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만 모르는 〈미운 우리 새끼〉

[311호 대중문화 짚어주는 남자]

2016-09-26     정재원 에디공 프로그래머

 

   
 

SBS 〈다시 쓰는 육아 일기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운 우리 새끼)는 연예인을 자식으로 둔 엄마들이 출연하여 아들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육아일기를 다시 쓴다는 콘셉트로 진행되는 토크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미운 우리 새끼인 김건모, 박수홍, 허지웅, 김제동은 모두 혼자 사는 남자이다. 자연스러운(?) 결과겠지만, 엄마들의 모든 관심은 ‘기-승-전-결혼’이다.

욕하면서 보는 엄마들의 전근대적 발언
프로그램은 예상대로 엄마들의 전근대적 결혼관이 유감없이 표출되는 식으로 진행된다. 김건모의 어머니 이선미는 이상적인 며느리 상으로 “성유리 같은 색시”를 꼽으며 그 이유로 “결혼하면 일을 접고 아이만 셋 나아서 집에서 살림을 잘하고 싶다고 말하더라”라고 말한다. 김건모가 소개팅에서 아나운서 여성을 만나자 단호하게 “(일을) 그만두면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여성은 그저 남성을 내조하는 존재로서 가부장제의 고정된 성 역할에 머물러 있다.

연상을 반대할 때도 엄마들의 편견은 그대로 드러난다. 내조 잘하는 10살 연상은 어떠냐는 질문에 이선미는 “연상? 50살에 연상이면 몇 살?”이라고 받아쳤고 “손자를 낳아야 하는데” 연상은 이 점에서 불리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박수홍의 어머니 지인숙은 “(며느릿감으로) 연예인도 좋고 아무나 사귀어서 결혼했으면 좋겠다” 하면서도 연상은 어떠냐고 묻자 “연상은 조금”이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엄마들에게 여성은 아들의 건강한 2세를 낳아줄 도구라는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적 발언을 쏟아내는 엄마들이 쓰는 육아일기는 한결 같이 혼자 사는 자식들에 대한 걱정(이라고 쓰고 ‘잔소리’로 읽는다)으로 마무리된다. 허지웅 어머니 김현주는 아들의 마른 몸을 걱정하며 살이 좀 쪄야 “좋은 여자도 만날 수 있다”고 일기를 남긴다. 김제동 어머니 박동연은 혼자 사는 아들이 서서 밥을 먹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엄마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이제는 철 좀 들어서 좋은 여자 만나 안정된 가정을 이루어 사는 것”(이선미)이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전통적인 가족관에 익숙한 그들에게 비혼은 하나의 선택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결핍으로 여겨질 뿐이다.

이러한 엄마들의 육아일기는 자식을 아끼는 그들의 진심과 상관없이 비판의 대상이 됐다. 미우나 고우나 오로지 우리 새끼만을 아끼는 엄마들의 마음은 모성으로 합리화하기엔 불편한 지점이 많았던 탓이다. 진보 언론은 “퇴행적 젠더 윤리의 과잉”(〈한겨레〉), “가부장제의 재생산”(〈아이즈〉), “이상한 모성”(〈경향신문〉)이라며 프로그램의 시대착오적 기획 의도를 한목소리로 비판했고, 집안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포기했다는 박수홍의 고백이 전파를 타면서 시청자들의 악플도 급증했다. 

하지만 엄마들에 대한 불편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미운 우리 새끼〉는 3회차 방송 기준으로 시청률 8.6%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1인 가구 스타들을 관찰하는 예능으로 대중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오던 <나 혼자 산다>를 앞지른 점이다. <나 혼자 산다>와 〈미운 우리 새끼〉는 혼자 사는 연예인을 관찰하는 예능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유사한 포맷이다. 단, 미운오리새끼는 관찰 주체를 엄마로 두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결과적으로 〈미운 우리 새끼〉는 차별화를 위해 섭외된 엄마들의 문제적 발언 덕분에 높은 시청률을 얻을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를 놓고 우리는 〈미운 우리 새끼〉의 성공 요인을 욕하면서 보는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막장 예능’의 틀로 해석해볼 수 있다. 시대착오적인 엄마들의 발언이 시청자들에게 불편을 주는데도 시청률은 계속 상승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 틀은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어떤 균열을 놓친다는 점에서 충분하지 않다.

‘정상가족’을 향한 엄마의 판타지, 아들의 외면
〈미운 우리 새끼〉는 자식에 대한 엄마들의 판타지와 곳곳에서 그 판타지를 위협하는 요인들이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분열과 간극에서 재미를 만들어낸다. 가령 김건모와 김제동의 소개팅 장면은 자식들의 결혼을 바라는 엄마들의 욕망에 충실하기 위해서 설정된 상황이라기보다는, 결혼에는 조금도 진지하지 못한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의 엄마들을 자극하기 위한 위악적 설정에 가깝다. 소개팅에서 “니쌩거똥꼬빵짱와”와 같은 생뚱맞은 개그를 날리는 김건모나, 소개받은 여성을 앞에 두고도 지나다니는 학생에게 계속 말을 거는 김제동이 그 무례함을 통해서 엄마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물론 이들의 무례한 행동을 그저 철없는 행동으로 평가하거나 “소녀 같다”(김현주)고 바라보는 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들이 누리는 특혜로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김건모와 김제동은 남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후한 평가 속에서 제멋대로 구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제하는 엄마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된 도발을 하는 듯하다. 

‘기-승-전-결혼’인 엄마들의 욕망과 상관없이 결혼에 대한 아들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결혼은 아니야”(김건모), “내 인생이 있고, 스무 살이 넘었으니 어머니의 뜻대로 살 수는 없다”(김제동), “이대로 화려한 싱글로”(박수홍) “결혼은 싫다”(허지웅). 〈미운 우리 새끼〉는 결혼을 바라는 엄마에 대한 미안 마음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눈물 짜는 모습을 부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의 연출이 지배적이다. 늦바람이 들어 클럽에 가서 춤을 추거나 집안에 소주 냉장고를 들이는 식으로, 엄마를 놀라게 하는 에피소드들이 연속될 뿐이다. 

〈미운 우리 새끼〉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가진 엄마들의 발언이 프로그램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퇴행적으로 보일 수 있다. 게다가 MC들은 다 큰 자식을 애를 다루듯 걱정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모성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MC들의 그러한 합리화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향한 비위 맞추기에 가깝다. 〈미운 우리 새끼〉는 1인 가구가 가장 일반적인 가구 형태로 자리 잡은 현재를 배경으로 할 때만 성립 가능한 예능이라는 점에서 동시대적이다. 엄마들만 임금님이 옷을 벗었다는 사실을 모를 뿐, 다른 모든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다. MC와 시청자들은 그저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다. 


정재원
대학원에서 문화연구를 전공하고 문화 해석과 향유 네트워크 ‘에디공’에서 프로그래머로, 연구집단 카이로스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먹고사니즘’과 행복 추구를 훌쩍 넘어선 삶을 위해 평신도 공동체를 실험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