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하는 삶에도 봄은 오는가

[318호 쪽방동네 이야기]

2017-04-21     이재안 부산 동구쪽방 활동가, 풀꽃강물교회 전도사
   
▲ 사진: 이재안 제공

응급실에서, 다시 응급실로
손씨 어르신께서 3월 16일부터 4월 10일까지 응급실을 두 번, 수술을 두 번 하셨다. 다음은 그 기간의 일기.

3월 16일
3시간 전, 밤 9시 37분 쪽방 손씨 어르신에게서 전화가 와 받으니, ◯◯◯병원 응급실 의사라고 한다. 최대한 빨리 와서 입원 절차를 밟으란다. 어르신이 토혈을 많이 해서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은 하신다는데 걱정이다. 봉사활동도 많이 하시고 뭐라도 먹을 게 있으면 항상 나누어 주시는 분이다.

약속된 모임을 마치고 밤 11시 30분, 다시 전화하니 옆방 진씨 아저씨가 그곳에 계신다. 지금 출발한다. 우리 쪽방 분들, 봄이 되니 컨디션이 오르락내리락하신다. 아랫방 박씨 아저씨도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 번’ 전화하신다. 중2 둘째 아들에게 “굿 나잇” 인사하고 병원으로 간다. 교회 식구가 무상으로 주신 마티즈 타고 병원으로 출발한다.

3월 17일
새벽 2시 11분까지 응급실에서 대기하다가, 아침 일찍 위내시경 찍어서 결과 보고 8시경에 입원실로 옮길 예정이다. 일단 나는 귀가한다. 손씨 어르신은 나에게 “잘 쉬고 오라” 하신다.

3월 18일
오늘은 슬리퍼를 갖다 드리고 왔다. 어르신은 장 문제로 계속 금식 중이다.

3월 24일
알고 보니, 어르신은 3개월 전 술 한잔하시고 넘어져서 갈비뼈가 골절된 모양인데, 그때 참고 참다가 폐 쪽에 상처를 줘서 그 피가 고여 있었다고 한다.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신다. 어이쿠야, 그래도 다행이다.

3월 27일
아침에 전화가 왔다. 아랫방 박씨 아저씨와 병원에 함께 가신 모양이다. 어르신께서 새벽에 다시 ◯◯◯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시립의료원으로 전원하신단다. 다른 일정을 마친 후, 의료원 응급실에 가보니 담당 의사가 외과 과장을 불러 설명해준다.

“지금 대장이 파열되어 복막염의 위험이 있어 곧 수술해야 합니다.”
◯◯◯병원은 지난 며칠간 도대체 무슨 치료를 했나….

4월 3일
부산대학병원 공공의료팀 정신보건복지사와 함께 매주 월요일은 고위험군 주민들을 직접 방문 상담한다. 그때 손씨 어르신 계신 의료원에 다시 방문하니, 췌장에 문제가 있어서 다시 수술을 했다며 배에 붕대를 감고 계신다. 어휴….

4월 10일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나니, 얼굴은 좀 더 수척하시다. 대변은 아직까지 잘 안되셔서 기저귀를 사용하신단다. 그래도 특유의 목소리는 여전히 활기차시다. “다음 주에 퇴원하라는디..!!” 가족과 단절되어 돌보는 이 없으니, 내가 찾아가면 그저 고마워하신다. 퇴원하시고 췌장암 수술 경과가 좋아지시기를 기원하고 기도한다. 사순절의 기도가 가슴 깊은 속에서 올라오지 않을 수 없다.

잠자리 눈물만큼의 사순절 예배
교회 회원이 되신 지 일 년, 우씨 형님은 20대에 노조운동하시다가 고문당한 후 트라우마로 고생하신다. 그리고 알코올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다가 혼자 지내신다. 우씨 형님의 월세방이 따사로워지고, 향초와 향긋한 원두커피 핸드드립 한 잔씩. 그곳에서 함께 드리는 예배 가운데,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집을 방문해줘서 고맙다, 고맙다” 말씀하신다. 요즘 우리 교회의 주요 화두는 우씨 형님의 알코올 중독 치료다.

말씀을 나누면서 교회에 공식적으로 우씨 형님의 사연을 공유하고, 서로 마음을 모아 돕기로 했다. 술 때문에 저지른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신다. 그래도 여전히 때로는 높아지는 언성, 어설퍼 보이지만 그 귀한 고백들과 진솔함. 김밥 한 줄, 빵 한 조각 나눈다.

“이 떡을 나눔은 우리의 사랑을 나눔이니~ 그대들과 나는 이제 한 웃음 가진 벗이라.”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의 행동을 함께 바라보고 묵상하며, 예배가 어떠한 모습,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지를 성찰하며 가슴을 두드린다. 모든 이들이 더불어 함께 걸어가는 세상, 고통을 보듬어 안고 나아가는 삶, 작은 공동체 예배에서 솔직하고 정직하게 얼굴을 대면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얼굴을 본다.

4월 부산역 근처에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산역 근처는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 바람이 봄바람과 조화를 이룬다. 점심시간이라 때마침 식사하러 나온 여직원들의 봄바람 한껏 실은 꽃무늬 치마가 살랑살랑 봄 냄새를 퍼뜨린다.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풀꽃강물 친구들과 걷는다. 27세, 33세, 두 남자 청년은 쪽방상담소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부산역까지 걸으면 15분 정도 걸린다. 부산역 마당에서 김씨 아저씨를 만나 인사하려고 한다.
함께 걸으면서 개인 미디어에 글 하나 끼적여 본다.

잡초 풀꽃 들꽃은
후미진 곳,  그늘에서 피어나네요.
우리들의 하루하루 힘든 삶,

잠자리 눈물만큼의 희망을 일구어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윤◯이를 데리고 현◯이 사는 고시원에서 끌고 나와 부산역으로 산책합니다.
부산역 앞마당에 계신 우리 동네 아저씨들 인사하고
둘에게 라면 한 그릇씩 사주려고요.

김 선생님이 던져준 이야기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고, 범상치 않은 천둥소리에 하늘도 우는 건가? 심쿵한 그날 밤, 막 피려는 벚꽃들이 금세 떨어져 버릴까 아쉬워하던 찰나, 내가 좋아하고 오붓하게 존경하는 김 선생님이 함께하는 모임 톡방에 글을 한 편 올리셨다. 소박한 봄맞이 인사 글이다. 일곱 번 정도 읽어보고 되새겨 봐도 여전히 아랫목이 사알짝 멘다. 어제는 두 아들 앞에서 낭독해보니 다시금 목이 멨다. 

봄비치고는 꽤나 세찬 비에 이제 갓 피어난 꽃들이 떨어져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이른 봄에 가장 먼저 피고 가장 먼저 지는 봄꽃 중에 목련만큼 피고 지는 것이 매우 극적이고 슬픈 꽃이 또 있을까요? 어제까지만 해도 단순한 꽃봉오리였다가 어느 순간 바라보면 한 송이 꽃으로 활짝 피어나있지요. 목련은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이 대부분 노란색인데 반해 단연코 돋보이는 순백의 자태로 봄 햇살을 받으며 도도하게 피어나지요. 그런가하면 눈이 부시도록 고운 모습이 반가워 다가가면 어느새 색 바랜 꽃잎들이 땅바닥에 처연하게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간절히 봄을 기다려온 이들에게 짧은 환희를 맛보게 하고는 도무지 당신의 사랑과 관심을 더는 받을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사라져 버립니다. 순간적인 피어남과 떨어짐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꽃 목련은 우리에게 기쁨도 슬픔도 찰나이고 지나가는 것임을 보여주는 참 묘한 꽃인 것 같습니다. 올봄에도 어김없이 우리 곁에 와준 봄꽃들 매화, 복수초, 개나리… 그 꽃들이 다시 이 땅에서 꽃을 피웠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봄이 돌아오고 꽃들이 다투어 피었다는 것은 아직은 이 땅이 그래도 견딜만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 같아 눈물이 나도록 봄꽃들이 반갑고 고맙습니다.
목련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 봄에 떨어지는 것이 어디 목련뿐이겠습니까? 남녘땅 강진 백련사 뒤 숲 부도탑 위로도 선홍색 핏빛의 동백 꽃송이들이 장렬하게 모가지를 떨구고 있을 테지요. 어제 아내와 함께 활짝 핀 벚꽃을 보며 탄성을 질렀는데 오늘은 그 꽃들이 세찬 비바람에 떨어져 비에 젖은 땅에 나뒹굴고 있는 것을 봅니다. 꽃들은 떨어지지 않으면 결코 사랑을 이룰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슬프고 아쉬워도 그렇게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지요.

이 봄, 아름다운 꽃들이 우리의 귓가에 속삭이며 말하고 있습니다. 그대들도 우리처럼 사랑을 위해 그렇게 속절없이 떨어질 준비가 되어 있냐고.

한 달에 한 분씩은 어김없이 생을 마감하시는 쪽방주민 분들, 여전히 부산역에서 노숙하고 계신 김씨 아저씨, 조현병·충동 조절·분노 조절이 힘들어 마음고생하시는 분들을 올봄에도 여전히 보고 있다. 함께 식사도 하고 친구처럼 형님처럼 삼촌처럼 그렇게 지낸다. 그렇게 사순절을 보낸다. 그렇게 살아간다.

살아생전 예수의 삶을 다시 떠올려 본다. 이스라엘 백성들, 그 유목의 삶, 떠돌이 삶이 눈에 생생하다. 그 고통의 시간들 속에서 공동체를 돌아보고 함께 뒹굴며 지내오는 그들의 삶을 따라 가보려 한다. 아름다운 꽃은 반드시 떨어져야 나무가 자라고 줄기가 영글고 열매가 맺힌다. 우리도 사랑을 위해 그렇게 속절없이 떨어져야 한다.

 

이재안
잠자리 눈물만큼의 정(情)이라도 찔끔찔끔 나누며 살아가는 작디작은 풀꽃강물교회 식구이며, 부산 동구지역을 중심으로 ‘혼살이’ 아저씨 아줌마 할매 할배들과 찌지고 뽁고 욕먹고 욕하며 살아가는 40대 유부남.