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거부 이유와 하나님의 창조성에 관한 단상

[276호 커버스토리]

2013-10-29     송현진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계의 적대감은 미국 복음주의 안에 폭넓게 깔려 있다. 2012년 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46퍼센트가 ‘하나님이 인간을 현재의 모습 그대로 만들었다’는 창조론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기독교의 추세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한국에서도 지난해 기독교계의 반발로 몇몇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진화론 관련 부분이 삭제되는 사례가 있었다.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기독교인들의 경우 흔히, 하나님이 태초에 아담과 이브 두 사람을 창조하시고 동식물을 각 종별로 만드셨다는 성경의 기술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 이유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인간은 태초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죄가 없는 상태였으나,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는 사건이 인간에게 원죄가 들어오게 된 이유이기 때문에 이 사건이 문자 그대로 일어났다고 믿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진화의 과정 전체를 주관하셨다고 믿는 유신론적 진화론의 입장에서는 ‘진화이론’ 자체는 무신론도 유신론도 아닌 중립적인 진화의 과정 자체를 ‘설명’하는 ‘이론’이기 때문에 기독교와 대치되지 않으며 신이 이 과정을 주관할 가능성에 열려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미국 국립보건원 원장이며 생물학자인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가 바이오로고스(BioLogos)라는 단체를 통해서 진화를 통해 전달되는 유전자 정보가 어떻게 하나님의 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소개한 바 있다.

필자는 유신론적 진화론에 가까운 입장에서, 기독교인들이 진화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성경적 이유가 아닌 심리적 이유일 가능성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울러 창세기의 창조 기사 속에 숨어 있는 진화론적 모티브들의 가능성과 죄성에 대한 더 은유적인 해석을 시도해봄과 동시에, 인간의 창조성에 대한 심리학 연구들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성이 어떤 모습이 될 수 있는지, 그 속에서 진화론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진화론을 거부하는 몇 가지 이유
1. ‘우연’에 대한 오해
기독교인들이 진화이론을 받아들이는 데 큰 저항감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는 진화이론을 무신론적으로 소개한 여러 학자들의 영향이 크다. 그 예로 리차드 도킨스가 진화의 과정 전부가 모두 ‘우연’에 의해 일어난 것임을 강조하면서 진화가 어떤 ‘목적과 의지를 가진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증거가 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진화의 과정을 보면 모든 것이 아무 목적이 없는 우연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기독교인들은 흔히 위협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논리에는 하나의 함정이 숨겨져 있다. 인간의 관점으로 바라본 우연이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어떤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 속에는 우연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가 펼쳐진 대표적인 사례로 ‘제비뽑기’가 나온다.

가령 예수님의 제자 중 유다를 대신할 사람을 뽑을 때,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땅을 분배할 때, 사울이 왕으로 뽑힐 때 등이 그 예이다. 제비뽑기의 결과는 경우의 수에 따르는 우연 (random chance)이지만, 하나님은 그 과정에 개입하셔서 섭리를 이루어가신다는 점에서는 필연이다. 즉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의 시각보다 시공간적으로 몇 차원을 더 넘어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차원의 우연이 반드시 무신론을 이끌 수는 없다.
 
2. 심신(心身)이원론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는 심신이원론적 사고는 인간이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리하여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확연히 분리하여 흔히 육체적인 것, 감정적인 것은 더럽고 저급한 것이며 정신적인 것만이 고상하고 참된 인간의 특징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굳어진다. 기독교 안에도 플라톤주의나 영지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현실적·육체적인 부분을 무시하고 영적인 것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예가 될 수 있다.

진화이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인간에게 동물과 공통된 육체적이고 본능적인 부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격이기에, 심신이원론적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는 ‘거부감’이 크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순전히 영적이고 순전히 정신적인, ‘순전성’이나 ‘깨끗함’에 대한 욕구가 높은 경우에 이런 동물적 부분을 부정하는 성향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심신이원론적 사고는 성경과 대치된다. 인간은 영?혼?육이 하나인 존재이며 육적인 부분이 정신적?영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간에게는 동물과 공유하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본능과 더불어 이를 통제하는 고등인지 능력이 더하여 있는 것이지 원초적인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3. 카테고리적 사고
인간은 인지적인 노력을 줄이기 위해서 카테고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인종, 성별, 출신지 등을 나누고 구분하는 카테고리적 사고는, 효율적인 정보 처리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더 쉽게 예측하게 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흔하게 나타난다. 특히 이런 카테고리적 사고는 안정감을 중시하는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카테고리적 사고가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일례로,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인종간의 카테고리를 더 확실히 구분하며 그 결과 인종차별적인 성향을 보인다. 기독교인들의 경우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기에, 이런 카테고리적 사고 성향이 높을 수 있고 이러한 사고가 진화론에 대한 관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인간과 동물은 확연히 다른 카테고리여야 하고, 다른 동물들 또한 종별로 서로 다른 카테고리여야지, 그 중간단계가 있었다는 것은 카테고리적 사고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이다.

이와 달리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시각에는, 인간이 동물과 연장선상에 있다는 스펙트럼적인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다. 이 경우, 카테고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동물과의 공통점과 더불어, 전혀 다른 차이점이 카테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창세기의 진화적 모티브와 인간의 죄성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인간이 단 두 명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인간과 동물이 각 종대로 다르게 지어졌다는 것 등이 진화론과 대립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과 죄성의 근원인 ‘선악과 사건’을 비롯하여 창조 이야기를 더 상징적으로 해석할 경우는 그 속에 많은 진화적인 모티브들이 숨어 있으며, 특히 성경에 묘사된 인간 죄성의 본질은 진화론 속에 많이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1. 도덕적 판단의 진화와 죄성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고 자신들이 벌거벗은 것과 잘못을 알게 된다. 성경은 두 사람의 ‘눈이 밝아졌다’(the eyes of both of them are opened-NIV, 창 3:7)고 표현한다. 즉 도덕적 판단능력과 의식이 생긴 것이다. 이 과정에 대한 묘사는 진화에서 도덕적 판단능력을 포함하는 고등인지가 없던 동물에서, 인간이 진화하면서 도덕적 판단능력을 포함하는 고등인지와 의식이 진화했다는 묘사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동물의 경우 이런 도덕적 판단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동물의 이기적 행동을 죄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죄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기에, 그와 함께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이 주어졌기에 ‘죄성’을 갖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성경의 이 구절이 의식의 진화를 정확히 과학적으로 표현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이다. 하지만 창조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읽는다면 문학적?철학적 의미에서 그 속에 의식과 도덕 판단의 진화라는 ‘모티브’가 들어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닐는지 모른다. 성경이 이 의식과 도덕 판단의 진화를 인간이 ‘죄성’을 가지게 되는 핵심적인 시발점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게 보인다.

2. 동물적 본능과 죄성
기독교 신학에서 인간의 자기중심성과 자기보호 본능이 죄성의 가장 핵심되는 성향이라면, 진화 과정의 주된 원동력이 되는 동물적 생존 본능과 번식 본능이 그 중심에 자리할 수 있다. 자기 자신과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가족을 보호하고 그 이익을 추구하는 본능은 생물의 진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고, 인간에게는 어쩌면 이기성의 근본이 되는 요소이다.

반면에 예수님이 말하는 사랑은 자신의 가족과 소속 집단과 국가를 넘어선다. 오히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기 위해서 형제와 부모를 버리기까지 하라고 말씀하신 때가 있다. 진화를 주관하는 본능은 자기보호를 위해 이에는 이로 자신을 보호하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원수에게 뺨을 돌려대라고 말한다. 진화론을 받아들인다면, 인간의 자기중심적 본능이 인간의 진화된 동물적 본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물론 이 본성에 따르는 삶을 거슬러 살아가라고 하신다. 그런 점에서 진화론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성령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보호 본능의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의 실상을 잘 묘사하고 설명하는 이론이기도 하다.

 

   
▲ 대표적인 창의력 측정 모델인 카를 둔커의 '양초 문제'

인간의 창의력과 하나님의 창조성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기에 하나님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인 창조성, 곧 창의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창의력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성의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 창조성 속에서 진화는 하나님이 사용하신 방법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

심리학에서 창의력으로 분류하는 사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어떤 사물의 고정된 용도를 깨고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하는 능력이다.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기보다는 이미 있는 것을 새롭게 사용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 말이다. 이러한 능력을 측정하는 과제 중 하나가 ‘양초 문제’(Dunker's candle problem)라는 과제이다. 이 과제에는 세 가지 물건이 주어지는데, 양초 하나, 성냥, 압정 상자이다. 과제는 이 세 가지 물건을 이용하여 양초를 벽에 고정시키는 것이다.

만약 세 가지 물건들의 고정된 용도에만 생각이 고착된다면, 압정 상자는 압정을 담는 데 쓰일 뿐이다. 이런 고정된 사고를 ‘기능적 고정관념’(functional fixedness)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고정된 사고로는 이 문제를 풀 수가 없다. 그런데 물건들의 용도를 재창조하면 이 문제에 대한 답이 나온다. 압정 상자에서 압정을 꺼내고 압정으로 벽에 고정한 후, 성냥으로 양초에 불을 붙여서 촛농을 떨어뜨려 압정 상자에 양초를 고정하면 된다. 이때 압정 상자는 물건을 담는 용도에서 양초 받침대로 새롭게 사용된 것이다. 이처럼 창의력은 기존의 물건들에 대한 고정된 관념들을 버리고 새로운 기능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진화의 과정에는 이와 비슷한 재창조의 과정들이 숨어있다. 어떤 생명체가 다른 환경에서 진화함에 따라 원래 사용하던 몸의 일부분이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새롭게 사용된다. 가령, 물고기가 물에서 나와 땅에서 생활하는 파충류로 진화함에 따라 물속을 헤엄치는 데 사용되던 지느러미가 뭍을 딛고 서는 다리가 된다. 원래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던 신체의 부분들이 새로운 기능을 가지도록 진화되는 것이다.

인간의 창의력이 하나님을 닮은 것이라면, 하나님의 창조성에도 이러한 측면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창조성은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압정 상자와 양초와 성냥을 새롭게 활용하여 과제를 해결하는 것일 수 있다. ‘땅콩 박사’로 유명한 식물학자 조지 워싱턴 카버가 땅콩 풍년으로 남아도는 땅콩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놓고 기도하다가, 땅콩 하나로 풀, 기름, 화장품, 리놀륨, 살충제, 비료 등 100여 가지의 새로운 용도를 생각해낸 것 또한 창조 아닌가.

카버의 예에서 보듯,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신 생명체의 신체 기능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사용되는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원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게 놀라운 능력을 갖춘 인간을 창조하셨을 가능성은 없는 걸까? 이런 과정이 하나님이 택하신 방법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성이라는 성품과 반드시 대치되지는 않을 것 같다. 손수 물건이나 제품을 만드는 수공예가나 장인 혹은 예술가로서의 하나님뿐 아니라, 창의적 지능으로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발명가로서의 하나님의 특징을 이해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놀라운 하나님의 창조성을 드러내는 사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송현진
미시간 대학교에서 사회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예일 대학교와 연세대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바 있으며, 현재 애리조나 주립대 응용심리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감정과 인지의 상호작용, 예술적 지각, 종교적 사고와 과학적 사고 간의 관계, 인간과 비인간에 대한 구분과 지각 등의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