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의 기술체계는 인간의 통제 너머에 있다

[312호 커버스토리] 9·12 지진 한 달 후 경주를 다녀오다

2016-10-26     오지은 기자
   
▲ 월성 원자력본부 내에서 찍은 신우러성 1·2호기 제 3발전소 ⓒ복음과상황 오지은

불안한 지반 위의 ‘안전한’ 원전?
지난 9월 12일 오후 7시 44분 경북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경주시 남남서쪽 8.2km에 위치한 내남면 부지리에서 5.1 규모의 전진(前震)이 있었고, 다시 오후 8시 32분 경주시 남남서쪽 8.7km에 위치한 내남면 화곡리에서 5.8의 본진(本震)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국내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로 분석됐다.

진앙지로부터 27km 떨어진 곳에는 월성 원자력발전소 1~4기와 신월성 원자력발전소 1, 2기가 운전 중이었다. 경주에 본사를 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날 지진 발생 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경주 지역 지진에 의한 원전 영향 없어”라는 보도자료를 언론에 뿌렸다. 그리고 자정께 월성 원전 1~4기 가동을 순차적으로 수동 중단했다.

지진 발생과 원전 운전 중단 사이에는, 지진으로 인한 월성원전 부지에 대한 충격이 원전 정지 기준값에 미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다. 지진 충격이 원전에 도달했을 때 강도인 최대지반가속도(PGA:Peak Ground Acceleration, 단위 g)와 내진설계가 되어 있는 원전 내부가 아닌 실외 측정값인 운전기준지진(OBE, Operating Basis Earthquake) 계측 작업이 그것이다. 내진 설계의 기준으로 볼 수 있는 PGA의 경우, 현재 가동중인 국내 원전은 6.5 지진에 해당하는 0.2g까지 견딜 수 있다. 그리고 지진 시 OBE 값이 기준치를 넘으면 원전의 이상 유무와 관계없이 원전 운전을 중단한다. 월성 원전 OBE는 0.1g다.

9·12 경주 지진으로 PGA 값은 기준치를 넘지 않았으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측정한 월성원전 부지 OBE 값은 0.12g로 기준치를 넘겼다. 이에 한수원은 추가 검증을 거쳐 원성 원전 운전을 멈췄다. 추가 검증값이 정지 기준값을 넘겼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지진으로 인한 원전 영향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는 중에 일단 “영향 없다”는 보도자료부터 내놓고는, 이후 OBE 기준값이 넘자 운전정지를 한 셈이다. 안전을 일단 확언하는 한수원의 태도는 오히려 지진으로 인한 공포에 떠는 시민들의 혼란과 불신을 가중시켰다.

경주 지진 이후 원전 지역들의 활성단층 논란이 주요 이슈로 등장하며 언론 보도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국내 원전 지역의 지질 불안정성 문제는 이미 보고되어 왔다. 소방방재청(현 국민안전처)이 2009년 5월부터 2012년 8월까지 ‘활성단층 지도제작’과 ‘국가지진위험지도 제작’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지질자원연구원이 수행한 연구 결과 보고서에는 당시 신규 원전인 신고리 5, 6호기 부지가 활성단층으로 분류됐다. 한수원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모르쇠로 일관했다는 지적이 일자 한수원 측은 해당 연구 결과를 알 수 없었다고 해명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경주에는 특히,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방폐장)도 운영 중에 있다. 2014년 8월 말 준공하여 운영을 시작한 경주 방폐장이 1년여 만에 지하수 염분으로 인해 배수 펌프가 누수되는 등의 결함을 드러낸 것 역시, 부지 선정 및 공사 과정 이후로 환경단체들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해온 일이다.

‘위태로운 평화’에 익숙한 사람들
경주 지진 당시 10월호 마감일정 중에 이재근 경주YMCA 원자력아카데미 원장을 통해 경주 강진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지난해 4월, 1993년 이후 쭉 탈원전의 궤적을 밟아온 그와 지역주민들을 만나 원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경주 상황을 취재한 바 있다. 이 원장은 “지진 때문에 시민들이 패닉 상태이고, 월성 원전은 비상이 걸렸음. 고준위핵폐기물과 함께”라고 문자로 지진의 심각성을 알려왔다.

   
▲ 이재근 원장(위)이 보내온 문자

이후로도 거의 500건에 달하는 크고 작은 여진이 이어졌고, 제18호 태풍 차바의 영향권에 들어 경주 상황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 언론 보도를 통해서 나왔다. 경주에서 주택과 공공시설 5천1백여 곳이 파손된 것으로 보고됐다. 진원지와 인접한 내남면과 한옥이 많은 황남동 주택가 등 낙후된 건물과 한옥에 피해가 집중됐다.

지진 발생 한 달이 채 되기 전인 10월 6일 경주를 찾았다. 태풍이 지나간 잔해를 경찰 인력이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서천고수부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여진 강도가 점차 약해져서인지 경주 시내는 대부분 안정을 찾은 듯(?)한 분위기였다. 지진대피소로 지정되어 시민들이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던 황성공원도 이날은 지진 이전으로 돌아간 듯 고요했다. 경주시는 10월 1일부터 시민들의 야영 천막에 자진 철거 요구 계고장을 붙였으며, 4일 오전에는 공무원들을 동원해 황성공원 내 시민들이 설치한 지진대피용 천막 철거를 시도했었다. 6일까지 남아 있는 텐트는 없었다.

황성공원 앞에서 오랜 동안 뻥튀기와 슬러시 장사를 해온 경주토박이 황아무개(73) 씨는 “며칠 전에 텐트들이 다 철수했다”며 “지진 피해는 거의 다 복구된 거 같다”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커피 장사를 해온 김아무개(62) 씨 역시 “요즘은 괜찮다. 불안한 건 없다”고 했다.

공원에서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로부터도 지진 이후 심경을 들을 수 있었다. 원전과 방폐장에 대한 생각도 넌지시 물었다. 공원 인근 아파트에 산다는 백병숙(61) 씨는 경주 지진에 대해서 뉴스 보도가 너무 과장되게 나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매스컴에서 너무 과장한다. 경주 사람들이 이상한 데 사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 같다. 처음 지진이 크게 왔을 땐 조금 불안했는데 지금은 크게 못 느낀다. 큰 피해 없고 태풍 오면 으레 오래된 기왓장들 떨어지고 그러는 정도다. 약한 지진에는 적응했다. 여기서 야영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이 불안한가보다’ 했다. 뭘 어쩌겠나.”

원전과 방폐장 문제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원전이랑 방폐장이 좀 걱정되긴 하지만, 지진이 더 크게 오겠나. 편하게 생각한다. 안 그러면 불안해서 어떻게 사나.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뚜렷한 대안도 없고. 똑똑한 사람들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 황성공원에서 산책하는 시민 ⓒ복음과상황 이범진

고등학교 수학 교사로 재직 중인 박동희(38) 씨 역시 원전에 대해 필요악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제는 좀 무뎌졌다. 처음 겪는 일이라 정보 찾아보고 지진 대처 방법 찾아보고 정신 차렸다가, 여진 몇 번 겪으면서는 무뎌져서 지금은 별로 감흥이 없다. 원전이 잘못되면 경주만 그래 되는 것도 아니고, 위태롭지만 같이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적대적인 생각은 없다. 없으면 좋겠지만 전기를 어떻게 하나. 대체 방안이 있으면 좋지만 어쩔 수 없으니까.”

성근동 오피스텔에 살고 있는 배명숙(51) 씨도 원전에 대해서는 비슷한 입장이었다.

“지진 나기 전에는 원전에 대해서 별 생각 없었다. 위험하다는 건 알았지만,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고. 지진 후에는 무섭긴 하지만 지진이 언제 또 올 줄 알고 원전을 당장 뭐 어떻게 하겠나.”

인근 아파트 주민인 김현숙(56) 씨는 지인이 공원에서 야영을 했다. 원전 문제에 대해서는 지진 이후에 걱정을 하는 눈치였다.

“처음에는 그게 지진인지도 모르고 많이 놀랐다. 부엌 찬장 그릇들이 우르르 흔들리길래 무슨 일인가 했다. 경주 어르신들이 아무래도 더 놀란 거 같다. 아는 언니도 여기 공원에서 야영했다. 그 집은 1층이 주차장인 건물이고 내진 설계 안 된 집이라 더 불안해하더라. 방폐장도 이전엔 지진과 연결해서 생각 안 했었는데, 이제 어떡해야 할지….”

본진 발생 이후 해외에 다녀왔다고 밝힌 이정섭(67) 씨는 애초 방폐장이 들어설 때 찬성했었다. 지진 사건 후 생각이 바뀌었다.

“본진 후 해외에 다녀와서 다른 사람보단 덜 불안했는데, 방폐장이 걱정이더라. 처음 만든다고 할 땐 난 찬성했는데, 지진이 또 올 수 있다니까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이후가 걱정이다.”

여고생 김현주(17) 씨는 지진 당시 학교에 있었다. 세월호 사건이 떠올랐다고 했다.

“언론에 나온 것처럼, 정말 지진 났을 때 ‘공부하라’고만 했다. 요즘은 대피 교육을 자주 한다. 방폐장 같은 거 없으면 좋겠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그런 위험한 곳이 우리 지역에 있는지도 몰랐다. 지진 났을 때 너무 무섭고, 세월호 사건이 기억나서인지 더 불안했다.” 

“전문가들이 너무 호들갑 떨어 문제”
지진 이후 분위기를 더 알아보려 원자력아카데미가 열리는 곳으로 가는 길에, 최신 네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통제구역인 월성 원자력본부를 관통해야만 했다. 터널을 통과하려던 모든 차량이 태풍 차바 때문에 터널이 막혀서 이례적으로 원자력본부를 지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신원 파악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본부 통과 후 일단 수강생들이 점심을 먹고 있는 곳을 찾았으나 예정된 수업 일정이 취소되었다. 수강생 중 갑자기 환자가 발생하여 이재근 원장이 응급실 이송에 동행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이날 수업이 두 번째라는 어느 목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아카데미 기수에는 목사 네 명이 신청했으나 이날은 한 명만 수업에 참석했다. “전화 와서 곤란하게 하는 사람이 많은데 감당할 수가 없으니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라고 한 그는 월성원전 인근에 위치한 어느 교회 목사였다. “경주의 목사가 원전 문제에 대해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겠느냐”는 이재근 목사의 말에 “그럼 머리띠라도 두르고 원전 반대 시위라도 하라는 말이냐”라고 했다가, “수업이라도 들어보라”는 권유에 못이겨 아카데미에 등록한 터였다. 그는 “아직 수업을 한 번밖에 못 들었다”면서 원전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 원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전 사고 날 확률이 자동차 사고 날 확률보다 낮지 않은가. 지진으로 호들갑 떠는 게 광우병 파동 때와 같지 않나. 우리 교회가 월성 원전 있는 마을에 있는데, 태풍으로 산사태 피해 본 거 말고는 우리 교회에는 지진 피해 본 사람 없고 불안해하는 교인도 없다. (원전) 주변에 사니까 그냥 한 번 들어보려고 온 거다.”

그는 기독교인이 원전반대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두고는 ‘분란을 일으키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도하는 게 기독교인이 할 일이라며, ‘전기세 걱정’을 했다.

“기독교인들이 어차피 있는 시설을 위해 기도를 하고 감시 감독을 해야지 분란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안전을 강화하는 쪽으로 해야지, 우리나라 전력 수요 3분의 1을 감당하는 원전이 당장 없으면 어떻게 할 건가. 전기료가 최소한 10배가 올라간다.”

   
▲ 미국 지질조사국(USGS) 웹사이트에 올라온 9월 12일 경주 지진도. 경주 지진 관련 자료들을 볼 수 있다.

활성단층대에 속하는 경주에 또 큰 지진이 올 가능성을 예측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했다.

“전문가들이 전부 나쁜 사람들이다. 지진이 온다는 확정도 없는데 ‘카더라’ 하면서 너무 호들갑을 떨어 문제다.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는 큰 지진 와도 우리나란 그렇게 안 오지 않나. 땅 속에 들어가 본 것도 아니면서 지진 활성단층인 건 어떻게 아나. 다 모르는 거다. 만에 하나 가능성이라지만 땅속으로 들어가 볼 수도 없지 않나. 내진 설비 보강하고, 기독교인들은 분란 만들 게 아니라 기도를 해야지.”

지진 이후에도 원전에 대해 가장 무감각해 보이는 쪽은 (아이러니하게도) 역시 한수원측이었다. 원자력아카데미 인솔자 중 한 사람인 한수원 대외협력처 지역협력팀 사영기 과장에게 취재를 왔다며 명함을 내밀자마자 “이례적인 지진에도 원전은 아무 영향이 없다”는 즉답이 돌아왔다. 이보다 더 이례적인, 월성 원전 내진 설계 기준 이상의 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전해도 “월성 원전은 안전하다”고 거듭 말했다.

찰스 페로의 ‘정상 사고’와 엘륄의 ‘기술체계’ 예언
그러나 원전이라는 고도로 복잡한 시스템은 사실상 통제가 불가능하다. 이 점을 미국 예일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 찰스 페로가 다양한 실제 사고 사례 연구를 토대로 쓴 저서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에서 설파했다. 이 책은 ‘대형 사고’와 공존하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물음을 던진다. 페로 교수는 고도로 복잡성을 띠는 시스템의 위험성을 줄곧 언급해왔다.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 조사와 재발 방지 프로젝트를 지휘했던 그가 현대사회에서 가장 고도의 복잡성과 연계성을 띠는 시스템으로 꼽은 것이 바로 원전이다.

그에 따르면 스리마일 원전 사고는 단지 4개의 ‘사소한’ 독립적 장애로부터 발생했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다발성 장애가 상호작용을 일으킨 이 일련의 사건은 생산 시스템이나 안전 시스템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다.” 지나치게 복잡한, (그로 인해 시스템 운용자들조차 모든 상황을 곧바로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긴밀하게 연계된 시스템의 위험이 폭발한 사건이었다.

앞서 원전 인근의 지역 교회 목사가 ‘자동차 사고보다 원전 사고 날 확률이 낮다’고 언급했던 맥락도 페로 교수가 짚고 있다. 원자로 안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통해 1975년 발간된 〈라스무센 보고서〉(Rasmussen Report)는 ‘확률적 위험 분석’을 통해 원전에서 심각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원전 사고의 안전성이 자주 확률적으로 낮게 분석되는 이유가 “확률적 위험 분석은 잠재적 위험에 대한 대중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주요 수단으로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확률적 위험 분석과 달리, 페로 교수는 복잡성과 연계성을 띠는 시스템 속성으로 인해 사고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고 본다. 그렇게 발생하는 참사를 페로 교수는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로 개념 짓는다. 한 번 발생하면 대재앙을 부르는 고위험 시스템과 공존하는 사회는 언제든 파국으로 치달을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원전 정책을 고수하는 정부 및 한수원 측은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설계를 보강하여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페로 교수는 이를 부정적으로 본다. “위험의 증가 속도가 감소보다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기술적 개선은 오히려 상호작용성과 복잡성 간의 긴밀한 연계성을 심화하고, 그 결과 특정 사고에 더 취약하게 만든다. 통제하려고 할수록 더욱 통제를 벗어나는 이치다.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이기도 했던 프랑스 신학자 자끄 엘륄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기술의 위험을 더 앞서 감지하고 예측했다. 사회운동가요 환경운동가로도 활동했던 그는 기술 현상에 대해 세 권의 저서 《기술 혹은 시대의 쟁점》(1952), 《기술 체계》(1977), 《기술담론의 허세》(1988)를 남겼다. 엘륄은 《기술담론의 허세》에서, 자율적인 현상으로서의 기술이 결국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데 대해 “이제, 나는 시합에서 진 것이라 판단한다. 즉, 정보처리 능력에 의해 고조된 기술 체계는 인간의 방향지시 의지를 결국 벗어났다”라고 비관했다.

엘륄은 《기술 체계》에서 기술이 인간의 선택이 아닌 자체 요구에 따라 발전하는 자율적 현상임을 지적했는데, 이 현상이 심화한 결과가 곧 페로 교수가 말한 고도의 복잡성 자체의 위험으로 보인다. 이미 언급한대로 페로 교수는 복잡하고 긴밀한 시스템 상에서는 단순한 장애가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기술적 안전장치를 추가하는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설명한다. 원전 시스템은 이미 인간의 통제를 벗어났다는 얘기다.

《기술 체계》에서 엘륄은, 조엘 드까르젱 ‘떼끄노로고스 협회’ 회장이 한국어판 서문에 쓴 것처럼, 통제 밖의 기술이 어떻게 체계를 구성하는지, 그리고 이 체계가 어떻게 인간의 자유와 안전을 희생시켜 사회를 결정짓는지 일찍이 예언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폭발과 더불어 보게 되듯이, 상황적이고 우연한 방식으로일 뿐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각 개인의 행동을 통해 구조적이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