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내지 않고 끊임없이, 인내하는

[285호 권서, 첫 사랑을 메고 떠난 사람들]

2014-07-29     박명철 프리랜서 저술가

함경도의 초기 교회들 가운데 하나인 경성교회를 설립한 분이 캐나다 출신의 그리어슨(R. Grierson, 具禮善) 선교사이다. 함경도와 북간도 선교는 그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 분이다. 1899년에 조선에 온 그는 목사로서 교회를 개척하였고, 의사로서 병원을 열었으며, 음악가와 스포츠맨으로서 학교를 세우고 근대 교육과 스포츠 보급에도 기여했다. 그리어슨 선교사를 도와 교회를 개척한 사람들 또한 권서들이었다. 영국성서공회 연례보고서(1911년)에 기록된 권서들에 대한 그의 평가는 다른 어떤 문장들보다 더 와 닿는다.

“위대함이란 작고 보잘것없는 의무를 싫증내지 않고 끊임없이 순전한 인내로 함으로써 바라던 목표가 이루어지고 위대한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권서들은 진실로 위대한 자들이다. 그들은 이교주의의 굳센 바위를 망치로 깨는 석수장이들로서, 강하게 반발하는 큰 바위에서 다른 사역자들이 쓸 수 있는 돌을 채석해준다. 그들은 결과가 나타나기 전에 오랫동안 버티지 않을 수 없다. 오래된 선교사도 외친다. ‘오 바위, 바위, 언제 열릴 것인가?’ 이것은 권서들이 의식 깊숙한 곳에서 매일 외치는 말이다.”

위대한 목적과 작고 보잘것없는 의무. 서로 대조되는 이 구절은 권서들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법한 마음가짐을 잘 표현해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어슨 선교사의 기록을 보면 ‘위대한 목적’에 방점을 찍기보다, 보잘것없는 의무를 싫증내지 않고 끊임없이 순전하게 인내함으로써 바라던 목표를 이루어가는 그 과정이야말로 참된 ‘위대함’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권서란 ‘싫증내지 않고 끊임없이, 순전하게, 인내하는’ 삶의 결을 가진 사람들이어서 비로소 위대한 존재였음을 알게 해준다.

#평안도에서 보낸 일주일
블레어 선교사와 평안도 강계에서 보낸 지난 일주일이 박씨의 기억에서 여전히 설레는 기억으로 남았다. 박씨는 공회의 허락을 얻어 일주일 동안 블레어 선교사의 사역지인 평안도 강계를 방문하였다. 제법 북쪽이었으나 조선의 여름은 어디를 가도 뜨겁기는 매한가지였다. 강계에서 블레어 선교사와 만난 박씨는 그곳의 교우들 아홉 사람과 함께 다시 80리 떨어진 한 마을에 들어가 이레 동안 머물며 전도하였다. 북천강이 독로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관서팔경의 하나인 인풍루(仁風樓)가 서 있었다. 그 수려한 풍광을 지나면서 블레어 선교사와 나눈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미국 북장로교 출신의 블레어 선교사는 일찍이 신축년(1901년)에 조선에 와서 지금까지 머물며 교회를 개척하고 학교와 병원을 세웠다. 특히 숭실학교의 기숙사 건축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시카고를 방문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박씨로서는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숭실학교 기숙사 건축비를 지원받기 위해 시카고의 맥코믹 신학교를 방문해 맥코믹(C. McCormick) 부인과 만날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부인과 면담하기 위해서는 신학교 교수의 추천장이 있어야 했는데 저로서는 추천장도 없고, 사전에 부인과 연락도 없었으니 면담이 힘들었지요. 그저 무턱대고 찾아간 것입니다.”

“조선에 오시니 조선 사람이 되었나 봅니다. 어째 연락도 없이….”

“허허 그런가 봅니다. 저는 비서에게 제 명함을 건네주면서 ‘부인께서 저를 보고 싶어 하시리라 믿습니다. 제 명함을 전달해 주십시오’ 하고 면담을 요청했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면담이 이뤄졌습니다.”

“설마 부인이 정말로 선교사님을 보고 싶어 하셨던 것입니까?”

“그러게요. 방으로 들어갔는데 글쎄 부인의 책상 위에 제 사진이 놓여 있지 뭡니까? 그 사진을 들고는 ‘여기 선교사님 사진이 있습니다. 우리는 조선에서 선교사님이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하고 반겨주시는 거예요. 깜짝 놀랐지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가 ‘선교사님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이 없을까요?’ 하고 묻지 않겠어요. 저는 얼른 숭실학교 기숙사 건축비를 약속받았지요.”

“아,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박씨는 맥코믹 부인도 고맙고 하나님께도 감사하였지만, 무엇보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 이 머나먼 땅에서 고생과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는 블레어 선교사에게도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이 절절하였다.

블레어 선교사와 함께한 그 이레 동안의 전도대 활동은 보기 드문 성과를 거두었다. 전도대는 365권이나 되는 복음서를 팔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서를 살 단돈 2전도 없어서 감자와 무를 대신 내놓기도 했으며, 전도대원들은 지게에 감자와 무를 지고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전도한 결과 새로 세워진 교회가 아홉 곳이나 되었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느 산골마을에서는 절반 가까운 마을 사람들이 믿음을 갖기로 하여 모두가 감격에 겨워했다. 복음은 받는 이에게 큰 유익이지만 전하는 이의 기쁨 또한 말할 수 없이 큰 것을 또 깨달았다.

길에서 만난 승려에게도 복음서 한 권을 팔았는데 책값이 없다며 자신이 지니고 있던 명주 수건 한 장을 주면서 고맙다는 말을 거듭했다. 소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본인 선생도 박씨가 설명하는 복음을 듣고는 복음서 한 권을 샀다. 복음을 전하는 마음은 결코 사람을 가리는 법이 없다. 박씨는 오래 전부터 그 마음을 ‘순전함’이라 생각하였다. 순전함은 사랑하는 마음의 또 다른 결인 셈이었다.

집사 김씨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기억거리였다. 그는 몸집이 크고 기골이 장대한 사람으로 복음을 전하는 데 열정적이었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김씨는 신줏단지를 모시고 자주 술에 취하여 살던 사람이었다. 어느 권서로부터 복음을 들은 뒤 신앙을 고백한 김씨는 집안에서 신줏단지를 없앴고, 술을 끊었다. 무엇보다 술을 끊고자 그는 자기 자신과 큰 싸움을 치른 모양이었다.

김씨의 양 엄지 손가락에는 검은 점이 있기에 박씨는 궁금하여 물었다.

“문신을 한 것이오?”

박씨의 물음에 그가 뜻밖의 대답을 하였다.

“술을 끊기로 작정하면서 새긴 것이외다. 어느 손으로든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갈 때마다 이 점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점을 보는 순간 술을 끊기로 한 서원이 떠올라 잔을 내려놓았습니다.”

이런 서늘한 열정을 가진 김씨였으므로 믿음을 가진 이후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교우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조만간 권서로 일할 것이라는 포부도 밝혀 박씨는 그를 위하여 기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평안도는 정미년(1907) 대부흥 사건 이후 가는 곳마다 뜨거운 신앙의 간증들이 넘쳐났다. 어느새 박씨의 가슴까지 더운 여름날의 태양처럼 타오르는 듯했다. 박씨로서는 잊지 못할 여름을 보낸 셈이었다.

#수암골의 희망
평안도에서 돌아온 이튿날 곧장 박씨는 저수지 너머에 있는 수암골로 갔다. 두 주 걸러 하루는 꼭 들르는 마을이었다. 작년 가을 박씨가 이 마을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만 하더라도 권서를 바라보는 눈길이 매섭고도 차가웠다.

“우리 마을에는 발을 들이지 말게나.”

이 마을의 어른 격인 함 생원이라는 노인은 박씨를 바라보지도 않고 장죽(長竹)을 문 채 아이를 어르듯 겁을 주었다. 박씨는 그 후 꾸준히 수암골을 찾았다. 열 집을 가면 못해도 한두 권은 책을 파는 것이 예사인데, 수암골에서는 반나절을 마을에 머물러도 허탕인 경우가 많았다. 마음이 여린 이는 거절하지 못하여 핑계를 대기도 했다.

“글을 읽지도 못하는데 책은 사서 뭐합니까?”

그런 물음이라도 해오면 다행이었다. 권서들은 이런 물음에 답하는 비결을 꿰고 있었다.

“허허, 서찰이 온다 해도 글을 못 읽는다는 핑계로 받지 않겠소? 서찰을 들고는 글 읽는 사람을 찾아가서 어떻게든 읽어달라고 할 것 아니오?”

“그야 뭐….”

“자, 이 책은 하나님이 보낸 서찰이나 다름없어요. 못 읽는다고 거절할 수야 없지요. 글 읽는 이들을 찾아가 읽어달라고 하는 게 도리지요. 보아하니 당신 마음에는 두 개의 문이 있소. 눈과 귀가 그 문인 게요. 읽지 못한다면 다른 이가 읽는 걸 들으면 되고, 나아가 당신도 읽을 줄 알아야 하지 않겠소? 여기 자모표도 있으니 가져가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공부한다면 얼마 가지 않아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오.”

이런 사람에게 박씨는 공회가 만든 자모표를 복음서와 함께 건넬 수 있었다. 혹 선교사들과 동행할 때면 읽지 못하여 복음서를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읽지 못한다고요? 제 옆에 있는 이 외국인도 우리나라에 온 지 얼마 안 되지만 벌써 유창하게 읽고 쓸 수 있습니다. 하물며 조선 사람이 제 글을 읽지 못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무엇보다 선교사들조차 조선은 쉽고 좋은 글자를 가졌으므로 성경을 보급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고백하였다. 그러니 성경을 읽기 위해서라도 권서들은 한글을 가르치는 일까지 병행하였다. 하지만 오히려 문자가 깊을수록 성경을 멀리하는 이들이 많았다. 배움이 편견이나 선입견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키기보다 오히려 함몰되게 만든다면 그런 배움이야말로 모순이 아닐까 자주 생각하였다.

이날은 박씨가 수암골에서 처음으로 한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한 뜻 깊은 날이었다. 여러 집을 들렀으나 대화를 잇지 못하거나 어렵게 말문을 트더라도 몇 구절 성경을 읽어줄 뿐이었다. 1년 가까이 계속되어 온 일이었으므로 박씨는 더 이상 실망하지 않았다.

이날도 그렇게 가져간 책을 고스란히 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황급히 한 사내가 박씨 앞에 숨을 헐떡거리며 나타났다.

“어르신, 예수를 믿으면 지옥에 가지 않고 천당에 간다고 했지요?”
“예, 그렇지요.”

“그러면 지금 당장 제 집으로 가셔요.”

“예?”

“모친이 돌아가실 것 같은데 좋은 데로 가고 싶어 합니다.”

“아! 그럼, 어서 갑시다.”

사내의 모친은 박씨의 말에 마지막 힘을 쏟아 집중하였다. 박씨는 이제 곧 세상을 떠날 사람에게 회개할 것과 예수를 주인으로 모실 것을 당부했다. 노인은 힘겹게 고개를 움직였다. 박씨는 성경을 펴고는 십자가상에 달린 예수님이 회개한 죄인에게 낙원을 허락하신 구절을 찾아 읽었다.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3:39~43)

노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평화로운 얼굴빛으로 가족들과 이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더욱 기뻤다. 그렇게 어머니를 보낸 자녀들은 마음의 짐 하나를 내려놓은 셈이었다. 박씨는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온 한 영혼을 축복한 뒤 집을 나왔다. 오래가지 못할 이생의 시간을 아름답게 마무리해주기를 기도했다.

지난 가을 이후 아무 열매 없는 마을을 오갈 때 박씨의 발걸음도 무거웠다. 어느새 기쁨은 사라지고 견고한 바위 앞에 선 듯, 출렁이는 바다 앞에 선 듯 막막했다. 싫증내지 않고 끊임없이 수암골에 대한 희망을 기도에 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한 영혼이 드디어 주께로 돌아왔다. 비록 이 땅에 머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박씨로서는 바위의 한쪽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제 곧 수암골에도 복음의 생수가 바위를 뚫고 샘솟을 것이었다.

#아침을 기다리는 기도
“우리에게 와주셔서 고마울 뿐입니다.”

강계에서 머무는 동안 박씨가 블레어 선교사에게 그리 인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블레어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조선의 그리스도인들은 저에게 더 큰 감동을 주는걸요. 추운 겨울밤에도 삼일 저녁 기도회에 수천 명이 예배당을 찾는 모습을 조선 땅 아니고선 어디에서 또 볼 수 있겠어요? 서너 시간의 설교를 들으면서도 인내하며 앉아 있는 청중들을 또 어디서 만날 수 있겠어요? 그뿐입니까? 가난한 그들이 헌금바구니가 오면 무엇이든 넣지 않고는 못 버티지요. 그러니 신도들의 능력에 비교하여 판단하면 모든 나라의 기독교인들 가운데 가장 많은 헌금을 하는 사람들일 거예요. 이 때문에 조선의 교회는 자력전도, 자치제도, 자치자립에 있어서 세계 모든 교회들의 으뜸이라 생각합니다. 예배를 마무리하기 위해 ‘축도합시다’라고 말하면 모든 교우들이 주님 앞에 엎드려 큰절을 하지요. 저는 이 풍경을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블레어 선교사는 조선 역사의 끄트머리에서 주권조차 없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보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는 희망이 조선이라는 이 나라의 이름처럼 곧 어둠을 밝히고 아침이 되어 일어서기를 박씨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그 아침에는 지금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고난과 헌신의 의미들이 환하게 드러나기를 또 기도하였다.  

박명철
<기독신문> <뉴스앤조이> <기독교사상> 기자를 거쳐 <아름다운동행> 편집장으로 기독교 매체를 만드는 일을 해왔으며, 신앙을 삶으로 살아내는 현장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알리는 데 매진해왔다. 현재는 CBS 라디오의 책 소개 코너를 맡고 있으며, 《사람의 향기 신앙의 향기》 《교회학교 부흥을 꿈꾸는 이들에게》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