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사순절, 생과 사의 갈림길

[317호 쪽방동네 이야기]

2017-03-28     이재안 부산 동구쪽방 활동가, 풀꽃강물교회 전도사
   
▲ 임기헌 선생님이 부산에 사는 쪽방주민들의 자치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쪽방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고 있다. (사진: 임기헌 제공)

‘2월에는 어느 분이 돌아가시는 걸까?’

다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김없이 예상하지만 예단할 수 없었던, 부산역 건너편 모 여인숙에 10년 넘게 사시던 오씨 아저씨께서 지난 2월 12일경 별세하셨다. 같은 층에 사는 몇몇 분들이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한 지 사흘 만에, 여인숙 주인이 열쇠를 따고 조심스레 문을 열어보니 돌아가신 것 같아서 경찰에 신고하셨단다. 옆방 주민 말로는 사흘 전까지 방에서 혼자서 노래도 부르고 하셨단다. 별세하신 지 사흘 만에, 동 주민센터를 통해 서울 사는 남동생이 연락이 되었고 간단한 수습이 이루어졌다. 2월 17일, 닷새 만에 영락공원에서 화장해 산골(散骨)로 보내드린 듯하다. 남동생을 직접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애써 만나서 묻기가 죄송했다. 우리가 모르는 가슴 아픈 가족 이야기가 있을 터이다. 부디 하늘나라로 잘 가셨으리라 마음으로 기도 한 자락 되새긴다.

잠자리 눈물만큼의 예배
결혼을 생각하는 커플이 오랜만에 공동예배 전 방문했다. 덕분에 예배시간은 20분여 미루어졌다. 그래도 좋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에 흐뭇한 미소가 스민다. 축하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축복했다.

 

▲ 사진: 이재안 제공

“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주의 뜻대로 항상 사세요~”

10명 정도가 도란도란 얼굴을 마주 보고 드리는 잠자리 눈물만큼의 공동예배가 예쁘다. 아장아장 서로의 눈빛에 여운을 느끼며 한 순서씩 맡아 진행한다. 침묵기도 때는 음악도 없고 시계 초침 소리만 들린다. 긴 침묵 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으로 다 같이 눈을 뜬다. 성경 본문 찾는 것이 서툰 분이 계셔서 좀 기다린다. 이 기다림이 좋다. (시간에 쫓기는 예배는 얼마나 예배자들의 마음을 옥죄는가!)

교회력을 참고하여 시편, 창세기, 로마서, 마태복음을 윤독하고 제목 없이 말씀의 맥락에 따라 나눈다. 지난 두 달 동안 ‘고생·고난이 팔복이고 함께 고생을 나누기를 결단’해왔다. 오늘은 인류로 대표되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취함으로 하나님과의 신뢰가 상실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과 서로에게 신뢰를 다짐하고 아담을 통해서는 사망을, 예수를 통해서는 생명이 이어지기에 ‘한 사람’의 역할, 곧 자신의 삶이 의미 있음을 나누었다. 이어서 40일 동안 시험을 받은 예수님처럼 우리네 인생도 연단과 시험, 고난이 있기에 시편의 말씀에 따라 ‘지켜주시는 여호와’를 신뢰함으로 우리 식구들도 서로 격려해주며 살기를 다짐했다. 감사노래는 ‘희년의 노래’로, 감사의 예물과 노래 그리고 공동 축도로 예배를 마친 후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 짬뽕, 볶음밥, 탕수육을 나누고 각자 집으로 돌아왔다.

예배에 참석하고파서 일부러 수원 직장에서 내려온 큰아들을 배웅하러 부산역으로 간다. 10명 남짓의 교우들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평생 함께 가는 교회 공동체 가족이기에 피곤한 몸이지만 뒷모습이 든든하다.

봄맞이 보리밥 식사 한 끼, 그리고 엄마 생각
아직 부산역에서 지내시는 김씨 아저씨 만나러 온 김에 4,000원짜리 보리밥 한 끼 함께 나눈다. 고추장도 한 스푼 가득, 콩나물, 시금치, 질퍽한 된장국, 구수한 사랑이 느껴지는 밥상이다.

이 시대는 사회적 가족이 필요하다. 밥 한 끼 함께 먹을 수 있는 가족이 없어서, 아니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 보리밥 한 그릇 나눠 먹는 것도 참으로 행복하다. 뭐 행복이란 게 그렇게 화려한 게 아니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탈핵하는 마음은 엄마의 마음이다.” 기간제 국어 교사를 그만두고 생태 환경 대안학교를 준비하시는 채 선생님이 사진전에서 건네신 말이다. 후쿠시마 사건 이후 일본의 여성들이 모여서 함께 지내면서 핵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사진을 찍었던 모양이다. 이 사진전에 갑작스레 두 명의 청년들과 함께했다. 엄마가 계시지만 만나기 힘든 서른세 살, 스물일곱 살 청년들이다. 사진을 바라보는 두 청년의 얼굴이 사뭇 애잔하다. 그중 서른셋 먹은 아들은 엄마를 잠시 만나러 충북 제천에 갔다. 엄마가 보고 싶단다. 세 살 때 헤어진 엄마이다. 27년 만에 만나보니 재혼하셨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살고 계신단다. 엄마를 잘 만나고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 나도 어머니를 뵈러 한번 가야겠다.

   
▲ 사진: 이재안 제공

쪽방주민과 꿈을 나누는 임 선생님
10년 전부터 기도해오던 활동, 임기헌 선생님이 부산에 사는 쪽방주민들의 자치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쪽방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고 있다. 임 선생님의 이야기를 한 토막을 나눠본다.

왕년에 배를 타셨고 무협소설을 방불케 하는 삶의 궤적을 가지신 A 선생님. 지금은 늙고 병들어서 많이 약해지셨고, 질병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에 늘 고마워하신다.
알뜰하게 돈을 모으셔서 임대주택에서 깔끔하게 살림을 살고 계시는 B 선생님. 오래된 목수 경력으로 쪽방 선반 제작 전문가로 추천할 만한 분이다. 면을 좋아하셔서 이번에는 내가 짬뽕을 사고 다음에는 그분이 칼국수를 쏘시기로 했다. 남이었던 이들은 이렇게 이어진다.

힘든 삶의 과거로 인해 사람 만나기를 꺼리시는 C 선생님. 좀 비싼 월세지만 모텔에서 한 달씩 방을 잡고 쓰는 ‘달방’을 살고 계신다. 봄이 오면 쪽방주민들 청소 자조모임이 시작될 예정인데 그때 합류하기로 했다.

젊은 청년들도 그 좁은 방에서 삶을 이어간다. 나이와 관계없이 힘든 시절을 보낸 우리 쪽방 동생들. 그동안 몇 번 밥 사준 게 고맙다고 수급비 받은 것으로 마련한 치킨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도중 내가 위로 누님이 4명 있다고 하자 몹시 부러워한다. 뭐가 그렇게 부러우냐 했더니, “가족이 있으면 좋잖아예” 한다. 그 한마디에, 그 찰나의 순간에 나의 삶을 돌아보며 성찰한다. 그 동생 손을 꼭 잡고 부산 거리를 걸었다. 다 큰 남자 둘이서 손을 잡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행복했다. 내가 손을 잡아줄 수 있어서.

‘우리’가 되어 인생 바닥에 있는 이들과 함께 걸어가는 동지가 임 선생님이다. 나보다 두 살 위. 앞으로 ‘행님’으로 잘 모실 거다. 임 형의 앞길이 좁은 길이지만, 주님의 성령이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도 어금니 꽉 깨물며 살아간다.

되새기고, 되새기다
소설 《7년의 밤》을 읽고, 새벽 2시 14분에 쓴다.

피 터지게 부딪히며 살아가는 사람들, 아등바등 말고 서로를 격려하고, 기쁘고 즐겁게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할 텐데, 왜, 왜일까…. 작년에는 동갑내기 지인이 급성암으로 소천했다. 예전 교회 교인이었다. 쪽방주민 긴급의료지원으로 모 대학병원에 방문했을 때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를 만났다. 꼭 한 번 만나자 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병원 지인을 통해 비밀리에 알아보니 급성혈액암이었다. 당시 무균실에서 치료 중이었다.

여전히 그의 동영상, 자료 등을 되새기고 있다. 왜, 왜일까…. 왜 되새길까. ‘사실’이기에 외면할 것이 아니라 ‘진실’을 알고자 되새긴다. 대다수 사람은 ‘사실’이라는 핑계를 빌미로 ‘진실’이라는 책임을 미룬다. 애써 진실을 외면한다. ‘사실’이 전부가 아닌 걸 알면서도, 참뜻은 ‘진실’로만 드러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워서 짐짓 피하려는 걸까.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맥락을 탐색해 나가는 힘은, 두려움을 떨치는 ‘깨어있음’에서 나온다고 어느 선배가 말해준 것이 기억난다.

쪽방동네 사람들, 각자가 영화 두 편은 시리즈로 쓸 만한 사연을 지닌 분들이다. 그들 인생의 진실에 더 깊이 다가갈수록 더 감정이입이 된다. 되새길수록 한 인생의 무게는 중해진다. 그 무거움을 견디고 끝까지 가다 보면 종착역은 오직 사랑이다. 십자가 그분이 가신 그 길.

어긋난 사랑
한 여인을 너무나 너무나 사랑해서 그녀에게 못할 말을 하신 아저씨. 중재하다 보니 하루에 경찰서를 두 번이나 들락날락했다. 경제팀 조사관과 대화, 사이버수사대도 방문. 이 아저씨는 사랑하는 그 여인이 자기가 우연히 본 인터넷 동영상의 불륜 커플이란다. 확실하단다.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미쳤느냐 대놓고 말할 수 없다. 자신은 순수한 사랑이기에 그 여인을 지켜주고 싶단다. 남편도 아닌데, 그 여인을 지켜주고 싶단다. 소고기국밥 한 그릇, 담배 다섯 갑으로 달래고 얼렀다. 결국은 그 여인과 같이 세 명이 만났다. 무사히 내가 중재를 하고 잘못을 시인했고 용서를 하셨다.

그 ‘여인’은 고시원 주인이다. 짬뽕을 제대로 못 드시고 눈물을 글썽이신다. 이틀 동안 큰 사고가 없어서 다행이다. 고소로 접수했으나 처벌할 수위는 아니라 없던 것으로 종결될 것이다. 고시원에 입주하신 아저씨, 친절한 고시원 사장님의 모습에 반한 그 순수했던 마음이 갈피를 잃어 큰 화를 불러일으킬 뻔했다. 고시원 사장님의 마음이 잘 치유되기를 기도한다. 고시원 아저씨도 과민한 강박증이 조금씩 해소되기를.

죄송한 마음으로 맞는 사순절
1월 29일 의료원 중환자실에서 별세하신 고씨 아저씨. 3월 9일 오늘에야 알게 됐다. 미안해요, 아저씨. 담당 직원과 1월에 통화한 말, “설에 이불 받으러 갈게요”가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영락공원 홈페이지에서 검색하면 별세 일시와 화장 일시가 바로 검색된다. 의료원 원무과 담당 과장님께 전화하니 “결핵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중환자실 계시다가 돌아가셨네요”라고 무덤덤하지만 자세하게 말씀해주신다. 남동생이 모셔 가신 것 같다고 한다. 화장 일은 2월 2일. 역시 산골로 영락정에 합장하신 것으로 추측된다.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가족관계가 단절된 상태였고, 우리 상담소 직원과 교류가 없었기에 애써 알아보기가 미안하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날에 사순절은 시작된다. 생명의 경이로움은 결코 ‘겉으로 보이는 화사’만은 아니다. 곳곳에 고통이 수반된다. 봄이 완연한 사순절,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여전히 방황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조금 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3월 10일. 평생에 한 번 만나기 어려운 역사를 우리네 한국인들이 겪고 있다. 기독인들은 더 세차게 겪고 있다. 2017년의 봄은 더욱 가열하게 자라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힘들고 괴롭지만, 행복으로 살아간다.

인생의 그늘 제일 구석진 곳에서 살아가시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은 여전하다. 동생뻘 되는 주민 한 분이 대장암이 재발해서 나만 의지하고 있다. 엊그제 솔직히 말했다. 

“◯◯씨는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뜰 수도 있어요. 마음을 편하게 먹고 앞으로 잘 지냅시다. 수술은 어렵지만 항암치료라도 할 예정이니 힘내요.”

눈물을 글썽인다.

그의 삶, ‘진실’을 되새긴다.

 

이재안
잠자리 눈물만큼의 정(情)이라도 찔끔찔끔 나누며 살아가는 작디작은 풀꽃강물교회 식구이며, 부산 동구지역을 중심으로 ‘혼살이’ 아저씨 아줌마 할매 할배들과 찌지고 뽁고 욕먹고 욕하며 살아가는 40대 유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