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2주기, 가슴으로 새기는 말.말.말.

[306호 메멘토 0416]

2016-04-22     옥명호 편집장
▲ 세월호 참사 2주년 문화제 포스터(부분) (4.16 연대 홈페이지)

다시 4월이 지나갔다. 아무 일 없는 듯, 아무 일 없었다는 듯. 2014년 4월 16일로부터 2년이 지난 것이다. 그 2년 사이 무엇이 달라지고 바뀌었을까?

304명의 생명을 구조하지 못한 국가적 참사 2년이 지나도록 사고 선체는 여전히 맹골수도의 바닷속에 침몰해 있다. 배가 왜 침몰했는지, 왜 구조하지 못했는지, 진실도 여전히 물밖으로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참사 한 달 뒤 청와대에서 만난 유가족들 앞에서 “진상규명에 유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할 것”이며 “언제든 다시 볼 것”이라던 국가지도자의 약속은, 그 철석 같은 말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모두 부질없는 말들. 

말, 특히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한다는 정치인의 말이 한없이 가벼워진 시대지만, 곱새겨야 할 말들도 여전히 있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2년 전 4월 16일을 오늘인양 살아가는 이들의 말들을 한 데 모아보았다. 
 

“오빠 학생증을 같이 걸고 다녀요” 
- 김동혁 군 동생 김예원 양(현재 단원고 2학년)

단원고 다니면서 학교 어디를 가든 오빠한테 구경시켜주는 것 같아서 목에 오빠 학생증을 같이 걸고 다녀요. 학생증 두 개를 걸고 다니면 후배들이 가끔 천진난만하게 ‘남자친구냐’고 물어봐요. 그럴 땐 상처를 받기도 해요. 지금 1학년생들은 2년 전 중학생이었기 때문인지 세월호 참사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노란 리본이나 배지를 달고 다니는 사람을 유심히 보게 돼요. 그러다가 그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리본을 안 달고 나타나면 슬퍼져요. 지워지는 것 같아서요.

이제 제가 그때의 오빠 나이가 됐잖아요. 나는 학교 생활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는 거 보여줄 테니까, 꿈 속에 찾아오라고 썼어요. 오빠는 꿈에 나올 땐 해맑게 웃고 있어요. 오빠가 걱정했지만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그리고 이제 미안한 일 만들지 않겠다고도 썼어요. 친구들이랑 벚꽃 사진 찍다보면 나 혼자만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하거든요. 그래서 하늘공원이나 기억교실 많이 찾아가서 오빠에게도 보여주겠다고요.

–[세월호 2년-이제 나의 문제다 ③] “목에 함께 건 오빠와 내 학생증…오빠 대신 내가 단원고 졸업할래요”에서(<경향신문> 인터넷판 2016년 4월 12일)
 

“제 딸이 714일째 바닷속에 있습니다” 
- 조은화 양 어머니 이금희 씨

8시 55분에 아침에 밥 먹었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할 때 아무렇지 않게 해서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을 못 했습니다. 오늘이 714일입니다. 수학여행은 교과과정입니다. 우리가 사고 당일날 내려갈 때 첫날 (아이들의 주검이) 나오는 부모들을 되게 안타까워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살아 있을 텐데, 배 안에서 살아 있을 텐데, 차마 그 앞에서는 표현을 못 했습니다. 10일이 지나고 (이제 우리 아이는) 못 찾는구나, 내가 마지막이 될까봐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제 딸이 714일째 바닷속에 있습니다. 714일 후 내 딸의 모습이 어떨지…. 한 가정의 엄마 아빠라면 다 아실 겁니다. 이게 엄마로서 사람으로서 살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건지…. 저는 한 아이의 엄마입니다. 세월호 속에서 찾아주기를 기다리는 은화 엄마입니다. 은화 오빠, 인생도 시작 안 한 아이가 스무 살짜리가 볼 것 안 볼 것 다 본 아이입니다. 사람을 만났을 때 믿지 못하는 아이입니다. 이제 은화가 찾아왔으니까 니 인생 시작하라고 말해야 하는 엄마입니다.

특별법이 온전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미수습자 가족은 아이를 찾고 유가족은 내 아이 왜 그렇게 됐는지 아는 게 최우선입니다. 각자의 최우선이 다릅니다. 각자의 입장에 맞춰서 해결해주는 게 정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살아갈 수 있게끔 대통령의 약속과 인양팀의 약속을 미수습자가 믿고 있습니다. 미수습자가 원하는 인양은 딱 하나. 인양이 결정됐어, 하고 있어, 저희 그거 못 믿습니다. 참사 인원 중에 우리가 (미수습자) 9명에 남으리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세월호 인양을 위해서 같은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주시길 바랍니다. 세월호를 (인양해) 가지고 내 아이가 왜 그만큼 세월호 속에 있었는지 알고 싶은 엄마입니다. 세월호 유가족, 아파하는 부모들이 아픔을 딛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남은 자식이 잘 살아갈 수 있게끔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2차 청문회에서
 

“4월을 달력에서 지우고 싶지만…” 
- 유혜원양 아버지 유영민 씨
우리 유가족들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갑니다. 우리나라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규명되기까지 족히 20년은 걸릴 것이라 예상하고, 지금의 젊은이들이 이 나라의 중추적인 세력이 되어 우리들이 힘들고 지쳤을 때 그분들이 나서서 우리들의 한을 풀어주고 이 나라의 정의를 세우고 진실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입니다.

4월엔 밖에 나가기도 싫지만 4월이면 우리를 불러주는 곳이 더 많습니다. 더 많이 기억해주기 때문입니다. 4월을 달력에서 지워버리고 싶지만 우리의 아픔은 묻어두고, 우리와 뜻을 함께해주시는 분들을 만나러 갑니다. 4월은 아프지만 고마운 달이기도 합니다.

–4월 7일(목),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억압받는 민중을 위한 시국기도회’에서(인터넷신문 <에큐메니안> 2016년 4월 8일, “세월호 2주기, 촛불 든 신학생들”)
 

“힘들어요, 많이 힘들어요” 
- 홍순영 군 어머니 
힘들어요. 많이 힘들어요. 꽃 피고 이런 거 보면은 자꾸 힘들어져 내가. 아들 (수학여행) 가기 전에 우리 꽃구경 가자, 데이트 가자 했는데, (아들이 게임 하고 싶다면서) 안 갈래 한 게 마지막이 되어 버렸잖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허망하고 아직도 애가 갔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오후에 밖에서 애들 학교 갔다 오는 시간이 되면 우리 아들도 이제 들어올 시간인데 하는 생각이 들고…. 힘들어요 그래서. 

국민들이 우리 하고 같이 해주면 좋죠. 근데 그렇게 안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더라고 내가 볼 때는. 이젠 그만 잊으라 하는 이런 것도 있는 거 같고.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고 해야 하나….

나는 밖에 나가서는 잘 안 돌아다니거든. 항상 분향소 갔다가 (세월호 유가족) 공방에 가서 일하다 보니까. 근데 이제 그만 잊으라 그런 소리가 좀 (서운하죠). 근데 자식을 잊을 수는 없잖아요. 가슴에 묻는 게 자식인데, 잊을 수는 없는데, 그런 사람들은 안 당해봤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데, 우리 당한 입장은 세상에 제일 큰 고통이 자식 잃은 고통이더라고….

순영이랑은 늘 서로 의지하며 살았어요. 내가 밤에 뭐 사러간다 하면 예쁜 엄마 누가 잡아간다고 자기가 가요.

왜 그 아이들, 살릴 수 있는 애들을 왜 안 살려줬는지…. 부정부패가 있다고 하지만, 일단은 목숨이 중요하잖아요. 세상에서 사람 목숨보다 소중한 게 없는데, 아직 피지도 못한 목숨들을 왜 안 구했는지 그게 궁금해요 나는. 

순영이는 내가 해주는 음식은 다 좋아했어요. 싫단 소리 안 하고, 야채도 좋아하고. 다만 해물을 안 좋아했죠. 바다도 별로 안 좋아하고. 항상 걔가 말하는 게, 엄마 하고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 얘기했어요. 

지금은 우리 애들을 안 살린 그 진실이 좀 드러났잖아요. 살릴 수 있는 애들 안 살린 그게 드러났죠. 온 세상이 그 방송을 좀 듣고 우리 아이들 진실을 좀 밝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지금 세대 아이들이 더 안전한 세상에서 더 행복하게 살기를 바래요. 

–2016년 4월 9일, 트위터 매거진 <새가 날아든다>(윤솔지 감독):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인터뷰(2)-홍순영 엄마”에서(유튜브 채널 발췌·정리)
 

“진실 규명, 그게 가장 큰 거예요” 
- 이수연 양 아버지 이수복 씨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 않느냐, 그만 좀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라 그러는데 실질적으로 저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에 대한 생각이 커지고 생각도 많이 나고 어떻게 보면 고통스럽고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죠. 아이들을 위해 해주고 싶고 해야 할 게 많은데 해주지 못하는 현실이 아프고 고통스럽게 다가오기 때문에 갈수록 더 힘들죠. 더 잊혀지고 덜어지는 게 아니라 빈 자리가 커지기 때문에 대부분 엄마 아빠들이 같을 겁니다. 

수연이는 외동딸이었어요.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아이를 더 못 가졌어요. 외동딸이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큰 보물이고 인생의 전부죠, 저한테는. 출퇴근 하면서 지나가는 길에 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데려다 주면서 그런 낙으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지금은 그런 낙이 없어진거죠.

우리 아이들이 믿고 기다렸거든요. 어른들을 믿고, 국가를 믿고 기다렸는데, 죽음의 목전에 다다를 때까지 선장과 선원들은 방송으로 가만히 있으라 해놓고 선장과 선원만 나갔단 말이에요. 그리고 해경이 도착을 했는데 퇴선 명령은 하지도 않고 탈출한 선장과 선원만 데리고 떠났단 말이죠. 믿고 기다렸던 아이들은 그 자리서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죽어갔는데, 왜 골든타임, 그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못 구했는지, 그게 가장 규명하고자 하는 과제죠. 해경이 도착했으니까 퇴선하라 할지 해경이 구조할지 액션이나 말을 기다렸는데, 한마디도 안 했단 말이죠. 왜 퇴선 명령을 안 했는지, 그리고 왜 선원들은 배를 버리고 갔는지, 윗선에서 배를 버리라는 지시를 내린 정황이 있거든요.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런 의혹들이 기본적으로 규명이 되어야 된다, 그게 가장 큰 거라고 볼 수 있죠. 

–트위터 매거진 <새가 날아든다>(윤솔지 감독) :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인터뷰(1)-이수연 아빠 이재복 님”에서(유튜브 채널 발췌·정리)
 

“국민의 생명·안전·존엄 지켜주는 게 좋은 국가” 
- 박원순 서울시장
다시 4월이 왔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장 잔인한 달로 기억되고 있다. 슬픔이 온 나라를 뒤덮었던 2년 전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이 슬픔을 겪은 우리는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참사가 되풀이 돼서는 안 되겠다, 새로운 국가로 나가는 전환점을 만들자, 다짐하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지금 과연 어디에 와 있고 어디로 가고 있나. 세월호는 아직도 어둡고 캄캄하고 추운 바닷속 깊은 곳에 침몰해 있다. 세월호를 알아야, 세월호의 과오와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월호는 그 진실은 인양되지 못하고 있다. 어느 사건이든 진실이 은폐되고 증거가 은닉된다면 더 큰 참사를 가져올 수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좋은 국가, 좋은 사회가 뭘까.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존엄을 지켜주는, 가장 먼저 생각해주는, 그래서 국민의 행복과 삶의 질을 귀하게 보호하고 보장하는 그런 국가와 그런 사회가 가장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공권력의 최종 목표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에 맞춰져야 한다.

–4월 6일, 서울시 안전점검대책회의 모두발언(인터넷신문 <더팩트> 2016년 4월 6일, “세월호 참사 2주기, 진실 은폐된다면 더 큰 참사”) 
 

“특조위에서 밝혀낸 의혹들 특검 필요”
- 이태호 4.16연대 상임운영위원,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1, 2차 청문회는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활동이 정부의 비협조로 인한 뒤늦은 출발과 그 이후의 각종 방해에도 불구하고 차츰 본궤도에 오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검찰과 감사원의 수사와 감사 과정에서 놓치거나 외면한 혐의점들과 문제점들이 다수 드러났다. 특별조사위원회가 특별법에 보장된 바대로 온전하고도 독립적인 조사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인력과 예산, 그리고 법에 정한 1년 6개월간의 조사활동 기간을 보장받는다면 우리는 진실에 한 층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특별조사위원회가 청문회와 조사활동을 통해 밝혀낸 의혹들에 대해 독립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할 특별검사의 필요성도 점점 더 뚜렷해졌다. 하지만 특조위는 지난 2015년 9월 조사를 개시한 이후 오는 6월까지 10개월 분량의 반 토막 예산만 확보한 상태이며, 특조위가 요구한 첫 특검은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될 위기에 놓여 있다.

–[세월호 참사 2주기 연속기고]에서(인터넷신문 <민중의 소리vop.co.kr> 2016년 4월 12일, “13일은 가만히 있지 않겠다던 약속 실천하는 날”)
 

“특조위에 선체 접근권·조사권 보장해야” 
- 이석태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이번 청문회가 지난 1차 청문회보다 좀 더 내용 있는 신문이 이뤄진 것이 설사 사실이더라도 이번 청문회에서 충분히 밝히지 못한 의문에 대해선 후속적 자체조사와 저희에게 부여된 고발권, 검찰수사 요구권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완수해나가겠습니다. 또한 앞으로 특조위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세월호 선체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진행할 계획입니다. 선체 조사는 미수습자뿐 아니라 참사원인 규명 위한 매우 주요한 수단으로 이는 어느 기관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실질적 조사 가능하도록 특조위에 대한 필요 예산 지원은 물론 우선적인 선체 접근권과 조사권을 보장해줘야 할 것입니다. 

2주가 지나면 세월호 참사 2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또 가슴 아픈 날이 다가옵니다. 아직도 밝히지 않은 진실이 많이 남아 있고 돌아오지 않은 가족은 차가운 배 안에 있는데 특조위 활동기관과 필요한 예산 확보는 안갯속입니다. 국민과 가족들께서 관심 가지고 성원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2차 청문회는 오늘로 마치지만 저희는 사무실로 돌아가서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2차 청문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