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키우는 것에 대해 늘 고민해요”

[307호 그들이 사는 세상] 평화를 살고 싶어 하는 오은경 씨

2016-05-23     오지은 기자
   
▲ ⓒ복음과상황 이범진

지난 4월 초 복상으로 메일이 한 통 왔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복상을 구독했는데 어느덧 3세, 6세, 8세인 세 아이 엄마가 된 오은경(37) 씨로부터요. 청년 때부터 시민단체도 기웃거리며 평화에 대한 감수성과 소망을 지니고 살았지만, 아이를 낳고 독박육아를 하면서는 더욱 그 절실함이 실존적으로 다가온다는 고민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고민을 읽어 내려가다가, 6월호 마감이 시작되기 전 은경 씨의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엄마 옆에 꼭 붙어 다니는 한호도 함께요.

― 보내주신 메일을 읽는데, 아이들을 키우며 평화에 대한 고민이 깊으신 거 같아요.
대학생 때부터 관심이 그랬고, 졸업 후엔 기아대책에서 일했었어요. 모금을 해서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수혜적 활동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요. 현지의 목소리가 드러나고, 그곳에 평화가 고취되는 방향이어야 하는데 말이죠. 확 뛰어들지는 못하고 개척자들 ‘세기모(세계를위한기도모임) 기도회’를 나가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아이들을 키우기 전엔 막연히 평화를 좋아하고,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 쉽게요?
추상적인 꿈을 꿨던 거 같아요. 그냥 저냥 기도하고, 피켓 한 번 들고 이런 정도로.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실질적인 문제로 부딪히곤 해요. 내 삶에서 진짜로 평화를 살아내는 방법에 대해서 절실해지는 거죠. 언젠가 교회 사람들과 춘천으로 1박2일 여행을 갔었는데, 탱크가 줄지어 지나가는 풍경을 보았어요. 어른들이 군복을 똑같이 맞춰입고 일렬로 지나가니까 질서정연해보이고 괜히 멋있어 보이잖아요. 아이들이 “탱크다~ 탱크다~” 하는데 어른 한 분이 “저분들이 얼마나 수고하는지 아느냐”고 아이들에게 말씀하시더라고요.

― 그때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데요?
딜레마에요. 그 앞에서 “저분들이 수고하는 건 맞지만, 다른 방법도 있어. 너희들도 커서 군대에 가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까. 평범한 사람들의 사고 수준에서 아이들을 평화로 키워 낸다는 게 참 힘들어요. 아이들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남자아이 셋을 키우다 보면 여자인 저와는 참 다른 점을 봐요. 로봇 같은 장난감을 좋아하고 싸우는 놀이를 하고 싶어 하고 그런. 여성학자인 박혜인 씨는 아이들을 굉장히 자유롭게 놓아주고 키우면서 총싸움도 같이 해줬다고…, 저도 애들이랑 총싸움 하면서 아이들이 ‘빵’ 하고 쏘면 막 쓰러져주고 그래야 할 것 같은데, 한 편으로는 내가 평화로 키운다면서 이래도 될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요. 어차피 아이들은 밖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겠지만. 체벌에 대해서도 고민해요. 평화로 키운다면서 때린다는 게 모순이니까.

   
▲ ⓒ복음과상황 이범진

― 아이들이 자라면 또 달라지겠지요?
대화할 수 있게 되면 달라지겠죠. 인권에 대해서, 양심에 대해서, 평화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참 좋을 거 같아요. 애들이 크면 〈개똥이네 놀이터〉같은 좋은 잡지도 보여주고. 전 어릴 때 〈새벗〉을 구독했는데, 엄마가 나를 위해 그런 잡지를 구독해줬던 게 고맙고, 좋은 기억이에요. 아이들과 자전거 여행을 다니는 (독일에 사는) 아빠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해요. 그 애들 이름이 강나루 강나단이었어요.

― 그렇게 하고 싶으시겠어요.
항상 남편한테 말해요. 나중에 애들이랑 유럽으로 자전거 여행 떠나겠다고. 바쁘면 나 혼자 간다고.(웃음) 바로 실행할 순 없어도 이런 이야기 하나하나가 숨통을 틔워줘요. 남편도 그러라고 해요.

― 결혼하고 달라지신 게 많아 보여요.
결혼 때문은 아니겠지만 삶에 대해서 더 생각하게 되요. 살림의 중요성, 음식의 중요성, 건강의 중요성 같은 것들. 남녀 일의 구분은 없지만, 여자가 더 잘 하는 일에 대한 소중함도 느끼고요. 바느질 같은. 아이를 키우면서는 애들이 자라도 계속 소통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고. 내가 아이들에게 실수하는 것들에 대해서 아이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자꾸 변명을 하게 되는데, 아무리 논리적이라도 변명은 변명이잖아요? 변명 말고 얘기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남편이랑도 잘 지내고.

― 남자아이를 셋이나 낳아 기르면서 좋은 엄마 하기 힘들 것 같아요.(웃음)
‘엄청나게 힘들었다.’ 이런 건 없었지만, 돌아보면 육아하면서 우울한 날들이 있었어요. 견딘 거 같아요. 더 활기차게 보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은 남아요. 결혼하고 바로 애가 생기고, 모유 수유하고, 젖 떼고 나면 또 애가 생기고를 반복하면서 젖 먹이는 시간이 하루에도 정말 많았거든요. 수유쿠션을 대고 노래 부르면서 먹이기도 하고, 지겨우면 복상 읽으면서 먹이기도 했어요. 그 시간 동안 좋은 책들을 많이 읽었죠. 우울에서의 탈출구 같은 거였거든요. 나는 계속 땅이 꺼지는 것처럼 사는데, 책을 읽으면 하늘을 나는 느낌이어서.

   
▲ ⓒ복음과상황 이범진

― 저는 갈수록 결혼에 대해 재고해보게 되던데,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결혼은?
지금 남편을 소개로 만나서 석 달 후, 제가 결혼을 앞두고 아프리카 출장 다녀와서 곧바로 결혼했어요. 준비 과정도 같이 못하고, 서로 잘 모르는 상황에서였는데, 첫인상도 좋고 말도 예쁘게 했거든요. 저는 결혼도 굉장히 이상적으로 생각해서 결혼하면 같이 책 읽고 토론하고 그런 시간이 많을 줄 알았거든요.(웃음) 밥 해 먹고 생활하는 부분이 커요. 그리고 결혼해서 함께 사는 건 서로를 만족시켜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 앞으로 꿈이 있나요?
미국에서 메노나이트 사람들이 일 년에 한 번씩 축제를 하는데 예전에 가본 적이 있거든요. 할머니들이 큰 창고 같은 곳에서 여럿이 함께 큼지막한 퀼트 이불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어요. 손들은 다 망가졌지만. 그 삶이 참 아름답다 생각했어요. 건강하고. 나도 노후의 삶을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즐겁게 나눌 수 있는 삶을 꿈꿔요. 애들이 좀 크면 앞으로는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