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할 수 없어도 포기할 순 없다

[289호 오두막에서 만난 사람들]

2014-11-26     이재영 오두막공동체 대표영

▲ ⓒ정영란
‘오두막’을 찾은 알코올 중독자들
어느 날 갱생보호공단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무기한 단식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A를 퇴소 시켜야 하는데, 마땅히 보낼 곳이 없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좀 부담스러웠지만, 보낼 곳이 없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우리 공동체가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알코올로 인한 우울증이었습니다. 병원치료의 효과가 있어 다시 자살 시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술은 끊지 못해 자주 술주정을 했지만,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습니다.

B는 친구가 자기를 죽이려 하니 며칠 동안 보호해달라며 찾아왔는데 역시 중증 알코올 중독이었습니다. 치료하기에는 너무 늦어 보였지만, 일말의 희망을 품고 받아들여 치료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증세가 점점 악화되어 마침내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폭행해 죽게 함으로 체포되었습니다.

C도 빈번한 자살 시도 때문에 우리에게 오게 되었는데, 팔목 혈관을 면도날로 긋곤 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술만 취하면 파출소에 들어가 기물을 파손하는 바람에 또다시 교도소에 가야 했습니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그를 알코올클리닉에 입원시켜 집중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 다행히 교도소에 들어가지 않은 첫 겨울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C는 노숙이 힘든 겨울엔 고의로 파출소 기물을 파손시켜 교도소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였던 거지요. 치료가 잘되어 종종 외출도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나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만취 상태로 병원 정원에 있는 나무에 목을 매달고 말았습니다.

D는 알코올 중독이었지만 매우 착실하게 우리의 지도와 치료에 호응하며, 정부로부터 지급되는 기초생활수급비를 우리에게 맡겼습니다. 그렇게 천만 원 정도 저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돈이 조금 필요하다 해서 별생각 없이 내어주었는데 그 길로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 횟수가 늘어가는 걸 보고, 더는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더니 우리를 고소하겠다고 윽박지르는 통에 그의 돈을 다 주어버렸습니다. 술집에서 아가씨들과 즐기며 돈을 다 날려버렸습니다. 불과 며칠 만에 말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아무 대책이 없는지 한 번 더 병원에 입원시켜 달라 사정하기에 다시 입원시켜주었지요.

‘진실한 신앙’의 함정
이런 몇몇 중독자들을 경험하기 전까지, 우리는 중독을 심리적 신앙적으로 치유할 수 있을 거라는 꽤 순진한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랑과 하나님의 능력에는 어떤 제한도 있을 수 없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맹신하면서 말입니다. 진실한 신앙으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그러다 중독자들을 대하며 점차 깨달아갔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모든 죽은 사람을 살려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요. ‘진실한 신앙인’들이 쉽게 빠져드는 영적 오만에 빠졌다가 이를 깨닫기까지 한평생이 다 걸린 듯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우리의 신앙심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깨닫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그러니까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찌해주시기를 바라기보다 신앙적 열정을 빙자해 하나님께 생떼라도 써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지요. 하나님의 뜻을 묻기도 전에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만드셨거나 허용하신 모든 것 안에는 실패나 불가피함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에도 그 악을 저지르는 사람이나, 피해자 모두에게 하나님의 충만한 경륜이 역사하는 은혜로운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애굽)와 미숙한 이스라엘 모두를 구하기 위해 바로를 악하게 하셨습니다. 바로의 악함으로 인해 전개된 재앙은 바로와 이스라엘 모두에게 참 하나님을 알려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동일한 목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악, 악을 저지르는 자, 피해자 모두에게 은혜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를 가해하는 여러 형태의 악을 통하여 악한 자와 우리 모두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진정한 배려가 무엇인지를 먼저 깨닫는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악한 상황이나, 악인에 대하여 폭력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대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 현실에서는 악을 단지 타도의 대상으로만 여기기 때문에 오히려 악이 주는 고통만 배가해가면서 뜻 잃은 처절한 간구 속에 안타까움만 깊어집니다.

조건 없는 친밀함의 빛
중독자들의 회복만이 유일한 목적이어야 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우리가 아직 부족해서 그들을 회복시키지 못하는 거라는 생각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어떤 숨겨진 보물 같은 해결책이 있을 거라며 순진한 기대를 버리지 못했던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공동체 모임에서 상담 사역을 하는 열방공동체 이한욱 목사를 만나게 되었고 중독 문제에 대한 우리의 어려움을 호소하였습니다. 그가 기꺼이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하여 상담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중독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의 원인이 되는 상처들을 치유하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공부의 효과는 중독자가 아닌 다른 식구들에게만 있었고, 중독자들에게는 큰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에 관해 이한욱 목사에게 물으니 “중독이 어느 정도 이상 진행된 사람들은 치유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보호 대상일 뿐”이며 상담적 노력도 보호의 범주를 넘어서진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와 함께 사는 라파공동체 윤성모 목사도 알코올 중독은 치유되지 않는다면서 다만 하루하루 술을 마시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을 뿐이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성공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지속적인 보살핌과 보호가 최선이라는 것이었지요. 

우리는 알코올 중독자들이 ‘치유’되는 것 외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은 없는 것일까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제1의 덕목인 ‘조건 없는 친밀함’을 요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코올 중독이 해결(치유)되지 않더라도 가능한 한 함께 살아볼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피차간에 옳음을 따지기보다는 조건 없이 친하게 살아보자 했습니다.
물론 이 같은 태도가 알코올 중독을 해결해주지는 못했습니다만, 확실히 알코올 중독자들이 주던 폐해는 현저히 감소하였습니다. ‘조건 없는 친밀함의 빛’ 안에서 이루어지는 화해와 일치의 삶은 그것이 비록 목적(치료)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우리를 평안케 하였습니다. 공동체를 안전하게 하는 제3의 신비가 밀려드는 듯했습니다. 아픔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며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삶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현저히 감소시켰습니다. 그것은 오류에 대한 단죄보다, 오류자를 존중함에 따른 은혜였습니다. 조건 없는 친밀함의 빛은 어두움을 밀어내는 힘입니다.

망가진 육체, 버림받은 정신에도…
우리 공동체에는 심각할 정도의 알코올 중독 형제자매가 몇 사람 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코올 중독보다 더 심각하고 위급한 2~3차 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술만 끊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술 때문에 육체적으로 망가진 부분들이 생명을 위협하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어떤 이는 알부민 수치의 급격한 저하와 함께 간경화로 복수가 차서 1년 여의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알코올성 치매가 시작되기도 합니다. 이런 질병들은 약으로도 잘 조절되지 않아 우울증, 불면증, 자살로 이어지는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어떤 이는 소뇌 손상이 심해 언어와 운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마치 중풍병자같이 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는 대뇌 손상 탓인지 인격장애, 성격장애, 행동장애, 충동조절장애, 감정조절장애, 경계성 인격장애 및 다중인격 등이 나타나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치유할 수 없지만,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 영혼들을 위하여 우리는 궁여지책으로 병원의 입·퇴원을 반복해가면서 함께 삶을 나눌 수 있는 만큼 나누면서 살아보려 합니다. 치유가 되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더불어 사람다운 삶을 함께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망가진 육체들이며 버림받은 정신일 수밖에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 안에 웅크리고 계실 하나님의 형상을, 아직은 완전히 망가지지 않은 그 영혼들의 작은 조각을 위하여 포기하지 않으렵니다. 이 길이 오히려 우리가 가장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는 은혜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두막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번 회로 마무리됩니다. 그동안 애써주신 저자와 성원해주신 독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재영
경남 합천에서 아내 최영희 권사와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10:42)는 말씀에 따라 연약한 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일구며 살고 있다. 오두막공동체 카페 http://cafe.daum.netodumaklov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