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권하는 세상'에 대한 한 비혼의 반문

[275호 커버스토리]

2013-09-23     오수경

엄마가 외출을 했습니다. 고향 친구 둘째딸 결혼식이랍니다. 부모님이 누군가의 결혼식을 다녀온 날이면 ‘30대 후반 비혼 여성’은 숨도 크게 쉴 수 없습니다. 부모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화풀이 등짝 스매싱’을 당할 수 있습니다. 엄마의 외출이 끝나기 전 촛불처럼, 연기처럼 ‘꺼져주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도일 것입니다.

집 밖을 벗어나면 안전할까요? 그럴리가요. “아직 좋은 소식 없어?”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선제공격을 합니다. “사는 것 자체가 좋은 소식이죠”라며 방어하지만 역부족입니다. “그러니까 눈 좀 낮춰~.” 연속 공격에 마음이 화르륵 달아오르지만 “저렇게 드세니 시집을 못갔지!”라는 확신에 찬 선언을 듣기 싫다면, 영혼 없는 웃음이라도 지어줘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어떨까요? 괜찮은 자매 쏙쏙 뽑아내는 ‘권사님 리스트’에서 제외된 지 오래입니다. “늙은 여종” 소리 들어가며 청년부에 대롱대롱 매달렸지만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마음의 소리만 점점 거세질 뿐입니다. “야, 우리도 ??교회나 △△교회 가볼까?” 친구가 한숨 섞인 넋두리를 뱉어냅니다. ??교회와 △△교회는 청년들이 많은 초대형 교회입니다. 그곳은 매주 ‘짝’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는 풍요로운 땅일까요?

‘못-’과 ‘안-’의  우주적 차이를 아시나요?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갔다면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연애를 시작해 7년 동안 연애하다가 스물일곱 살에 결혼을 하여 현재 딸 둘을 둔 30대 여성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 인생을 ‘30대, 비혼, 여성’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네, 지금의 제 인생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과정이며 결과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시선은 다릅니다. ‘못-’과 ‘안-’, 미혼(未婚)과 비혼(非婚), 딱 한 글자 차이가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만큼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두 단어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국어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미혼(未婚)이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비혼(非婚)이란 독신을 선택하는 여성들이 스스로 ‘아직 미(未)’ 자가 아닌 ‘아닐 비(非)’ 자를 써 비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알려주더군요(DAUM 국어사전 참고). 즉 미혼이란 ‘아직’ 결혼에 이르지 못한 ‘미완의 존재’로 읽히고, 비혼이란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삶이라 읽힐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인생을 미혼과 비혼이라는 단어로 규정하고, 인생의 어떤 기간을 ‘못-’과 ‘안-’으로 구분하여 분류한다는 건 어쩌면 그 인생에 대한 지독한 오해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적으로 이런 오해의 과정에 동참하게 됩니다.

우리는 마감 직전 ‘떨이상품’이 아니에요!
그 오해는 결국 ‘상처’라는 결과로 이어지곤 합니다. 어느 시사주간지에서 ‘30대 여성의 반란’이라는 주제를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기사 내용은 30대 여성이 정치적?사회적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다는 분석이었는데 자료 사진들은 모두 아이와 함께 있는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이 ‘30대 여성’의 사회적 표준이었던 것이지요.

최근 발표한 어느 연구 조사에 따르면 ‘20대 5명 중 1명은 평생 결혼을 못한다’고 합니다. 기사 내용은 ‘못-’과 ‘미혼’이라는 단어로 가득하여 ‘비혼’을 바라보는 사회 정서가 어떠한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출산’의 사고 구조 안에서 출산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비혼 여성은 뜻하지 않게 ‘죄인 중 괴수’가 됩니다(30대 비혼 문제를 이야기할 때 남성보다는 여성의 문제가 절대적으로 많이 회자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흐름은 비단 언론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이어집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누군가 저에게 “너는 왜 여태 결혼을 안 해?” 라고 물으면 제가 “그럼, 당신은 왜 그렇게 일찍 결혼했어요? 결혼 평균 연령보다 비정상적으로 앞섰으니 문제군요!”라고 물어보면 어떨까요? “눈 좀 낮춰~”라는 핀잔을 듣고는 “어머, 그러면 당신은 눈을 낮춰 지금의 배우자를 만난 것이군요!”라고 감탄한다면 어떨까요?

앞서 저는 제 인생에 대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과정이자 결과’라 표현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인생도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당신의 시간과 인생이 옳듯 내 시간과 삶도 그러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눈을 낮추라’는 핀잔 대신 ‘눈을 맞추라’는 조언이 필요합니다. 30대 비혼 여성은 마감 직전 떨이상품이 아니거든요. 결혼과 출산과 양육이라는 과정이 소중하듯 홀로 걷는 시간을 존중하며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30대 비혼 여성은 다루기 힘든 ‘취급주의’ 물건도 아니거든요.

‘30대, 비혼, 여성’ 앞에서 많이 당황하셨어요?
‘비혼’이라고 하여 ‘결혼에는 관심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면 결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교회에서 오고가는 연애와 결혼 강좌나 관련 책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오히려 까칠하게 반응하는 편입니다. 결혼이라는 ‘목적’을 위한 ‘자기계발’ 혹은 ‘전략’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마땅치 않습니다. 연애나 결혼을 ‘기능적 관점’으로 보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강좌나 책을 공유하는 우리들의 무의식에는 어쩌면 30대-비혼-여성은 목표(결혼)에 성공하지 못한 루저 혹은 ‘아직’ 목표를 이루지 못하여 코칭이 필요한 존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경우도 많기에 적당한 코칭은 필요하다고도 보는 입장입니다만, 이왕 하려면 당사자에게 덜 폭력적인 관점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늘 궁금합니다. 30대 비혼 ‘남성’과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차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30대 비혼의 삶’은 왜 표준에서 벗어난 ‘미완’의 존재여야 하는 것일까요? 결혼, 비혼 등 다양한 ‘선택’은 왜 존중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특히 교회에서 말이죠. 결혼이 ‘유일한’ 최선일까요? 본질적인 영역이 아니라면 사회적 흐름, 시대의 변화에 대한 이해, 신앙적 고민의 과정을 충분히 거쳐 더불어 존중하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질문은 늘어나지만 대답은 여전히 빈곤 상태입니다. 2010년 통계청에서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25~49세 ‘싱글’ 인구는 약 40퍼센트입니다. 여성 비율이 평균적으로 높은 교회는 그 비율이 더 높으리라 짐작합니다. 성급하게 단순화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30대 비혼 여성’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흔한 존재가 된 것이지요. 하지만 교회는 그 흔한 존재에 대해 많이 당황하는 것 같습니다. “많이 당황하셨어요? 사실 저도 많이 당황했습니다만~.”

‘우리들의 교회 언니’ 양혜원 언니(라고 한 번도 못 불러봤지만)는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에서 ‘여성이 자신의 언어를 가진다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 역설했습니다. ‘결혼, 출산, 육아 등 남들 다 하는 것 못해보고 사는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일까?’ 두려웠는데 그렇게 말해주는 속 깊은 언니가 있어 참 고마웠습니다. 일본 여성들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작가 마스다 미리의 책은 ‘이대로 시들어가는 것 같아 말 못할 불안과 무기력의 바다를 표류하는 것 같은’ 저에게 그 어떤 경건한 책보다 더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습니다(시들어 간다, 라는 표현이 실제로 그 책들에 나와 얼마나 깜짝 놀랐던지). 교회에서 로맨스, 연애의 기술, 결혼의 가치를 알려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누구든 스스로가 자신의 언어를 가질 수 있도록 듣고, 서로의 인생을 존중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한 격려가 되어주는 것 아닐까요. 교회는 이제, 새로운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인터넷에서 ‘미혼’이라는 단어를 찾으면 몇 가지 뜻이 더 나옵니다. 미혼(美魂)은 아름다운 혼이라는 뜻으로, 감성과 이성, 의무와 경향성이 스스로 조화된 성격을 이르는 독일의 시인 실러의 말입니다. 반면 또 다른 미혼(迷魂)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헤매는 영혼을 뜻한다고 합니다. 당신 곁에 있는 그 흔한 ‘미혼’은 감성과 이성, 의무와 경향성이 조화된 아름다운 영혼입니까? 아니면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헤매는 영혼입니까?

오수경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지만 글쓰기 울렁증이 있고, 책을 많이 사지만 읽지는 않고, 사람을 많이 만나지만 부끄럼이 많고, 내성적이지만 수다스럽고, 나이 먹다 체한 30대, 비혼, 여성이다. 선교단체와 학원복음화협의회 간사를 하며 ‘평생 청년’으로 철없이 살기로 결심했고, 현재는 사훈이 ‘노는게 젤 좋아’인 청어람에서 열심히 일하는 척하며 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