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은, 농부입니다”
[274호 편들고 싶은 사람] ‘오리지널 디자인’ 회복하려는 청년 농부 4인방
처음부터 농부가 될 생각은 없었다. 서울의 번듯한 직장에 다니던 30대 초반 청년들로, 저마다 전문직(마케팅, IT, 컨설팅, 디자인)에 종사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재능을 이용해 농업 발전을 도모할 계획은 있었으나, 농부가 될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애초 원격 농장 시스템을 구축해 도시 사람들과 농부가 함께 농산물을 재배?유통하는 유명 브랜드를 만들 목적이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휴일마다 자연농, 유기농으로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며 사업을 구상했다. 성장촉진제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유전자 조작도 하지 않은 하나님 창조 그대로의 농산품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우리 스스로 농부가 되지 않고는 이 사업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리지널 디자인’, 즉 하나님의 창조 원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럴싸한 사업을 벌이는 것보다 직접 농부가 되는 게 가장 정직하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몹시 덥던 7월의 어느 날, 전라남도 광주에서 50여 분을 더 차로 달려 곡성군 옥과리 113-1번지에 도착했다. 청년 농부 기업 다바른(Dabarun)을 창업한 신동호(33), 김신우(32), 남궁지환(31), 문국(30) 씨가 병아리 1,260마리와 함께 농부의 삶을 시작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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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바른'의 굳은 의지를 나타내듯, 젊은 농부들이 '주먹'을 굳게 쥐었다._왼쪽부터 신동호, 문국, 남궁지환, 김신우 ⓒ복음과상황 이범진 |
- 먼저, 자기 소개를 해달라. 무엇보다 농부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가 궁금하다.
신동호 : 넷 중에 유일한 유부남이다.(웃음) 신혼임에도 주말부부로 살아야 하기에 결심이 쉽지는 않았다. 단순하게 표현해 농촌의 귀중함을 알리고 싶었다. ‘한 손에는 아이패드, 한 손에는 삽!’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대학에서는 전자공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다바른에서는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홈페이지, 기계 설비 등을 전담하고 있다.
김신우 : 대학에서 경영학과 국제지역학을 전공하고 (주)깨끗한나라에서 마케팅?유통?판매 업무를 했었다. 직장생활을 계속하면서도 농업에 대한 관심은 늘 있었다. 농산물 유통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주말마다 농촌을 누비다가 직접 농부가 되기로 했다.
남궁지환 : FM커뮤니케이션즈라는 프로모션 회사에서 일했다. 농업에 관심을 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적의 사과》를 통해 알려진 농부 키무라 아키노리 씨의 자연재배 사과를 맛보고 나서다. 상온에 놔두어도 6개월 동안 썩지 않는다는 그 사과를 직접 먹어보고 충격을 받았다. 맛에 둔감한 나 같은 사람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먹어왔던 사과는 사과가 아니었다.
문국 :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2년째 디자인 공부 중이었다. 그러다 작년 5월에 전화를 받았다. 농사를 짓자고. 식량에 대한 시급함은 평소 신우 형과 공유하곤 했는데, 당시 전화 왔을 때는 식량 부족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 미래가 불안하기까지 했던 때라 바로 “하겠다”고 했다.
“‘무농약’이 무농약이 아니었고, ‘유기농’이 유기농이 아니었다. 인증마크가 농산품을 보증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좋은 농산품을 유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농부가 되는 길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 처음에는 각자의 전공을 살려 도시와 농촌을 잇는 농업 브랜딩 업체를 기획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직접 농부가 된 이유를 더 자세히 듣고 싶다.
신우 : 생산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감히 엄두도 나지 않았다.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않나. 좋은 농산품을 유통하고 싶었는데 중간중간 한계들이 많았다. ‘무농약’이 무농약이 아니었고, ‘유기농’이 유기농이 아니었다. 인증마크가 농산품을 보증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좋은 농산품을 유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농부가 되는 길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 인증마크가 농산품을 보증해주지 않는다니,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동호 : 정부의 인증제도가 생각보다 허술했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야 하는 ‘귀찮은 서류작업’으로 여겨진다. 농약을 뿌릴 만큼 뿌리고, 농약을 치지 않은 (혹은 적게 뿌린) 샘플만 넘겨줘도 인증을 받는 데 문제가 없다.
신우 : 시중에 유통되는 ‘무항생제 계란’도 마찬가지다. 산란 전 15일 동안 항생제를 주지 않으면 무항생제 제품으로 판매된다. 사료에 이미 항생제가 들어가 있다. 유통되는 닭 99퍼센트 이상은 유전자 조작 옥수수로 만든 사료를 먹고 자랐다.
- 유명 대기업의 ‘방사(放飼) 유정란’이 시중에 유통된다. 공장식 양계가 아닌 방사식 양계임을 강조하던데….
지환 : 그 큰 기업이 아이러니하게도 그 닭장을 공개하지 않는다. 풀밭이 아니라 콘크리트 위에 풀어놔도 방사다. 보통 바깥 공기가 틈타지 못하게 무균실에 가둬놓고, 기계에 의해 길러지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스포이트로 수컷의 정액을 암컷에게 주입해 ‘유정란’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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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 농부 4인방이 공부한 책들 (사진제공:다바른) |
- 네 사람의 공통점은 ‘농업의 위기’에 대한 공감 같다.
지환 : 작년에 ‘아산나눔재단 프론티어’에 선발돼 영국, 포르투갈, 일본의 농장을 탐방했다. 선진 농법도 배웠지만, 농부의 고령화, 농업?축산업의 붕괴가 전 세계적 현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전 세계 곡물가와 유가(油價)가 같이 올라가는 현실을 볼 때, 여러 다큐 프로에서 ‘식량 전쟁’을 말하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투기자본이 세계 곡물 시장을 휘어잡으려는 움직임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동호 : 우리나라는 곡물 자급률이 25.3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OECD 평균이 91.5퍼센트인데, 우리나라는 식량의 해외 의존도가 너무 높다.
- ‘농업의 위기’인 동시에 ‘개인의 위기’이기도 하다.
신우 : 농업이 무너지면 개개인의 삶도 대안이 없어진다. 대학생들의 졸업은 늦어지고, 수명은 늘어난다. 100세까지 사는데 50세에 은퇴한다. 나머지 50년은 어디서 우리를 책임져 줄까? 이것은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평생을 책임져 줄 수 있는 공동체는 농촌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식량 부족으로 인한 누군가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면 직접 농사를 지어, 내 밥상을 내가 키운 소산물로 차리는 방법밖에 없다. 공동체가 되면 가능하지 않겠나. 오래 걸리겠지만, 스페인 협동조합 몬드라곤도 30년이 걸렸으니까 가능하리라 본다.
- 그런 공동체를 농촌에 꾸리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현실적인 한계들이 있을 것 같다.
국 :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것들이 있다. 특별히 거대자본인 농협이 농산물 유통을 꽉 쥐고 있다. 유통 마진 80퍼센트 이상을 챙기기도 한다. 착취다. 유통구조만 제대로 잡히면 청년들이 많이 와서 일해도 합당한 인건비를 받을 수 있다. 요즘 이 근방 일당이 남자는 12만 원, 여자는 6만 원이다. 물론 돈이 없어서 사람을 쓰지 않는다. 악순환이다. 여기 계신 분들이 농사에는 베테랑이다. 자연농, 유기농으로 얼마든지 농사지을 수 있으면서도 그렇게 안 한다. 제값에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알아주지 않는다. 이런 분들에게 판로는 물론, 고생 이상의 대가를 받을 수 있게 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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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갓 태어난 병아리 들여오던 날 (사진제공:다바른) |
- 농부가 되는 첫 걸음으로 ‘양계’를 택했다.
신우 : 병아리 1,260마리와 함께 시작했다. 올해 5월에 양계축사 두 동을 마련했고, 일단 한 동(약 120평)부터 내부 공사를 마쳐 본격적으로 양계장을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청년들이 귀농으로 돈을 벌기가 쉽지 않다. 농지도 없고, 농사에 대한 노하우도 없지 않나. 사실 닭 1천 마리 키우는 게 큰돈이 되진 않는다. 다만 우리 형편에 맞는 농사일을 찾다 보니 수익에 얽매이지 않고 일단 저질렀다.
다음 날 아침 9시. 다바른의 농부 4인방과 함께 농장으로 향했다. 사무실에서 트럭을 타고 5분 정도 달렸을까. 두 동의 양계축사가 눈에 들어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분뇨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얼굴을 찌푸리자 옆에 있던 지환 씨가 ‘해명’했다. “이거 우리 애들 냄새 아니에요. 이 축사가 원래 오리를 키우던 곳이거든요. 오리 똥을 모아 밖에 쌓아놓아서 냄새가 나는 거예요. 우리 애들은 냄새 안 나요.”
축사에 들어서자 정말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엄청난 양의 똥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병아리들은 주인을 알아본 듯 우르르 무리지어 달려들었다.
- 정말 닭똥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는다.
지환 : 노송나무 톱밥으로 바닥을 채웠기 때문이다. 톱밥 성분에 피톤치드가 들어 있다. 우리가 삼림욕을 할 때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이유가 피톤치드 때문인데, 방향제를 만드는 성분이기도 하고, 살균 작용도 한다. 그리고 이 녀석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국산 현미, 담양 야생 대나무 잎을 먹였다. 소화력이 좋은 ‘슈퍼 병아리’들이다.(웃음)
- 태어난 지 한 달 조금 넘었다더니, 많이 커 보인다. 신우 : 케이지(철제 우리)에 가둬 공장식으로 기르는 닭에 비하면 작은 거다. 저렇게 정신없이 뛰어다니니까 살이 안 찐다. 엄청 먹는데 살이 안 붙는다. 보통 이 정도 면적이면 3천 마리를 키워도 ‘동물 복지’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린 천 마리가 조금 넘으니까, 뛰어다닐 공간이 그만큼 많은 거다.
- 먹을 생각부터 해서 미안하지만, 이렇게 많이 뛰어다니면 고기가 질겨지지 않나?
국 : 음식에 대한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항생제 엄청 먹고, 유전자 조작 옥수수로 만든 사료를 먹고, 몸을 돌리지도 못하는 케이지에서 자란 닭이 인간의 몸으로 들어왔을 때의 치명적 영향들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단지 고기가 부드럽다고 좋은 음식은 아니지 않나. 계란의 맛이나 품질, 영양에서부터 현저한 차이가 날 것이다.
신우 : 대개의 닭은 1년 정도 알을 낳다가 소시지 공장이나 치킨집으로 간다. 우리 닭은 씨암탉이다. 많이 뛰어다니면 사실 육질은 더 좋아진다. 푹 고아서 약계탕으로 쓰일 ‘친환경 닭’인 거다.
“의사에게 찾아갔더니 산란 전 15일 동안만 항생제를 먹이지 않으면 ‘무항생제 계란’이 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며 별다른 고민 없이 ‘항생제를 먹이라’고 하더라. 다른 전문가들의 조언도 항생제 없이는 안 된다는 거였다.”
- 초보 농부들인데, 어디서 노하우를 얻고 배우나?
지환 : 많이 돌아다녔다. 중국 심양, 경상북도 상주 덕곡리 사과마을, 충청북도 감곡 햇사레 복숭아마을, 충청북도 제천 덕산리 사과마을, 충청북도 보은군 보나팜 양계장 등 자연농법을 고집하는 어른들을 수십 번도 넘게 찾아다니며 노하우도 얻고, 농사도 배웠다. 이로 인한 네트워크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국 : 그분들의 노하우가 다 우리에게 100퍼센트 맞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상황에 딱 맞는 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게 농사더라.
- 예를 들면?
동호 : 7월 초에 병아리 중 일부의 삐악삐악 소리가 허스키하게 났다. 감기에 걸린 거다. 병아리 때는 쉽게 죽기 때문에 아주 세심하게 잘 챙겨줘야 한다. 그냥 방치하면 감기가 다른 병아리들에 옮아 떼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다. 의사에게 찾아갔더니 산란 전 15일 동안만 항생제를 먹이지 않으면 ‘무항생제 계란’이 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며 별다른 고민 없이 “항생제를 먹이라”고 하더라. 다른 전문가들의 조언도 항생제 없이는 안 된다는 거였다.
- 그래서 항생제를 먹였나?
신우 : 일단 항생제를 사오긴 했다. 사람도 아프면 약을 먹는데 병아리에게 항생제 먹이는 게 뭐 대수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픈 병아리만 치료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거였다. 누가 아픈 병아리인지 모르니 모든 병아리에게 먹여야 한다는 게 ‘함정’이었다.
동호 : 고민하다가 주지 않기로 했다. 우리가 정한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화학 사료, 성장촉진제, 유전자 조작 식품 쓰지 말자는 초기의 원칙으로 밀고 나가자 했다. 먹이고 후회하느니, 안 먹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 병아리들은 어떻게 되었나?
동호 : 보시다시피 감사하게도 스스로 이겨냈다. 한방영양제와 비타민만 줬는데 나았다.
지환 : 스스로 이겨내는 힘, 그게 하나님께서 창조물에 심은 ‘오리지널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우 : 더 지켜보기는 해야 한다. 병아리 때 호흡기 질환에 걸리면 닭이 되어 알을 못 낳을 수도 있다. 무산란계가 되는 것이다. 산란율을 봐야 더 확실하게 ‘이겨냈다’고 말할 수 있다. 닭의 수명이 원래 20~30년이다. 원래 갖고 있었던 닭의 생명력과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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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닭도 외로움을 탄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
- 무산란계를 20~30년 키워야 하면 어떡하나? 먹이는 엄청 먹으면서 알을 못 낳으면….
동호 : 경제 논리에 따르면 그런 닭부터 죽이는 게 맞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골라서 죽일 수는 없다.
국 : 어쩔 수 없다. 누가 알을 낳는지, 못 낳는지 모른다. 알을 못 낳는 닭들도 섞여서 여기서 사랑받으며 같이 사는 수밖에 없다.
병아리들 속으로 들어갔다. 사실 병아리라고 하기엔 조금 큰 ‘청소년급’들이다. 성격 좋은 놈들이 우르르 달려들더니 내 신발 끈을 풀어놓는다. “같이 있자”는 뜻이란다. (내가 이렇게 인기 있던 적이 있었나?) 닭도 외로움을 타는 동물이란다. 이웃집 닭이 도망쳐 이쪽으로 놀러 왔는데 밥을 줘도 안 먹더니 사람 옆에 와서는 가만히 살을 비비며 머물렀다는 것이다. 순간, 오리지널 디자인의 모태인 에덴동산을 떠올렸다.
병아리들을 애지중지하는 통에 나도 병아리와 스칠 때마다 이들 눈치를 보며 “미안~” 하고 사과를 해야 했다. 그들의 일을 거들겸 오전에 줄 풀을 벨 때도 “목에 걸릴 수 있으니까 줄기에 가시 있는 것은 베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정성스레 준비한 30킬로그램 넘는 풀들이 5분 만에 줄기만 남고 싹 사라졌다. 그리고 또 한바탕 여기저기서 ‘미식축구’가 열린다. 외로울 틈 없는 병아리들이다. 주인을 잘 만난 덕이다.
“청년이 귀농할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아버지가 농부이거나 재벌이면 된다.”
- 현실적인 질문이다. 귀농이 쉬웠나?
지환 : 귀농을 준비하면서 청년이 귀농하는 게 대한민국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농지은행을 통해서 장기저리융자로 농지를 마련하려고 해도 지역 연고가 없으면 안 해준다. 여러 지역에 넣었지만 다 안 되더라. 20~30대 청년 지원 분야도 있었는데 주로 농부들이 자기 아들 이름으로 싸게 대출받는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신우 : 청년이 귀농할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아버지가 농부이거나 재벌이면 된다. 농촌진흥청 본사에서 3천만 원을 대출받을 수 있게 신용 담보를 해줘도, 은행에서 담보로 1억 원을 제시하는 현실이다. 아무리 정책적으로 담보를 해줘도 은행에서 안 해주면 별 수 없다.
- 그럼 곡성은 어떻게 오게 되었나?
지환 : 곡성에서 만난 공무원은 달랐다. 그분은 연고가 없는 우리가 곡성에 장기저리융자를 받을 수 있게 해줬다. 이건 기적에 가깝다.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곡성을 발전시킨다는데 선정해줘야지” 하셨다. 이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귀농은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 지금은 수입이 없는 상태 아닌가?
신우 : 서른 초반의 남자가 많이 모아봐야 지금까지 1천~2천만 원 모았을 텐데, 그걸로는 절대 농사를 시작할 수 없다. 보통 2년 버틸 돈 1억을 모아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네 사람이라 가능한 것 같다. 서로 출자금을 모아, 공동으로 사용하며 생활하고 있다. 별도의 급여는 없다.
- 넷이 함께하기에 힘이 되겠다.
지환 : 다른 분들이 많이 부러워한다. 이웃 사람들도 건장한 청년 넷이 돌아다니니까 뭔가 해낼 것처럼 믿어주는 분위기다. 내부 인테리어도 우리 힘으로 다했다. 다들 목공일을 처음 해봤다. 톱질, 삽질, 지게차 운전 등 넷이 하니까 어떻게든 다 되더라.
신우 : 귀농은 함께하는 동료들이 중요하다고 하더라. 귀농에 성공한 분들이 우릴 부러워한다. 이제 와서 직원을 뽑자니 ‘비전 공유’가 안 되고, 비전 공유할 수 있는 친한 사람을 구하자니 숙련도에서 차이가 나서 함께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비전도 공유하고, 농사에 대한 노하우도 함께 쌓아가니까, 그게 좋다.
- 혈기왕성한 네 사람이 뭉쳤는데, 싸울 일도 있을 것 같다.
동호 : 자주 싸운다. 농사일 할 때도 싸우지만, 사무실에서 회의할 때 정말 많이 싸운다. 의견 차이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싸우고 토론하는 게 중요함을 깨닫고 있다. 다행히 네 사람의 혈액형이 다 B형이다. 티격태격 싸워도 뒤끝은 없다는 말이다.(웃음) 이번 주부터 농장에 나오기 전 아침마다 넷이 함께 큐티를 한다. 싸움의 끝이 파국이 아닌 하나님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중요한 질문인데 이제야 묻는다. 기업 이름 ‘다바른’은 무슨 뜻인가?
동호 : 다바른은 히브리어 다바르(Dabar)에서 따왔다. ‘Word’라는 뜻도 있고, ‘Work’ ‘Thing’이라는 뜻도 있다. 이상(Word)이 현실(Thing)이 되기까지 행동(Work)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이상은 ‘창조된 그대로’(Original Design)의 농산물을 키우고 소개해 사람들의 몸을 건강하게 회복시키는 것이다.
- ‘다바른 자연농법 수정란’은 언제 먹어볼 수 있나?
국 : 10월에 초란이 나온다. 우리가 수익을 낼 수 있는 첫 달이기도 하다. 그전까지 버틸 수 있을까? 지금 병아리들 숫자로는 달걀이 아무리 많이 나와도 수지가 안 맞는다. 그러나 진정한 농부가 되기 위해서,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 해보는 거다.
- 초란이 나온 이후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신우 : 농촌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게 우리의 목표다. 낙후되고, 더럽고, 힘들다는 편견을 깨고 싶다. 홍보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몸소 보여줘야 뿌리 깊은 편견이 깨진다. 다바른의 달걀을 맛본 소비자들이 진정 맛의 차이를 느끼고, 몸의 회복을 경험하면 된다. 이에 맞는 브랜드를 개발하고, 농촌 생산자의 가격협상력을 떨어뜨리는 왜곡된 유통망을 바로잡을 계획이다.
동호 : IT 기술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지역에서 온라인 판로를 독점하다시피 했던 사람이 우리의 등장에 긴장하고 있다. 우리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해왔지만 거절했다. 거대 유통망 사이에 우리가 적당히 끼어 가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 : 각종 인증제도의 부작용과 허점도 곧 밝혀질 것이다. 지금은 인증제도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의 힘이 워낙 세고 강성이라 눈치를 보는 것이지, 곧 크게 한번 터질 날이 온다. 이런 와중에 누군가는 정성과 진심으로 농사짓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다바른의 계란이 구조 개선에 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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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바른의 양계들에게는 주로 발아밀과 흑미를 먹인다. ⓒ복음과상황 이범진 |
- 귀농, 귀촌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국 : 귀농을 하니까 배우는 게 정말 많다. 회사에서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살았고, 그래서 삶의 목적도 이윤추구가 되어버렸다. 농촌에 오니까 이윤추구보다 더 중요한 걸 많이 배워서 좋다. 병아리들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면 기쁘다. 과수원 농부들이 나무에 열매 맺힌 것 보면서 ‘자식 같다’고 하지 않나.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정말 자식 같다. 이런 마음을 느끼며 산다는 것이 돈보다 더 귀한 보상은 아닐까.
동호 : ‘잘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한다. 연봉 500만 원, 1천만 원 더 받기 위해 아등바등 살면 행복할까? 계속 고민하다가,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마음으로 왔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일을 저질러 보겠나.
- 3개월째다. 서울에서의 삶이 그립지는 않나?
신우 : 다시는 지하철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이고 싶지 않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하나님께 물었었다.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숨 막히게 끼어 사는 것이 저에게 바라시는 삶입니까?’라고. 그때 응답은 확실하게 “No”로 들렸다. 사람답게 살기를 원한다 하셨다.
- 네 사람 모두 여기 오기까지 신앙의 비중이 꽤 큰 것 같다.
지환 : 여기까지 이끌어온 분이 하나님이다. 젊은 사람이 땅도 없이, 돈도 없이 농사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네 사람이 자기의 재산을 비워, 같은 결단으로 여기에 내려오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다. 전체적으로는 굳어 있는 사회이지만 꼭 한 명씩 좋은 사람 만나게 해주셔서, 곡성에 둥지를 틀 수 있었다. 중국 심양에서 만난 선교사님께 양계를 배우러 갔었고, 그분 통해서 한국의 좋은 분들을 또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계속 길을 보여주시고, 시의적절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신다. 신앙 없이 다바른의 미래는 없다.
다바른은 현재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들의 농사 일지를 공유하고 있다. 난 지 하루 된 병아리를 들여온 날, 밤새도록 노송나무 톱밥을 옮겨 바닥에 깔던 날, 담양 야생 대나무를 공수해 ‘양계 복지의 꽃’이라는 횃대를 만들던 날 등 차곡차곡 이야기를 채워간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도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다.
취재 후 얼마 안 된 어느 날, 너구리의 습격에 20여 마리의 병아리가 죽거나 사라졌다는 문자가 왔다. 앞으로 또 어떤 ‘습격’이 다바른의 앞을 가로막을지 모를 일이다. 이들의 꿈을 위협하는 예상치 못한 ‘진격’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젊은 농부들과 함께해줄 동지[便]들이 많이 필요하다. 오는 10월, 초란의 기쁨을 다 같이 나누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 제품 구매처 http://strongegg.com/
진행·정리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