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전쟁'과 하나님의 뜻

[285호 커버스토리] 이스라엘이 벌이는 가자 전쟁에 대하여

2014-07-29     김동문 목사, 인터서브코리아 사역자

여는 글
글을 마무리하려던 중, 가자지구에서 막 전해진 뉴스는 ‘고통’이었습니다. 가자지구의 지중해 해변에 위치한 한 호텔 앞 백사장에서 축구를 하며 놀던 4명의 어린아이들이, 이스라엘 해군에 의해 피살된 것입니다. 군사시설도, 이스라엘군을 향한 위협 행위도 전혀 없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해변 근처 호텔은, 외신기자들과 취재진이 머물고 있는 장소였습니다.

저는, 중동에서의 전쟁과 분쟁 이야기를 대할 때면, 과연 이 전쟁의 팩트(실제 벌어진 일)는 무엇인가를 먼저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정당한 것인가를 곱씹게 됩니다. 전쟁의 정당한 명분은 있는가? 전쟁 과정에서 최소한의 인간 존중은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의 아픔에, 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품고 계신가? 거듭 곱씹어 보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걸프 전쟁, 이라크 전쟁, 가자 전쟁, 남부 레바논 전쟁 등 이런 수많은 전쟁의 상황을 중동에 거주하면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때로는 그 현장에서, 아니면 현장 가까이서 전쟁을 접하면서 아픔도 괴로움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과연 정의로운 전쟁이 있는 걸까요? 수많은 전쟁에 정녕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일까요? 전쟁을 일으키지도, 의도하지도 않았음에도 죽어간 무고한 생명의 희생에, 하나님은 어떤 뜻을 품고 계신 것일까요? 무고한 전쟁, 불의한 전쟁 과정에 부르짖는 이들의 소리에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가자 전쟁’ 돌아보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7월 17일 현재, 벌써 9일째입니다. 이스라엘은 공중 폭격을 통해 1,300여 곳에 폭격을 가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거의 3분마다 공습 폭격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 가자지구에서만 190여 명의 사망자와 1,3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스라엘 측에서는 5명 정도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이유는 무엇일까요? 흔히 6월 12일 납치 살해된 3명의 유대인 청소년들의 살해 책임이 하마스에 있기에 그 피의 보복을 위해, 그리고 이스라엘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가자를 공습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3명의 유대인 청소년을 납치한 책임이 하마스에 있다는 증거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마스 측에서는 이 사건과 자신들이 전혀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통상적으로는, 하마스 같은 무장조직은 이런 일을 저질렀을 경우 숨기지 않습니다. 이례적인 풍경입니다.

여하튼 이스라엘 정부는, 서안 지역 전역에서 범인 색출을 명분으로 대규모 수색작전을 전개하였습니다. 서안 지역에서 곳곳을 임의적으로 수색하고, 700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연행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충돌이 빚어지고, 팔레스타인인 5명이 피살되었습니다. 이후 6월 30일에는 납치되었던 유대인 청소년 3명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당국이 수색작전을 펼친 지 18일만의 일이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정부의 보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육상과 해상, 공중에서 가자지구를 공격하였습니다. 34곳이 공습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자 주민 4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서안지역에서도 4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후 베냐민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는 3명의 유대인 청소년 납치 살해와 관련한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이 사건이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하마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군사작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7월 1일, 네탄야후 총리의 공개적인 엄포가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로켓 공격을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하마스에 강력하게 얘기하는 바입니다.”

이런 즈음에 두 건의 사건이 이어졌습니다. 전혀 다른 사건이었습니다. 7월 2일, 동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무함마드 아부 크다이르(16)가, 피의 보복을 명분으로 삼은 6명의 극단적인 유대인에 의해 납치되어 산 채로 불에 태워져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곳곳에서, 그리고 이스라엘의 아랍계 거주 지역 등지에서, 테러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가 번져갔습니다.

무함마드 아부 크다이르의 사망으로 인한 팔레스타인인의 시위와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군 당국과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 충돌이 이어졌습니다. 시위는 서안지구, 가자지구를 넘어 이스라엘 북부 등 이스라엘 전역으로 번져갔습니다. 이스라엘 국적의 아랍계 이스라엘인 지역에서 규탄 시위가 번져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지역으로 로켓포 공격이 벌어졌습니다. 가자지구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 포탄을 쏘며 반발했습니다. 이스라엘 남부에 150기 이상의 로켓 공격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군 당국은 가자지구의 70곳 이상에 공습을 가했습니다. 이른바 지난 7월 8일 시작된, 프로텍티브 엣지 작전(Mivtza' Tzuk Eitan, ‘견고한 절벽 작전’)을 전개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유대인 청소년 3명의 납치 살해 및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최근에 빚어진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주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최소한,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자신의 소행으로 밝힌 세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들은 이슬람 정부(ISIS)를 지지하는 팔레스타인 신흥 무장 조직으로, 지난달 이후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조직이었습니다. 그들이 이슬람 정부 수립을 지지한다는 의사 표시로, 이런 공격을 자행했다고 밝힌 것입니다. 이는 7월 1일자 인터넷 웹사이트에 기재된 내용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필자는 이 웹사이트를 직접 검색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같은 주장은, 2012년 예루살렘에 기반을 두고 시작한 온라인 뉴스 매체인 <더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www.timesofisrael.com)에 게시된 기사에서 언급된 내용입니다.

여기서 다시 궁금한 지점으로 돌아옵니다. 현재까지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우연이라고만 볼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적절한 시기에 연이어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마스의 소행이 아닐 수도 있는 사건을 하마스의 소행으로 간주하고,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을 감행하고, 하마스를 자극하고,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빌미로 가자 공습을 감행한 이스라엘 정부는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 몇 가지 추론은 가능해 보입니다. 이에 대한 분석은 알자지라의 정치분석가 마르완 비샤라(Marwan Bishara)가 7월 11일자 칼럼에서 잘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내용은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전쟁과 하나님의 뜻
이번에 다시금 가자 전쟁의 상황을 살펴보면서, 11년 전 이라크 전쟁 상황을 떠올리게 됩니다.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는 처음부터 없었음에도, 여론조작을 하면서까지 강행했던 전쟁, 불의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라크 전쟁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외치던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슬람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고 복음의 문을 여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전쟁이라는 논리였습니다.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하는 불의한 정권을 심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미국을 들어 이라크를 치셨다는 논리였지요. 그러니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외치던 그들은, 그 땅 전체 국민 중 10% 안팎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나,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오히려 기독교가 보호받기도 했다는 점, 언론과 여론이 주장한 것처럼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로 중동과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악의 축은 아니었다는 사실에는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었습니다. 명분 없는 전쟁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어도 “이라크 전쟁이 하나님의 뜻”이라 운운하던 이들은 별다른 돌아봄이 없었습니다.

지금의 가자 전쟁을 두고도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택함받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불의한 세력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한 이스라엘 정부의 대응이 정당하다는 입장입니다. 이 전쟁을 두고 하마스의 테러 위협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무조건적인 이스라엘 지지 입장을 갖는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그 논리의 근거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깔린 듯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민족이다.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거룩한 땅이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런 태도는, 현 상황에 대한 객관적 관찰의 고된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스스로는 이런 태도가 성경적이라 확신하겠지만, 성경적 근거도 희박합니다. 어찌 보면, 일본 제국주의에 지배당하던 시절에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하나님의 뜻이고, 일본에 무력으로 저항하는 행위들을 테러로 비난하던 장면이 겹칩니다.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근거도 없이 특정 집단이나 민족이나 정권을 절대화하고 신성화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배제의 논리’는 패권주의이자 하나님에 대항하는 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도한 무력 사용은, 공권력에 의한 폭력입니다. 이렇게 악행하는 이들을 정당화하고, 그들을 하나님이 지키실 것이라고 거짓된 평화를 전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극단적이고 무조건적인 이스라엘 지지는 하나님의 뜻일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근거가 부족한 배타적 선민주의와 특정 민족에 대한 혐오감에 바탕을 둔 ‘배제’는 하나님의 뜻으로 치장될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적 선민주의와 정치적 패권주의는 하나님의 정의에 어긋납니다.

맺는 글
가자 전쟁과 하나님의 뜻,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확신하시는 분들은 의례적으로 사용하는 종교적 표현을 벗겨내고, 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옹호하는지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 하나님의 뜻은 현실에 대한 차가운 통찰력에 의해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김동문
두 아들의 아빠이고, 한 아내의 남편이다. 1981년 캠퍼스에서 만난 IVF 안에서 다양한 배움과 섬김의 기회를 누렸다. 졸업한 이후 1990년 이래로 이집트를 시작으로 아랍 이슬람 지역 안팎에 살면서 아랍과 이슬람 그리고 성경을 알아가고 있다. 현재 인터서브코리아 사역자로, 무슬림과 이주자에 대해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