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하는 이들에게 밤낮없이 달려오시는

[286호 권서, 첫 사랑을 메고 떠난 사람들]

2014-08-28     박명철 프리랜서 저술가

함경도에 방응석이라는 권서가 있었다. 캐나다 장로교 출신의 의사 선교사 맥밀란(K. McMillan)은 영국성서공회 1912년도 연례보고서에서 방응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방응석은 부산에서 성경 한 권을 샀다. 언젠가 배를 탔을 때 누군가 기독교에 대해 말했는데 그의 마음에 남은 것이다. 1년 동안 성경을 깊이 읽었고, 그러다가 하나님의 뜻에 주목하였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자 말씀에 어긋나는 모든 행위를 끊어냈는데, 심지어 자신의 사업까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 하여 멈추었다. 그가 어떤 사업에 종사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일이 하나님의 말씀에 거슬린다고 여겼으므로 끊어낸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집에 불이 나서 남은 가산조차 모두 불에 타버렸다. 그의 부친은 대노하였다.

“예수교를 버리든지, 아니면 지금 이 길로 내 집을 떠나거라.”

예수와 가족,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서 방응석은 예수를 따르고자 결심하고 처자를 남겨둔 채 집을 나왔다. 그 동안 그를 둘러싼 돈과 권세와 사람이 사라지고 이제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해야 하는 인생이 되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품팔이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고되게 일하며 자신의 믿음을 수행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총명함을 알아보고 혹할 만한 일자리를 제안하기도 했으나 방응석은 자신의 믿음을 증진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라 판단하여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1916년 영국성서공회 연례보고서 290쪽에는 베시(F. G. Vesey) 선교사의 보고를 통해 권서 안영환의 활동이 소개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언덕배기에는 푸른 잔디가 덮인 무덤이 하나 있고, 그 앞에는 자그마하고 하얀 비석이 서 있다. 우리의 작은 선교 거점 마을인 이곳에서는 어느 집에서나 맑은 날이면 햇빛에 반짝이는 그 비석을 볼 수 있다. 그 작은 돌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형제를 기념하며. 영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이 강하게 사용하셨던 이. 무식하였으나 하늘의 지혜가 충만하여 신앙 안에서 기쁘게 죽다.”

그는 한때 마귀의 종이요 중한 죄인이었다. 제멋대로 자라면서 이교도의 포악이 몸에 배었고, 오랫동안 탐욕과 미움과 사악함에 물들어 자신의 영혼을 악령의 본거지로 만들었다. 타락한 욕정과 욕망이 가득 차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중심을 차지하기 전 안영환의 영혼은 그러하였다. 그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전도했지만 그는 돌이키지 않았다. 그러나 때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사로잡자 비로소 스스로 죄인 된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이제 회심의 기적을 체험한 안영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믿음의 형제들 사이에 경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전도에 헌신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복음 증거를 듣고 주께로 돌아왔다. 그는 교육을 받지 않아 무식하였으나 그의 복음 증거는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장날이면 어느 장돌뱅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복음을 듣고 성경을 샀다. 때로는 복음서를 수백 권씩 팔기도 했다. 그의 영향력은 다른 지역에도 미쳤다. 안영환은 이렇게 전도한 까닭에 많은 고난을 당했는데, 결국 병을 얻어 순직하였다. 그의 무덤 앞에는 소박한 비석 하나가 세워졌다.

110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깡그리 잊힌 사람이다. 그러나 이 땅에 처음 교회가 세워질 그 무렵 하나님은 당신의 충성스러운 일꾼들을 부르셨고, 그들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셨다. 무르익은 밭을 추수하는 농부의 기쁨이 이 땅 방방곡곡에서 흘러넘쳤다.

방응석 안영환 권서에 대한 짧은 기록에서 하나님의 오랜 기다림이 엿보이고, 하나님의 은총을 애타게 기다려온 당신 자녀들의 초조함도 느껴진다. 기다림과 초조함이 십자가처럼 만나는 땅, 거기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신 사람들이 있었다. 더 어둡고 추운 밤을 지나 회심에 이른 사람일수록 그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은총도 더 뜨겁고 울림이 깊었던 것일까. 장터에서 그들이 증언하는 복음을 듣고 쪽복음을 사는 사람들이 홍수처럼 흘러넘쳐났다.

조선 왕조가 그 맥을 다하고 일제의 강점기로 들어서던 역사의 시련기에 하나님은 어쩌면 부랴부랴 우리에게로 달려오셨던 것일까?

#외딴 초가의 노인
‘가만 있자, 여기 어디쯤 초가가 한 채 있었지 아마….’

박 씨는 1년 전에도 이곳을 지난 기억이 났다. 고을과 고을은 산과 강으로 분리되었다. 고을로부터 떨어진 산에도 고을이 있었으나 대개 한두 채의 집이 섬처럼 박혀 있을 뿐이고, 그중에도 버려진 집들이 오히려 많았다. 버려진 집은 몇 년째 새 지붕을 올리지 않아 썩은 지붕이 내려앉을 듯 험상궂었다. 이런 집 앞을 지날 때면 한여름에도 소름이 돋았다. 노인이 홀로 살던 그 집도 얼핏 보기에는 버려진 집 같았는데, 다 쓰러져가는 초가에서 바람이라도 불면 부서질 것 같은 노인이 살고 있었다.

‘옳지, 저 집이다.’

박 씨는 길에서 올려다 보이는 언덕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1년이라는 세월이 노인을 앗아가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처음 박 씨가 복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노인은 귀 기울여 들은 뒤 “이제 곧 저승 길 갈 늙은이가 듣기에는 과한 말이오” 하였다. 노인의 말은 길가에 얕게 핀 꽃처럼 산과 풀과 하늘과 잘 어울렸다. 박 씨는 아마 그 느낌을 담아 말하였을 것이다. 길가에 핀 꽃 한 송이도 입히고 먹이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인생은 꽃보다 소중하지 않으냐고…. 노인은 가진 돈이 없었으나 하나님이 모든 인생을 구원하시려고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말에 눈 끝이 잔잔하게 떨렸다. 헤어질 때 박 씨는 요한복음 한 권을 선물하였다.

“어르신!”

안에서 문이 열리고 노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뉘시우?” 하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박 씨를 보더니 “아아” 하고는 곧 알아보았다.
“언제 다녀갈 것이라 혼자 생각하면서 많이 기다렸소.”

노인은 박 씨의 손을 잡고 진심으로 반가워하였다.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습니까?”
“나이 들면 몸이야 낡아지니….”

노인은 작년에 선물한 요한복음을 가져와 박 씨에게 보여주었다. 책 표지에 손때가 묻어 있었고 끄트머리가 낡고 닳아서 노인이 많이 읽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제법 여러 번 읽었소.”
“그러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못 준 책값이오.”

노인이 1전을 박 씨에게 건넸다. 책값이 늘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박 씨는 그 돈을 받고 지그시 웃었다. 노인으로서는 큰돈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긴 교회가 멀어서 갈 수 없소.”

노인은 교회에 가서 믿음을 가진 교우들과 교제하고 싶은 마음을 박 씨에게 말한 셈이었다. 박 씨는 홀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신앙의 도를 행하는 길을 설명하였다. 노인의 손을 잡고 오래 기도한 뒤 이번에는 성경전서 한 권을 선물하고 헤어졌다.

‘다시 노인의 밝은 얼굴을 볼 수 있을까?’

박 씨는 노인의 건강을 빌었다.

두메산골 하나의 섬처럼 홀로 떨어진 노인 한 사람에게까지 세심하게 다가가시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섬뜩할 만큼 섬세하고 치밀하였다.

#박꽃마을
언제부터였던가. 박 씨는 그 섬세하고도 치밀한 하나님의 걸음에 이끌리는 순간을 경험하였다. 그럴 때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고 모골이 송연했다. 발걸음은 더 빨라지고 등짐은 오히려 가벼웠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복음의 단비를 기다리고 있을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하여 움직였고, 그 걸음 끝에는 늘 기다림으로 초조해진 갈망이 꽃망울을 터트리고자 부풀어 있을 터였다.

박 씨가 그 느낌을 두드러지게 느끼기 시작한 때는 아마도 박꽃마을에서의 일 이후였던 것 같다. 이맘때 쯤이면 제법 높은 산이 둘러싸고 있는 박꽃마을은 마을 이름처럼 박 넝쿨이 초가집 위를 타고 올라 초록색 박을 주렁주렁 달려서 어디서든 둥근 마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을 사람들은 마음이 따뜻하고 바가지로 시원한 냉수라도 건넬  것 같은 정이 느껴진다.

박 씨는 몇 해 전 어느 겨울 날 처음 박꽃마을에 들어서던 때를 잊지 못한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었다. 등에는 아직 책을 지고 있어 뻐근하였고, 손발은 얼어서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 서둘러 몸을 녹이고자 객줏집을 찾아들었는데 거기서 예상하지 못한 취객을 만났다.

“허어, 이 사람 이거….”

잔뜩 취기가 오른 사내가 박 씨를 발견하고는 대뜸 삿대질을 하며 아래위를 훑었다. 혹시 안면이 있는 사람인가 하여 자세히 살폈으나 박 씨는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순간 사내가 박 씨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아챘다. 사내에게서 불쾌한 술기운이 훅 치솟았다.

“대체 왜 이러시오?”

놀란 박 씨가 주정꾼 사내의 손을 뿌리치며 물었다.

“야, 이놈아. 네놈도 예수쟁이 맞지?”

사내는 등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이거 예수 책이지? 이거?” 하고는 성경을 낚아챌 듯 달려들었다.

“대체 무슨 연유로 내게 이러시는 거요? 우선 여기 좀 앉으시오.”

박 씨는 사내의 몸을 피한 뒤 좁은 마루에다 취한 몸을 앉히고는 정색하며 물었다.

“네놈도 무섭지? 언제 죽을까 무섭잖아?”
“예?”
“내 마누라도 이 책 들고 다니다가 죽었어. 이 마을 여편네들이 다 그렇게 죽었다고, 이놈아.”

박 씨는 갑작스런 주정꾼의 말에 얼어붙은 손발이 쭈뼛했다. 박 씨가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치켜뜨자 사내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정신을 가다듬고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다시 이었다.

“이 사람, 아무것도 모르는구만. 잘 들어, 이 사람아.”
“….”
“석 달 전에 내 마누라 하고, 예수 믿는다는 여편네들 하고, 거 무슨 집회를 한답시고 강을 건너가다 배가 뒤집혀서 다 죽었어, 다 죽었다고, 응?”

박 씨는 그제야 사내의 분기가 어디서 비롯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이미 소문이 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박꽃마을 아낙들이었다. 사내는 아내를 잃고 자식들의 어미를 잃은 유족이었다. 어깨에 힘이 빠져 고개를 떨군 박 씨를 보자 사내는 계속하여 다그치듯 말했다.

“내 마누라가 왜 죽었는지 알아?”

아, 하나님은 대체 어쩌자고 그 아리따운 꽃 같은 믿음들을 송두리째 꺾어버린 것일까? 아내를 잃은 사내의 질문에 박 씨는 아무 말도 못하였다.

“그게 다 서양 종교 때문이라고. 알아? 제 나라 천지신명(天地神明)을 버렸으니 배가 뒤집어지는 거야. 그러니 당신도 이제 각오해.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질 테니!”

사내가 그렇게 떠드는 소리에 객줏집 손들이 모두 나와서 둘을 지켜보았다. 지나던 마을 사람들도 몇몇이 가던 걸음을 멈췄다.
 
박 씨가 사내의 손을 잡았다.

“얼마나 밉겠소, 아이들 어미를 데려갔으니…. 원망스럽지요…, 어디든 찾아가서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을 게요. 그 분풀이를 내게라도 할 수 있으면…, 그리할 수라도 있으면….”

사내의 손도 찼으나 오히려 온기가 느껴졌다. 어느새 고개를 떨군 채 사내는 크고 지친 한숨만 내쉬었다. 입에서 술과 짠지 냄새가 허연 입김에 실려 나왔다.

“일어서요!”

벌떡 일어나며 사내가 박 씨의 소매를 끌었다.

“우리 집에 갑시다. 가서…, 가서 이야기라도 좀 합시다.”

사내의 의도를 알아챈 박 씨는 순순히 따랐다. 해가 지고 있었고, 가던 길에 마을 사람들을 만났으나 사내는 알은척을 하지 않았다. 집에 들어서자 노모가 사내를 맞았다. 열 살 아래위로 보이는 여자아이 둘이 뒤따라 나와 아비를 보고는 안타까운 듯 또 술을 드셨느냐고, 마치 아내처럼 타박했다. 사내가 웃었다.

노모가 차려온 저녁상으로 요기를 한 뒤 좁은 방에 노모와 여식들까지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사내는 자신의 이름을 ‘대식’이라 했다. 술기운이 많이 가신 대식은 아이들의 아비이자 노모의 아들로 돌아오니 순하고 든든해 보였다.

그날 밤 박 씨는 대식의 아내에게 찾아와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람이 줄 수도 없는 기쁨을 주고, 다시 그녀를 데려가신 분을 알려주었다. 박 씨는 “나도 다 알 수 없는 그분이 우리 인간으로서는 꿈에도 알 수 없는 좋은 길로 우리를 이끌어 가실 것”이라고 소개했다. 박 씨는 그렇게 전하며 오히려 밑도 끝도 없는 자신의 말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더 알 수 없는 일은 박 씨조차 실마리를 놓쳐버린 말에 노모는 물론 여식들까지 눈물을 흘리며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를 볼 수 있는 거네요? 그렇지요? 어르신!”
“그래” 하고 대답하면서 박 씨는 정신이 들었다. “볼 수 있고말고.”

그때 대식이 나섰다. 아니 박 씨의 말을 거들었다.


“엄마는 좋은 데 있다. 우리도 이다음에 엄마 있는 데로 가자.”


대식이 그렇게 말할 때 박 씨는 순간 앞이 아찔하며 눈시울이 뜨거웠다. 대식은 아내를 보낸 뒤 아내를 앗아간 예수 신을 향해 증오하고 원망하고 따지고 또 자기 마음조차 앗아가 주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날 이후 박 씨는 박꽃마을에 틈나는 대로 찾아와 대식의 가족을 만나고, 대식이 소개한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리 크지도 않은 마을에 100권이 넘는 책을 팔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박꽃마을은 봄마다 황소나 돼지를 잡아 산신에게 제사하는 풍습이 있었다. 산신이 범이나 곰 같은 맹수들을 마을에 내려보내지 않기를 빌었는데 올해부터는 이 풍습이 중지되었다. 웬만한 남정네면 대부분 그리스도인이었으므로 더 이상 제를 지낼 제주(祭主)를 찾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는 교회가 들어섰다.

박 씨는 나중에서야 꽃처럼 아름다운 당신의 딸들을 다섯 명이나 일찍 데려가신 까닭을 조금은 알 듯하였다. 물론 이 땅에서 그 비밀을 모두 알고자 욕심 낼 일도 아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어 달빛 아래 밤에만 잠시 피었다 시들어버리는 하얀 박꽃처럼 누군가는 또 그렇게 피고 지는 것이라고, 그저 이해할 뿐이었다. 분명한 것은 그분은 그리도 열심히 당신을 갈망하는 이들에게로 밤낮없이 달려오셨다는 사실이다.  

¶도움받은 글
외딴 노인의 이야기는 신옥규 권서의 활동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대한성서공회사》 2권 632쪽에 실린 글을 재인용하였고, 원 내용은 영국성서공회가 발행하는 잡지 <BIW>(The Bible In The World) 1925년 2월호 32쪽에 실려 있다. 박곷마을 이야기는 시베리아와 국경을 맞닿은 곳에서 활동한 안영환 권서의 이야기이다. 그는 그곳으로 이주하여 자작농장을 형성한 한국인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때의 경험이 담겨 있다. 《대한성서공회사》2권(633-634쪽)에서 재인용하였으며, 원 내용은 <BIW> 1920년 11월호 134쪽에 실린 홉스 선교사(T. Hobbs)의 글 "Among Korean Settlers in Siveria"에 나온다.

 

박명철
<기독신문> <뉴스앤조이> <기독교사상> 기자를 거쳐 <아름다운동행> 편집장으로 기독교 매체를 만드는 일을 해왔으며, 신앙을 삶으로 살아내는 현장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알리는 데 매진해왔다. 현재는 CBS 라디오의 책 소개 코너를 맡고 있으며, 《사람의 향기 신앙의 향기》 《교회학교 부흥을 꿈꾸는 이들에게》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