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벡 고려인이 외쳤던 “아임 크리스찬!”
[314호 쪽방동네 이야기]
![]() | ||
| ▲ 리 슬라브의 빈소. (사진: 이재안 제공) |
“아임 크리스찬! 아임 크리스찬!”
또렷하게 말하며 자신의 목걸이에 특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십자가를 보여주던 그의 얼굴과 목소리가 생생하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16년 10월의 마지막 날을 며칠 앞둔 25일이었다. 그가 김해보건소 직원의 안내로 모 대학병원 내과에서 외래 치료 및 검사를 받으면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리 슬라브 님이다. 핏기가 없어 보이는 누런 얼굴이었지만, 진한 눈썹에 큰 눈으로 나를 조용히 바라볼 때는 서구인의 느낌이 풍겼다. 혈액 검사 등 기본적인 검사 결과를 이틀 후에 다시 와 확인하고 결과에 따라 입원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사이 3일간 고시텔에 머물 수 있게 안내해드렸고, 결국 입원하게 되었다. 그때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상담소에서 준비한 생필품, 세면도구, 수건 그리고 두루마리 휴지, 슬리퍼도 전달해 드렸다. 짧은 영어와 어설픈 한국말로 대략적인 일상과 한국에 일하러 오게 된 연유도 물었다. 한국말은 잘하지 못하지만, 영어는 조금 한단다. 우즈베키스탄 언어는 언뜻 듣기에는 러시아말과 비슷한데, 실제로는 많이 다르다는 말을 훗날 통역 봉사자에게 들었다. 아버지는 고려인이시고 어머니는 중국인이라 했다. 본인이 고려인 자손임을 무척이나 자부하고 있었다.
일주일을 넘긴 이튿날, 담당 의사와 면담을 하니 앞으로 2주를 넘기기가 어렵다고 했다. 간경화가 너무 심해 신장의 기능이 극도로 떨어졌고 간 기능의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했다. 처음에는 간단히 치료하고 법적인 출국 날짜에 맞추어서 본국으로 보내드리려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난감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루속히 가족과 연락이 닿아 소식이 먼저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 | ||
| ▲ 슬라브 님(왼쪽)과 그의 아들. (사진: 이재안 제공) |
‘당신 아들이 오고 있는데…’
다시 일주일 후 간경화가 심해져 간성혼수가 시작되고 정신이 혼미하게 되어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려워졌다. “아임 크리스찬!”이라고 외치던 슬라브 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때 손에 쥐고 있던 십자가 목걸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특이한 장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정교회에서 사용하던 십자가였던 듯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아들이 수원으로 일하러 와서 아버지를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슬라브 님이 혼수상태가 되고 하루 만에, 강원도 동해시에서 일하던 아들이 급행 택시로 30만 원을 지불하고 부산의 대학병원으로 찾아왔다. 미리 알았더라면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크다. 거기에는 또 말 못할 사연이 있었다.
슬라브 님이 처음부터 아들의 존재를 이야기해줬더라면 페이스북으로도 아들과 메시지를 교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하나뿐인 친아들에게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미안해서 그런 것 같았다.
아들이 대사관에 서류 등을 신청하러 서울에 갔다가 3일 후 도착하기 3시간 전인 오후 1시 03분. 슬라브 님은 아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한 시간여 전 그의 얼굴을 닦아주면서 잘 가시라고 수고하셨다고 말하니 반쯤 감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열흘 동안 간병을 해주신 사모님도 애를 많이 쓰셨다. 막냇동생 챙겨주다 보낸 느낌이라 마음이 짠하다 하신다.
잠시 간병사님이 나가신 후 조용한 1인실, 밖에서 아련한 빛이 스며든다. 그와 나, 단둘이 시간을 보낸다. 반쯤 감긴 그의 왼쪽 눈을 다시 고이 감겨주었다. 다시 한 번 잘 가시라고 낮은 목소리로 전했다. 이렇게 한 달 가까이 알아온 이는, 시신이지만 그저 자는 모습으로 느껴진다. 아직 목소리는 들리리라 생각해본다. ‘당신 아들이 오고 있는데 조금 있다가 가시지’라며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3시간이 지나면 바로 영안실로 가야 한다며 간호사님이 애써 미안한 투로 이야기하신다. 오후 4시 15분이 되니 영안실용 침대를 끌고 직원이 왔다. 직원에게 부탁을 드렸다. 아들이 곧 오고 있으니 30분만 기다려 달라고. 4시 50분이 되어서야 아들이 도착했다. 눈을 감은 아버지를 보고 아들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우즈베키스탄의 가족에게 전화를 하는 것 같았다.
어둠을 밝히는 숨은 종교인들
장례를 지원하는 업체와의 논의로 영안실과 장례식 일정, 화장 일정도 일사천리로 결정되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며 머뭇거리던 아들도 하는 수 없이 한국식을 따르기로 했다. 사망진단서 등 관련 서류가 이틀 만에 준비되고 아들은 다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을 찾아가서 서류를 준비해왔다. 3일간 준비가 원활하게 진행되었고 입관, 출상, 화장의 순서로 유골함까지 잘 준비됐다. 아들은 늦게 오신 아버지의 매제와 함께 그리고 시민들과 함께 외롭지 않게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 | ||
| ▲ (사진: 이재안 제공) |
처음 입원하면서부터 여러 단체와 기관의 협력이 잘 이루어져 왔다. 이주노동자의 의료 지원은 법무부에서도 책임질 수 없고 보건복지부에서도 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에 민간의 협력을 통해 슬라브 님과 같은 분을 지원하고자 노력을 해왔다.
‘이주민과함께’라는 단체의 의료지원 팀장이 적극적으로 3년 전부터 슬라브 님을 도우려 애쓰고 있었다. 이분은 일본인이다. 10여 년 전부터 한국에 와서 NGO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아버지는 자국에서 이주노동자를 돕는 인권활동을 오래 해오신 분이라 들었다. 참으로 마음이 뿌듯했다. 일본인이 다 나쁜 건 아니었다. 아름다운 일본인이라 부르고 싶다.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었다.
장례를 지원하는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이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 빈곤을 반대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단체 대표와 회원들이 장례식과 현장에 와 고인의 외로운 아들과 함께했다. 지역보건소 직원 중에는 기독인이 한 분 계셨는데, 2년 동안 애틋한 관심을 보여주셨다. 대학병원에서는 최대한 환자가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의료진 중 특히 담당 수간호사의 친절과 세심한 업무가 고마웠다. 기독교인인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슬라브 님 소천 후 즉각적으로 장례 지원이 가능하도록 섬겨주신 분이 부산 ‘희년함께’ 대표였다. 마을 활동가로 일하는 바쁜 시간에 짬을 내어 관련 단체들이 협력하도록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었다. 김해시청으로부터 처음 의뢰를 받은 ‘오순절평화의마을’ 상담부장은 사각지대에 있는 대상자들이 소외되지 않고 인권적인 치료와 지원이 가능하도록 마음을 써왔다. 기독교, 가톨릭, 종교의 이름을 표면화하지 않고 공적인 영역 곳곳에 숨어 섬기는 종교인들이 있다. 그들은 소외되어 배제될 수밖에 없는 이주노동자를 돕고 있다.
아픈 이웃의 곁을 지키고 있는가?
내가 근무하는 동구쪽방상담소는 장로회통합측 노회 산하 사회선교기관이기도 하다. 소장님은 사회선교를 일구어온 목회자이시다. 이런 분들은 예수를 믿으면 천국 간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소리 없이 어둠을 밝히는 분들이다. 예배당으로 전도해서 데리고 오지는 않지만 세상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 예수의 사랑을 일구어 내는 사람들이다. ‘지극정성’으로 예수의 사랑을 자신의 일로 실천하는 이들이 무척이나 많다. 단지 종교적인 틀에 갇혀 있는 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한 달 동안 슬라브 님과의 만남은 내 가슴과 공동체적 관계의 기독인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던져주었다. 그는 이주노동자로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아버지, 할아버지의 고향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을 것이다. 그 역시 한국인이 자기와 같은 고려인이기에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하늘나라로 가셨을 것이다.
그의 곁에, (예배당에 다니는 신자들은 없었지만) 세상 속에 뛰어들어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소수의 기독인이 함께했다. 풀꽃처럼 바닥에서 피어나고 강물 따라 유유히 진리의 삶으로 흐르는 사람들. 예수의 정신을 실천하려 마음을 나누는 스무 명이 넘는 분들이 장례식에 함께했다.
슬라브 님의 아들이 돌아가면서 6개월 후 다시 한국으로 올 텐데, 그때 꼭 다시 만나자고 했다. 어느새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동생 하나를 사귄 느낌이다.
“아임 크리스찬!”이라고 또렷하게 말하며 십자가 목걸이를 보여주던 그의 얼굴과 목소리가 여전히 생생하다. 그 말에 실은 “나도 크리스찬이다”라고 대답했었다. 거기서 무슨 교리가 더 필요할까. 이신칭의가, 칭의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그의 손을 잡아주고 퉁퉁 불어 아픈 다리를 쓰다듬어 주는 행위가 필요할 뿐이었다.
문득 그의 눈이 우리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당신은 지금 아픈 사람을 어루만져주는 그리스도인인가?”
저기 위에서 그분과 함께 지긋이 웃고 있을 슬라브 님의 얼굴이 보이는 듯하다.
2017년 새해에도 그들은 길에 있다. 혼자 아파하고 있다.
이재안
잠자리 눈물만큼의 정(情)이라도 찔끔찔끔 나누며 살아가는 작디작은 풀꽃강물교회 식구이며, 부산 동구지역을 중심으로 ‘혼살이’ 아저씨 아줌마 할매 할배들과 찌지고 뽁고 욕먹고 욕하며 살아가는 40대 유부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