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묵할 수 없다

[316호 커버스토리] 레프 똘스또이의 기독교적 아나키즘

2017-02-22     천정근 자유인교회 목사

‘태초에’

‘도대체 한국 기독교의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도대체 한국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딱히 정답을 요청하기보다는 답답함을 토로하는 개탄의 소리일 것이다. 답답함은 당분간 사정이 더 나아지리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꽉 막힌 정체에서 발생한다. 모두가 지금의 생활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달리 어찌해볼 대안이 없는 상태, 이미 무용(無用)의 파산선고가 내려졌음에도 이밖에 다른 대안이 어디 있겠느냐는 식의 막무가내가 지배 권력을 이루고 있는 정체. 그것이 파렴치이고 범죄이고 무식이고 무지란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것이 합법적인 것이며 스스로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막연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는 정체가 질식할 것 같은 답답증을 일으킨다.

개중에는 부분적으로 개혁이나 혁신을 위해 분투하는 귀한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개혁이나 혁신이라는 것 역시 소위 말하는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합법이란 무엇인가? 바로 그 답답증을 유발하는 정체다. 그러므로 결국 기다림은 기다림일 뿐인 것이다. 이것이 누구의 책임인지. 책임의 소재를 따지다보면 결국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니 말해봐야 입만 아픈 그 입조차 다물고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자로 끝날 수밖엔 없다. 이는 “조선 건국 600년 동안”을 말하곤 하던 노무현의 파토스처럼 대중들이 지도자들에게 얼마나 염증이 나도록 들어온 레퍼토리인가.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이르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나이까 하니,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단 8:10-12)

이런 말씀도 위안이 되진 못한다. 다만 그 사이 악한 자들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여 파렴치한 자는 여전히 파렴치하고, 무식한 자는 여전히 무식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은 여전히 범죄를 저지르는 꼴이 마치 “백성들이 앉아서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뛰논다”(고전 10:7)함과 같은 답답한 고통의 카니발리즘(cannibalism)을, 우리는 지금도 교회뿐 아니라 거의 모든 곳에서 매일 겪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문제는 무엇일까?

신학교 시절 어느 날 교회사 시간에 원로교수님께서는 “여러분들은 우리(프로테스탄트)가 로마가톨릭으로부터 나왔다는 엄연한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어”라고 탄식하셨다. 그분이 역사학자셨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장차 목회 현장에 나가 성도들을 양육해야 할 전도사들에게서 나가기도 전에 꽉 막힌 암울한 비전을 보았던 것이리라. 말하자면 우리에겐 ‘태초에 프로테스탄트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더 애석한 것은 우리는 그나마 우리 스스로를 더 이상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저항하는 자)라 부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종교개혁 자체도 역사적 의미를 상실했지만, 다만 지식일망정 종교개혁이 ‘프로테스탄트의 개혁운동’(Protestant Reformation)이었다는 것조차 아예 망각해버리고 말았다. 

결국은 한국 사회 전체가 그렇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지만, 나는 한국교회의 진정한 문제는 ‘태초에 한국교회가 있었다’는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태초에 한국교회가 있었다’는 이 말은 그리 간단한 착오가 아니다. 태초에 한국교회가 있었다는 관념은 ‘태초에 대한민국이 있었다’는 말과 정확히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모든 상층부 개념이 하위를 지배하듯이, 여기서 더 나가면 태초에 한국교회가 아니라 ‘태초에 우리 교회가 있었다’가 된다. 태초에 우리 순복음교회가 있었다, 태초에 우리 사랑의교회가 있었다, 태초에 우리 명성 소망 온누리교회가 있었다 등등등.


이것은 다시 태초에 삼성그룹이 있었다, 현대가 있었다, 태초에 검찰이, 경찰이, 국회가, 새누리당이, 친일파가, 친미파가, 보수 세력이, 보수적 교회가 있었다는 관념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 우리나라, 우리 교회의 답답함의 진정한 정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신앙을 가진 사람이든 갖지 않은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온건한 사람이든, 신앙을 가졌으면 가졌기 때문에 갖지 않았으면 갖지 않았기 때문에, 악하면 악하기 때문에 온건하면 온건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밖에는 달리 변화를 기대할 도리가 없이 강화되어가고 있는 우리들의 ‘종교’(신앙)인 것이다.

구약성경 창세기는 ‘태초에’(베레쉬트, בּראשׂית)라는 말로 시작한다. 신약의 요한복음은 이 말을 ‘엔 아르케’(έν άρχή)라는 헬라어로 바꾸고 있다. 왜 ‘태초에’로 시작하는 것일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태초에 하나님(그리스도)이 계셨다’ 정직하고 활달한 총명이 있는 학생이라면 이런 의문을 피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태초 이전, 하나님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이 말이 진정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성경이 태초를 언급하면서 우리들의 영적 일깨움과 신앙으로의 초대의 문을 여는 현실적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때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우리들에게 확인시켜주는 바 삶의 구원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 ≪나는 무엇을 믿는가≫

신앙이라고 불리는 것은 단지 신앙에 대한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인즉 사회적 국가적 생활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 신앙 그 자체인 것이다. 그리고 이 양자 사이의 엇갈림은 이제 한계점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대다수의 문명인이란 사람들은 이제 단지 경찰(국가)에 대한 신앙만을 가지고 생활하기에 이르렀다.(똘스또이, 《나는 무엇을 믿는가》, 1884.)

교회와 국가

똘스또이는 사람들이 사회적·국가적 생활이라고 부르는 삶 자체가 그들의 종교요 신앙이라고 했다. “살리는 것[중요한 것]은 영[실제]이요 육은 무익하다”(요 6:63)는 말씀처럼, 중하게 헤아려야 할 것은 언제나 본질이다. 그것은 실로 선택받은 자만이 지닐 수 있는 특권이자 사명이고, 그런 예언적 존재가 있어야 야훼의 불을 간직해 언젠가 세상을 밝힐 사무엘의 불은 꺼지지 않고 보존된다. 그러나 본질을 바라보는 추구의 정직함과 하나님만을 바라보려는 용기와 진실을 통하여 구원받고자 하는 성령의 이끄심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생각이 있다고 한들 그것을 하나님의 부름의 뜻으로 인정하며 맡기고 나아가겠는가.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눅 4:25-7)이었듯, 똘스또이 시대에 무수한 지식인이 있었을지라도 오직 그 한 사람뿐이었던 것을. 그는 계속해서 교회와 신앙에 대해 말한다. 

교회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교회가 없어져도 현재 있는 것 주 예수의 가르침은 그대로 계속 존재할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예수의 희망에 의한 것이 아니다. 실제 그대로(진리)이므로 예수는 그렇게 가르친 것이다. 좋은 일을 하라.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미하도록 하라.(마 5:16). 다만 이 가르침만은 태초부터 있었던 것이고 이 세계가 지속되는 한 소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독단적 교의신학 비판〉, 1880.)

모든 무신론적인 개념이나 말 중에서 교회라는 개념만큼 무신론적인 개념이나 말은 없다. 교회라는 개념보다 더 많은 악을 낳는 개념은 없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적대적인 개념은 더더욱 없다.(〈교회와 국가〉, 1863.)

참다운 그리스도교는 폭력에 기초한 권력을 부정하고 계급적 차별, 부의 축적, 형벌, 전쟁 등 정부와 지배계급에 유리한 입장을 정해주는 것을 모두 부정하고 있다. 이것을 정부와 지배계급은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들의 입장을 지지해준 종교를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회에 의해서 왜곡된 그리스도교는 정부와 지배계급에 유리하게 진실한 그리스도교를 왜곡하여 진실한 그리스도교에 이르는 길을 사람들에게 감추고 있는 것이다. (〈내 신앙의 귀결〉, 1883.)

중요한 것은 여기서 똘스또이가 증명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신앙이란 교회와 국가를 망라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국가이고 국가는 교회이다. 신앙은 그것이 외피로서 국가인지 교회인지 (혹은 사원, 성당, 직장, 조직, 사회단체인지를) 가리지 않는다. 신앙은 그 어떤 형태든지 지배적 인식상의 굴레에 사람을 얽어매어 ‘태초부터’라는 고정된 관념에 붙들린 사람에게 작동한다. 그리고 그 모든 외형의 최고 상층부가 교회와 국가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똘스또이는 비진리에 대항하는 진리의 입장에서 모든 참신앙에 위배되는 왜곡된 신앙을 포괄하기 위하여 그것들을 망라하는 최고의 상층개념과 기관으로서 교회와 국가를 같이 취급한다.  

교회에 대해서와 같이 정부에 대해서도 경건한 마음이나 혐오의 마음 이외에 어떠한 마음도 가질 수는 없다. 교회란 무엇인가, 정부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전에는 이러한 기관에 대해서 경건한 마음 이외에 다른 마음은 가질 수 없다. 이 두 기관에 따르고 있는 동안은 자기의 자존심을 위해서도 자기가 따르고 있는 것은 각자의 위대하고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자기가 따르고 있는 것은 사실 각자의 신성한 것이 결코 아니고 악인들의 기만에 불과하며, 그 악인들은 사람을 지도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는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그러한 기관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그 사실을 깨닫게 되자마자 그들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인생독본》, 1906.)

실체 없는 국가, 실체로서의 사람

이 교회와 국가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이 신성이든 영광이든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이든 훌륭한 인격이든 위대한 업적이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꾸미는 것,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믿게 하는 것, 그래서 거짓된 있음에 의거하여 계속해서 거짓이 득세하게 하는 것, 이것이 우상숭배이고 사탄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인 ‘태초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우리에게 ‘태초에’라는 신앙을 심어준 교회와 국가라는 실체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다면 무엇이 있고 없다면 무엇이 없는 것인가?

국가는 허구의 존재이다. 실재의 것으로서의 국가는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재하고 있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의 인간과 기타 인간들의 생활뿐이다.(〈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오스트리아 병합에 대하여〉, 1908.)

국가가 교회와 마찬가지 허구의 존재가 될 때 교회도 국가와 마찬가지 허구의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것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태초에’라는 관념도 허구가 된다. 그런데 이것들은 바로 그 허구를 통하여 존재할 수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비실체이며 비존재다. 그런데 민중에게 그 허구의 관념인 ‘태초에’의 신앙을 아편처럼 계속 주입함으로써 저희들만의 무소불위의 딴 세상을 살아왔고, 또 다른 비실체 비존재들인 경찰, 군대, 검찰, 국회, 법원, 관료사회, 기업들과 더불어 민중을 지배해왔다. 그동안은 어떤 일이 있어도, 세월호 사건과 같은 참혹하고 억울한 희생이 저질러졌어도 이 ‘태초에’ 신앙은 굳건했었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의 한나라 새누리당 정권 십 년간, 우리들이 느껴왔던 미칠 듯한 답답함의 정체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제 부패가 극에 달해 제 스스로 터져 나온 사태가 지난해 촛불혁명으로 타오른 정권 탄핵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비실체 비존재들은 탄핵의 법정에서도 진리의 일깨움을 온갖 비루한 꼼수와 비협조와 훼방으로 봉쇄해가며 최후 항전을 하고 있다.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기 위하여 묻는다. 그동안 교회는 어떤 역할을 했던가? 지금 교회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무슨 올림픽 마라톤이라도 되는 것인지 한국 종교계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기염을 토하는 우리 시대의 프로테스탄트들은? 이전 누구보다도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개혁가로서 세계를 누비며 평화와 화해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프란체스코 교종을 수장으로 경모하는 지상 유일의 보편교회 로마가톨릭 신자들은? 사성제(四聖諦)와 연기(緣起)의 법칙 속에서 탐진치(貪瞋痴) 일체망상 번뇌를 끊어 붓다의 길을 따르리라는 오로지 하나의 염을 세운 선불교의 불자들은?
교회는 국가조찬기도회와 각종 축복성회와 시국기도회와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주일예배 때와 각종 문자질과 시국집회와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이젠 ‘박사모’의 행동대가 되었다. 가톨릭과 불교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청와대가 궁지에 몰리자 가장 먼저 종교인들을 불러들였을까. 왜 그들은 불러준다고 쪼르르 달려가 순교자들의 피가 흐르는 예수님과 부처님의 말씀을 고작 개 대가리(삼하 3:8) 같이 돼버린 죽어 썩은 정권에게 바쳤던 것일까? 부자가 망해도 삼 년 먹을 것이 있기 때문일까? 구토증이 나는 일이다.

흥분만 할 일은 아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전 7:14)볼 일이다. 추상적인 국가와 교회를 붙들고 탄식하며 푸념하거나 하릴없이 마음만 상하게 욕지거리를 하고 다닐 수도 없다. 그렇다고 저 여우 같은 바보들이 시키는 대로 골방에 들어가 위정자를 위하여 기도한다? 우리 모두 죄인이니 누구를 정죄할 일은 아니다? 어림없는 일이다. 그런 말에 속을 정도로 어리석진 않으니까. 그렇다면 생각해볼 일이다. 교회와 국가가 결국 하나이고 그것들이 하나 같이 허구의 존재라면, 실재로서의 교회나 국가는 일찍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도대체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존재함으로써 존재 자체로 우리를 모욕주고 경멸하며 이 모든 깡패의 폭력과 패악을 자행하는 실재는 무엇인가? 오호라 그것, 실재하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의 인간과 기타 인간들의 생활일 뿐인 것이다.

정부로부터 ‘이만큼의 돈을 내라’ 하는, 나는 정부라고 부르는 것으로부터 통보를 받는다. 다시 나에게 정부는 ‘당신은 군인이 되어 정부가 명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서약하라’고 명령한다. “정부란 무엇입니까?” 하고 나는 묻는다. 그러면 정부는 “정부는 정부가 아닌가!” 하고 대답한다. 나는 다시 “그 정부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고 묻는다. “인간이지.” “그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인간입니까? 어딘가 특별한 인간입니까?” 하고 물으면, “아냐. 모두가 같은 인간이지.”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들은 그 인간들이 명령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까? 그것도 명령하는 일이 좋은 일이라면 그런대로 나쁘지 않지만, 나쁜 짓을 하라고 드러내놓고 나에게 명령하는 것입니까? 나는 싫습니다. 내버려 두십시오.” 만일 국가에 대한 거짓 속설 때문에 바보가 되어버리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인생독본》, 1906.)

실체 없는 국가는 실체로서의 사람일 뿐이다. 실체 없는 교회는 실체로서의 사람일 뿐이다. 그것도 국가와 교회를 이용하고 있는 사기꾼이며 거짓말쟁이들이며 협잡꾼들인 것이며 그들의 연대로서의 생활이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박근혜의 사생활, 최순실의 사생활, 김기춘·우병우·조윤선·김삼환·김장환·염수정·자승 등등등의 사생활이 있을 뿐이다. 똘스또이가 이미 100년도 전에 깨닫고 가르쳐 주었던 것을 우리는 까맣게 아직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왜, 무엇이 문제였을까? 바로 그 ‘태초에’ 신앙 때문이고, 그것이 저들의 마술의 도구, 위협의 무기였던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들이 당신들 같은 인간들이 명령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까? 그것도 명령하는 일이 좋은 일이라면 그런대로 나쁘지 않겠지만, 나쁜 짓을 하라고 드러내놓고 나에게 명령하는 것입니까? 나는 싫습니다. 내버려 두십시오.”

똘스또이의 기억할 만한 사건들

똘스또이(Граф Лев Толсто́й, 1828년 9월 9일 ~ 1910년 11월 20일)는 82년의 일생 동안 90권에 달하는 전집과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글을 남긴 위대한 사상가이자 종교가이자 예언자이자 구도자이자 그 모든 것을 다 부정한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그는 생의 전반기를 삶에 대한 긍정을 찾아 분투했다. 태생이 귀족이었지만 늘 죽음의 연속이었던 가족사 속에서 고아로 자라나 장성한 그는 잘 살고 싶었고 의미 있게 살고 싶었다. 농촌계몽운동을 하고, 교육 사업을 벌이고, 포병장교로 전쟁에 참전하는 한편 방탕, 무절제, 육욕 속에서 괴로워했다. 이 모든 모순되며 처절한 분투는 그가 얼마나 생을 긍정하고 살기를 바랐었는지를 보여준다.

똘스또이의 고뇌는 단지 관념적인 것도 생활이나 육체적인 것만도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의미 있는 삶, 행복한 삶, 건강한 삶이라는 희망을 배반하는 실체 없음 곧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 기인했다. 그 죽음은 단지 육체의 증상이 아니었다. 미래의 어느 날 반드시 오지만 인간의 현재적 삶을 물들이는 현재적으로도 확실한 죽음이었다. 과격한 사냥과 모험, 방탕한 결투와 도박과 술을 즐기던 그는 문득문득 죽음의 확실성이 엄습해 올 때 진저리를 쳤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더욱 살기 위하여, 그는 분투했다. 34세 때 18세의 아내와 결혼한 똘스또이는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니나》를 써냄으로써 세계적 명성을 획득하기까지 이런 상태로 지내면서 세상의 교사 노릇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50세에 자신이 《참회록》에서 기록한 영적 위기(Духовное кризис)를 통과하며 기독교적 회심에 도달했다.

여기서 몇 가지 그의 회심 배경을 위하여 기억해 둘 사항들이 있다. 첫째로 그는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듯 그 시대에 세련되고 진보적인 지식인이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상류사회(선도적이라 해도 좋다) 일원으로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렇게 뒤쳐지지 않은 나름의 드높은 자아정체감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나중에 이런 점은 그가 태생적 계층과 철저히 절연하는 데서 의미가 드러난다. 당연히 그는 서구적인 진보를 믿었고, 민중을 사랑하는 의식 있는 귀족이었다. 나로드니끼(인민주의자) 사상에 공명한 농민계몽운동이나 교육 사업에 매진한 것도 그런 의식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건전하고 건강한 희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몇 가지 기억들이 있었다. 개인적인 면에서는 육욕과 관련된 것들이었고, 사상적으로는 우리가 지금도 금과옥조처럼 신앙화하고 있는 서구적 진보(세계적 대세)에 대한 막연한 배반감이었다. 실망을 통하여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뜨게 된 셈이다.

1857년 29세 때 처음 유럽에 갔던 그는 파리에서 길로틴 처형을 목격한다. 길거리 단두대에서 흉악범으로 알려진 죄수의 목을 자르는 장면을 보게 되는데 “단두대는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자꾸 떠오른다”고 그는 썼다. 이를 통해 그는 신의 통치(신앙심)를 상실해버린 인본주의의 극단을 경험하고 서구적 현대문명(가톨릭, 개신교 및 합리주의 계몽사상)에 회의를 품게 된다.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을 버젓이 하는 것은 하나님을 상실한 것이고 하나님을 상실한 것은 다시 인간성의 상실로 나타난다. 그 둘은 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 없는 인본주의의 비실체의 실체인 국가를 그는 보았다. 국가의 실체에 대한 똘스또이의 깨우침은 까프까즈 전선과 크림전쟁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점령지의 토착민들을 살상하는 러시아 군인의 용감성이라는 뿌쉬낀 이래 러시아식 오리엔탈리즘의 거짓됨을 발견한다. 거기서도 그가 발견한 것은 어떡하든지 계속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생활이었고 살기 위한 분투였다. 국가는 자신의 젊은이들에게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이 누군가를 죽이라고 부추기면서 폭력과 살인 행위에 온갖 애국심과 미사여구를 곁들여 붙이지만, 그로 인해 누군가의 전 생활이 파괴되고 생명이 끝장나는 것이었다.   

다른 한 가지 기억할 만한 사건은 두 번째 유럽행에서 아나키즘 이론가인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 1809-1865)을 만난 일이다. 똘스또이는 그 영향으로 “모든 정부는 선과 악의 정도에 있어서 똑같다. 보다 나은 이상은 아나키(anarchy)이다”라고 쓰게 된다. 그리고 프루동의 저서 《소유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소유는 절도(竊盜)다”라는 명제를 ‘진리’(眞理)라 인정하게 됐다. 세습귀족이자 대토지 소유자로서 똘스또이 자신의 경제적 도덕적 모순의 고뇌가 일생의 화두로 등장했던 것이다. 이것은 말년의 그에게 영향을 끼친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의 토지국유론과 함께 똘스또이 사상 진전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똘스또이는 프루동을 만나 진리가 실현되는 러시아 전통의 농민적 공동체의 이상향을 추구하게 된다. 그는 그 이상향을 평등과 자치 공동소유를 바탕으로 한 군사 공동체 까쟈끄 사회의 모습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전 세계적 민족적 과제는 토지소유 없이 사회를 조직할 수 있다는 사상을 세상에 내놓는 데 있다.” 똘스또이가 그린 아니키적 사회는 자신의 토지소유 문제에 대한 양심적 도덕적 해결의 모순된 요청과 더불어 출발하고 있다. 그는 또 쓴다. “러시아 혁명은 짜르와 전제주의에 맞서지 않고 토지 소유에 대항할 것이다.” 이때까지 그는 국가에 대한 생각을 미루어두고 있었음을, 국가를 감히 부정할 정도의 사유에는 이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생을 부정하고 교회와 국가를 거부하다

   
▲ ≪참회록≫

이 의문을 달리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무엇 때문에 내가 살아야만 하는가? 무엇 때문에 내가 무엇인가를 원해야만 하는가? 또는 이 의문을 다음과 같이 달리 표현할 수도 있다. 나에게 닥쳐올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의해서도 소멸되지 않을 가치가 내 삶에 들어있을까? 나는 전쟁에서 사람을 죽였으며, 죽이기 위해 결투를 신청하곤 했고, 카드 도박에 져서 돈을 잃기도 했다. 또한 나는 농부들의 노동의 열매를 먹어치우고, 그들을 괴롭히고, 음탕한 생활을 하고, 사람들을 속이곤 했다. 거짓, 도둑질, 온갖 종류의 간통, 폭음, 폭행, 살인, 내가 저지르지 않은 범죄는 없었다. (《참회록》 1878.)

똘스또이는 18세 이후 믿지 않았던 정교회 신앙으로 돌아가 착실한 신자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찾으려는 신앙은 보이지 않고 알 수도 없는 신비에 대한 막연한 관념적 교의(Dogma)나 초월적 신에 대한 선험적 계시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죽음에 의해서도 파괴되지 않을 삶을 원했다. 곧 내세가 아니라 현세의 삶의 구원을 원했던 것이다. 또한 그러한 현세적 삶이란 당시 제정 러시아가 처해 있는 세기말적이고 종말론적인 혁명의 임박한 분위기와 맞물려 있었다. 귀족사회는 더 이상 도덕적으로 능력적으로 세상의 지배질서가 될 수 없었지만, 황제를 위시한 권력은 군대와 경찰 사법제도와 사형으로써 그것을 지탱하고 있었다. 온갖 통제와 검열, 체포, 투옥, 유형, 고문이 자행되었다. 똘스또이는 마침내 이러한 자신이 속한 계층의 삶과 완전히 절연하는 것으로써, 세상의 비진리의 모순과 거짓과 기만과 불의와 대항하는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았다. 곧 자신이 일생 동안 추구한 모든 생의 긍정을 완전히 부정함으로써 마침내 진리의 긍정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처음은 교회가 되었고 나중은 국가가 되었다.
   
똘스또이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서 복음의 요체를 예수의 산상설교(마 5-7)에서 찾았다. 그 핵심을 ‘화내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폭력으로 악을 대항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의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 그 다섯 가지는 다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의 황금률에 다 들어 있다고 보았다. 반면 그는 삼위일체나, 동정녀 수태, 아담과 이브의 원죄, 천국과 지옥 교리 등을 부정했다. 그러나 그것들을 부정했다기보다는 그 본질적 의미의 현재성을 가린다는 측면에서 그것들이 민중을 기만하는 최면술로 이용되는 것에 분개했던 이유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1901년 마침내 종무원이 그를 이단으로 파문했을 때 보낸 답변서에서 그는 자신이 교회를 버렸음을 시인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성한 것은 교리에 대한 맹목적 신념이 아니라 사기와 협잡의 기만을 폭로할 의무라고 썼다.

세상 사람들은 어째서 이렇게도 자연스럽고 필요 불가결하고 동시에 실행이 가능한 것을 실행하지 않는 것일까?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폭력, 무기, 감옥, 교수대 등에 의해서 자기들의 생활을 구성하고 강화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런 생활을 정상적으로 볼 뿐 아니라 절대적으로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 바로 여기에 그 주요 원인이 있는 것이다. 법률을 빙자해 행해지는 폭력과 범죄의 습관이 점점 빈번해지고 종교와 더불어 제창되는 허위 종교의 최면술이 많아질수록 참된 종교를 인생의 기초로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어지고 마는 것이다. (〈독단적 교의신학 비판〉, 1880) 

똘스또이는 교회의 사목 가운데 그리스도의 진리가 드러나지 않는 이유로 국가를 든다. 여기서 그의 반국가, 반체제, 비가담, 비폭력, 거부라는, 진리 구현의 이론적 근거와 방식이 제시된다. 그는 《신의 왕국은 너희 속에 있다》(1893), 《폭력의 법칙과 사랑의 법칙》(1908), 《국가라는 미신》(1910) 등을 통해 최종적인 반종교로서 지상의 종교로 자리매김한 국가의 폭력성을 파헤쳤다. 국가는 어떻게 폭력으로 민중을 지배하는가? 위협, 매수, 최면, 군대와 경찰을 통해서 한다. 국가는 자신의 지배력에 신성성을 부인하고 그 앞에 굴복하지 않는 자들을 늘 본보기 삼아 처벌한다. 국가는 민중에게 빼앗은 세금을 관리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그들이 국가 폭력에 충성하도록 매수한다. 국가는 대중에게 애국심이라는 터무니없는 미신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동원할 명분을 만들고 무엇을 명령하든지 복종할 의무를 부과한다. 군대와 경찰은 이 세 가지를 지원하는 상시적인 제도로서 국가는 특정한 사람들을 뽑아 강력한 정신적 마비와 야수화로 그들이 임무를 당연시하고 죄의식을 갖지 않도록 교육한다. 

똘스또이는 최후의 시간으로 갈수록 시간이 없음을 깨달았다. 더욱 더 열정적으로 자신에게 분명해진 갖가지 기만과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고 사적 소유, 반인민적 국가재판소, 군국주의, 식민주의 등을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그 모든 기만을 폭로하고 현대인의 생활방식대로 생활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의 혁명은 철저한 개인 도덕의 혁명으로써, 각성한 개인들이 국가의 폭력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그들의 동원과 명령에 가담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성취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철저한 종교적이고 비폭력적인 도덕 혁명의 주장은 프루동이나 바꾸닌 끄로뽀뜨낀 같은 혁명적 아나키스트들과 당대의 사회주의 혁명가들, 혹은 도스또옙스끼와 같은 슬라브주의자들과도 갈라지는 가장 중요한 변별점이 된다. 그들 입장에서 똘스또이의 이러한 이론은 공상적이고 개신교적인 이단이고 더 나아가서는 반동적이기까지 한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착취를 가차 없이 비판하고 정부의 폭력, 재판 놀음, 국가행정을 폭로하며 부의 증대 및 문명의 성과와, 노동자 대중의 빈곤, 야만화, 고통의 증대 사이의 매우 심각한 모순을 파헤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어리석게도 ‘폭력적 악에 대한 무저항’을 설교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가장 냉정한 리얼리즘으로 온갖 가면을 벗겨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혐오해야 할 것 중 하나인 종교를 설교하고, 관직에 의존하는 사제 대신에 도덕적 신념에 입각한 사제를 내세우려 노력하고 있다. 즉 가장 세련된, 따라서 특히 염오(厭惡)해야 할 교회적 신앙을 배양하고 있는 것이다.
(레닌, 〈러시아 혁명의 거울로서의 톨스토이〉)

똘스또이즘이 사상적으로 아나키즘과 가장 친연하고 똘스또이 자신이 아나스트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베르쟈예프(Николай А. Бердяев, 1874-1948)는 ‘똘스또이야말로 가장 일관되고 가장 급진적인 아나키스트’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한 번도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야스나야 빨라냐의 저택에서 그의 추종자의 한 사람인 술레르지쯔끼가 끄로뽀뜨낀의 책을 읽고 감동해서 아나키즘의 심오함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똘스또이는 말했다.

“오 레브쉬까, 그만하게, 지겹네. 마치 앵무새처럼 한 이야기를 계속 외쳐 대는군. 자유, 자유, 그게 무슨 뜻인지 아나? 만약 자유로워진다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철학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끝없는 공허야. 인생에 있어서 그리고 실제에 있어서 자네는 게으름뱅이 혹은 거지가 된다는 걸 의미하지. 인생과 인간에 있어서 자유롭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줄 아나? 저기를 보게 저 자유로운 새들을. 하지만 새 둥지는 이곳저곳에 많아.(그냥 자유가 좋아 날아다니기만 하는 게 아니라는 의미.)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그러면 볼 수 있을 거야. 느낄 수 있을 거야. 결국 자유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은 공허이며, 무한함을 의미하지.”(고리끼, 《똘스또이와 거닌 날들》)    

태극기 집회와 한국 기독교의 청승

사람들이 묻는다. 태극기 집회에 몰려나온 목사들을 보고, 거기서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주님과 담대히 나아가 원수를 완전히 밟아 이겨’ 복음성가 소리를 듣고 경기를 일으킨다. 도대체 한국교회 왜 이러느냐고, 무엇을 위하여 저러느냐고,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고.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며 그런 글을 어찌 생각하리란 걸 알면서도 꾸준히 카카오톡으로 기상천외한 논리의 글들을 보내주시는 목사님을 여전히 알고 지낸다. 그분들이 특별히 특이한 인생을 산 것도 아니다. 다른 부분에선 평범하고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나 나는 갑자기 이런 의구심이 든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고 평범한 것일까? 나는 어떻게 곡진한 답장을 보내드려야 할지, 모른 척 외면을 해야 할지, 절연의 편지를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또 부친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 전 기간 동안 성실하고 정중하게 예배를 주관해주셨던 목사님도 계시다. 그분은 지난 십 년간 매주일 설교 시간에 이명박과 박근혜와 조지 부시와 지금은 트럼프의 믿음을 칭찬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고 역설하신다고 들었다. 근거는 없다. 혹은 그들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태극기가 요즘처럼 청승맞고 누추하게 보이는 때도 없고, 자유란 말, 민주주의란 말,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들이 이렇게 값어치 없는 것인지,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와 십자가가 이렇게 쓰여도 되는 것인지, 염오스런 맘이 든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의 실체는 없다. 있다면 오로지 사람들과 사람들의 생활이 있을 뿐이다. 희망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회개는 개인이 하는 것이지 국가가 하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회개는 개인이 하는 것이지 교회가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실체가 없다.

똘스또이는 1910년 10월 28일 82세의 노구로 마침내 집을 떠났다. 불과 보름 만에 그는 아스따포보의 역장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가 야스나야 빨라냐의 저택에서 죽지 않은 것은 모름지기 하나님의 역사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최후의 유작 《신부 세르기이》의 주인공처럼 유로지비(성[聖] 바보, 떠돌이 은자[隱者])로 생을 마쳤다. 11월 7일 똘스또이가 숨을 거둘 때 정부와 교회는 긴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똘스또이에게 참회와 종부성사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교회는 방탕한 아들을 용서해주는 거룩한 어머니 교회가 되고, 제정 정부는 감히 국가를 거역한 이 위대한 인간을 굴복시킨 위대한 국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똘스또이는 이런 날이 오리란 걸 예상하고 미리 유언을 해두었다. 자신에게는 교회의 종부성사 따위가 절대로 필요치 않다는 것. 종부성사를 구걸하기 위해 파견된 사제는 백작부인에게까지 접근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돌아갔다.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똘스또이의 장례식이 국가적 행사가 되는 것을 철저히 차단했다. 뚤라로 가는 기차의 지선들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대저 국가와 그에 속한 관료들이 하는 일이란 이렇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최근 정교회가 똘스또이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파문을 철회할 수 없다고 발표한 것은 하품이 나올 얘기에 불과하다.   

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산다는 의미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갱생’(更生)이다. 생명 회복, 다시 삶, 거듭남, 새로운 생활. 그것은 죽음을 통과해서 의미를 발견한 삶이자, 생활이다. 나는 언젠가 죽어서 다시 부활되리라는 식의 비현실적인 믿음보다 더 확실한 현재적 생활. 똘스또이는 생이 주어진 지금 우리에게 이러한 갱생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어떤 형태의 것이든 죽음의 공허와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신의 원수 갚음인 파국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유치와 비루와 광패와 위선과 거짓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할 일은 무엇인가? 악인들이 저희들끼리 뭉치는 것처럼 선인들도 힘과 지혜를 합쳐야

▲ ≪나는 침묵할 수 없다≫

한다. 그리고 우리가 깨닫고 이해한 것을 말해야 한다. 모든 유효한 수단을 동원하여, 침묵하지 않고 말함으로써 우리 자신들부터 후퇴와 타협으로부터 그리스도의 길로 전진해 나가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이 될 것이므로. 달리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니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안 된다. 다시 생각해도 안 된다. 매일 얼마나 많은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사형이 집행되고 있는가. 오늘은 다섯 번, 내일은 일곱 번, 최근 들어 20명의 젊은이가 교수형에 처해졌다. 스무 번의 죽음. 그럼에도 의회에서는 핀란드에 대해, 왕의 방문에 대한 회의만 계속 되고 있고, 모두가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나는 침묵할 수 없다〉, 1908)

흐르는 강물처럼.

 

천정근
자유인교회(경기도 안양) 담임목사. 모스크바국립대학 및 대학원(석사)에서 19세기 러시아문학을 전공하고 합동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고뇌가 없다는 것》 《연민이 없다는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