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입장벽 없는 소통 공간 만들고 싶어요"

[275호 편들고 싶은 사림] 청년 사회적 기업가 김윤옥 비움과채움 대표

2013-09-23     오지은

‘공간’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누군가가 혹은 어떤 문화가 없애버린, 모두가 모여 소통할 수 있는 진입장벽 없는 만남을 꿈꿨다.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 자체를 분절해버린 우리 사회에서, 모이면 생각하고 생각하면 함께 행동하게 될 그런 공간을.

지금 그이는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자기의 것을 비워 모두를 채우려는 비영리단체 ‘비움과채움’(비채)을 1년째 운영 중이다. 햇살이 들어오는 탁 트인,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기를 상상하면서. 그런데 탄탄대로가 아니다. 힘이 많이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에 대한, 그리고 비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끊임없이 물어가며 씨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여름의 끈적임이 사라져가는 8월말, 비움과채움 김윤옥 대표(27)를 광명시민회관 1층의 공정무역 북카페 마브(MAB)에서 만났다. 나이 그대로의 상큼함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지니고 있었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비움과채움이 하는 일을 소개해달라.
크게는 되살림 상품과 공정무역품, 친환경 상품과 핸드메이드 제품을 판매하는 마을가게 ‘살림’과, 나눔 단체인 ‘보탬‘ 사업을 하고 있는데, 나를 포함해 활동가 세 명이 일한다. 되살림 상품이란 기증받은 재활용 상품을 의미한다. 헌 물건과 새 물건의 기준이 모호하다고 여겨 붙이게 된 이름이다. 가게 앞에 기증함을 놓고 언제든지 기증할 수 있도록 해놓고, 우리 동네에 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홍보하기 위해서 평생학습원이나 복지관, 학교에도 기증함을 놓았다.

‘보탬’은 그야말로 마을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강의를 열어 주민들에게 소통의 장을 마련해주는 일이다. 현재까지는 생활 강연회와 힐링원예수업, 여성의전화라는 여성 단체와 연대해서 성?인권 교육을 열었다.

오늘 시민회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여기서 ‘비채 앙상블’ 공연이 있었다.

‘비채 앙상블’이라면….
장애 청년과 비장애 청년 단원이 함께하는 악단이다. 단원들과 마을 주민들의 재능 기부를 통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찾아가는 마을 음악회와 초대 공연 연주 등을 한다. 현재는 비채 앙상블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여서 유료공연보다는 무료 재능기부 공연이 더 많다. 비채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앙상블 단원의 활동비와 교육비 등을 지원한다. 장기적으로는 학교?관공서?기업 등에 공연과 결합된 장애인식 개선 강의와 유료공연을 열어서 앙상블 자립을 계획하고 있다.

하는 일이 무척 많은 것 같다. 운영은 어렵지 않나?
가장 비중이 큰 사업인 마을가게살림은 월세만 143만 원이고, 운영을 위해서는 한 달에 450만 원 정도가 확보되어야 한다. 그럼 하루 매출이 적어도 15만 원이 되어야 하지만 우리 되살림 물건은 상당히 저렴한 편이라 쉽지 않다. 보통 하루에 가게 손님이 30명 정도 방문하는 편이다. 어쨌든 기증받는 물건이 중요한데 요즘은 사람들이 여러 경로로 중고 물품을 거래하기 때문에 이마저도 녹록치 않다. 최근에는 옆에 저렴한 치킨집이 생겼는데 어제만 그 치킨 가게에 150명이 다녀갔다. 치킨 손님들이 우리 가게를 알게 되고 구경도 올 것 같아서 기대가 좀 된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가게 수입이 변변치 않으면 어떻게 하나.
가게 이외의 수입이 여러 경로로 들어온다. 내가 외부에서 하는 원예치료 강의료도 일종의 교육사업 격으로 비채 수입으로 잡고, 앙상블 공연 수입과 함께 후원금도 들어오고 해서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다. 9월에는 강의료와 시에서 딴 예산을 합하면 좀 나을 것도 같다. 요새 수입원 확보를 위해서 내부적으로 의논을 하는데 안정적으로 후원 물품을 확보하는 것과 시기별로 기획 상품을 판매하고 외부 장터에 참여하는 것, 재활용 천을 활용하여 자체 상품을 개발하려는 계획 등을 하고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교육에 에너지를 많이 쓰고 싶다. 외부에서 강의를 하면 시간당 노동 대가가 높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사람들에게 비채가 지향하는 가치를 더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비채가 지향하는 가치라면,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우려는 건가.
슬로건은 “나의 것을 비워 우리의 삶을 채우자”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이 정신에 부합하는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싶고,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김현선 공동대표가 비채의 첫 인터뷰에서 ‘희로애락을 같이 하는 마을공동체’를 꿈꾼다고 했는데 그 말이 참 와닿았다. 비채라는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 생각하고 무언가 일을 벌여나간다면 좋겠다.

관계를 쌓기 위해서는 최소 열댓 번은 만나서 같이 밥도 먹고 사귐의 시간도 가져야 한다. 요즘 들어서는 ‘정말 내가 마을 사람들 모두와 함께 이런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이걸 정말 원하고는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피가 섞이진 않았지만, ‘마을 가족’을 지향하는 것으로 들린다.
맞다. 그런데 꽤 높은 수준에 이르렀을 때 가능한 일이기에 실현이 어려운 일이고, 그 고민까지 못한 것 같다. 예를 들어 비채 단원인 김영진 군의 어머니와 나는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자주 만나고 ‘집밥’을 얻어먹을 때가 많다. 그리고 집이 가까운 덕에 자주 아침을 함께 먹는 원예 수업 수강생인 78세의 라일락(별명) 할아버지도 그런 친구로 볼 수 있다. 오늘도 할아버지가 직접 기른 고구마 줄기 반찬으로 아침을 함께 먹었다. 통하는 것이 있어서 대화도 자주 나눈다.

그런데 이런 관계를 쌓기 위해서는 최소 열댓 번은 만나서 같이 밥도 먹고 사귐의 시간도 가져야 한다. 요즘 들어서는 ‘정말 내가 마을 사람들 모두와 함께 이런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이걸 정말 원하고는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민이 많아 보인다.
요즘 들어서는 비채가 지향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내 걸음이 더디게 느껴져서 힘들기도 하다. 원래는 내가 되게 빠른 사람이라 느린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느려졌다. 요즘은 나 자신을 알아가는 데 더 에너지가 드는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 등…. 그런데 내가 처한 상황이 느리게만 갈 수는 없기에 고민이 생긴다. 인력에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다보니 어떤 행사 하나를 준비하는 데도 에너지 소모가 많고. 이렇게 나 자신도 소모되는 느낌이 들다 보면 결국 비채를 하는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묻게 된다. 혹시 내 욕망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와중에 나와 기질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각자 다른 하나님 상을 지니고 있듯, 같은 꿈을 꾼다는 사람들끼리도 그 방향과 생각은 참 다른 것 같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었나.
물론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결국은 안 그랬다. 그만 두면 부채감이 크게 남을 것 같았다. 대학 때 동아리연합회에 있었는데 졸업하는 동시에 손을 떼고 나니 지금까지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 때 후배들과 좀더 함께하면서 물려줘야 했던 것들이 있는데 말이다. 이런 후회를 다시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에겐 비채를 함께 일구어 가는 사람들, 친구가 되어 주고 인정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여러 고민과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성장해가고 싶다.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느냐와 연결되는 문제라고 본다. 지금 그만 두면 성장도 딱 여기까지만일 것이다. 아직 30대가 안됐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여전히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외로움을 느낄 것 같다.
혼자 살면서 느낀다. 뭐 사람이라면 다 느낄 테지만. 사실 오늘도 참 화내고 싶은 일이 있었다. 비채 앙상블 공연에서 두 명의 단원이 펑크를 냈다. 우리 입장에서는 참석하기로 한 단원과 예정된 공연 계획을 실행해야 약속을 지키는 것인데 공연을 보는 사람에게나 장소를 제공해준 쪽에 미안한 일이다. 전화를 열다섯 통은 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전화 많이 걸어보긴 처음인데, 펑크 낸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사정이 있었을 거다. 오늘이 공연일인지 몰랐을 수도 있고 말이다. 단원들에게는 내가 개인이 아닌 조직으로 비춰져 갑을 관계가 형성되기 쉽다보니 만나면 화를 낼 수는 없다. 상하관계가 아닌, 서로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를 위해 끝임 없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일이 생기면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데, 이해관계가 없는 연배 지긋한 어르신들을 만나면 편해진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외부에서 원예 수업을 하고 있는데 그분들은 친구 같기도 하고 만나면 편하다. 사실상 어르신들을 만나기 앞서 관계상 문제가 있는 상대와 직면해서 일을 풀어가야 하는데, 아직은 참 서툰 것 같다.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위해 도전하고 질문하는 사람인 것 같다. 
질문이 많다. 일하면서도 동료한테 계속 묻는다. 지금 행복한지. 하나님께도 묻는다. 왜 내게 이런 삶을 살게 하셨는지. 궁극적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어디로 가는 건지. 특히 여름휴가 때 성서한국대회에 참석했는데 여러 관계 안에서의 나의 잘못을 고백하고, 내가 왜 이런 잘못을 하고 있는지도 물었다.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래됐나.
아니다. 교회는 다녀봤지만 ‘나의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종교는 위안의 도구이자, 기복주의 추구 행위 정도로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성서한국대회를 거치면서는 신앙이 한 단계 도약한 느낌이다. 예전엔 내 삶의 가치가 운동권에서나 다뤄지는 문제였다면, 이제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일과 만난다는 느낌이다. 한 차원 위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긴 시간을 내서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세상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것을 보니 위로가 되었고, 특히 인문학이 어우러져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유익했다. 전에는 기도한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못했는데 이번엔 기도가 되더라. 기독교 안에 내 삶과 비채의 지향점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 이범진

비채에 도움 주는 분들이 얼마나 되나.
다양한 액수로 돈을 보태시며 설립을 지원해주신 분들이 있다. 물론 우리 운영자 셋도 출자를 했다. 물질이 아닌 것으로 도움 주시는 분들도 많은데 운전 봉사를 해주시는 분도 있고, 재능기부를 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물품 기증자들도 있다. 찾는이광명교회도, 마을 어린이집도 지금 후원단체다. 우리가 정기적으로 물건을 받아오는 고물상하시는 분들도, 공모전에 당선되면 예산을 주는 기관도 모두 도움을 주신다. 이 일이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나를 지지해주는 모든 사람들도 그렇고.  

문득, 대학 때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고민을 하고 지냈을지 궁금하다.
나도 다른 학생들과 같았다.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다. 공부를 잘했다기보다는 1,2학년 때 성적이 좋아서 내내 장학금도 받았고, 해외 봉사도 갔다 왔고, 흔히 말하는 스펙이 좋았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일을 하다가, 나중에는 직접 경영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3학년 때부터 생각이 바뀌기 시작하더라. 그게 행복한 삶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 1년 정도 걸렸다. 지금은 내가 선택한 길이 옳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혹시 대기업 사회 공헌 팀으로 스카웃 제안이 들어온다면….
쉽게 거절하진 못할 것 같다. 대우가 좋을 것 같아서 또는 더 멋진 인생을 살게 되리라는 생각에서는 아니다. 오히려 내 기준에서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 지금 비채를 운영하는 것이 훨씬 더 폼 나는 일이다. 다만, 더 많은 사람이 비채가 추구하는 가치를 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다.

그런데 고민의 결과는 역시 노(No)일 수밖에 없다. 복음과상황이 거대 출판사나 대형교회로 들어가면 복상의 가치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이처럼 비채가 지향하는 바를 대기업에서 실현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비채는 자본과 결과중심적인 기업에 반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니까. 
 
사회 구조를 바꾸고 새롭게 하고자 하는 의식이 강한 것 같다.
요즘은 내가 바뀌는 것이 구조적인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단식을 예로 들어도, 세상 사람 모두를 단식을 하게 하기보다는 내가 단식을 먼저 시작하면 된다. 그래서 나 자신을 정말로 변화시키고 싶다. 먹을 만한 것이 없다면 좋은 먹을거리를 만들어 내고 싶고, 소비 습관도 변화시키고 싶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똑같은 옷을 입는 것보다도 무슨 생각으로 옷을 입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고.

사실 요즘 예쁜 가방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이런 욕구가 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비채의 가치를 정말 삶으로 살아내기란 참 어려운 것 같다. 어젯밤에는 하루에도 수십 통씩 오는 전화를 받고, SNS에 집착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핸드폰은 왜 사용해야 하는 건지, 왜 밤 11시까지 일을 해야 하는지, 행복이란 대체 무엇인지 의문이 들더라. 우선적으로 최근에 생활 패턴을 규칙적으로 바꾸긴 했다. 아침에 6시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는 것부터, 일의 특성상 지키기 어렵지만 일주일에 4~5일은 지키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냈나.
일찍 일어나서 배드민턴을 치고, 라일락 할아버지와 고구마 줄기 반찬해서 아침 먹고, 집에서 얼마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플룻 연습을 하고, 11시부터는 가게에 나와서 수업 준비를 했다. 그리고 다시 12시에 원예 수업 어르신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비채 앙상블 공연 준비와 그 일정을 마치고, 지금은 인터뷰를 하고 있고, 이후에는 전화 작업이랑 명단 작업할 게 남아 있다.

이렇게 바쁜 일상을 살면 결혼 생각은 별로 안 할 것 같다.
내가 가진 모난 부분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한테 없는 점을 가진 사람.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사실 내가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내 배우자는 바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비혼도 고려하는지.
글쎄. 주위에서 친구들이 결혼을 많이 하는데 고민이다. 사실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면 안 되나, 하고 생각할 때도 있고…. 그런데 비혼으로 살 자신은 없다. 결혼했냐고 묻는 사회적인 시선까지 이겨낼 자신은 없다. 결혼은 옵션으로라도 해야겠다 싶다.

사람들이 모이고, 대화하고,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무엇인가가 공동체를 없애고 사람들을 조각조각 분절시켜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비채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언젠가 텃밭을 가꾸는 공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관계 맺는 모습을 보며 느낀 게 있다. 그게 문화가 됐든, 아니면 어떤 구조가 됐든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소통하는 공간을 없애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모이고, 대화하고,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무엇인가가 공동체를 없애고 사람들을 조각조각 분절시켜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스클럽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있긴 하지만, 공간을 함께 사용할 뿐 굳이 거기 오는 다fms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지 않나. 돈이라는 진입장벽도 있고. 그에 반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모이고 함께하는 공간 말이다.

그런 구상이 ‘마을가게살림’으로 나타난 건가.
사실 1년 전 이 사업을 고민하기 시작할 때는 소통의 장소인 카페를 하고 싶었다. 그냥 커피를 내려서 파는 곳 말고 무언가 사회적 공간과 콘텐츠를 담은 카페를. 그런데 자본 문제도 있고, 자칫 카페가 소비만 하는 장소가 될 수도 있고…. 그래서 우선 되살림 가게를 열기로 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햇살이 들어오는 1층의 탁 트인 공간을 운영하고 싶다. 연습실이어도 좋고, 다른 무엇이어도 좋고.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이 먹는 것이니 어떻게 보면 밥집이 제일 좋을 것도 같다.

앞으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없나.
오늘 헌책방에서 고등학교 지리부도 교과서를 샀다. 여행이 가고 싶어서다. 올해 여행 적금 통장도 만들었다.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좋다. 언젠가 긴 휴가를 얻어서 떠나고 싶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진행·정리 오지은 기자 ohjieun317@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