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경 노동선교부장이 발바닥으로 읽은 노동 현장 이야기

[303호 시사 프리즘] 박근혜 정부 중간 평가 3

2016-01-20     홍윤경

한 달 전,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책자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 중 ‘고용노동 관련 OECD 국제비교 통계’ 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 중 ▶연간 노동시간 ▶연간 취업시간 ▶실제 은퇴나이 ▶저임금노동자 비중 ▶남녀노동자 임금격차 ▶임시직 노동자 비중 등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하락시키고 차별을 강화시키는 지수에서는 세계 취상위를 기록하였고, ▶근속기간 ▶노동소득분배율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 ▶여성고용률 ▶노동조합 가입률 등 노동자들의 안정성, 평등, 권리, 공정한 분배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자세한 수치는 아래 표 참조)

   
▲ 1) 중위임금 : 전체 임금노동자를 한 줄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 노동자의 임금 2) 각 항목별로 관련 통계수치를 낸 국가의 숫자가 약간 다르다.

이를 종합하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일은 가장 많이 하지만 고용은 불안하며, 남녀간/계층간 임금격차를 비롯한 차별이 심하고, 정년퇴직 나이와는 상관없이 70살이 넘도록 일만 해야 하며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노조 활동조차 어렵다.

다시 말해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노동유연성은 매우 높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최근 몇 년간 정부는 마치 경제의 어려움이 노동자들의 책임인양 악선전하며 ‘노동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노동개혁’이 아니라 ‘노동개악’이다. 박근혜 정부가 주도하는 ‘노동개악’이 진행되면 노동자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비정규직과 저임금노동자는 더욱 양산될 것이며, 차별은 심화되고, 청년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 마련도 어려울 것이다. 오직 기업의 입장에서는 저임금에 숙련된 고령노동자들을 사용할 수 있고, 언제든 맘대로 해고할 수 있으며, 불법파견이 합법화되고,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을 쉽게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진정한 ‘노동개혁’이란 무엇일까? 너무나 당연하게도 노동자들이 행복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정정한 대우를 받으며, 중간착취와 불합리한 차별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 다음에 일곱 노동자들의 최근 삶을 통해 현재 노동현장의 어려움을 헤아려보자.

우리 주변 노동자들의 어려움

   
▲ 풀무원 고공농성장 앞 집회 2015년 12월 26일 (사진: 홍윤경 제공)

노동자 A씨는 작년 6월 어느 날,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70m 높이 광고탑 위로 올라갔다. 한 발짝만 잘못 디디면 떨어질 수도 있는 좁디좁은 곳에서 몸에 로프를 묶고 “불법파견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외쳤다. 처음엔 땡볕과 폭우를 견뎌야했고 이젠 살을 에는 추위와 동상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A씨의 고공농성은 220일을 훌쩍 넘겼다. 그간 경찰이 음식물 전달을 막아 굶은 날만도 40일이 넘는다.

최근 이처럼 노동자들이 스스로 ‘하늘감옥행’을 선택하는 빈도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원통하고 절실하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쳐다봐주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A씨가 속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4년 9월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이니 소송 당사자 모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수년간의 싸움 끝에 이제 곧 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환호는 잠시, 기아차 사측과 정규직 노조는 2015년 5월 화성공장 4800여 비정규직 노동자 중 9.5%밖에 안 되는 465명만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합의를 했다. 청천벽력이었다. 이에 너무도 억울한 현실을 알리고 법대로 정당한 정규직화를 얻기 위해 고공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A씨의 얼굴을 멀리서나마 보려면 시청광장으로 가면 된다. 시청 바로 옆 옛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에 있는 광고탑이 현재 A씨의 한 평도 안 되는 집이다.

노동자 B씨는 여당이자 대한민국 제1당인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45일간 단식을 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작년 9월 3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이익을 많이 내던 콜트콜텍 회사가 강경노조 때문에 문을 닫았다”는 사실과 다른 발언을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잘 나가던 콜트콜텍이 하루아침에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공장을 해외로 빼돌려서 황당했던 것은 오히려 노동자들이다. 이에 대해서는 언론도 두 번씩이나 정정보도를 한 상황인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인지, 정말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그래도 단식 45일이라니, 예수님의 40일 금식기도가 연상되는 장면이다.

단식 35일쯤 되었을까, 주일이었는데 이른 아침 B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가 놀라서 받았더니 목소리가 믿지 못할 만큼 쩌렁쩌렁했다. 농성장 앞을 지나 교회에 가는 사람들을 보며 내 생각이 나 전화했다면서 역시 사람은 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며, 자신은 100일까지 단식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해맑고 우렁찬 목소리에 마음이 더욱 아려왔다. B씨는 단식 45일째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 가는 날 아침에도 기자회견에서 피를 토하듯 호소했다. “박근혜표 노동개악이 현실화된다면 나 같은 사람을 양산할 것이기에 이를 막아야 한다”고...

   
▲ 콜트콜텍 현장 팟캐스트 (그림: 이동수 화백)


노동자 C씨는 평택의 한 공장에서 일한다. 대기업의 휴대폰 부품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해당 대기업 소속 노동자는 아니다. 아마 3차 하청쯤 되는 곳인 것 같다. 40대 후반인 C씨의 임금은 딱 최저임금 만큼이다. 출산을 위해 잠시 쉰 것을 제외하고는 20대 초반부터 25년 동안이나 끊임없이 일하고 손이 빨라 숙련공 소리를 듣지만 임금수준은 최저임금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그나마 주문량이 적으면 한 달에도 며칠씩 무급으로 쉬어야 한다.B씨와 동료들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10년째 길거리에서 외치고 있다. 처음에는 텅 빈 공장 안에서, 공장에서 강제로 끌려나오고 난 이후에는 공장부지 건너편 인도에서, 지금은 정치 1번지 여의도 한복판에서 농성을 계속하며 잘못된 정리해고와 위장폐업의 문제점을 알릴뿐만 아니라 공장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고 있다. 단식을 중단한지 이제 두 달, 지금은 함께 마음을 보태는 이들이 하루씩 릴레이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 건너편 골목길, 빨간 새누리당 현수막이 붙어있는 건물 앞으로 가면 비닐천막 안에서 해맑은 웃음으로 맞이하는 B씨를 만날 수 있다. 꿈에 본 공장이, 불에 탄 모습이 아니라 기뻤다는 B씨는 10년 사이 훌쩍 커버린 자식세대를 위해서라도 포기하지 않고 굳건한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말한다.

C씨와 남편 둘 다 악착같이 일만 하면서, 여름에 그 흔한 해수욕장 한 번 제대로 가보지 못하면서, 아이들 학원비, 전세자금 대출이자 등을 부담하며 근근이 살아왔는데, 이번에 큰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게 되어 새롭게 빚을 졌다. 2년 후 대학생이 둘이 되면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남편도 자신도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시작하는데, 생각할수록 한숨만 나온다.

노동자 D씨는 엄동설한에 감옥에 붙들려갔다. 그것도 동료들과 함께 재판 받으러 갔다가 법정구속되었으니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2015년 2월 13일, 고용노동부는 “동양시멘트와 하청노동자들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에 있다”고 판정했으나, 동양시멘트는 하청노동자들을 해고하기 위해 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을 해지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도급계약 해지 및 이에 따른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해고가 원청인 동양시멘트의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해고이자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취급 및 노동조합의 조직 또는 운영 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그런데도 동양시멘트는 이들을 직접 고용하거나 그와 관련된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에 억울한 D씨를 비롯한 동료들이 투쟁에 나섰던 것이다.

D씨와 동료들은 자신들이 일하던 49광구 앞에서 집회를 했고 사측에서 노조가 설치한 현수막을 철거하는 바람에 항의를 하다 예상치 못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또한 매각 실사를 위해 출입하는 실사단에게 노동자들의 의견서를 제출하기 위해 선전전을 벌였다. 과연 이것이 구속될 만한 이유가 되는가?

지난 1월 13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은 D씨를 비롯해서 무려 노동자 7명에게 검찰 구형과 거의 동일한 실형을 선고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이에 대해 “매우 이례적이고 법리에는 물론이고 상식에도 부합하지도 않는 이번 판결에 우리는 벌린 입을 다물기 어렵다”며 “행위유형ㆍ배경, 피해의 정도 및 검찰 구형을 고려해 봤을 때 이성을 상실한 과도한 판결이다. 도대체 이런 선례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D씨와 함께 투쟁했으나 간신히 구속을 면한 노동자들은 아직도 서울 한복판, 미 대사관 뒤 삼표그룹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자 E씨는 중학교의 영어전담강사다. 영어전담강사는 다른 계약직들과는 다르게 4년까지 계약직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4년까지 있어서 정규직이 된 사람을 본 적은 없다. 4년을 채우지 않도록 해마다 일정 숫자가 해고된다. E씨는 운 좋게도 3년간 일했으나 이번에 해고되었다. 3년 동안 아이들과도 재미있게 지냈고 동료 교사들과도 정을 붙였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계약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린다고 하는 것이 참 우습기만 하다.

노동자 F씨는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준비생으로 지낸지 벌써 3년째다. 그간 했던 일이라고는 최저임금도 제대로 못 받는 알바와 인턴이 전부다. 정규직 일자리는 면접 볼 기회조차 별로 오지 않는다. 학자금 빚도 산더미인데 갚을 엄두도 내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빚이 더 늘고 있다. 이대로 낙오되는 게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잠도 오지 않는다. 누구처럼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어학연수라도 가고 싶은데 그럴 형편은 못 된다. 죽을 각오로 절에 들어가 공무원시험 준비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노동자 G씨는 대기업 공장에 다니는 정규직이었으나 7년 전 정리해고 되었다. 해외자본은 기술만 빼간 채 ‘먹튀’를 했고, 그 과정에서 죄 없이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 2,600여 명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최근에서야 정리해고 인원을 산출하는 근거가 되었던 경영자료가 회계조작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미 노동자들은 몸과 맘에 엄청난 생채기를 입었고 그 사이 28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당시 노조 위원장이었던 G시는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만으로 3년의 실형을 살아야 했다. 3년 후 만기 출소했으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 사이 죽어나간 동료들의 넋만 가슴에 사무칠 뿐이었다.

몇 개월이나 지났을까? G씨는 “해고자 복직”을 외치며 동료 2명과 함께 공장 앞 철탑 위로 올라갔다. 고압선 전류가 흐르는 매우 위험한 곳이었다. 얼마 후 다가온 2012년 대선, 모든 후보들이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국정감사를 하는 등 이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선이 끝나고도 역시 달라진 것은 없었다. G씨를 비롯한 노동자들을 절망했고 다음해 5월, 철탑에서 내려왔다. G씨와 노동자들은 다시 절치부심, 감정적으로 쉽지 않았던 공장 안 노동자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고 더욱 열심히 발품 팔아 싸웠다.

그랬던 G씨가 최근에는 박근혜표 노동개악을 막기 위한 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구속되었다. 골동품이 된 소요죄까지 적용해서 말이다.

짐작했겠지만 G씨는 얼마 전 구속된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 씨다. 한상균 씨뿐만 아니라 A~F씨도 모두 실명을 말할 수 있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국민들의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박근혜 정부에서 살고 있는 많은 평범한 노동자들은 행복하지 않다. 억울하게 해고되고, 법적으로 이겨도 달라지는 게 없으며, 이에 저항하면 감옥에 가야만 하는 것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슬픈 현실이다.

정부의 '노동개혁'이 진행된다면

여기에 정부가 얘기하는 이른 바 ‘노동개혁’이 진행되었을 경우 앞으로는 어떤 모습들이 추가될지 상상해보자.

△ 55세 이상은 모두가 파견직이다. 숙련된 저임금 비정규직이 늘어나니 청년의 정규직 취업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 ‘저성과자 해고’로 조금만 밉보여도 해고가 되기에 평균 근속연수와 노조 가입률이 계속 줄어만 간다. △ 연봉제, 성과급제로 10년이 지나도 임금 한 푼 올리지 않고 일을 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알아서 스스로들 충성경쟁을 하니 자본가가 살맛나는 세상이다. △ 임금피크제로 가계소득은 크게 줄었으나 청년인 자녀는 아직 실업상태라 가계 빚은 계속 늘어만 간다. △ 실업급여 수급 기준이 까다로워져서 늘 고용이 불안한, 그래서 정말 고용보험이 필요한 노동자들은 정작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 △ 정규직 신규채용은 정말 희귀한 일이 되었다. △ 그 와중에도 재벌들의 이익은 계속 급상승하고 있다.

이런 일들이 현실이 아니라 상상으로 끝나기를 바란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말고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 영등포산업선교회는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똑같이 하루를 살 수 있는 일급을 주셨던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지난 58년간 눈물 흘리는 노동자들과 함께 해 온 선교단체이다.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이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다.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는 매년 2차례씩 현장심방(부제-발바닥으로 읽는 성서)이라는 이름으로 기독청년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노동현장/빈곤현장 등을 직접 발로 밟고, 몸으로 느끼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살아있는 체험의 장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 자유롭지 않은 우리 모두에게 직접적 관련이 있는 노동의 문제를 어찌 글 한편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 글을 읽는 많은 청년들이 함께 하여 직접 A씨, B씨들의 눈물과 삶, 아픔과 기쁨을 몸으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현장심방 15기는 2/2(화)부터 5(금)까지 3박4일로 진행된다. 장소는 당산동에 있는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숙박을 하며 서울 도처의 현장을 누비게 될 것이다.

   

▲신청은 http://goo.gl/forms/rGJDZlicFz 문의는 02-2633-7972, 010-4251-6005, ydpuim@naver.com으로 하면 된다. 

 

홍윤경
대표적인 기독교기업을 자처하는 이랜드에서 일하다가 노동조합 창립멤버로 참여한 후 오랜 기간 간부활동을 하며 위원장, 사무국장 등을 역임했다. 2007~2008년 비정규직 해고 등의 문제로 진행된 510일의 파업 후 해고된 해고노동자이자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현재는 본인처럼 상처 입은 노동자들을 돕는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두 딸을 키우는 엄마이자 작은 교회를 섬기는 집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