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기도만 했지…"

-765kV 송전탑 막는 밀양토박이 신현주 할아버지

2013-06-20     이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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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과상황 오지은

“대부분의 송전탑 전압은 154kV인데 이건 765kV로 숫자상으로는 5배다. 송전 용량은 4200메가와트로 무려 18배나 차이가 난다. 자동차 도로에 비유하면 2차선이 26차선이 되는 거다. … 실제로 주민들이 765kV 송전탑이 설치된 지역 답사를 많이 하셨는데, 그 지역 주민들의 한결같은 증언은 ‘사람이 살 수가 없다’는 거였다.” (<복음과상황> 2012년 9월호 ‘편들고 싶은 사람-765 송전탑 막는 그리스도인 이계삼’)

 

주민들의 송전탑반대운동에 따라 지난해 9월 이후 중단되었던 공사가, 8개월 만에 재개됐다. 농번기에 기습적으로 시작된 공사였다. 이 공사를 막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5월 24일, 이 소식을 접하고 탈핵희망버스(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기획)에 올랐다. (밀양 송전탑반대운동의 발단과 진행과정, 자세한 정보는 일반 언론이나, <복상> 2012년 9월호 ‘편들고 싶은 사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송전탑 공사가 재개된 현장, 이를 막는 마을 사람들 이야기는 84쪽 기자수첩에 자세히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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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과상황 이범진


이번 7월호 ‘편들고 싶은 사람’에서는 밀양토박이 신현주(73) 할아버지를 만났다. 농사일이 한창 바쁠 때임에도, 할아버지는 포클레인 앞을 지켰다. 그러다가 희망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당도하자 안심한 듯 돗자리에 누워 쪽잠을 청했다. ‘원전 마피아’들과 전선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던 할아버지의 삶을 들여다봤다. 한 사람의 개별적인 이야기였으나 모든 밀양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이었다.

88번 송전탑 공사현장에서 만난 신현주 어르신은 며칠 전 경찰들의 행동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송전탑 공사를 막던 마을 사람들이 경찰에 의해 진압된 장면이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 재생된다고 했다.

“공권력 횡포…, 당해보니까 알겠더라. 경찰이 줄지어 오기에 나는 우리 몸 상할까 보호하려고 온 줄 알았지. 우리를 개 끌다시피 끌어내서 한전 공사 도와주려고 온지는 생각도 못했다. 어쩌다가 대한민국 민주주의 경찰이 한전의 앞잡이 역할을 하게 됐나. 이래가지고 민주주의라 칼 수 있나. 철탑도 철탑이지만은 경찰이 그리한다는 게 괜히 섭섭하고 마음이 답답한 기다.”

전투경찰 7개 중대(약 500여 명)가 투입된 작전이었다. “병원으로 후송된 주민도 있었다”며 날선 비판을 쏟아내던 할아버지는 의외의 말로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걔들 뭐 다 내 손자뻘이다. 갸덜(그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노.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거겠지. 이 문제는 윗선에서 해결해야지.”

얼마 전 군에 입대한 손자가 계속 생각나신 모양이었다.

“송전탑 문제는 윗물로 막아야 한다. 위에서 해야지, 우리 같은 말단들끼리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고 아무리 고생해야 해결 안 된다. 벌써 8년째다. 정치권에서 나서야지. 옛말에 국민이 원하면 임금도 물러난다 했는데, 민생을 챙긴다는 대통령이 여기 소식을 알면 이렇게 그냥 둘리가 없다. 기자들도 많이 왔다 가서 신문에도 많이 나오고 대통령이 모를 리가 없는데, 부하들 말만 듣느라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지. 이유가 있겠지….” 

할아버지는 밥을 물에 말아 드시면서도 속이 답답했는지

“희한하지, 희한해.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저리 터진 걸 보고도 송전탑을 세우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위험한 것을 대통령이 모를 리가 없는데…, 이유가 있겠지….”

비판을 쏟아내다가도 마음을 추스른다. 이런 시위가 익숙하지 않은 분이라 그렇다. 이 지역 어르신들 대다수가 그렇다. 포클레인을 막기엔 나이가 많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적으로 삼기엔 마음이 약하다.

“이런 거 처음 해본다. 텔레비전에 이런 조끼 입고 데모하는 사람들 많이 봤지만, 내가 이 조끼 입고 이럴 줄은 몰랐다. 처음엔 그냥 철탑을 세운다니까 그러는가 하고 넘어갔지. 그런데 알면 알수록 도저히 이건 받아들일 수가 없는 기라. 자연 훼손하고, 사람 죽이고, 농산물 해치는 그런 철탑을 세우게 놔두고, 후손들에게 무슨 욕을 들을라고. 목숨 바쳐 막다가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어쩌겠노.”

한전의 공사를 막기 위해 할아버지는 새벽 2시에 일어난다. 씻고 도시락을 싸서 이곳 88번 공사현장에 오면 새벽 3시다. 이렇게 일찍 오는 이유는 한전이나 경찰보다 먼저 와야 이곳까지 진입해 공사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치중이던 한전 직원이 퇴근할 때까지 버티다 보면 어느새 밤 9시다. 집에 돌아가 씻고 늦은 저녁을 먹으면 11시가 된다. 가슴이 먹먹해서 잠이 잘 안 온다. 자정에 겨우 잠에 들어 다시 새벽 2시에 일어난다.

지금은 농번기라 교대로 지켜도 힘에 벅차다. 시기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다 망치는 것이기에 “굶어 죽을 결심”을 하고 여기에 와 있다. 그나마 이날은 희망버스가 도착한 날이었다. 돗자리에 누워 잠을 청한 데에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 밀양에서 태어나고 지금껏 쭉 사셨습니다. 밀양 자랑을 해주신다면요?

자랑? 농사만 지어온 양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칠십 평생 살면서 남한테 피해 준 적이 거의 없다. 잘못해서 경찰서 들락거리는 사람도 없고, 사기 치는 사람 없었고, 다들 선량한 사람들이다. 촌사람들, 자랑할 건 양심밖에 없다.
 

▲ ⓒ복음과상황 오지은

- 농사로 평생을 살아오신 건가요?

벼농사 지으며 평생 살았다. 배운 것이 농사다. 젊을 때는 대추 농사도 했는데 이제는 벼농사만 하고 있다. 농사로 아들 하나, 딸 넷 오남매 공부시키고 결혼도 시켰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키웠나 싶지. 이런 촌에서 자식 셋을 대학에 보냈다고 하면 다들 기적이라고 한다. 한창때는 열 마지기 농사짓다가 이젠 한 마지기 겨우 짓고 있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노후를 위해 짓는데, 송전탑 들어서서 전류가 흐르면 모든 게 끝장나는 기라. 세계적으로 가장 센 전력이라 하지 않나. 내가 안다. 생태계 다 무너진다.

- 머릿속에 온통 송전탑 생각뿐이신 것 같습니다. 자녀분들은 송전탑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매일 전화가 온다. 몸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안부 전화다. 부락민들 다 협조해야 한다고, 그래야 이길 수 있다고 하더라.

- 인근 마을은 이미 보상금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입장 차이로 마을의 사람들끼리 분열도 있을 것 같고요.

그게 큰 상처다. 국책사업인데, 큰 공사를 하면서 떳떳한 공사를 하지 않고 숨은 공사를 했다. 전부 숨은 공사로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금품을 줬는지 안 줬는지 내가 본 것은 아니지만 소문이 있다. 그래서 숨은 공사를 가능하게 했다. 그런 식으로 속이고 속여서 오늘까지 공사를 해온 것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 마을에까지 왔다. 우리는 안 넘어간다. 그렇다고 마을 사람 모두 같은 입장은 아니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 보상금을 더 받아내려고 어르신들이 시위하는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보상금 그거 얼마나 더 받겠다고 이 고생하겠나. 필요도 없다. 보상금 더 받으려고 8년째 이러고 있겠나. 보상해준다는 사람들의 얘기도 황당하다. 사실상 사람이 이주를 해서 정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보상 내용은 하나도 없다. 목욕탕을 지어줄 테니 거기서 수익을 나눠 가져라 카더라. 농기구가 천지에 널렸는데 농기구 주겠다는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이 마을에 대한 이해도 공감도 못하는 사람들과 무슨 보상을 논하겠나. 우리는 안 속는다. 평생 살아온 곳이니 지키려는 마음뿐이다. 나이 들어 돈은 무슨 놈의 돈. 논 한 마지기로 먹고 살 수 있으면 되는 거지.

 

▲ ⓒ복음과상황 오지은

- 원래는 밀양이 아니었는데, 송전선로가 두 번 이상 바뀐 결과 밀양을 정통으로 통과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송전선로가 두세 번 변경되어 재수 없는 우리한테 왔다. 듣기로는 원래 대구였다가 박근혜 대통령 고향이라는 이유로, 그래서 다른 데로 돌리려니 거기는 누구 장관의 고향이라 카더라. 죽는 놈은 조조 군사라더니, 결국 그게 우리한테 왔다. 누구는 살리고 누구는 죽여도 괜찮다 이기가? 대통령 목숨이나, 장관 목숨이나, 우리 촌사람 목숨이나 다 같은 생명인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시던 할아버지는 갑자기 6?25전쟁에 강제 모병되었던 형의 이야기를 꺼냈다. 18세에 전쟁터에 나간 형은 며칠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고 낙동강 전투에 투입되어 전사했다. 투입된 국군 모두 전사했다. 다른 지역처럼 대통령이나 장관을 내지는 못했지만,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한 사람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형을 잃은 열 살의 소년은 왜 형이 죽었는지 알았으면서도, 나무로 총검을 만들어 이산 저산을 누비며 전쟁놀이를 했단다. 마을을 지키겠다고 말이다. 그로부터 60년이 흘러 다시 그 숲에서 “마을을 지키겠다”고 포클레인과 맞서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적(敵)은 더 윗선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해결책도 “더 위에 있다”고 했다.

“이 일이 해결되려면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이 산에서 기도를 해. ‘하나님 아버지, 힘을 발휘해 주세요. 우리 힘으로 막을 수 없습니다’라고 기도했어. 사흘 전 경찰이 또 우리를 끌어내려고 했을 때에도 나무에 기대어 한참을 기도를 했지. 억장이 무너지는 현장을 내려다보면서,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기도만 했지. 결국 그날은 끌어내지 못하더라고.”

절에 다니시던 할아버지는 8년 전부터 교회에 나갔다. 초등학교(초등학교) 때부터 교회에 나간 첫째 딸의 전도도 있었고, 아내의 우울증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약이나 수술로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 옛날부터 시집살이를 해온 스트레스가 화병이 되어 나타났다. 인간의 힘으론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신에게 엎드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같은 방법으로 송전탑이 세워지는 것도 막고 싶다고 했다.

“교회에 나가니까 아내도 많이 좋아졌어. 나도 마음에 위로를 많이 받지. 첫째 딸이 어릴 때 교회에 간다고 하면 반대도 자주 했었는데, 나한테는 교회가 맞는다. 우리 교회 목사님도 예배 때마다 한 주도 빠짐없이 철탑 세워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이 일에 기독교인들이 관심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교회는 약자의 편에 서고, 억울한 사람들 누명 벗겨주는 곳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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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과상황 오지은

다른 어떤 질문을 드려도 대답은 송전탑으로 흘렀다. 할아버지는 결코 만족을 모르는 도시 문화를 지적하며 먹는 것이 많아져도 행복해하지 않는 현실을 꼬집었다. 에너지를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그것이 행복과 정비례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전자레인지, 냉장고가 없던 어린 시절에도 행복했음을 증명하고 싶으셨던지 “감을 주워 갖고 논바닥 뜨끈뜨끈한 데 놔뒀다가 한참 뒤 상한 후에 먹으면 새콤하니 별미였다”며 처음으로 미소 지었다.

 - 밀양 토박이시니 첫사랑도 밀양에 계시겠네요? 

첫사랑인지 뭔지도 모르고 지나갔지. 초등학교 때, 전학을 갔던 여자아이가 학교로 편지를 보냈다. 선생님한테 한 통, 나한테 한 통을 썼지. 같은 반 아이들한테 얼마나 놀림을 받았는지 그때 기분이 아직도 생생해. 답장을 썼어야 했는데 끝내 쓰지 못했어. 지금 애들 같았으면 썼겠지 싶다. 지금이라도 써볼까? (웃음)

어느덧 미소는 웃음으로 번졌다. 할아버지는 주변에 있던 꽃을 어루만지며 수줍은 듯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그 순간에도 ‘윗선’은 밀양을 파괴하려고 호시탐탐 공사 재개를 꾀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원자력발전소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취하려 똘똘 뭉친 그들이 결코 송전탑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밀양에서 평생을 지내온 자신의 삶과 추억, 그리고 웃음을 무기로 그 ‘원전 마피아’들과 맞서고 있었다. 
 
밀양에 다녀온 며칠 뒤인 5월 29일, 송전탑 공사를 40일간 일시 중단하고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해 대안을 모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전문가협의체는 국회 추천 3인, 한전 추천 3인,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추천 3인으로 구성되어 우회송전 가능 여부와 송전선 지중화(地中化) 등을 모색할 계획이다. 게다가 원전 관계자들의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납품 비리 등이 알려지면서 새판이 짜여 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생겨났다. 그러나 지금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있어왔기에, 결과가 어떻게 나올는지는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어쨌든 신현주 할아버지가 당분간은 마음 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할아버지와의 이 이야기가 밀양 주민의 ‘승리의 기록’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진행·정리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