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영성

[288호 오두막에서 만난 사람들]

2014-10-27     이재영 오두막공동체 대표

▲ ⓒ정영란
모성의 길을 따라 공동체를 찾은 사람들
공동체 구성원의 다양성이 필요한 것을 깨닫고 드렸던 기도의 첫 열매는 J 권사와 그 아들 E 군입니다. 도시 아파트에서 살 때 E 군은 매사에 소극적인 한편, 가끔은 폭력적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멕시코에서 살기도 했는데 거기서 도저히 견디기 어려워하여 어머니인 J 권사가 아들만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아들을 위해서였지만, 자기 하나만 희생하면 모두가 편안할 수 있겠다 싶기도 했던 것이지요.

E 군은 우리에게 오기 전 몇 개월을 외가에서 지내면서 어머니를 폭행하기도 했고, 외할머니 휴대폰을 잘못 갖고 놀아 요금이 250만 원이 나오는 큰 사고를 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공동체에 아들만 데려다 놓고 어머니는 다른 일을 하려던 것인데 아들이 적응하기까지 잠시 함께 생활하는 동안, 여성 봉사자가 없어 힘겨워하는 우리를 보고 ‘건강만 회복시켜 주시면 이 공동체에 남아 섬기겠다’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바로 응답되는 바람에 공동체에 남아 함께한 세월이 벌써 7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우리가 E 군에게 특별히 해준 것은 없었지만, 대자연 속에서 함께 살면서 적당한 노동을 통해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가끔 불거지곤 하던 폭력성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것을 통해 관계하는 법을 배워가면서 점차 자신감과 자존감도 높아졌습니다. 그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지적 부진은 오히려 그의 언행들을 순수하고 거침없게 해 공동체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상대를 가리지 않는 친절과 아낌없이 주는 그의 미소가 우리 모두를 기쁘게 합니다.

힘이 센 E 군은 오랜 시간을 통해 제법 고난도의 기술까지 익혀 웬만한 숙련공만큼 질 높은 노동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덤으로 보여주는 코미디까지 친다면 ‘정상인’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도시의 핵가족 아파트에서는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러운 존재였음에도, 본디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방법이라 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이고 유기농적인 공동체 삶을 통해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베풀어 두신 사랑의 퍼즐 안에서는, 아무리 깨어진 조각 같을지라도 결코 실패작일 수 없는 것이지요.

이 같은 깨달음을 비롯하여, 공동체 삶을 통해서만 해석될 수 있는 복음의 기쁨으로 충만해진 J 권사는 아들이 아니었으면 얻을 수 없었을 이 엄청난 축복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들을 자랑하느라 침이 마를 지경입니다.

희생에 버금가는 행복한 보상
두 번째 모성의 주인공은 P 군의 어머니 C 자매입니다. C 자매는 현재 우리 공동체의 미술 선생님이면서 오두막 들꽃카페 카페지기입니다. 들꽃카페는 공방을 겸하고 있는데 자매의 작품과 공동체 형제자매들의 목공 작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습니다. 카페는 평소 우리 식구들이 우아하게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곳이기도 하지만 마을 유지들이나 합천군내 기관장들도 가끔 애용하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C 자매가 우리 공동체로 오게 된 동기도 강박증을 앓고 있는 아들과 가족들이 함께 살기 어려워진 데 있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공동체로 들어가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겠다 싶어, 아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물색하는 중에 당시 <복음과상황>의 이종연 기자가 탐방 기사를 모아 펴낸 《얼마나 좋은가 한 데 모여 사는 것》이란 책에 소개된 우리 공동체 이야기를 읽고 바로 여기다 싶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녀가 공동체에 정착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상당히 안정되어 가는 가운데 비교적 잘 적응하면서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녀에게 해준 것이라곤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지켜봐 주는 것뿐이었습니다. 초창기 그녀는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한 동작에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였습니다. 정지된 상태에서 한참씩 머뭇거리는 그녀를 나무라지 않고, 그의 호흡에 맞추어서 함께 일했습니다. “괜찮다”는 우리들의 격려에 자신감을 갖는 것 같았습니다. 

같은 또래가 없다 보니 외로움을 많이 타고 있어 상담 때마다 신라고분 어디엔가 묻혀 있을 아리안인의 유전자를 복원하여, 하얀 피부에 파란 눈을 가진 또래 아가씨를 만들어 낼 방법을 함께 모색하면서 의기투합하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희생으로 P 군은 자기 삶의 장을 얻을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유난히 들꽃 그리기를 좋아하는 C 자매 역시 희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막힘없는 대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나름 행복한 보상도 마음껏 누리는 듯 보입니다.

갸륵한 모성애가 일으키는 기적
수도자 같은 느낌이 물씬 물씬 풍기는 33세의 Y 군은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럭저럭 사는 게 꿈”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러면서 여유롭게 미소 짓는 그의 모습 어디에도 그 무시무시한 병명인 ‘상세불명 정동장애’가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의 어머니가 위암 말기로 생명이 거의 다할 무렵, 우연히 방송을 통해 우리를 알게 되자마자 병들어 쇠약한 몸을 이끌고 우리를 찾아와 자기가 없는 시간들을 아들과 함께해줄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 했습니다. 우리와 함께 며칠을 묵으며 확신하게 되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던 것인데 그 후에 세 살 위의 형이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Y 군을 데리고 와서 식구가 되었습니다. 풍전등화와 같은 목숨의 끝자락에서도 변변치 못한 동생의 장래를 열어주기 위해 몸부림쳤던 갸륵한 모성의 처절함을 함께 나누었던 우리는, 조건 없는 무한 사랑의 약속을 말 없는 맹세로 그녀의 영전에 바쳤습니다. 그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사랑 덕분인지 Y 군은 거의 아무런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민들레학교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온 몸으로 받고 있는 S 양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심한 알코올중독 때문에 이혼한 후 우울증이 너무 심해져 자기들끼리 살기가 불가능해졌을 때 우리에게 왔습니다. 귀로 한 번 들은 피아노곡을 악보도 없이 거의 완벽하게 연주해낼 수 있는 천재적 음악성을 비롯하여 다양한 능력을 갖춘 천재 소녀입니다.

처음 우리에게 왔을 때 S 양은 밤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쫓기는 꿈 때문에 가위에 눌리곤 했습니다. 공동체 식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모든 것이 온전히 회복되기까지 자신이 지칭한 대로 ‘방송용’이라는 방어성 표현을 따로 구사하며 이중 잣대로 관계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처절함을 보였습니다. 이때 자기 한 몸도 가누기 힘들었던 S양의 어머니는 혼미한 순간에도 딸을 위한 기도와 보살핌의 줄을 놓지 못했습니다. 애틋한 모성이 기적의 인도하심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우리에게 왔을 때의 상황들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갸륵한 모성에 감동하셔서 일으켜주신 기적의 인도하심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를 닮은 위대한 부성애
L 군의 아버지 L 장로는 군대생활 이후에 갑자기 강박 증세를 보이는 아들 때문에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과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여러 공동체를 탐방하던 중 우리 공동체를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서로 깊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여러 방안들을 생각해보다가 그냥 우리 공동체에 들어와 함께 사는 게 낫겠다 싶어 경영하던 사업마저 정리하고 아들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출석하던 교회에서는 ‘예수님 같은 분’이라고 칭송이 자자하던 분이라 교우들이 쉽게 보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사랑하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남은 생애를 아들을 위해 바치려는 갸륵한 부성애는, 또 하나의 살아있는 아름다운 영성입니다. 

또 하나의 위대한 부성은 월남전 고엽제 피해자로서 거의 사경을 헤매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상세불명의 정동장애를 겪고 있는 아들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는 70세 고령의 P 집사입니다. 그는 시골교회 임락경 목사님으로부터 오두막공동체를 소개받고 혼자 먼저 와서 몇 개월 생활해본 뒤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가족을 떠나 병든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고 함께 열악한 환경에서 살면서 눈물의 기도를 쉬지 않는 그의 부성애 또한 주님이 함께하시는 십자가의 영성이라 하겠습니다.

오두막 공동체는 인간적인 삶과 영적인 삶 모두에서 유기농적 삶만이 병든 현대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헌신적인 모성애와 부성애야말로 천래(天來)의 유기농 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계를 중시하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안타깝게 호소하시는 영성이야말로 진정한 가족애요 형제애입니다.


이재영

경남 합천에서 아내 최영희 권사와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10:42)는 말씀에 따라 연약한 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일구며 살고 있다. 오두막공동체 카페 http://cafe.daum.netodumaklov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