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죽음이 가장 두려운가요?

[291호 은수연의 네버엔딩Q]

2015-01-28     은수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저자

익숙해진 거짓 토닥임
사람들의 속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을 품은 지난달부터, 연락해서 만나자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많아졌습니다. ‘답답한 거 있으면 저한테 연락하세요’라고 광고 낸 것도 아닌데 신기합니다.

해야 할 일 잔뜩 짊어지고 주말에 혼자 카페에 콕 박혀 앉아 있는 저에게 아주 어린 동생이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 엄마랑 제 나이가 비슷할 겁니다. 공부하겠다고 영어책을 열심히 보고 있는 저를 보더니 묻습니다.

“샘은 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해요?”
“그냥 지금은 재미있어서. 근데 나이 들어서 하려니 진짜 힘들어. 나도 너 나이 때부터 공부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우리 아빠라는 사람은 공부도 못하게 했거든.”
“왜요?”
“정상은 아닌 사람이잖아.”

제 말에 그냥 둘이 씨~익 웃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저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친구여서 이야기 나누기가 편합니다. 예전에는 같은 아픔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서 위로하지도 지지하지도 못했는데 언제부턴가는 편해졌습니다. 마음껏 이야기할 시간을 주고, 점심도 먹고, 다시 자리에 앉아 각자 할 일을 했습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는 소녀를 달래고 난 후 저는 공부를 시작하고, 그 아이는 낮잠을 청합니다. 귀엽습니다. 젊음, 아니 어린 나이 소녀의 시간을 부러운 듯 바라보곤 하는데 기분 좋게 부럽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렵다고 하면 조금만 용기 내서 지금 힘든 시간을 견뎌보자고 하고, 연결해줄 테니 상담 받아보는 건 어떻겠냐고 대안을 제시하고, 이런저런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며칠 전 조카들을 두고 한 걱정이 떠올랐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제 조카들의 미래를 엄청 걱정했거든요. 사회문제가 갈수록 깊어지고, 경쟁도 심해질 텐데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고요.

제 책을 보고 저에게 무언가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으려고 저를 찾아 온 친구에게 제가 실제로 겪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전해줄 수는 없었습니다. 거짓말로 토닥토닥하는 느낌에 미안함이 담깁니다. 소망을 전하고 싶어 말하긴 했지만, 지금의 삶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극도의 두려움을 가진 어린 소녀에게 딱히 해줄 다른 말들이 없습니다.

색다른 악몽
이 놈의 누런 박스가 왜 이리 무거운지, 쌓아놓은 양이 많길래 덤벼들었는데 쉽게 옮겨지지 않습니다. 얼어붙었는지, 계속 하나씩 뽑아내어 리어카에 실으려는데 이건 뭐 철판만큼이나 무겁습니다. 물에 잔뜩 젖은 채로 얼어붙은 박스를 챙기는 건 너무 어렵구나. 에고, 오늘 하루 종일 이걸 다 어떻게 챙기나 걱정하고 있는데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립니다. 추워서 장갑도 끼고, 옷을 두껍게 입어 그런지 움직임이 너무 둔합니다.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카메라가 돌아가면서 주인공을 비추듯 눈물 흘리고 있는 제 얼굴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된 저였습니다. 아 뭐야, 이건….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아직 새벽인데 이런 꿈이나 꾸다가 잠을 깨다니 속이 상합니다. 살다 살다 이런 악몽은 처음입니다. 땀도 나고, 눈물도 났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요즘 진짜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죠. 무의식이 이렇게 선명하게 저의 두려움을 보여주다니, 참 신기하기도 하고 찜찜하기도 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친한 후배에게 톡으로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악몽을 꿨는데 너무 무서웠다고. 지금까지 꾸지 못했던 새로운 악몽인데,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해결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기도 좀 부탁한다고요. 폐지를 줍고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해본 적은 없는데 그 꿈을 꾼 걸 보면 무의식 중에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암담한 미래,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 나이듦에 대해 엄청 두려웠구나 싶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겁이 나네요. 두려움을 없애달라고 간만에 기도도 드려봅니다. 하나님 제발요…. 저부터 이런 악몽에 시달리고 있으니 저보다 더 힘들게 지금을 사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습니다.

죽음보다 두려운 것
몇 주 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였습니다. 그날 설교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사는 우리와 똑같이 사람으로 태어나 살다가 죽음을 이김으로써 인생의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멘’을 크게 외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삶의 만족도가 높나?’ ‘노후 준비가 완벽한가?’ ‘진짜 완전 잘 사나?’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은혜가 되었을 텐데, 그날은 가슴 깊은 곳에서 계속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저기요 목사님, 그리고 방금 ‘아멘’ 하신 분, 저 질문 있어요. 정말 죽는 게 제일 두려우세요?

차마 그 자리에서 질문을 하지는 못했죠. 저를 미친 사람 취급하거나 예배를 방해한 사람 또는 감히 하나님의 말씀에 토를 다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잖아요. 저는 정말 궁금한 겁니다. 아무튼 설교 시간 내내 질문이 꾸역꾸역 올라와서 겨우 노트에 쓰면서 참았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린 친한 동생과 예배 후 눈이 마주쳐서 인사를 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사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두려운데….”

그러자 후배도 피식 웃으며 맞장구 칩니다.

“맞아요. 저두 그래요.”

예배 후 함께 점심 먹고, 차도 마시면서 우리가 가진 두려움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죽음까지 갈 것도 없이 ‘지금, 여기’의 삶에 대한 불안이 교회 다니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도 만만치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완전 좋은 사람들은 안 두려울까? 당장 일자리가 구해지지 않고, 나이 들어 어떻게 살게 될지 몰라도? 아까 ‘아멘’ 디게 크게 한 아저씨 나도 모르게 쳐다봤잖아. 진짜 궁금해서. 가서 여쭤보고 싶더라. 잘 사시는지, 삶의 만족도는 어떤지, 노후 준비는 어떤지. 난 차라리 죽으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많이 했거든. 주일학교를 다닐 때부터 천국을 너무 좋은 곳으로 들어서, 거기 가면 편할 거 같아서 죽는 것보다 늘 사는 게 진짜 힘들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
“맞아요. 죽는 거나 천국 가는 거는 우리에게 좋은 거니까요. 저도 사는 게 더 힘들고 겁날 때가 많아요.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가끔은 길 잃은 것도 같고….”
“난 하나님께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나의 막연한 두려움을 거두어주시기를 바라고 있어. 진짜 그래 주시면 좋겠다. 그러실 수 있을까?”

후배가 빙그레 웃습니다. 저는 사후 세계가 아닌 지금, 당장, 이곳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능력을 보고 경험하며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정말 죽음이 가장 두려우세요? 


은수연(필명)
9년간의 친족 성폭력 생존기를 담은 책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저자로, 2013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했다. 여행 작가, 하숙집 주인, 세련된 할머니, 드라마 작가, 밥집과 카페 주인 등 나이에 안 맞게 해보고 싶은 게 무지 많으며, 성실한 남편 만나 예쁜 딸이랑 아들 낳아 소박한 아줌마의 삶을 살아보고 싶은, 서울에 많고 많은 혼자 사는 30대 여성 중 하나다. 복음과상황 2013년 5월호 “편들고 싶은 사람”에 인터뷰가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