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분리장벽을 허무는 시간
아랍 영화 <오마르>, <와즈다>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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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아랍’ 영화를 만난다는 것
오래전에 본, 개그콘서트의 <만수르>가 생각난다. 나중에 <억수르>로 바꾸었지만, 인도 북부지역풍의 옷을 입은 이들이 아랍을 배경으로 한 듯 이야기를 끌어갔다. 불편했다. 여전히 아랍 사회는 우리들에게 먼 나라 이야기였고, 억지 웃음거리의 소재였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인도 배경의 <천일야화>를 아랍에서 기원한 이야기로 알고 있다. 아랍 관련 뉴스가 뜰 때만, 반짝 아랍권에 주목하곤 한다. 이슬람 선교를 말하는 현장에서는, 무슬림들은 그들의 종교심에(만) 집착하여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는 것에 전략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을 이슬람화하려는 전략을 진행 중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우리에게 아랍인은 먼 나라 이방인 같은 느낌이 가득하다.
이런 한국에서, 한국 영화관에서 아랍 영화를 마주하는 것은, 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다. 아랍어 대사를 들으면서, 아랍 음악이 흘러나오는 스크린에서, 아랍어 대화를 마주하는 것도 반갑다. 올해 2월에 팔레스타인인의 삶을 다룬 영화 〈오마르〉를 보았다. 지난해 6월 중순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영화 〈와즈다〉를 만났다. 두 영화 모두, 잔잔하게 현실의 일상을 그려주었다. 이슬람 사회를 미화하거나 비난하려는 의도도, 무엇인가를 선동하려는 목적의식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영화를 보다보면, 아랍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접해오던 이들의 일상이 잔잔하게 다가온다. 그 일상이 누구에게는 고통스런 일상이고, 누구에게는 밋밋한 일상일 수 있을 것이다.
서구인이 말하는 아랍 세계, 이슬람, 그리고 무슬림과, 아랍인 스스로가 말하는 그들의 삶은 어떻게 같고 다른 걸까? 한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수고를 해야 하는 것일까? 이 글에서 전문적인 영화 비평을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한국에 상영된 아랍 영화를 통해 아랍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영화에 담겨 있는 아랍 사회와 문화에 대해 나누고 싶을 뿐이다. IS(이슬람 국가)의 잔혹성이 뉴스가 되고 있는 시점에, 나는, 왜, 아랍 영화를 말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괴물 같은 집단의 극단적 일탈 행동보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주목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마르>를 통해 분리장벽을 마주하다
영화 <오마르>는 사랑하는 이와 더불어 평범한 행복을 살아가고자 하는, 아랍식 빵을 굽는 주인공 오마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마르는 그저 그런 평범한 소망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의 이중첩자가 된다. 영화는 그를 중심으로 테러와 이스라엘 비밀경찰, 공작, 친구들 사이의 우정과 불신, 배신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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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심적 배경 언어는 분리장벽이다. 그런데 이 분리장벽을 몸으로 공감하기는 쉽지도, 어렵지도 않다. 고속도로나 국도의 어느 구간이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지고, 아예 출입이 통제될 때, 우회도로를 돌아가는 풍경이 날마다 반복된다면, 우리는 어떤 기분을 느낄까? 눈앞에 있는 학교를 두고, 멀리까지 걸어서 학교를 다녀야 한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은 서로 가깝게 붙어 있다. 두 도시 간의 거리는 8킬로미터, 도보로 2시간 정도 떨어져 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진입하는 순간, 정면에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이 막아선다. 이스라엘 번호판을 단 차량은 간단하게 통과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나 팔레스타인 번호판을 단 차량들은 출입이 통제된다. 예루살렘에 일자리를 찾아가고자, 300~400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예루살렘 통행 허가증을 지닌 채 해가 뜨기 전부터 장사진을 친다. 날마다 다르지만, 2~3시간은 족히 걸려야 예루살렘에 들어설 수가 있다. 서안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예루살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허가를 받아야만 출입심사를 받을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분리장벽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일상을 깨뜨리고 있다. 아니, 뒤틀려진 일상이 자연스런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 분리장벽을 그림 언어로 담아내고 있는 영화가 바로 <오마르>다. 영화 제목은 등장인물의 이름이다. 이 영화는 이미 한국 관객들에게 특별 상영된 적이 있다. 지난 해 6월 (20~26일) 아랍영화제에서였다. 이보다 앞서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10월 3~12일)에서도 상영이 되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하니 아부 아사드 감독이 이스라엘 북부 나사렛에서 태어난 아랍계 이스라엘인이라는 것 정도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그동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방문을 통해 배우고 느꼈던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분리장벽 문제를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영화 <오마르>에 등장하는 분리장벽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를 가르는 콘크리트 장벽을 말한다. 높이가 5~8미터에 이르는 이 장벽은, 팔레스타인인의 테러로부터 이스라엘 시민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2002년 6월 이후부터 지금까지 건설이 진행 중인 인종차별 장벽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를 ‘보안장벽’이라 부른다. 현재 그 길이는 440킬로미터에 이르고 있고, 202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이 장벽이 불법이라는 권고안을 내며 장벽 해체를 요구하였으나, 이스라엘은 안보를 빌미로 지금까지 이를 무시하고 있다.
다시 영화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 것 같다. <오마르>는 제66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아카데미시상식과 토론토영화제를 비롯한 유수의 영화제에도 초청되었다.
<와즈다>와 함께 자전거 행진을 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공 영화관이 없는 나라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다. 그런 나라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있다. 지난해 6월 19일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사우디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의 영화 〈와즈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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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배우들을 비롯하여 우리에게 낯선 사우디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와 사우디 여성들의 일상이 애잔하게 담겨 있는 이 영화는 ‘자전거 타기’라는 단순한 소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왜, 여자는 자전거를 탈 수 없어요?” 여성이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없는 나라 사우디에서, 주인공 소녀 와즈다의 꾸밈없는 시선과 일상 이야기를 통해 만나는 사우디의 현실이 가혹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남편이 합법적인 바람을 피워도, 새장가를 가도 가슴앓이만 해야 하는 여성들, 혼자서는 운전을 할 수도 없고, 여성 전용 탈의실이 없어 백화점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일상, 생리 중일 때는 꾸란에 손을 대지 못하는 금기 등이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영화를 보면서 남아선호, 가부장제에 바탕을 둔, 여성 차별적인 말과 관행들(일부다처 등)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평범한 여인의 일상이 아프게 다가왔다.
영화가 나온 이후, 외부 세계의 평가는 고무적이었다.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3관왕을 비롯해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19개 부문 수상, 18개 부문 노미네이트되었다. 그 결과, 사우디 사회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법(샤리아)이 개정되어, 2013년 4월부터 사우디의 여성들도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난공불락과 같은 사우디 사회의 여성에 대한 엄격한 차별적 장벽도 그 높이가 낮아지고 두께가 얇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종교성만 가득하다고 생각하는 아랍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고 있고, 삶의 이야기를 일구어간다. 정도의 차이, 형편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 가운데는 아랍 이슬람 사회는 고민도 토론도 열망도 없는 것처럼 이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두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고 우리 곁에 이웃으로 다가와 있는 아랍 이주자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그들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의 갈망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영화 〈오마르〉나 〈와즈다〉 속의 이야기, 그리고 아랍인들의 일상 이야기는 우리들의 지난 시절 이야기이며,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마르>와 <와즈다>를 꼭 관람했으면 좋겠다. 이 두 편의 영화를 통해, 한국인에게 굳어진, 아랍 사회에 대한 무지의 벽을 깨뜨리고, 그들을 괴물로만 인식하는 시선을 바로잡으면 좋겠다. 수많은 금기를 넘어서서 자신의 건강하고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 아랍인들과 더불어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다. 이미 그들은 ‘아랍의 봄’을 피워냈다. 다시금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지만, 우리가 ‘분리장벽’을 넘어서서 그들에게로 다가서고, 우리가 금기의 수레바퀴를 움직여 그들에게 다가가면 좋겠다.
김동문
두 아들의 아빠이고, 한 아내의 남편이다. 대학 시절 만난 IVF(한국기독학생회) 안에서 다양한 배움과 섬김의 기회를 누렸다. 1990년 이래, 이집트를 시작으로 아랍 이슬람 지역 안팎에 살면서 아랍과 이슬람 그리고 성경을 알아가고 있다. 현재 인터서브코리아 사역자로, 무슬림과 이주자에 대해 관심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