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후기] 용역보다 아내가 더 무섭다는 이선형 위원장
편들고 싶은 사람 '북아현동 철거민 부부'..716일만에 드디어 보상받아
“아내가 제일 무섭죠.”
농성 ‘700일’이 가까울 때쯤 위원장님은 “이제는 용역도, 세상도 겁나지 않는다”고 말하다가 “무서운 게 하나 있다면, 아내”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여느 남편들이 말하는 ‘흔한 농담’인줄 알고 웃었다가, 끝까지 이야기를 듣고는 부끄럽고 숙연해졌습니다. 다음은 위원장님의 고백.
아내가 혹시나 어떻게 될까봐 그게 제일 무섭죠.
나는 포기하고 싶어도 아내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어서 내가 힘을 얻기도 하지만,
여자의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이니까….
애들도 보살펴야 하고, 원래 성격이 내성적인 사람이라서 걱정이 많이 됩니다.
철거 이후에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혼자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걸 옆에서 볼 때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농성 천막 안에서 혼자 멍하니 있기도 하고, 중얼거리는 걸 몇 번 봤는데…,
저러다가 우울증이 생기진 않을지, 어떻게 되는 건 아닌지…,
그래서 아내가 제일 무섭죠.”
인터뷰(2013년 11월호 ‘편들고 싶은 사람’)에는 차마 싣지 못했습니다. ‘아내’인 박선희 씨가 보면 또 마음 아파할 것 같아서, 그리고 적(?)들에게 이런 마음을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라는 마음을 저들에게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타결’이 되어,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시위(또는 호소)가 일상이 되면, 우리는 종종 그 아픔도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철거 700일 되는 날, 서울시청 건물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위원장님에게 누군가 “800일이 될 때까지도 굳건하라”고 격려했을 때, 순간적으로 위원장님 얼굴이 창백해짐을 보았습니다. 후에 위원장님은 “800일? 생각만 해도 눈이 캄캄하더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700일…800일…900일…. 우린 어쩌면 은연중, 시간이 흐를수록, 숫자가 불어날수록, 그들이 감내해야 할 아픔들이 ‘미분’(微分)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흘러온 날짜만큼 고통을 나누어 짊어지고 있구나, 하는 단순한 생각이요.
그러나 우리가 모두 겪었듯, 고통은 오히려 ‘적분’(積分)됩니다. 700일 전의 고통, 어제의 고통이 고스란히 쌓여 오늘을 짓누릅니다. 700일 전의 아내, 어제의 아내가 오늘의 위원장님 삶을 두렵게 합니다. 중재되고 타결되어 새 출발을 하게 된 위원장님 부부를 우리가 끝까지 잊지 않아야 할 이유입니다. 가게가 허물어지고 보상 받기까지 716일 내내 적분되고 누적된 고통을 짊어진 채, 시작하는 거니까요. 철거 현장에서 드려지는 마지막 예배에서, 위원장님이 “계속 기도해달라”고 한 말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계속 기도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