하는 거죠. 그러나 전쟁을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의 영악함이 우리를 최소한의 군사 수준으로 머물게 하지 않아요. 무기 산업은 자본주의 핵심인 광고와 유사한 점이 있어요. 광고는 필요치 않은 것을 필요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데 무기 산업도 마찬가지죠.

▲ 사진: 무기제로 제공
예를 들면요?

그리스 출신의 무기상이 있었어요. 평화를 위해 무기를 사라고 호객해서 그리스에 무기를 팔았어요. 그러고는 그리스의 적대국인 터키에 가서 이 사실을 알리고 그 이상의 무기를 팔았죠. 그래야 방어할 수 있잖아요? 그러곤 다시 러시아로 달려가 그리스와 터키가 무기를 샀다며 그 이상의 무기를 더 팔았죠. 무기 산업의 실체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입니다. 안보에 대한 불안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서 무기를 사게 유도하는 거죠.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네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후 무기를 대량으로 사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더라고요.

한미동맹 강조를 하면서 미국이 무기를 사라고 부추기겠죠. 천문학적 액수일 거예요. 평화를 위해서 첨단 무기를 보유한다는 말은 사실 평화활동가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에요. 첨단화된 무기가 나올 때마다 우리 안전을 위해 끊임없이 사들여야 한다는 말이잖아요. 실제로 그렇고요. 첨단 무기가 우리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의심없이 믿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이런 허구를 드러내는 일이 우리 평화활동가의 일이겠죠.

정작 사람들은 그런 허구를 드러내는 일에 무관심하지 않나요?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공허할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이죠. 거리에 캠페인을 나가면 그런 무관심을 피부로 느껴요. 심지어 전쟁을 경험하신 어르신들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하고요. 운동하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과제이죠. 시민들에게 더 살갑게 다가가도록 노력해야겠죠. 우리가 소수이다 보니까 요즘엔 중간에 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활동으로 인한 의미 있는 변화들이 보이나요?

있을 것이라 믿어요. 지금은 말을 거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저도 말 거는 단계를 통해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고등학교 때 특전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요. 너무 멋있어 보여서 특전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죠. 그랬던 제가 설교를 통해서, 병역 거부자와 대화하면서, 거리의 시위자를 만나면서 이렇게 변했어요. 우리의 활동들도 누군가의 삶에 변화를 이끌어낼 거라 믿어요.

그 단계에서 뜻을 같이할 수 있는 교회가 함께해주면 좋겠네요.

맞아요. 교회가 다루고 교육해야 하는 내용이죠. 교회에서 시작해야 할 고민들이고요. 상황 빠진 복음을 다룰 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반하는 일들이 벌어질 때 급진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죠. 시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면서요. 실제적인 평화 담론이 활발하게 교회 안에서 논의되었다면 저도 교회를 옮기지는 않았겠죠.

교회와 평화 사이의 다리를 놓는 이 일을 계속 하실 계획이세요?

부족하지만 노력하고 싶어요.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어요. 언제까지나 “전쟁 나빠요”라고 말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지금 저의 활동들을 기독교 평화에 관한 공부로 이어가고 싶어요. 계속해서 다뤄야 할 이슈가 생기니까 마음이 지쳐요. 멈춰서 생각하거나 묵상하는 시간이 부족했거든요. 다시 되돌아보고 싶기도 하고요.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공부 방향이 있나요?

초기 기독교 메시지나 사례를 살펴볼까 해요. 초기가 아니라 해도 평화주의적인 교회의 모습을 찾아보고 싶어요. 지금 관심 두는 곳은 미국에 있는 메노나이트 신학교인데요. 기독교 평화학을 가르치는 곳이에요.

먹고 사는 문제는 힘들지 않나요?

제가 좀 대책이 없는 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먹는 것 빼고는 돈을 잘 쓰지 않아요. 먹고 사는 문제가 크긴 해요. 저 같은 경우 무기제로에서 일하기 전에 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한국지부에서 일했는데, 상근자였기에 월급이 꼬박꼬박 꾸준히 나왔어요. 그러다가 무기제로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생활비가 빠듯하죠. 자발적으로 어려운 삶을 택하긴 했지만, 많은 활동가들이 백만 원도 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해요. 월세 내기도 어렵죠. 그런데 뭐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는 것 같아요.

앰네스티에 쭉 있었으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요? 얼핏 비슷한 일로 보이기도 해서요.

물론 유사한 점도 많아요. 4년 정도 사형제도에 대해 담당을 했었어요. 사형제도의 밑바닥에는 ‘죽여도 되는 사람이 있다’는 전제와 의식이 숨어 있죠. 전쟁이 가능한 이유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인 것과 유사하죠. 그런데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와 평화운동은 미묘하게 달라요. 예를 들어 똑같이 병역 거부자를 위해 나서지만 앰네스티는 평화를 위해 대항하는 운동가로 보아서 돕는 게 아니죠. 개인의 사상과 자유를 보호해야 하기에 돕는 측면이 강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이쪽에 발을 들인 것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이 인터뷰의 콘셉트가 ‘편들어 준다’입니다. 독자들에게 특별히 호소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요즘 시대가 참 각박하잖아요. 다들 현실과 일상의 많은 문제들을 감당하기에도 어려울 텐데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미안해요. 그럼에도 한 번쯤은 멈춰서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무조건 ‘좌파’ ‘빨갱이’ ‘종북’이라고 할 게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대화의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실제적이고 직접적인 후원을 많이 해주시면 좋겠죠.(웃음)

진행·정리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