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수의 「신영복」 읽기
〔독자서평〕 손잡고 더불어 / 신영복 지음 / 돌베게 펴냄
"지식인이란 자기가 계급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275쪽)
학부에서는 전자공학과 철학을, 대학원에서는 심리학을 배웠지만, 배움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허전함은 깊어갔다. 진지한 고민 끝에 이듬해인 2014년, 목수가 되었다. 나름 육체노동에 길들여졌다고 자부하던 몸이었지만, 10년차 목수들의 능숙함을 따라가기엔 벅찼다. 머리로 세상을 이해하려던 시도는 번번히 좌절되었다. 몸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해 머뭇거리던 내 옆에서 그들은 묵묵히 몸으로 뜻을 열어가곤 했다. 생각이 길을 찾지 못하니 발이 바빴다. 하지만 나무를 잡고, 못총을 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이 뜻을 알아차리는 시간도 깊어졌다.
"저는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이란 실천의 문제이자 현장의 문제이거든요. ... 개인이 아름다운 품성으로 자기를 고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숲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먼 여행을 하는 일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64쪽)
집을 짓는 일은 머릿 속에서 어지럽게 쌓아만 오던 정보와 지식들이 현실에서 구체화되는 변용(變容)의 과정이었다. 머리로는 쉬이 간과하던 논리의 비약들은 현실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작은 못 하나도 수고 없이 그냥 나무에 박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못 하나가 나무에 박히는 사소한 일들이 쌓여 사람이 깃들일 공간이 만들어지게 될 것을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다만 땀으로 흥건해진 내의가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지고 있음을 말없이 가르쳐주고 있었다.
"시장이 교환의 현장임이 사실이듯, 교환 당사자의 모순이 만나는 곳이 그곳인 것도 사실입니다. ... 극단적인 경우 합법적인 수탈의 현장이 되고 비정한 공간으로 전락할 수 있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이 점 때문에 저는 시장 경제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자로 끝까지 남을 수 없습니다." (125, 127쪽)
내가 나무와 가까워진 이유는, 자본주의가 품고 있는 태생적 한계와 마주했기 때문이다. 정규직에 취업하더라도 5년을 머물기가 힘들고, 비정규직이 상시화된 상황이 '시장의 실패'라기 보다는 '시장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필요에 의해 사람을 쓰고, 필요가 다하면 사람을 버리는 시장의 비정함을 견딜 수 없었다.
"감옥이 특별한 공간은 아닙니다. 밀집된 공간이기에 인간관계가 더 풍부할 뿐이겠지요. 감옥은 싫은 사람도 계속 만나야 합니다. ... 기쁨과 슬픔의 근원은 바로 '관계'에요. 책은 그저 관념적인 수준에서 끝날 수 있어요. 적어도 가슴까지 내려오려면, 인간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 부딪힘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295쪽)
시장을 폐기할 수 없다면, 시장으로부터 멀어지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공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듬해 봄, 시골의 작은 동네에서 3채가 지어졌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단절'을 요구하는 시장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나는 그렇게 부르고 싶었다)의 힘으로 '관계'가 회복될 것이라 믿었다. 쉽진 않겠지만, 해야할 일이라고 여겼다.
"어느 공동체 내부에서 공동체적 철학과 윤리 또는 문화가 정착된다 하더라도 그 공동체를 감싸고 있는, 그리고 외면할 수 없는 치열한 경쟁 논리 때문에 그 공동체가 결과적으로 변질되지 않을 수 없는 한계도 동시에 봐야 했습니다." (146쪽)
공동체를 탓하는 말이 아니다. 다만, 밀도 높은 관계 속에서 단순한 공존에 만족하지 않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내 그릇을 보았을 따름이다. 뜻이 고상할수록, 고상함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 죄스러웠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선험적이고 이상적인 모델을 미리 상정하고 거기서부터 실천을 내려 받는 것은 거꾸로 된 것이지요. 있는 건축 의지를 허무는 게 필요해요. 여러분의 역량만큼 만들어가려는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305쪽)
몸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이상은 괴리를 낳을 뿐임을 절감했다. 서툼을 인정하자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허락된 시간만큼 도시의 한복판에 서있기로 했다. 청년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작지만 과분한 일이다.
"저는 '작은 숲'을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바로 여기도 작은 숲일 수 있죠. ... 많은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고, 작은 약속을 했으면 좋겠어요. 꼭 물리적 공간이 아닐 수도 있고요. 작은 숲과 작은 숲이 소통하는, 의식적인 노력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걸 통해 우리 사회의 인식과 문화도 탈 근대적인 것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295, 297쪽)
다시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모순과 부조리들을 발견하는 가운데,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탐색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공동체'를 조금씩 꿈꾸고 있다. 종지보다 못한 그릇이 얼마나 감당할 수 있겠냐마는, 옳음을 보고도 외면하는 비겁한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깨에 힘이 조금 빠져 있다는 것 정도. 신영복 선생님이 하신 말씀대로,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겨남'을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