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에 눌린 청년들, 누구의 책임인가?

[296호 커버스토리] ‘청년부채탕감’ 사업을 진행하면서

2015-06-24     김덕영 청춘희년운동본부 본부장

'청춘희년운동본부'는 영화 <쿼바디스>의 김재환 감독이 영화 수익금 3,000만 원을 부채탕감운동을 위해 후원하면서 시작되었다. 2015년 4월, 청년부채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는 7개 단체가 모여 3,000만 원을 마중물 삼아 청년부채탕감 사업을 구상하였다. 본 단체의 목적은 청년들의 열악한 부채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이며, 아울러 이러한 문제를 초래한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궁극적 목표로 한다. 지난 4월부터 두 달에 걸쳐 1차 청년부채탕감 사업이 진행되었다. 

청년부채탕감 사업은 학자금 대출을 장기간 연체한 청년들의 부채를 일부분 갚아주는 일과 더불어 재무 상담 및 교육으로 구성했다. 2015년 5월 말 현재 10명의 지원자를 선발하여 부채탕감과 재무 상담 및 교육까지 성공적으로 완료하였다. 재무 상담 및 교육과 자조모임을 통해 새롭게 형성된 관계망과 재무 지식은 채무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출발의 가능성을 갖게 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이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서로 돕는 네트워크 조성을 기대하며 후속 모임을 진행 중이다.

청춘희년운동본부가 가장 주목한 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부채문제로 씨름하고 신음하는 청년들의 삶이다. 그 결과, 부채탕감과 상담 및 교육 과정을 통해 부채의 늪에 빠지게 된 청년들의 구체적 삶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울러 동일한 문제로 고립된 숱한 청년들에게 부채문제를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여기지 않고 사회적 차원에서 함께 극복해가야 하는 문제임을 알리는 게 시급함을 알게 되었다. 청년부채문제가 드러나 구조적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청년들의 문제를 함께 풀어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청년부채, 우리 사회의 책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5월 27일 발표한 <2015 OECD 직업역량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핵심생산인구(30∼54세) 실업률 대비 청년(16∼29세) 실업률은 한국이 3.51%로 22개 OECD 조사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는 달리 말해 청년 실업률이 핵심생산인구인 중장년 실업률보다 3.51배나 높다는 뜻이다. 이는 2007년 2.87 수준에서 매우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OECD 평균인 2.01에 비해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청년실업률이 이전보다 높게 나타났을 뿐 아니라 상대실업률 역시 다른 국가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 자료출처:

위 통계가 말하는 것은 오늘 한국사회에서 다른 연령층에 비해 청년들의 부담이 유난히 높다는 사실이다. 다른 시대에 비해 청년들의 역량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오늘날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감당해야 할 부담이 어느 시대보다 많고 크기 때문이다. 

청년부채문제를 일으키는 구조적 원인으로는 무엇보다 높은 등록금 부담과 낮은 취업률을 들 수 있다. 이뿐인가.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 부담, 부실한 복지혜택, 약탈적 금융제도 등은 청년들이 부채를 질 수밖에 없도록 몰아간다. 오늘 청년들의 문제는 기실 우리 한국사회의 모순이 집약된 결과다. 청년들의 문제를 그들 개인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함께 깊이 성찰해야 할 우리 사회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 이유다.

현 금융시스템이 가난한 청년채무자에게 얼마나 불리하게 설계되어 있는지를 1차 부채탕감사업 지원자 중 한 명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조혜정(가명)은 2011년 독립하게 되면서 월 80만 원의 학원 강사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소득이 발생하기가 무섭게 신용카드회사에서 신용카드 만들라는 연락이 왔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지속해서 신용카드를 사용하다 보니 지출에 대한 감각이 없어졌고, 급기야 150만 원가량의 현금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주위에서 카드 현금서비스는 절대로 연체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한 마음에 대부업체에 손을 내밀게 된다.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는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간단한 서류와 확인과정만 거치면 너무 쉽게 돈이 입금되었다. 대부업체를 이용하면서 한두 번 금액을 연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용도가 하락하게 되었고 월 상환액은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다. 그녀는 청춘희년운동본부를 만나기 전까지 ‘복리’ ‘연동금리’ ‘법정이자율 34.9%’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확실히 모르는 상황이었다. 원금상환은 엄두도 못낸 채 그저 이자만 다달이 갚는 상황에서 학자금 대출이자 또한 부담으로 느껴졌다. 

위의 사례를 보면서 청년들이 채무자가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확인함과 동시에 한국의 금융제도가 약자에게 매우 불리하게 조성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신용카드를 통한 소비증진과 부채의 확대를 사업목표로 하는 금융권은 신용카드 영업에 혈안이 되어 있다. 또한 케이블 방송의 상당수가 대부업 광고 수익으로 운영된다. ‘급할 때는 택시를 탈 수 있다’는 논리로 버젓이 고금리 대부업 광고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대부업 광고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과연 조혜정(가명)에게 돈을 빌려준 대부업체는 원금상환을 기대하면서 대출을 해주었을까 아니면 원금상환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돈을 빌려주고자 했을까.

채권자가 채무자의 소득수준 및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영업이익을 위해 무분별하게 대출영업을 하는 것을 ‘약탈적 금융’이라고 일컫는다. 금융위기 때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이들 금융권의 위기를 적극적으로 막아준 경험은 은행을 비롯한 다수의 금융권이 두려움 없이 공격적인 대출영업을 일삼게 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이전에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대부업체는 일단 돈을 벌고자 한다. 채무자의 상환능력은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금융권은 어차피 돈이 돈을 벌게 하는 구조에서 공격적인 영업과 광고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부채를 지고 이자를 상환하게 하는 확률게임을 하고 있다. 

이들 금융회사의 공격적인 마케팅 앞에 홀로 고립된 청년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사회적 연결망이 없다 보니 불충분한 정보에 현혹되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대다수 청년들의 금융 환경이 이토록 열악한데도 청년부채문제를 개인의 도덕적 해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여기에 채무자 양산과 부채의 확대를 통해 영업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금융권의 책임은 전혀 없는 것일까. 또한 적절한 복지혜택은커녕 대부업 광고도 관리감독하지 않는 정부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청년들, 부채 현실을 직면하고 함께해야
청춘희년운동본부의 1차 청년부채탕감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채무자들과의 우호적인 상담을 통해 청년들은 부채의 현실을 더 이상 회피하지 않게 되었고 개선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또한 재무 교육을 통해 구체적인 소비습관 및 주도적으로 삶을 계획하는 훈련을 받았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지원 대상자 청년들이 부채의 문제가 자신만의 문제라는 고립적 사고에서 벗어나 사회적 문제임을 자각한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다른 고통받는 친구들을 돕는 방법을 스스로 모색하고 적극적으로 교육 및 운동에 동참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청춘희년운동본부는 부채탕감사업 결과를 통해 드러난 청년들의 구체적인 삶과 채무자들의 고충이 한국사회에 잘 알려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다. 공적 책임을 지닌 교회와 사회적 기부 대상을 찾고 있는 기업에 청년부채탕감을 적극적으로 소개할 계획이다. 

청년부채탕감이 일회적인 시혜적 운동으로 그치지 않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변혁에까지 나아가는 것이 향후 청춘희년운동본부의 중요한 방향이다. 이를 위해 청춘희년운동본부는 청년들의 삶에 더욱 천착해 들어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운동을 진행하고자 한다. 선진국의 청년정책을 비교하여 살펴보고 다양한 포럼을 열어 청년부채문제의 근본적 대안을 모색할 것이다. 무엇보다 청년 당사자들과의 만남과 관계에 집중하여 청년부채탕감이 청년들의 자발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여 청년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 청년부채탕감 사업 관련 보고서 등은 청춘희년운동본부 홈페이지(youthjubilee.n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덕영
대학생 시절 희년을 꿈꾸는 친구들을 만나 함께 공부하고 놀다가 희년으로 인생의 좌표가 설정되었다. 직장 생활 3년 과정을 수료하고 지난해부터 희년함께에서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희년과 한국사회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