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길 위’에서, 노래하는 이유

[300호 커버스토리] 복음의 공공성, 시즌2

2015-10-29     장현호

이야기3


seed song
바람이 불어다준 당신 마음 씨앗
불어 온 그것은 사랑
썩어져야 맺는 열매 나 위해 죽은 사랑
나는 당신의 열매

내 가슴에 자라나서
내 마음에 노래되어
내가 부는 노래 너의 
마음에

2008년 여름 영국 웨일즈에서 열린 ‘Celerbration for the Nations’라는 축제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런던의 거리에서 동료들과 함께 노래를 하면서, 그제야 길에서 노래하는 것이 부르는 이에게도 듣는 이에게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억지로 듣는 이, 없었다

   
▲ 우리가 길 위에서 노래하는 이유 (제공 : 장현호)

음악활동의 첫 시작을 베이스기타 연주자로 시작한 저는 동네 형님 이길승과 함께 ‘이길승밴드’로 거리공연에 나섰습니다. 한번은 대전 한남대학교에서 거리공연을 하는데 정복을 입은 두 명의 자매님께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노래를 들어주었습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었던 그분들을 통해 거리공연은 억지로 노래하는 사람도, 억지로 노래를 듣는 사람도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씨앗이 되어 생애 처음으로 노랫말을 지을 수 있었고, 글 첫 머리의 <seed song>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후에 홀로 거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노래했습니다. 

2박3일 거리공연 여행을 떠나던 날, 오랫동안 음악활동을 함께하던 김동석에게 “함께 밴드 하자”라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럼 형, 먼저 여행 다녀오시고 진지하게 얘기해 봐요”라는 응원을 듣고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대구 계명대학교에서 노래할 때는, ‘삼선슬리퍼’를 신고 손에는 커피를 들고 급히 길 가시던 분이 발걸음을 멈추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공연을 끝내자마자 “좋았습니다”라고 먼발치에서 소리쳐주시던 분의 응원은 지금도 거리에서 노래하는 것을 지속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여행을 마친 후 ‘길가는밴드’가 결성되었습니다. ‘홀로’에서 ‘같이’ 길을 걷는 기쁨이 더해졌습니다.


걷고 또 걸으면 누군가는 길이라 말하며 떠나지 
당신이 걸어간 그 길 
당신이 걸어 가는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
가난한자 외로운 자 마음이 상한 자 
포로된 자 눈이 먼 자 짓밟힌 자
외면치 않고 만났던 당신

걷고 또 걸으면 누군가는 길이라 말하며 떠나지
이제는 당신과 함께 

당신이 걸어 가는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
가난한자 굶주린 자 결박 당한 자
무거운 짐 진 자 헐벗은 자 억압 받는 자
외면치 않고 만났던 당신

당신이 걸어 가는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 하셨네
당신에게 임한 하늘의 영을 내게도 부으셔서
당신이 걸어간 그길 따르게 하소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이 길 끝에 서 있는 당신에게
가는 그날까지 걷게 하소서 

길가는밴드가 부르는 <길>이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누가복음 4장 16~18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시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이 서른에 지상 사역을 시작하실 때 이사야 61장 말씀을 인용해 선포하신 사역선언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선언문을 잘 지켜내며 사셨던 그 걸음을 따라 살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길>이란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고통의 현장, 복음이 있었다

오래 전 모 선교단체 간사님의 중보기도 강의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이 땅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광주에 위치한 국립 5·18 민주 묘지에서, 제주 4·3사건 당시 가장 많은 사람이 학살된 제주 조천읍에서, 과거의 잘못과 아픔을 대신하여 회개하고 상처들을 끊어내는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때의 아픔을 눈에 선하게 보고 있는 듯 고통스럽게 기도하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의 역사적 아픔의 현장들을 직접 방문하여 기도하는 것이 참 고마웠고 필요한 것이라고 여기는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5·18 현장은 어디일까? 지금의 조천읍은 어디일까? 엎질러진 물처럼 이미 벌어진 과거의 아픔을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고통과 억압으로 힘들어하는 현장에서 그 당사자들과 함께 연대한다면 현재의 아픔을 끊는 기도가 되겠구나. 어쩌면 이것은 또 다른 모습의 4·3사건을 막아내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현장에서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주 강정마을에서는 이사야 2장 4절 말씀에 따라 그 어떤 전쟁과 군비증강도 반대해야 하는 마음을 담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2,820일 만에 이룩한 승리

길가는밴드의 첫 현장은 재능교육 학습지 해고 노동자(유명자, 강종숙, 박경선) 복직을 위한 투쟁이 벌어지는 곳이었습니다. 노숙농성 2,820일 만에 선생님들께서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특별히 ‘불한당’이란 이름으로 모인 기독교연합 모임은 목요일마다 기도회로 노숙 농성장을 지키며 206차까지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랜 아픔의 세월을 보내고 계신 분들과 함께 있노라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깊이를 배우게 됩니다.

재능교육 학습지 해고 노동자들의 원직복직이 이루어지고 마지막으로 승리축하 파티를 하던 날 농성장을 지키던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제가 여러분보다 믿음이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한 번도 승리를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투쟁승리 후 연대하던 많은 기독교인이 2,820일 만에 이룩한 승리를 믿지 못하겠다며 기뻐하더란 것입니다. 저 또한 목소리 높여서 하늘에 고하는 노래를 하였지만 선생님들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믿었던 그 마음과 비교하자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끝까지 함께 싸워준 기독인들에게 감사를 표현하셨습니다. 

복음은 본래 모두의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아직도 온몸으로 겪어내는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간담회를 하고 예배를 드리다 보면, 그분들이 그 참혹한 아픔을 통해 성경 말씀을 깊이 해석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유예은 학생의 어머니 박은희 전도사님의 말씀을 들을 땐 예수님께서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며 전하신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인 우리는 그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명확히 안내받습니다. 

   
▲ "복음은 본래 모두의 것이다" 팽목항에서. (제공: 장현호)

《예배자 핵심 파일》(죠이선교회)이란 책에서 마이크 필라비치(소울 서바이버)는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인 내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깨어진 이들을 섬기는 데 활동적인 사람들이 대부분 주일 예배에도 잘 참여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자택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더 사랑하면 할수록 깨어지고 상처 입은 세상에 대한 그분의 긍휼한 마음을 더 많이 품게 됩니다.” 

동전은 양면이 다 있어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향가
향가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향기 나는 가사로
향가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향기 나는 그대와 함께

꽃이라네 스스로 향기를 낸다면
꽃이라네

같은 이름 달고 살았지만
다른 하루를 마감한
당신을 잊지 않겠다는 노래
검은 리본을 단 노래

꽃이라네 스스로 향기를 낸다면
그댄 꽃이라네

지금 여기 향기 나는 당신과
향기 나는 노래가 울려 퍼지니
너와 내가 하나라면 우리는 가족
향가 아래 모여 평화를 노래하리라
꽃밭에 모여 춤추는 벌들에 날갯짓처럼
나무에 앉아 지저귀는 새들처럼
너와 내가 하나라면 우리는 가족
향가 아래 모여 생명을 노래하리라
평화 평화
벌들의 날갯짓처럼 새들의 지저귐처럼 노래하리라
생명 생명
벌들의 날갯짓처럼 새들의 지저귐처럼 노래하리라

평화 평화 평화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우리) 영혼을 덮으소서 

향가는 신라시대 때 민중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던 노래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 말을 길가는밴드는 ‘향기 나는 가족’ ‘향기 나는 가사’의 줄임말로 사용합니다. 당신과 함께 거리에서도 향가를 노래하고 싶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장현호, 길가는밴드(길밴)
아름다운 풍경 하늘지붕 아래에서 노래하는 밴드로, 서동찬, 김동석, 장원, 장현호, 전상욱, 남경식, 조현주가 함께 활동한다. 얼마 전 낸 EP1앨범에는 길밴이 평소에 자주 부르던 곡보다는, 지금 부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노래들을 담았다. 〈가치를 같이〉 〈다시봄-416 그대들을 기억하며〉 〈내려가라〉 〈또 하나의 약속〉 〈sw416 Over The Deep Sea〉 등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